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내 표정이 걷잡을 수 없이 썩어 들어가자 월터 교수님은 그제야 장난이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었다.”
“진심이 담겨 보였는데요.”
“그보다, 뭐 하고 있나 감시하러 온 거냐? 아니면 심문?”
말 돌리기는.
“그냥 심심해서 와 봤어요.”
“내가 무슨 기르는 동물이라도 되냐. 심심해서 보러 들어오게. 쯧, 요즘 것들은 스승에 대한 존경이 없어.”
“방금 전까지 자기를 키워 볼 생각 없냐고 하셨던 분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월터 교수님은 침대에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리엔. 내가 어제 납치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혹시 나를 무언가로부터 지켜 주려고 납치한 거냐?”
“네?”
내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떠올랐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너무 소설을 쓰신 것 같은데.
“제가 월터 교수님을 왜 지켜요.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매정하긴.”
나는 의자를 하나 끌어와 털썩 앉았다.
바로 모기에 대해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며칠은 다른 대화로 긴장을 풀어야겠어.
“궁금한 게 있어요, 교수님.”
“뭐지?”
“아칸더스랑은 언제부터 사이가 안 좋아지신 거예요?”
“분명 잘 모르겠다고 답했던 것 같은데.”
“이유는 몰라도 언제부터 사이가 멀어졌는지 모르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사실 이유를 모른다고 했지만 영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내 표정이 절로 불퉁스러워졌다.
“뭐야.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씀하셔 놓고.”
“들어 보면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거야.”
“뭔데요?”
“음. 내 가문이 레이노스 백작가라는 건 알고 있나?”
“와 월터 교수님이 귀족이셨다니, 그건 좀 충격이네요.”
레이노스 백작가는 대대로 기사를 배출해 낸 가문이었다.
과거 제국 전쟁에서도 꽤 공을 세웠다고 들었는데.
내 반응에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들 내가 평민인 줄 알더구나.”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추측이지만, 바르몬은 내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멀리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집 가문의 저택에 들른 후로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거든.”
“바르몬이요?”
“아, 너는 본명을 모른다고 했지. 아칸더스 말이다.”
바르몬.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느낌이…….
내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월터 교수님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상한 일이지. 아칸더스는 딱히 귀족을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았었는데. 내가 먼저 귀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는 거에 배신감을 느낀 걸까.”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내게 있어 아칸더스는 동등한 친구였으니까.”
목 매인 듯 그가 남은 오렌지 주스를 모두 마셨다.
“솔직히, 아칸더스라면 내가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밀어낼 거라 생각이 되지 않아.”
“저도 아칸더스가 겨우 그런 이유로 월터 교수님을 밀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음, 확실히 이상하네요…….”
아칸더스가 월터 교수님에게 단번에 등을 돌릴 만한 큰 사건이 있어야만 이 의문은 해결이 됐다.
가령, 월터 교수님이 마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아칸더스가 목격했다거나…….
“어쨌든, 내가 짚이는 건 그게 다다. 그 이후로 아칸더스는 기숙사도 다른 곳으로 바꿔 버리고, 나와 같이 창설했던 동아리도 나가 버렸지. 나와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어.”
나는 눈을 껌뻑였다.
“동아리요?”
“몰라? 나랑 아칸더스가 모고동 설립자야.”
“월터 교수님이 설립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칸더스와 같이 만든 동아리인 줄은 몰랐어요.”
“뭐, 내가 아레나 아카데미의 교수다 보니 나를 중심으로 소문이 나긴 했지. 학생들은 나만 알고 있잖아.”
월터 교수님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모기 때문에 온 제국이 난리인 것을 보면 시대를 앞서간 동아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해. 모기는 그냥 다 뒈졌으면……”
마음이 복잡했다.
저건 연기일까 진실일까.
“교수님은 어쩌다 모고동을 만들게 되신 거예요?”
그는 침대에 대자로 누우며 질문에 답했다.
“장난스러운 마음도 있었고 동아리 꿀을 빨아 보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지극히 월터 교수님다운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칸더스의 혈액 공포증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주고 싶어서. 걔는 아주 소량의 피만 봐도 정신을 못 차렸거든.”
아칸더스가 혈액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크게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공황에 빠졌었지.
“그래서 효과는 있었나요?”
“조금. 사람을 문 모기를 죽였을 때 나오는 피 정도는 볼 수 있게 됐지.”
“……그렇군요.”
나는 힐끔 시계를 바라보고는 이제 슬슬 연구실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을 깨달았다.
“휴식 시간이 다 돼서 저는 이만 가 봐야겠네요.”
의자에서 일어나 미련 없이 방을 나서려고 하자 월터 교수님이 몸을 일으켜 급하게 나를 불렀다.
“리엔.”
문고리를 잡던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네.”
“혹시 조지 교수님과 아직도 연락하고 있냐?”
나는 순간 표정을 굳힐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내고 입을 열었다.
“……그건 왜 물으세요?”
“학기가 시작되기 전 갑자기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나가셨다. 내게 아무런 언질 없이 홀연히 사라지셨어.”
월터 교수님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집에 찾아가도, 편지를 보내도 좀처럼 연락이 닿질 않아서.”
아…….
“조지 교수님이 널 많이 아끼셨으니 혹시나 해서 말이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월터 교수님의 얼굴은 꾸며낼 수 없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의 것이었기에.
* * *
바르몬은 불행했다.
물론 그라고 해서 처음부터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바르몬에게는 저를 사랑으로 키워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게다가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체내 마나를 타고나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가 대마법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저는 마법보다 연금술이 좋아요…….”
바르몬의 부모님은 아들의 꿈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바르몬. 남이 뭐라 하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가렴.”
하지만 바르몬의 행복은 유지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도, 연금술에 재능을 발견해서 무럭무럭 지식을 키워 나갈 때도.
아바스칸투스와 라그라스는 한창 전쟁 중일 때였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나라는 아주 작은 힘이라도 절실해졌다.
때문에, 소문을 들은 라그라스 황실은 바르몬을 데려가려 했다.
이제 막 7살이 된 그를 말이다.
사랑하는 바르몬을 보낼 수 없던 그의 부모님은 결국, 아들을 데리고 아바스칸투스로 망명하게 된다.
망명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오히려 바르몬에게 더 큰 불행을 불러오게 된다.
전쟁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작은 마을에 정착한 바르몬 가족은 통나무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에서 생활했다.
집은 좁았으나 헤어지지 않을 수 있게 된 세 가족은 행복했다.
그런 행복도 잠시.
마을에 정착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평화롭던 작은 마을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라그라스 제국군의 이동 경로에 그 마을이 있던 것이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사살하라! 우리가 이곳을 이동했다는 정보가 흘려져서는 안 된다!”
라그라스의 병사들의 손에 아바스칸투스의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 나갔다.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바르몬의 어머니는 어린 그를 침대 밑에 밀어 넣으며 당부했다.
“아무 소리 내지 말고 여기에 있어.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듣지 못한 것처럼. 알겠지, 바르몬?”
“어, 엄마…….”
“아들, 사랑해.”
그의 어머니가 울 듯이 웃으며 바르몬의 이마에 키스했다.
이윽고 바르몬의 작은 몸을 가려 줄 물건들이 침대 밑으로 우악스럽게 밀려 들어왔다.
그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이 상황이 꿈이기만을 바랐다.
간절히, 또 간절히.
그러나 바르몬의 기도는 닿지 않았다.
쾅-!
“수색을 시작한다.”
라그라스의 병사들이 문을 부수며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끼이익, 쿵.
끼이익, 쿵.
군화와 낡은 나무 바닥이 교차하며 만들어 낸 발걸음 소리가 점점 바르몬과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바르몬의 어머니를 발견한 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내가 처리할 테니 다른 곳을 수색하도록.”
“알겠습니다!”
부하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가고,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바르몬의 어머니였다.
“기사님, 저와 남편은 라그라스의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바스칸투스인들과 달리, 밝은 머리색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저는 리나, 남편은 닐이라고 해요. 아바스칸투스에서 이런 짧은 이름을 보신 적 있나요? 다른 증거도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 믿어 주세요, 제발…….”
하지만 그녀를 보는 기사의 표정은 잔혹하리만치 냉정했다.
“네가 라그라스인이고 아니고는 상관없다. 라그라스 군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면, 모국을 떠나지 말았어야지.”
남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언가 푹 찔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들이 제 비명에 놀라 소리를 낼까, 끔찍한 고통을 소리 없이 삼켜내었다.
낡은 나무 바닥에 붉은 물로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바르몬은 눈물을 비처럼 쏟으면서도 어머니의 당부대로 입을 틀어막고는 찍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하지만 숨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바르몬의 심장 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걸까.
바르몬의 어머니를 죽인 기사는 방 이곳저곳을 뒤져 보더니 이윽고 침대 밑까지 손을 뻗었다.
기사가 침대 밑에 박힌 짐을 하나하나 빼기 시작했다.
결국, 침대 밑에 숨어 있던 바르몬은 기사와 눈을 마주치고 만다.
숨 막히는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바르몬은 공포감에 살려 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눈물만 줄줄 흘리며 기사를 바라보았다.
기사 또한 말없이 그런 바르몬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뇌하고 있었다.
군인으로서 사사로운 감정을 섞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라그라스에 있을 제 아들과 침대 밑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였다.
“레이노스 경, 그곳에 뭔가 있습니까?”
저를 부르는 음성에, 바르몬과 눈을 맞추고 있던 남성은 낮췄던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옷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턴 레이노스가 부하에게 물었다.
“다른 곳은 다 뒤졌나?”
“이 방을 제외한 모든 곳을 수색한 결과 성인 남성 한 명을 발견했고, 즉시 사살했습니다.”
레이노스는 주검이 된 바르몬의 어머니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성 한 명에 남성 한 명. 총 2명의 사살을 완료. 이 집은 수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