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아칸더스의 일과는 아침 일찍 마을로 나가 신문을 사 오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면 집까지 돌아가 읽었을 텐데.
신문의 1면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리엔의 이름 때문에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아칸더스는 그 자리에서 관련 기사를 전부 읽어 내렸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리엔, 네 어머니를 빼닮았구나.”
그녀가 만든 모기 기피제와 마나 이완제 덕분에 감염병 확산세가 대폭 감소되었다는 기사였다.
몬스테라가 모기를 매개로 한 감염병이라는 것은 언젠가 밝혀질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내로 밝혀질 줄은 몰랐다. 진정이 될 줄은 더욱이 몰랐고.
비싼 마물 기피제와 달리 값싸고 만들기 쉬운 모기 기피제.
거기에 마나 이완제로 마물인 모기를 죽일 생각까지 했다니.
“……똑똑하기도 하지.”
병을 퍼트리며 제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이 꽤 많았다.
예를 들면 노린 월터가 아니라 조지 교수님이 모기에 물렸다든지.
본격적으로 병을 퍼트리기 전, 아바스칸투스에 실험을 했었다.
“그리고 바로 월터를 죽이려 그의 연구실에 모기를 풀었지.”
그런데 물렸으면 했던 월터는 멀쩡했고, 조지 교수님이 모기에 물려 병에 걸렸다.
마물인 모기를 만든 것은 자신이지만, 조종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엔에게 월터 교수와 떨어지라 한 것이었다.
혹여나 그의 주변에 서성이던 리엔이 병에 걸릴까 봐.
월터는 자신이 가장 먼저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의 부모님이 그의 손에 죽는 모습을 보았듯, 월터의 아버지에게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게 하고 싶었다.
물론 몬스테라가 퍼지면서 리엔도 언젠가는 병에 걸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래서 졸업 선물을 핑계로 치료제를 건네 주었다.
과거 그녀가 직접 개발한 치료제를.
아칸더스는 몇 년 전, 성장한 리엔을 다시 만난 날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 모두를 죽여도, 리엔만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늦었지만, 리엔이 내 가족임을 인정했으니까.”
그녀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 조언한 것은 사실 저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내가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리엔은 날 증오하고 원망하겠지.”
자신이 준 졸업 선물을 열어 보는 날 알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 치료제는 리엔이 직접 만든 것과 성분이 똑같은 것이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이것을 복용하고 죽었으니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저에 대한 의심이 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나, 리엔이 병에 걸려 죽는 것은 더 싫었다.
“……애초에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면 그녀의 부모님을 죽여선 안 됐겠지.”
리엔 때문에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복수가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화가 났어도 그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만큼 소중한 아이였으니까.
아칸더스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누군가에게 말하듯 읊조렸다.
“너의 영웅적 행보를 방해하지 않으마. 만약, 너로 인해 내 복수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그것 나름대로 운명이라 할 수 있겠지.”
아칸더스는 신문지를 잡고 미련 없이 일자로 쭉 찢었다.
그 행위를 몇 번 반복한 그는 갈기갈기 찢어진 신문지를 땅에 내버렸다.
“그때는 깔끔하게 모든 걸 포기하고 안식에 들어갈 터이니.”
내 죽음이 너에 대한 속죄가 될 수도 있겠지.
* * *
“으아아! 내가 멍청했지, 내가 멍청했어.”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에 이마를 쿵쿵 박았다.
그러자 조지 교수님이 끌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내 제자가 성녀라니, 지긋지긋한 이 병도 조만간 씻은 듯이 낫겠군.”
“……교수님!”
“그렇게 소리 질러야 할 만큼 귀 기능이 떨어지진 않았다.”
그렇다.
지금 머리를 박고 있는 이유는, 내가 제국에서 성녀 비슷한 수준으로 추앙받고 있는 까닭이다.
“리엔, 나쁜 쪽으로 소문 난 것도 아닌데 그냥 즐기거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지.”
“이게 조지 교수님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태평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거라고요.”
진통제를 비롯한 마나 이완제와 각종 약들은 지금껏 한스의 상단에서 가명으로 팔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에도 모기 기피제는 그 가명을 사용해 유통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한 점은, 모기 기피제를 만든 게 나라는 것을 아카데미에 다녔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는 거다.
특히나 모고동 애들이 그걸 잊을 리 없지.
그 가명의 주인이 나라는 것이 퍼지게 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졸업하고 제국 전역으로 흩어졌던 팔불출의 대가, 리사동 부원들을 중심으로 그 소문에 온갖 좋은 미사여구가 붙기 시작했다.
리사동 애들만 그랬으면 다행이지, 리시안셔스와 이모네인 아르메리아 백작가에서도.
심지어는 이제 로엘이 주인이 된 베고니아 공작가에서도 여기저기 내 업적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팔불출이 모여 결국, 성녀라는 호칭까지 붙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나는 다시 이마를 책상에 쿵쿵 찧었다.
“제일 중요한 치료제는 만들지도 못했는데, 그런 취급이라니 부담스럽고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아요.”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 내 이마에 딱딱하고 차가운 책상의 느낌이 아닌, 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조지 교수님의 괴사하지 않은 오른쪽 손이었다.
“치료제를 바로 만들었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거지. 지금까지만 해도 넌 충분히 잘해 주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하지만…….”
“치료제 또한 만들면 돼.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니더냐.”
조지 교수님의 위로에 부담으로 차 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하긴 빠르게 모기 기피제로 물리는 것을 예방하고, 마나 이완제로 방역까지 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기적이겠죠.”
치료제.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해 놨으니, 이제 조지 교수님과 힘을 합쳐 치료제만 만들면 된다.
문제는…….
내 시선이 조지 교수님의 왼쪽 팔에 고정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팔목까지만 진행되었던 병은, 어깨 바로 전까지 괴사되어 있었다.
꽈리 열매를 끊은 후 너무 빠르게 악화된 탓이다.
꽈리 열매의 복용을 끊게 하는 게 맞나 싶었을 정도로.
다른 병이라면 다른 부위까지 옮겨지기 저, 괴사가 진행 중인 부위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병은 절단된 부분부터 다시 썩어 올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그건 악수였다.
시선을 느낀 듯 조지 교수님이 버석하게 웃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나는 살 만큼 살았고, 내 하찮은 목숨보다는 다수의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얼마 전부터 조지 교수님의 청으로 그의 병이 아닌 몬스테라에 맞춰 치료제를 만들고 있었다.
조금 먹먹해진 음성으로 그에게 따지듯 말했다.
“생명의 가치는 숫자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교수님.”
나는 다수의 타인보다 한 명의 내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이번 일은 규모가 규모인 만큼 결국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부디 조지 교수님의 병과 몬스테라가 같은 병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나는 애써 목소리 톤을 올리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은 어떻게 꽈리 열매를 먹게 되신 거예요?”
그러자 교수님이 그걸 왜 묻느냐는 얼굴로 답했다.
“너도 효능은 알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꽈리는 불운을 가져다준다고 소문이 나 있잖아요.”
“네가 아바스칸투스인이냐? 그 허무맹랑한 속설을 믿게.”
꽈리는 아바스칸투스의 일정 지역에서만 자라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꽈리 열매를 잘 먹지 않았다.
빨갛게 익은 꽈리 안에 있는 씨앗을 빼어 입술에 물고 바람을 불면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불운을 가져 준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속설은 아바스칸투스 한정이었고, 라그라그에서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바스칸투스에서 수입해 약초로 쓰고 있기도 했고.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냥 그런 말도 있다는 거죠.”
하긴, 약초에 박식한 조지 교수님이라면 꽈리를 복용했을 만했다.
해열 작용만 있었다면 더 효능이 뛰어난 약초들도 수두룩했지만, 꽈리는 부종 완화의 효능까지 있었으니까.
이 병은 초기, 감기와 비슷한 증상과 더불어 모기에 물린 곳이 부어올랐으니 말이다.
“대체 꽈리의 성분 중 어느 부분에서 잘못되어 부작용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걸 알았다면 이미 치료제는 만들고도 남았겠지.”
“사실 꽈리에는 정말 치료 효과가 있고, 부모님은 다른 것 때문에 돌아가신 건데 제가 착각하는 거였으면 좋을 텐데요.”
조지 교수님이 쯧쯧 혀를 찬다.
“그런 꿈 같은 소리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연구를 하는 게 좋을 게다.”
나는 씩 웃으며 다시 의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래서 교수님한테는 농담도 못 한다니까요.”
* * *
조지 교수님이 왼쪽 팔에 감긴 붕대를 갈고 오겠다며 연구실에서 자리를 비웠다.
나 또한 그제야 약초를 눈에서 떼고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사실 하나.
“아, 맞다. 양치하다가 잇몸에 피가 나서 그런지 아까 확인해 보니 조금 녹았던데.”
나는 서둘러 서랍을 뒤져 만들어야 할 재료들을 찾았다.
지금 만들어야 할 것은, 일반 약초가 아니라 연금술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연구를 하며 사놓은 재료를 전부 써 버린 듯했다.
“사용인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기에는 재료가 하나같이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인데…….”
급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실수로 다른 것을 사와도 괜찮았다.
하지만 다소 녹은 상태인 만큼, 오늘내일 안에 꼭 교체해야 하는 터라 믿고 맡기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지.”
결국, 직접 재료를 사러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르시온을 불러 데려갈까 했으나 그는 지금 집단 감염이 일어난 곳에서 한창 마물인 모기를 잡고 있을 터였다.
“아쉬운 대로 도비를 데려가면 되겠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구석에서 몸을 말고 있던 도비가 내게로 와다다 달려왔다.
나는 그런 도비의 턱밑을 살살 긁어 주었다.
“오랜만에 단둘이 데이트하러 가자, 도비.”
그렇게 도비와 공작성을 나온 건 좋았는데.
문제는 도비가 너무 커서 마차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재료 상점이 걸어서도 삼십 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는 것.
카르시온 없이 하는 외출에 유독 신이 난 듯 도비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말이 날아다녔다는 게 아니라, 정말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녔다.
나는 그런 도비의 목줄을 단단히 잡으며 푸스스 웃었다.
“여기가 리시안셔스 영지라 다행이지 다른 곳이었으면 넌 이미 잡혀갔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한적한 주택가에 이제 막 들어섰을 때였다.
“크르르릉…….”
도비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뭔가 있나 싶은 생각에 나 또한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나며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게 무슨 냄새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던 순간, 머리가 핑 돌며 강렬한 현기증이 일었다.
힘이 빠지며 몸이 기울었다.
시야가 뒤집히는 것을 느끼며 나는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부르려 입을 열었다.
“카ㅇ…….”
하지만 그 목소리는 차마 끝맺히지 못했고,
흐려져 가는 내 시야에 마지막으로 담긴 것은,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는 도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