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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33)화 (133/161)

133화

“뭐?”

카르시온이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확 치우며 나를 바라봤다.

그의 동공에 격렬한 지진이 일고 있었다.

“왜, 왜 나랑?”

왜기는. 너 놀리려고 그러지.

나는 상처 입은 표정을 하며 고개를 뚝 떨궜다.

“카온. 나랑 같이 자는 게 그렇게 싫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잘만 자 줬으면서.

시무룩하게 덧붙인 말에 카르시온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때는 네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했으니까 위로해 주려고…….”

“너 없이 못 자는 몸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내빼겠다는 거야?”

내 발언에 카르시온이 헛숨을 크게 들이켰다.

“리엔!”

아 깜짝이야.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카르시온이 몸을 파르르 떨며 잔뜩 붉어진 얼굴로 변명하듯 말을 뱉어냈다.

“그렇게 말하면 뭔가 이상하잖아. 나는 정말 순수하게 널 안정시켜 줄 목적으로…….”

“그럼 나랑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거야?”

“그……!”

카르시온은 뭐라 입을 열려고 하다가 급하게 다시 닫았다.

아쉽다. 뭔가 말했으면 더 놀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슬슬 잠이 오는 것 같다. 이 무의미한 말씨름을 종결 낼 때가 온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이길 싸움이었다.

놀리는 건 침대에서 조금 더 이어 가지 뭐.

나는 표정을 어둡게 바꾸었다.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연인 사이라도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랫입술을 살짝 씹은 후 베개를 꼭 끌어안았다.

“나, 갈게…….”

문손잡이에 천천히 손을 올리려던 때였다.

“잠깐!”

얼굴에 음흉한 웃음이 떠오를 뻔한 것을 겨우 누른 나는 순진한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봤다.

“응……?”

“네가 괜찮으면!”

카르시온이 한껏 붉어진 얼굴로 힘겹게 말을 토해 냈다.

“자고…… 가.”

“좋아.”

나는 단번에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쪼르르 달려가 방의 주인이라도 된 듯 침대를 차지했다.

카르시온이 배신감에 얼룩진 표정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하, 여우 같은 리엔도 너무 좋다……. 저 요망한 표정을 사진으로 남겨 놨어야 하는데.”

그의 주접에 피식 웃은 나는 침대 위에서 그를 유혹하듯 살랑살랑 손짓했다.

“빨리 와 자기야.”

“리엔, 제발 그만……!”

이제 그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하고 있었다.

“빨리이.”

계속되는 재촉에, 카르시온이 사형대로 걸어가듯 어기적어기적 내가 있는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카르시온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야살스럽게 눈이 휘어졌다.

내재 되어 있던 장난기가 비죽 솟아올랐다는 신호였다.

그가 고장 난 태엽 인형과 같은 뻣뻣한 움직임으로 침대에 누웠다.

……침대 끝 쪽에, 그것도 정면이 아닌, 뒤로 엎드려서 말이다.

침대는 성인 남성 5인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의 크기인데.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에 조금 심술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그의 귀와 뒷덜미를 발견하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계란을 까서 그의 뒷덜미에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반숙이 될 것 같았다.

“카온, 그렇게 끝 쪽에 누우면 자다가 떨어져.”

“…….”

나는 베개에 턱을 괴고는 그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 등을 검지로 꾸욱 눌렀다.

단단하게 경직된 것이 통나무를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잠버릇이 없어서 괜찮아.”

“푸하하!”

빵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어린 귀족들 사이에서 배를 누르면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오는 인형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그 인형도 이런 재미에 누르는 걸까.

“카온, 나 부탁이 있어.”

“……미안해. 안 될 것 같아.”

세상에.

맨날 뭔지 들어 보지도 않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나는 카르시온의 양 뺨을 잡아 고개를 돌렸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그가 실눈을 떠 나를 바라본다.

“윽!”

그리고 눈썹을 그러모은 채 간절한 눈을 하고 있던 나와 정면으로 마주쳐 버렸다.

“정말 안 들어줄 거야?”

“후, 하……. 뭔지 들어 보고 결정해도 될까?”

에이. 이것도 안 낚이네.

그래도 이 정도면 놀릴 발판은 마련했다고 해도 괜찮았다.

“음.”

나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척하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사실 뭘 부탁할지 정해 놓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뭘 어떻게 해야 카르시온을 극한까지 놀릴 수 있을까.

1. 와락 껴안으며 입술을 덮친다.

제어 마법이 안 걸려 있어서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기절할 수도.

2. 진짜 아기를 가져 보는 건 어떠냐고 장난친다.

……있지도 않은 아기 떠나보내느라 한동안 마음고생 했는데, 당분간 아기 관련된 말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3. 놀릴 만큼 놀렸으니 봐준다.

봐주긴 무슨. 재미있어 죽겠는데, 어림도 없지.

나는 결국 그가 버틸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적당히 타협을 보기로 했다.

“팔 배게 해 줘.”

“……리엔, 나를 죽일 셈이야?”

“미안. 어렸을 때 부모님 팔을 베고 자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그래서 왼팔이 좋아 오른팔이 좋아?”

나는 말없이 카르시온의 오른팔을 끌어 위치를 잡고 머리를 뉘었다. 그러고는 굳어 있는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따뜻한 온기에 괜히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는 이 온기를 찾고 있었다. 그 전에는 추운 줄 몰랐는데.

홀로 잠을 청하는 것이, 홀로 버티는 것이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카르시온은 내게 스며들며 이제 없어서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내 구원이고 사랑이었다.

“카온, 사랑해.”

“…….”

기절했는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건지. 그는 대답이 없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저번에 확실하게 들었으니까.

뭐, 나중에 부끄러움을 덜 타게 되면 자주 말해 주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르시온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다.

* * *

리엔이 색색거리며 잠든 것을 확인한 카르시온이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내가 더 사랑해.”

한참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던 그는 폐부에서부터 끌어 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

리엔이 저를 놀리려고 한 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난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달아오른 열기는 쉬이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지금도 저를 꼭 끌어안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팔까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이고.

그중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리엔이 입고 있는 네글리제의 소재가 굉장히 얇다는 점이었다.

저를 어떻게 믿고 이런 앙큼한 짓을 하는지.

사실 바로 몸에 제어 마법을 건 후 일을 치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제어 마법을 걸고 스킨십하는 것을 리엔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고집을 덜 부려도 될 것도 같지만 어쩌겠나. 이미 제가 선택한 길인 것을.

카르시온은 아랫배가 당겨오는 느낌을 애써 무시했다.

기나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 *

나는 며칠째 제자리를 돌고 있는 치료제 개발 연구에 머리를 쥐어짰다.

“아아악! 다 때려치워, 그냥!”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내 옆에 얌전히 누워 있던 도비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괜히 도비에게 미안해진 나는 서랍에서 소시지를 꺼냈다. 그러자 도비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맹수인 늑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순한 아이였다.

……여성 한정으로.

“미안해. 많이 놀랐지? 그냥 답답해서 내질러 본 거였어.”

“끼잉.”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였다.

어렸을 때 만들었던 치료제들은 전부 실패작이었다.

그때의 연구가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작이었던 만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약초와 연금술로 만든 약은 굉장히 예민해서, 배합되는 약초가 1g만 달라져도 아예 다른 약이 되어버린다.

또 어떤 약초가 그 병에 효과가 있는 줄 알고?

어렸을 때 기록해 놓은 게 있으나 그거로는 자료가 모자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낸시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실례를 무릅쓰고 혈액이라도 채취해 놓을걸.”

며칠 전, 낸시의 편지에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게 편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낸시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후였다.

나는 그녀가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천천히 마음을 추스르기를 바라서 부조금을 크게 챙겨 보냈다.

미안한 마음도 함께였다.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처럼 희망을 줘 놓고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도비, 답답한데 잠시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카르시온의 말로는 리시안셔스 영지에서는 도비를 데리고 나가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괴짜 마법사들과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에 익숙해서 놀라지 않을 거라나.

마법사 중에는 도비와 같은 특이한 생명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도 몇몇 있고.

“그 산책 당연히 나도 데려가는 거지?”

익숙한 목소리에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느른히 문에 기댄 카르시온이 보였다.

그의 등장에 도비가 내 뒤로 황급히 숨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약초 시장에 나갈 건데 괜찮아? 너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네가 있는데 지루할 틈이 어디 있어.”

……로맨틱하다고 해야 할지, 집착이 과하다고 해야 할지.

“그럼 다행이고.”

우리는 달리 준비할 것 없이 바로 도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입마개와 목줄은 필수였다.

오랜만에 텔레포트가 아닌, 마차를 타고 도착해 약초 시장에 막 내렸을 때였다.

기대되는 마음에 눈을 빛내고 있던 나는 갑자기 입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미간을 좁혔다.

“어디 불편해?”

“으응, 별건 아니고 얼마 전 치료받은 이가 조금 불편해서.”

나는 혀를 이용해 그 부분을 더듬어 보았다. 특별히 이상은 없는 듯한데.

“충치가 났다고 했나?”

“응. 그래서 위에 뭘 덧씌웠거든. 연금술로 만든 거라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난다.”

카르시온이 미간을 좁히며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네가 그 지경이 나기 전에 내가 꾸준히 클린 마법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 지경이라니, 누가 들으면 양치도 안 하고 사는 줄 알겠다.”

나는 픽 웃으며 그의 볼에 입을 살짝 맞췄다가 떨어졌다.

“확실히, 네가 매일 매일 키스해 주면 더 열심히 닦을지도?”

카르시온이 확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작게 읊조렸다.

“……노력해 볼게.”

답답함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달뜨기 시작했다.

슬쩍 그의 손을 잡고 약초 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는 도비 목줄, 한 손에는 카르시온을 잡고 있으려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이곳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지 못한 사람을 발견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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