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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39)화 (139/161)

139화

아칸더스는 그 약초가가 살고 있다는 마을에 도착해 여행객인 척 여관을 잡았다.

그녀의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을에서 꽤 유명 인사였던 까닭이다.

집은 찾았는데.

‘이제 모기가 어떻게 그녀를 물게 해야 할까.’

연구 끝에, 보다 오랜 시간 살아 있는 모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탓에 1시간가량밖에 살아 있지 못한다.

그녀의 연구실이나 침실에 푸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텐데.

밤에 몰래 들어가 풀어야 하나?

그러다 들키면 뭐라 변명을 해야 하지? 도둑 취급을 받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약초와 연금술은 예전부터 궁합이 좋았지.”

연금술 지식을 내세워 일자리를 줄 수 없겠냐 호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그녀는 정이 많아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잘 외면하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집안도 꽤 부유한 듯했지.

한 명 고용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거절당한다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지만.

“설정은 마나가 없는 연금술사 정도면 되려나.”

마나가 없는 연금술사는 사실상 연금술사라고 할 수 없었다.

마법사가 마나 없이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연금술사가 마나가 없다면 만들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마침 자신은 매일 매일 체내 마나가 채워질 때마다 마물을 만드는 데에 소모해야 했다.

“불쌍한 척하기에는 딱이군.”

하긴, 생각해 보면 자신은 실제로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제 부모님을 죽인 사람이 월터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과거를 잊고 있었으니, 평범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은 부모님의 원수를 만났고 그로 인해 과거의 증오를 기억해 냈다.

어서 이 복수를 끝내고 잃어버린 제 행복을 찾고 싶었다.

제가 바라는 행복은 연금술의 끝을 보는 걸 수도 있고, 또는…….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안식이 될 수도 있겠지.

* * *

아칸더스는 약초가의 집에 취직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그 일자리라는 게 꼬맹이를 가르치라는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는 아이를 가르쳐 본 적 없습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고요. 차라리 연구할 때 저를 같이 두시는 게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안 돼요. 내 비밀 레시피가 얼마나 많은데, 본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아칸더스를 어떻게 믿고 공개해요?”

“그건…….”

지극히 옳은 말이었다.

“연구 조수는 나중에 신뢰가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게요.”

아칸더스의 침묵에 리엔의 어머니인 리사가 한쪽 눈썹을 비뚜름하게 들어 올렸다.

“왜요, 싫어요? 무려 숙식 제공도 해 주는데?”

“아, 아닙니다. 일하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바로 병에 걸리게 하고 떠난다면 분명 자신이 의심받을 터였다.

어차피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면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지켜봐야 하고.

홀로 마물 연구를 하는 것에 질리기도 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몇 개월은 기분전환 한다고 생각하고 눌러앉아야 할 것 같았다.

아칸더스는 앞으로 제가 가르치게 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안녕, 나는 아칸더스라고 한단다. 넌 이름이 뭐니?”

“리엔이라고 해요.”

리엔은 어린 나이답지 않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아칸더스는 조숙해 보이는 아이를 보며 친해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리엔과의 첫 만남이었다.

친해지기 힘들 것 같다는 아칸더스의 생각과는 달리, 둘은 금세 가까워졌다.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일 년을 리엔과 함께했다.

처음에는 몇 개월만 일하다가 기회를 봐서 모기를 풀고 병에 걸리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리엔에게 연금술을 가르치는 재미에, 하루하루 일정을 늦추다가 이렇게 길게 끌고 말았다.

리엔은 겉과 속이 다른, 장난기가 많고 귀여운 소녀였다.

사랑만 받고 자라 그늘이 없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

자신과 비슷한 점도 많았다.

사랑을 받고 컸다는 것도.

자신이 연금술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리엔은 약초학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죽어 가는 어머니를 두 눈으로 보게 될 거라는 점도.

아칸더스는 그런 아이를 보며 질투와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의 손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텐데. 그것도 모르고 내게 저렇게 살갑게 구는 거겠지.

“이런…… 연민이라니. 시간을 더 끌면 안 되겠어.”

그는 정말로 리엔에게 정을 줘 버릴까 두려워 서둘러 일을 치르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일을 실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칸더스는 리엔의 가족들에게 이미 신뢰를 단단히 쌓아놓은 상태였고, 감염병 또한 언제나 준비되어 있던 까닭이다.

일년 전, 처음 계획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리엔의 아버지도 모기에 물렸다는 것.

부부의 침실에 풀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칸더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어차피 미래에는 다 죽을 목숨이었다.

병은 아칸더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느리게 진행되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었다.

병의 경과를 지켜보지 말고 일을 그만뒀어야 했는데.

아칸더스는 죽는 것까지 보고 난 후 떠나자고 생각했다.

그게 잘못이었다.

리엔의 부모님을 감염시킨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평소와 같이 수업을 마치고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하는데, 문득 리엔이 물어왔다.

“아칸더스의 가족은 어디에 살아요?”

제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아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없어. 아무도.”

“아무도……?”

리엔의 동그란 눈에 당황이 스쳤다. 아칸더스는 흐릿하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나도 너처럼 사랑받고 컸던 시절이 있었단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부모님은 전쟁으로 돌아가셨지.”

리엔은 아칸더스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거 알아요?”

“글쎄, 나는 우리 꼬마 아가씨가 뭘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걸.”

“아칸더스는 가족이 아무도 없다고 했지만 저는 아칸더스가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네 가족이라고?”

제 가족은 15년도 더 전에 모두 죽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가족이 생길 수 있을 리가.

리엔이 맑은 얼굴로 아칸더스를 바라봤다.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칸더스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그는 제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래서는 안 됐다.

정말 리엔이 제 가족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일은?

가족을 어떻게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부정해야만 했다.

너는 내 가족이 아니라고.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르자 리엔 부모님에게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서서히……. 부부의 몸이 썩어 갔다.

마법도, 신성력도 먹히지 않았지만, 리엔은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약초가인 제 엄마와 치료제를 만들다가 엄마가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도 꿋꿋이 치료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치료제를 만드는 것을.

리엔이 정말 치료제를 만들 줄 몰랐던 아칸더스는 당황했다.

치료제가 나와서는 안 됐다.

자신이 몇 년을 연구한 결과물인데. 라그라스와 아바스칸투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그래서, 그는 치료제를 실패작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칸더스는 의식이 없는 리엔 부모님의 입에 약병을 물렸다.

감염병과 증상이 유사하게 나타나는 독이었다.

그렇게 리엔의 부모님은 얼마 가지 않아 하늘로 올라갔다.

오열하는 리엔을 보며 아칸더스는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진짜 복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 * *

나는 오늘도 제집 안방처럼 편히 쉬고 있는 월터 교수님을 찾아왔다.

“월터 교수님.”

“교수님 자느라 바쁘다.”

“친한 사람 한 명과 일면식 없는 타인 여러 명, 전자와 후자 한쪽만 살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어요?”

그가 감았던 눈을 작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요즘에는 그런 양자택일 질문이 유행이냐?”

“빨리 답변이나 해 줘요.”

“여러 명이 대충 몇 명인데.”

“아마 수천…… 아니, 수만 명?”

월터 교수님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렇게나 많으면 밸런스가 안 맞는 거 아니냐? 당연히 수만 명을 구해야지.”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한 명이 조지 교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도 쉽게 말씀할 수 있을까.

아직 조지 교수님께서 걸린 병이 몬스테라라는 확신이 없었다.

몬스테라라고 하기에는 병의 진행속도가 너무 달랐다.

원래 속도라면 조지 교수님은 이미 돌아가셨어야 한다.

최소한 몸의 반절 이상이 썩은 상태라거나.

치료제 개발을 조지 교수님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냐, 몬스테라 치료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가 고민이었다.

거기에 마물인 모기를 쉽게 죽일 방법까지 찾아야 하는데.

모기를 죽이지 않으면 감염자는 계속 나타날 터였다.

카르시온이 감염병이 발생한 곳에 가서 죽이고 있다지만, 그의 몸은 하나였다.

계속 그를 감염병이 나도는 곳에 보내기도 걱정됐고.

내가 표정을 좀처럼 펴지 못하자 월터 교수님이 혀를 쯧, 하고 찼다.

“너는 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돌아가신 엄마 닮은 건데요.”

“……정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인간적이라는 거지.”

그의 빠른 태도 변화에 작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교수님.”

“왜 또.”

이 질문을 월터 교수님께 해도 되는지 잠시 고민했다.

결국, 나는 내 직감을 믿기로 했다. 월터 교수님은 전염병을 퍼트릴 사람이 아니었다.

“모고동 설립자로서, 모기를 가장 쉽고 빠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교수님은 고민 없이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하는 모기가 평범한 모기라면 당연히 살충제지.”

나는 대놓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답이 너무 뻔해요.”

“모고동은 말 그대로 모기를 고문하는 동아리라고. 쉽고 빠르게 죽일 거면 이름도 그렇게 안 지었어.”

“아레나 아카데미 출신이라면 지금쯤 다들 모고동에 희망을 걸고 있을 텐데 실망이네요.”

“실망은 네가 한 것 같은데?”

“그것도 맞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것 이상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었다.

월터 교수님은 번개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날 붙잡지 않았다.

복도로 나오자 삼켜 놨던 깊은 한숨이 절로 내뱉어졌다.

“살충제로 모기를 죽이듯, 마물도 칙 뿌리는 것만으로 죽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내가 한 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

뿌리는 것만으로 마물을 죽인다고? ……그거 이미 있지 않나?

내가 전에 만들었던 마나 이완제!

마나 이완제는 마나 폭주 직전의 카르시온을 보고 만든 약이다.

마나를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 먹으면 비이상적으로 뭉쳤던 마나를 풀어 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 효능 때문일까, 존재가 뭉친 마나 그 자체인 마물은 마나 이완제에 닿으면 타격을 입었다.

마물들은 대부분 덩치가 커서 조금 뿌리는 것만으로는 죽일 수 없었다.

물론 대야로 가져다가 부으면 죽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죽이기에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졌다.

하지만 손톱만 한 크기의 모기라면?

심지어 마나 이완제는 지금도 팔고 있는 약이라, 이미 생산 설비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모기 기피제처럼 생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입을 벌리며 짧게 탄식했다.

카온, 어떡하지.

네 애인, 진짜 천재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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