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모기.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전염병이 아니라, 모기 매개 감염병이라고 생각하면 부모님이 걸렸던 병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았던 이유도 설명이 됐다.
“교수님.”
차마 억누르지 못한 감정 때문에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어쩌면 몬스테라는 전염병이 아닐 수도 있어요.”
“뭐라고……? 몬스테라가 전염병이 아니면 동시다발적으로 병에 걸리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이냐.”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봐야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구실을 나섰다.
“오늘은 무리하지 마시고 먼저 들어가 쉬세요!”
그러고는 카르시온의 연구실로 향했다.
마나를 담아 부르면 금방 내 앞에 나타나 줄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서도 그의 마법 연구실은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카온!”
내가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뭔가를 끄적이고 있던 카르시온이 다소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리엔?”
“카온. 수도에 잠깐 가 봐야 할 것 같아. 같이 좀 가 줄 수 있어?”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목적지는?”
이 와중에 이유를 묻지 않고 부탁을 들어주는 그가 사랑스러워 보였다면, 중증인 걸까.
“낸시가 일하는 치료소. 너도 어딘지 알지?”
* * *
확인하는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낸시에게 가서 물은 것은 총 두 가지.
“너희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모기에 물려 피부가 부어오른 적 있어?”
그녀는 내 눈빛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진중하게 내 물음에 답했다.
“모기를 물리신 건 잘 모르겠는데, 팔에 독한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부어오른 부분이 있긴 했어.”
여기에서 나는 반쯤 확신했다.
몬스테라는 전염병이 아닌, 감염병이라고.
“실례지만, 병에 걸리신 지 얼마 만에 돌아가신 건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3개월을 채 넘기시지 못했지.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몬스테라와 똑같았어.”
“……답해 줘서 고마워.”
궁금했던 두 가지를 모두 들은 나는 바로 치료소를 나왔다.
그리고 몬스테라와 관련된 자료들을 싹 찾아봤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테라에 걸린 환자들은 모두 신체 한 부분이 부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문일까, 내가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도 몬스테라가 전염병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의원들은 몇 있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이미 전염병이라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확인했으나, 몬스테라와 부모님이 걸렸던 병이 같은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병의 진행 속도는 몬스테라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는 것.
시간이 흘러 병이 진화된 것이라고 여기기에는 조지 교수님도 더디게 병이 진행되었지 않나.
설마.
“꽈리 열매를 먹은 덕분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면 나중에 빠르게 병이 악화되더라도 사람들에게 복용을 시키는 게 맞지 않나?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니까.
“아니, 돌아가신 부모님은 반년 넘게 꽈리 열매 없이 버티셨어.”
병의 진행 속도를 계산해 봤을 때, 열매로 만든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버티셨을 터였다.
“그럼 조지 교수님의 병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은 꽈리 열매 덕분은 아니라는 건데…….”
조지 교수님이 특이 케이스인 건가?
공작령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에 앉아 그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갔다.
해가 지고, 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떴을 때는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
“분명 책상에서 잠들었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보니 카르시온이 눕혀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어나자마자 다시 연구실로 향한 나는,
하루아침에 세상에 뒤집히고 말았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제국 전역에 몬스테라 감염자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재앙이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 감염자가 속출한다고?”
나는 망연한 얼굴로 읊조리다가 눈을 찌푸렸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났다. 자연적으로 생겨 난 병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이럴 때를 대비하기라도 한 듯 아카데미를 다닐 때 조별 과제로 만든 게 하나 있었다.
한스, 내가 말했지.
마물 기피제도 있는 세상에 모기 기피제가 없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실용성이 하나도 없다고 했나? 이런 걸 실용성이라고 하는 거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바로 카르시온과 함께 한스에게 찾아갔다.
어쩐지 어제도 그렇고 카르시온을 이동 수단으로 쓰는 것 같아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시가 급한 만큼 그의 텔레포트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한스에게 모기 기피제를 대량 생산할 것을 부탁했다.
구하기 쉽고 저렴한 것들로 만들 수 있기에, 큰 한스네 상단이라면 금방 생산해 낼 수 있을 터였다.
한스는 지금껏 숨겨 왔던 유능함을 보여 주며 빠르게 모기 기피제 생산을 착수했다.
그리고 모기 기피제가 생산되는 동안 나는 몬스테라가 모기를 매개로 감염되는 병이라는 것을 제국 전역에 알리는 일을 했다.
이 부분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 돈과 권력이 무엇인지 리시안셔스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한껏 뿌듯한 눈으로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능력 있는 애인이랑 예비 시부모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카르시온이 감격 어린 표정으로 내가 한 말을 곱씹었다.
“애인……. 예비 시부모님…….”
그런 카르시온을 보며 작게 웃은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가장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남은 일을 처리해야겠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카온.”
내 부름에 카르시온이 나를 응시했다.
아니,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다가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지금 내가 할 부탁을 생각하니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불러 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카르시온이 편히 말하라는 듯 옅게 미소 지었다.
“듣고 있어.”
나는 주먹을 꽉 쥐며 그에게 부탁했다.
“혹시 지금 몬스테라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곳에 가 줄 수 있어?”
전염병이 아니라고는 하나, 위험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카르시온은 이번에도 싫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하면 되는데?”
“표본이 필요해. 살아 있는 모기를 잡아와 줘. 잡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그가 씩 웃었다.
“다녀올게.”
금방 마법을 캐스팅하며 떠날 것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의 소매를 잡았다.
마법으로 어련히 몸을 잘 보호할 거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를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소매를 잡고 있자, 카르시온이 설마 하는 얼굴로 눈썹을 그러모으며 나를 바라봤다.
“날 걱정해 주는 거야, 리엔?”
“사랑하는 사람을 감염병이 들끓는 곳에 보내는데 어떻게 괜찮을 리가 있겠어.”
그러자 카르시온이 제 심장을 부여잡으며 심호흡을 했다.
“하, 너무 귀엽잖아…….”
“농담 아니야.”
카르시온이 얼굴에 더없이 환한 미소를 그려냈다.
“알아. 그래서 더 좋은걸. 네가 걱정해 주니까 행복하다.”
카르시온은 고개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런데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건 싫어. 리엔, 아카데미에서 내 전공이 뭐였지?”
“마법이지.”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뭐라 불렸었지?”
“연쇄 손목마.”
고민 없이 나온 내 대답에 카르시온이 몸을 움찔했다.
“……그거 말고.”
“사이코? 살인귀? 이중인격자? 유사 북부 대공?”
“…….”
내가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카르시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알았다.”
그제야 그가 화색을 띠며 입을 연다.
“그래 마법 ㅊ……!”
“피오르 전담 공격수.”
“……그런 별명도 있었어?”
사실 방금 건 카르시온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즉석에서 지어낸 거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나저나 진짜 뭘까. 나올만한 건 다 나온 것 같은데.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가 ‘마법 ㅊ’까지 말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마법 천재?”
“……으응. 그거.”
그는 어쩐지 굉장히 찝찝하다는 얼굴로 긍정하다가 이내 표정을 고쳤다.
“어쨌든, 결론은 내가 마법을 잘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여유롭게 웃은 그가 돌연 내 볼에 입술을 맞췄다.
그러고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다녀올게.”
나는 눈 깜짝할 새 사라진 카르시온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온기가 닿았던 뺨을 매만졌다.
벙벙한 기분이었다.
* * *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카르시온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공작성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모기 수백 마리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그런데 카르시온의 표정이 무언가 좋지 않아 보였다.
“카온, 너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모기에 물린 거야?”
놀란 나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리, 리엔……!”
“어디가 물린 건데? 팔이랑 얼굴은 괜찮아 보이는데, 안쪽이 물린 거야? 어디 봐봐!”
급기야 카르시온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그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덮으며 막아 냈다.
카르시온이 한껏 붉어진 얼굴로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나는 전혀 물리지 않았으니까 안심해, 리엔.”
그제야 그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스르륵 빠졌다.
“그럼 그 어두운 표정은 뭐였어?”
카르시온이 유리병을 가리키며 질문에 답했다.
“저 모기들에게서 응집된 마나가 느껴져.”
“뭐……?”
모든 생명에게는 마나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가 있어서 작은 동물일수록 가진 마나는 미약하다.
그런데 작은 모기에게서 응집된 마나가 느껴진다면 그건…….
“카온, 설마 이 모기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그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응. 마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