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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36)화 (136/161)

136화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지금쯤 도비가 놀고 있을 정원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도비는 일반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생식기조차 없는 마물과는 엄연히 달랐다.

……생식기? 잠시만.

마물은 번식 활동을 하지 못한다.

무조건 마나의 응집과 뒤틀림 속에서만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국 전역에 마물인 모기에게 똑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카온.”

“응.”

“이 병, 사람이 인공적으로 마물을 만들어 퍼뜨린 병인 것 같아.”

“……마물이라면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겠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계획적으로 실험을 했던 것 같지 않아? 처음 병이 유행한 곳이 아바스칸투스잖아.”

아바스칸투스는 라그라스에 비해 고온 다습한 나라였다.

모기나 다른 곤충들이 더욱 살기 좋은 환경인 것은 당연지사.

그 때문에 모기와 다른 곤충들에게 물리는 건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욱 원인을 파악하는 게 힘들었겠지. 초반 증상도 감기와 흡사하니 더더욱.

“시작지가 라그라스였다면 모기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우리 라그라스는 여름에만 모기가 기승을 부리니까.

“그렇다고 라그라스에서 시작됐으면 좋았겠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카르시온은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모고동 설립자, 월터 교수님 아니야?”

“미친…….”

그의 말대로였다.

월터 교수님이 모고동의 설립자라는 사실은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왜 하필 월터 교수님이 창설한 모고동과 관련된 모기인 걸까.

게다가 왜 하필이면 월터 교수님과 붙어 다니던 조지 교수님이 병에 걸린 거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황이 그가 범인이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칸더스가 월터 교수님과 떨어지라 했던 건 이것을 예견한 거였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일이 아닌 만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카온, 혹시 월터 교수님을 찾아가서 추적 마법을 걸어 줄 수 있어? 아니, 아예 이곳으로 데려오자.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사실 조지 교수님을 만난 날, 나는 곧바로 월터 교수님이 아카데미에 아직도 재직 중이신지 알아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다니고 계셨으니 찔리는 게 있지 않은 이상 도망치지는 않았을 터였다.

만약, 월터 교수님이 정말 범인이라면 언제든 잡을 수 있게 추적 마법을 걸어야만 했다.

내 성급한 마음이 담긴 눈빛에, 카르시온이 슬쩍 내 눈을 피했다.

“사실 이미 걸어 놨어.”

“뭐?”

이미 걸어 놨다고?

왜지? 카르시온 앞에서 월터 교수님 이야기를 꺼낸 건 분명 이번이 처음인데.

“카온, 네가 왜 월터 교수님께 추적 마법을 걸어 놨었는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

“……화낼 거야? 날 때릴 거야?”

그가 답지 않게 고개를 기울이며 애교 섞인 음성을 냈다.

뭔데 저렇게 밑밥을 깔지?

“그건 들어 봐야 알겠지.”

단호한 대답에 카르시온이 눈망울을 일렁였다.

오랜만에 얼굴 공격이었다.

윽. 저건 반칙이잖아.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내 뺨을 찹찹 두어 번 친 후 그의 눈을 마주했다.

결과는 말해 무엇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든 카르시온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추적 마법을 걸은 건 아카데미 1학년 마지막 학기가 마쳤을 때 즈음일 거야.”

“그렇게 오래된 일이라고?”

놀람을 넘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의 긴 기간이었다.

“그때 우연히 아칸더스가 네게 하는 말을 들었거든.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대화를 들었었다고?

“아아…….”

결국, 나를 걱정해서 그랬다는 말이었다.

카르시온이 이걸 말하기 꺼렸던 것은 제인을 내게 붙였던 일 때문이었겠지.

내가 그때의 그에게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느낌이 끔찍하다 했었으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양 뺨에 손을 올려 시무룩하게 내려가 있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 나도 확실한 증거 없이 월터 교수님께 추적 마법을 걸어 달라 부탁한 거였으니까.”

“……정말?”

“왜, 아쉬우면 때려 줄까?”

카르시온은 뭔가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카온, 내가 전에 입술로 때렸던 것 때문에 고민하는 건 아니지?”

그러자 그가 확 얼굴을 붉히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네 반응부터가 거짓임을 말해 주고 있는데.

나는 픽 웃고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부탁했다.

“믿어 줄 테니까, 그럼 월터 교수님 좀 이곳으로 데려와 줄 수 있을까?”

“……언제?”

“최대한 빨리. 지금이면 더 좋고.”

“알겠어.”

어느새 열을 식히고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카르시온이 제 손가락을 튕겼다.

탁-!

그리고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난 월터 교수님을 보고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 미친놈이.

곱게 텔레포트로 가서 데려올 줄 알았더니 이렇게 노빠꾸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말이라 그런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거다.

나는 팔꿈치로 카르시온의 허리를 찔렀다.

“야, 교수님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홀딱 벗고 있는 상태였으면 어떡할 뻔했어!”

상상만 해도 아찔해지는 상황이지 않은가.

아니, 상상하는 것마저 공감성 수치가 밀려 들어와서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미안. 범죄자의 프라이버시 따위 고려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네 눈 건강을 해칠 뻔했네.”

“……그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 범인이라 확정된 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며 잠옷 차림의 월터 교수님을 바라봤다.

이 와중에도 코를 골고 배까지 긁으며 잘만 잔다.

카르시온이 내 시야에 빼꼼 들어오며 물었다.

“내가 깨울까?”

“물을 쏟으려고?”

그러자 카르시온이 수줍은 얼굴을 하며 뒷덜미를 문질렀다.

“리엔은 날 너무 잘 알아.”

그런 거에 좋아하지 말아 줄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직접 교수님을 깨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한 뒤 그를 크게 불렀다.

“월터 교수님!!!”

“으응, 5분만…….”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복잡한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이런 한심…… 아니, 이렇게 태평한 사람이 전염병을 퍼뜨렸을 것 같지 않았다.

“5분만은 집에서 하시고요. 일어나서 주변이나 살펴보세요.”

“여기가 내 집인데 그게 무슨 소리…… 뭐?”

벌떡.

월터 교수님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벙찐 얼굴로 나와 카르시온을 응시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벅벅 비벼본다.

“이게 납치인가 뭔가 하는 거냐?”

나는 슬쩍 잠금장치를 걸어 문을 닫았다.

“추가로 감금까지요.”

“……진짜 납치라고?”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날 감금시킨다고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어서? 대체 누가 사주한 거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최소한의 설명은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어요. 죄송해요. 어느 정도 판단이 설 때까지만 계시면 돼요.”

만약 전염병을 퍼트린 범인이 정말 월터 교수님이라면 말은 달라지겠지만.

월터 교수님의 시선이 카르시온에게로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의 몸에 힘이 빠진다.

반항한다고 해서 벗어나지 못할 것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걸리는 일인데?”

“몰라요. 며칠이 될지, 몇 주가 될지, 몇 달이 될지.”

몇 달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월터 교수님이 입을 쩍 벌렸다.

“날 백수로 만들 일 있냐?”

“죄송해요.”

월터 교수님은 금세 우리가 저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파악한 듯 쉼 없이 구시렁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가 군인은 안 된다며 학을 떼서 마음에 들지도 않는 교수가 된 건데.”

나는 카르시온과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흐음.

“잘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제 예비 시어머님이 능력이 좀 있으시거든요. 그렇지, 카온?”

예비 시어머니라는 말에 신난 카르시온이 빠르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지.”

월터 교수님은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뭐,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

“또한, 확실히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다고 약속할게요.”

“경우에 따라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나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럼 머무르실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월터 교수님.”

부디 다시 무죄를 입증하고 아카데미로 복귀하시길 바라요.

* * *

월터 교수님을 공작성에 감금시켰다는 건, 당분간 조지 교수님께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충격을 받을 교수님을 위해서 말이다.

확실하지는 않다고 하나, 심증이 있다는 것만으로 신경이 쓰일 테니까.

나는 치료제 연구를 겸해 카르시온이 잡아 온 모기를 조지 교수님과 함께 살폈다.

그런데 이 모기…….

“더럽게 안 죽네.”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조지 교수님과 카르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아도 명색의 마물이라 그런지 쉽사리 죽지 않았다.

다리를 잘라도 금방 재생이 되었고, 물이 꽉 찬 유리병에 종일 잠수시켜 놓아도.

심지어는 살충제를 뿌려도 쌩쌩하기만 했다.

나는 필살의 무기인 전공 책을 들었다. 그러고는 유리판에 팔다리가 묶여 있는 모기를 향해 그대로 내리찍었다.

쾅-!

전공책에 눌려 짜부가 되었던 모기의 몸이 서서히 본 형체를 찾아갔다.

“이런 미친…….”

번식을 못 하면 무엇 하나.

죽지 않으면 살아있는 모기가 계속 병을 퍼트릴 텐데.

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모기는 꿀이나 열매의 과즙을 먹고 산다.

흡혈하는 이유는 알을 낳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흡혈도 암컷만 한다.

그러나 관찰 결과 이 모기는 달랐다.

암컷 수컷의 구분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피를 빨았다.

아니, 그냥 흡혈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사람의 피를 주식으로 삼고, 다른 것은 먹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르시온이 나섰다.

“파이어 볼.”

그리고 그는 파이어 볼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거대한 불 덩어리를 만들어 모기를 그 안에 가둬 버렸다.

파스슥.

불 덩어리 안에서 모기가 재로 변했다.

“다행히 불에는 약한가 보네.”

하지만…….

마법사가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럼 이 모기를 죽일 때 횃불 따위를 휘둘러야 한다는 건데.

“모기를 죽이는 것보다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게 빠르겠어.”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연구실의 흰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모고동이었던 사람을 잠깐 만나 볼까 하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결국 잠깐 휴식을 선언하고 월터 교수님이 구금되어있는 방을 찾았다.

마법으로 보이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에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한 손에는 오렌지 주스를, 한 손에는 소설책을 들고 나를 반기는 그를 마주했다.

그것도 성인용 로맨스 소설을 말이다.

“여, 왔구나.”

“……여기 오신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적응력이 뛰어나시네요.”

월터 교수님이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여기 너무 좋다. 일을 안 해도 제때 음식이 나오고, 잠만 자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니.”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성인 남성 한 명 길러 볼 생각 없냐, 리엔?”

“…….”

“털도 안 날리고 배변도 잘 가린다.”

이 사람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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