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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34)화 (134/161)

134화

“……조지 교수님?”

나는 눈을 한 번 비빈 후에야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큰 로브에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긴가민가했는데.

그 특유의 언짢은 듯한 표정과 외알 안경이 내게 확신을 줬다.

“지금은 한창 학기 중인데, 아레나 아카데미에 있어야 할 교수님이 왜 이곳에 있지?”

내 중얼거림에 카르시온이 뾰로통한 어조로 답했다.

데이트에 불청객이 끼어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약초를 사러 오신 거 아닐까.”

하지만 약초학부의 교수는 시니어 전 학년을 통틀어 조지 교수님이 유일했다.

보조 교수님은 몇 분 더 계셨지만, 약초학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분은 말이다.

수업에 차질이 생길 텐데. 왜 아카데미 주변에서 사지 않고 이곳까지?

나는 일단 잡생각은 넣어 두고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아무리 이곳이 약초로 유명한 리시안셔스 영지라고는 하나, 드넓은 제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반갑지 않을 리가.

게다가 조지 교수님은 교수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었다.

졸업하고 밑으로 들어오라 하며 나를 나쁜 길로 인도하려 했지만, 조지 교수님 하면 대체로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조지 교수님!”

내 외침에 교수님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와 다정하게 손을 잡은 카르시온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나를 만날 줄 몰랐던 탓인지 교수님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리엔……?”

나는 카르시온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여기서 교수님을 만날 줄은 몰랐네요.”

교수님이 급하게 자신의 로브를 여미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도비를 보고 놀라셨나?

음. 지금은 카르시온이 도비에게 밖에서 짖으면 안 된다고 당부…… 아니, 협박해놔서 얌전한 상태이긴 한데.

“오랜만이구나, 리엔.”

“오랜만이라기에는 졸업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는걸요?”

내 말에 그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작게 읊조렸다.

“아아, 그랬지. 그랬었지…….”

흐릿한 눈빛이,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다. 다음에 또…… 음,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럼 나는 일이 바빠서 이만 가 보마.”

“네?”

교수님이 빠르게 등을 돌렸다.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만 해도 급한 기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잠시만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손부터 나갔다. 그의 팔목을 잡자 환부를 잡기라도 한 듯 바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윽!”

나는 놀라 바로 손을 떼어 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교수님이 도망가실까 봐 바로 로브 자락을 쥐며 여쭸다.

“교수님, 어디 다치셨어요?”

“이거 놓거라.”

“아니면 관절에 이상이 생기신 건가요?”

“이거 놓으래도!”

조지 교수님이 로브를 잡은 내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리엔!”

다행히도 그 순간 카르시온이 보호 마법을 걸어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찮지 않은가 보다.

카르시온이 나를 제 뒤로 보내고는 흉흉한 눈빛으로 교수님을 바라봤다.

교수님 또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공황의 눈빛으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미안하구나.”

“교수님도 오늘 뭔가 이상하다는 거 아시죠?”

“부정하지는 않으마. 하지만 더 이상 관여하지는 말거라. 너와는 관련 없는 일이야.”

나는 그런 교수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소한 체격 때문일까, 그렇게 말하는 그가 어쩐지 오늘따라 초라해 보였다.

“제게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교수님.”

왜냐하면,

나는 싱긋 웃고는 그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손을 덮고 있는 로브의 소매를 걷어냈다.

지금부터 제가 더 죄송한 짓을 할 거거든요.

“이 고얀 놈이……!”

조지 교수님이 빠르게 로브를 내렸지만, 짧은 순간 나는 보고 말았다.

괴사하고 있는 그의 손을.

그가 아픈 것을 숨기려고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얼굴에 서서히 표정이 사라졌다. 사실 나도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교수님.”

조지 교수님이 체념한 표정과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 병에 걸리신 건가요?”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전염병인 몬스테라에 걸렸더라면 이처럼 함부로 밖에 나오려 하지 않았겠지.

방에서 홀로, 서서히 외롭게 죽어 갔을 터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걸린 것은 전염병이 아니다. 그저 몬스테라와 비슷해 보이는 병일 뿐이야. 또는 변종이거나.”

몬스테라와 비슷한 병이거나 변종이라…….

조지 교수님 또한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병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죠?”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봐서는 진행이 많이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네가 보고 만진 곳이 가장 괴사가 심한 곳이다. 반대쪽 손은 아직 멀쩡해.”

진행이 많이 되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어요?”

“네가 졸업한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내가 졸업한 후 발병한 것이라면 대략 3개월 전이었다.

몬스테라는 3개월이면 죽음에 이를 정도라고 들었는데.

조지 교수님은 그동안 한쪽 팔목까지만 괴사 된 걸 보면, 진행 속도가 굉장히 더뎠다.

우리 부모님이 걸리셨던 병도 그랬었지.

역시 몬스테라와 같은 병이 아니었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조지 교수님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몬스테라인 줄 알고 바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왔지. 죽어도 홀로 죽으려고 말이다.”

“교수님…….”

“그런 눈으로 볼 거 없다. 나도 마냥 손 놓고 있기는 싫어서 살아 보겠다고 약초를 이것저것 배합해서 먹어 봤거든. 그러다 병에 효과가 있는 걸 발견했지.”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벌써? 이리도 쉽게?

“그게, 그게…… 뭔가요?”

“꽈리 열매.”

나는 이름을 듣자마자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건 절대 복용하면 안 돼요!”

그건 일시적으로 병이 호전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부작용이 밀려온다.

그것도 일시에.

어렸을 때의 나도 신이나 꽈리 열매를 원료로 치료제를 만들어 부모님께 복용시켰었다.

그리고 결과는 최악을 달렸다.

부모님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나빠져 갔고, 결국 두 분은 돌아가셨다.

나는 당장 조지 교수님이 그것을 복용하는 것을 금했다.

늦지 않아서, 그때와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아서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문득 몇 년 전, 아칸더스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월터 교수와 가까이하지 마. 최대한 떨어져. 지금 이 순간부터 졸업할 때까지. 아니, 졸업 후에는 만날 일이 없으니까 더더욱.’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월터 교수님과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조지 교수님이셨다.

아칸더스가 내게 졸업 후에 월터 교수님과 떨어져 있으라 강조했던 이유가 따로 있던 건가?

그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거지?

수십 가지 가설이 단번에 세워지며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칸더스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수는 없지 않나.

게다가 월터 교수님이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기에, 그는 전염병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검술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매사에 관심이 없고 누구보다 귀차니즘이 심한 그였다.

무엇보다 조지 교수님의 병은 전염성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월터 교수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세요?”

조지 교수님과 월터 교수님은 수업시간 외 내내 붙어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으셨다.

정말 월터 교수님이 관련이 있는 거라면 조지 교수님을 이렇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모른다. 월터에게 알려 봤자 걱정만 늘겠지. 계속 모르게 하는 편이 낫다.”

눈물 나는 제자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와 다음에 만나자는 말도 차마 끝까지 하지 못하셨던 거구나.

하지만 이대로 조지 교수님의 병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병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았는가.

“교수님. 저랑 치료제를 같이 만들어 보시는 건 어때요?”

“……너와?”

“네, 그렇지 않아도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걸린 병은 몬스테라가 아닐 수도 있다.”

“괜찮아요. 제가 만들려 했던 치료제는 몬스테라를 노린 게 아니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버석하게 웃었다.

“제 부모님도 몬스테라와 굉장히 유사한, 그러나 전염성 없는 병에 걸리셔서 돌아가셨거든요.”

* * *

조지 교수님은 다음날부터 리시안셔스 공작성에 있는 내 연구실로 출근했다.

아예 공작성에 방까지 내어 주어,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의 공작성에 살다시피 했다.

그가 치료제 연구에 가세하자 막막했던 부분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약초 지식도 지식이지만 임상 실험을 할 환자가 있으니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 뒤에는 꼭 나쁜 소식이 따라붙는 법.

꽈리 열매의 복용을 멈춘 탓인지 조지 교수님의 괴사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꽈리 열매를 계속 복용했더라면 상태가 더 심각해졌을 거다.

“잠시만 쉴까요?”

눈이 아파 배합하던 약초를 내려놓고 조지 교수님을 바라봤다.

“그러지.”

썩어들어가는 그의 한쪽 팔을 보다가, 나는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어, 교수님. 정강이에 그 부어오른 자국은 뭐예요?”

“그냥 모기에 물린 거다. 물린 지 꽤 되었는데 오래 가는구나.”

모기에 물린 자국이라는 말에 나는 다소 안심했다.

혹여나 다른 합병증이 온 걸까 걱정했던 까닭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기가 물린 곳에 손톱으로 누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십자 자국이 나 있었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푸하하! 모기 물린 곳에 십자라니, 천하의 조지 교수님도 이런 민간요법을 쓰시는군요.”

그러자 조지 교수님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십자 자국을 가리며 변명했다.

“이건 민간요법을 쓰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하긴, 모기 물린 곳에 손톱으로 십자 자국을 내는 건 국룰이죠.”

어깨를 으쓱이며 실실 웃던 나는 조지 교수님을 놀리려 말을 덧붙였다.

“아직 여름도 아닌데 모기라니. 어디에서 피를 헌납하고 오신 거예요?”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부모님이 처음 병에 걸리셨던 것도 한창 모기가 기승부릴 때였지.

두 분 다 모기에 물려 크게 부어오른 곳을 내가 대신 손톱으로 십자 모양을 내며 웃었었는데.

……어?

나는 순간 벼락같이 내려친 깨달음에 눈을 잘게 떨며 조지 교수님의 부어오른 다리를 바라봤다.

모기에게 물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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