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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44)화 (144/161)

144화

퍼즐이 맞춰지듯 모든 상황이 딱딱 맞아 들어간다.

월터 교수님과 같은 모고동의 설립자.

이번 감염병의 매개인 모기.

아칸더스가 준 약에서 꽈리의 냄새가 나는 것.

주원료를 꽈리로 해서 만든 치료제를 먹은 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그가 범인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됐다.

치료제가 완성된 것을 확인한 후, 내가 그것을 치료제라 생각하지 못하게 다른 약물을 탔다거나.

그럼 내게 월터 교수님과는 왜 떨어지라 경고한 거지?

대체 왜?

“리엔.”

조지 교수님의 목소리에, 나는 지나치게 흥분한 머리를 진정시켰다.

진정하자.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와 아칸더스가 헤어진 게 몇 년 전인데.

그도 연금술에 있어 천재적이지 않았는가.

나와는 다른, 독자적인 치료제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치료제의 주원료가 꽈리라는 것만 같고, 구성 성분은 완전히 다른 것 말이다.

“아니겠죠? 제가 뭔가 큰 망상을 하고 있는 거겠죠? 아칸더스는 체내 마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마물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잖아.

조지 교수님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리엔. 아칸더스는 누구보다 거대한 체내 마나를 타고났는데.”

“……네?”

“내가 자세히 알진 못해도, 이 성의 주인인 리시안셔스 공작님만큼은 될 거라 확신할 수 있다.”

머릿속에 공황이 일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칸더스는 내 가족이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나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그게 연기였다고?

말이 안 되잖아.

정말 그가 내 부모님을 죽였다고 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존재했다.

왜 하필 우리 부모님이었는가.

아칸더스와 우리 부모님은 우리 집에 고용하기 전까지 그와 어떠한 접점도 있지 않았다.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만한 동기가 없다는 거다.

그냥 운이 없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아칸더스라면 아무 동기 없이 누군가를 해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만약 그가 범인이라면 아칸더스는 왜 나에게 치료제를 건넸는가.

몸이 덜덜 떨려 왔다.

머리로는 그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었으나, 가슴은 온 힘을 다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래. 진짜인지 아닌지 고민된다면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렇지?

그게 맞는 거잖아.

만약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가정이 틀린 것이라면, 그의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모든 정황이 그가 범인이라 해도 나만은 그를 믿어 줘야 하는 거잖아.

내가 ‘유일한’ 그의 가족인데.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조지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그저 빨리 이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아칸더스를 찾아야겠어요.”

* * *

나는 방 안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생각을 이어 나갔다.

아칸더스는 내가 졸업했을 때 치료제와 함께 보낸 편지를 기점으로 연락이 끊겼다.

월터 교수님과는 당연하고, 조지 교수님과도 연락을 끊은 지 오래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그를 무슨 방도로 찾아야 하지?”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사람들이 잘 왕래하지 않은 깊은 숲속에서 산다는 거였다.

그래서였나.

“마물을 만들어 내려면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야 하니까?”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미친 거지. 아칸더스를 믿겠다면서 벌써 범인임을 확신하고 생각하고 있는 게.

하지만 그를 찾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배령을 내리는 게 맞겠지.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공작님과 공작 부인께 부탁드리면 어떻게든…….

“리엔!”

“어, 어?”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언제 왔는지 모를 카르시온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몇 번이고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

“카온…….”

“무슨 일인지 알려 줄 수 있어?”

그가 자신의 너른 품에 나를 품으며 다정히 말했다.

“내게 의지해 줘.”

그 목소리를 듣자 여태껏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마음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게 이런 약한 감정까지 내보일 수 있는 건 카르시온밖에 없었다.

그의 다정한 말이 시발점이 되어 무수한 감정이 쏟아져 내렸다.

“카온, 나 어떡하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비처럼 쏟으며 그에게 모든 일을 설명했다.

카르시온은 모든 설명을 들은 후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공작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아칸더스를 찾아야 해.”

초조하게 뱉은 말에, 그제야 카르시온이 입을 열었다.

“리엔. 내가 전에 너와 아칸더스의 대화를 들었다고 했잖아.”

“……응. 그때부터 월터 교수님께 추적 마법을 걸어 놨다고 했지.”

“사실 그때 월터 교수님께만 마법을 걸었던 게 아니야.”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왜 카르시온이 월터 교수님에게만 추적 마법을 걸었을 거라 생각했던 거지?

카르시온이 그 대화를 듣고 월터 교수님에게 추적 마법을 걸었다면, 아칸더스에게도 걸지 않았을 리 없었다.

나야 아칸더스를 신뢰하는 상태였다지만, 카르시온의 입장에서는 월터 교수님이든 아칸더스든 믿기 어려웠을 테니까.

“선택은 네게 맡길게, 리엔.”

카르시온이 나와 눈을 맞추며 의사를 물어왔다.

“아칸더스를 데려올까?”

숨이 턱 막혀 왔다.

아칸더스를 찾아야겠다 말한 것은 나인데.

“……모르겠어.”

막상 당장이라도 그가 아칸더스를 내 눈앞에 데려올 듯 말하자 선뜻 긍정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정말 우리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에르한과 렉스 베고니아에게 놀아나고 있을 때도.

너와 제인에게 배신당했던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아칸더스가 날 배신한 거라면,

“그건 내게 너무 가혹하잖아.”

무서웠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정말 아칸더스가 내 부모님을 죽이고 제국에 감염병을 퍼트린 범인일까 봐.

카르시온의 손이 눈물범벅이 된 내 뺨을 서툴게 훑었다. 그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내가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나보다 더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흐리게 웃어 보였다.

“그때는 내가 어떻게든 너를 붙잡아 줄게.”

그의 입술에 입을 살짝 댔다가 떨어졌다.

미안해, 카르시온.

지금 내 귀에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아서. 그래서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어.

그러니까.

“당장 아칸더스를 내 앞에 데려와 줘.”

* * *

카르시온은 빠르게 그를 데려왔다. 아칸더스는 불현듯 바뀐 주변 풍경에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아칸더스.”

“리엔……?”

리엔은 아칸더스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는 피골이 상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라 있었다.

“대체 뭘 먹고 다녔길래 그런 꼴이에요.”

아칸더스는 리엔을 보고는 금세 평정심을 찾았다.

갑자기 끌려온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넌 여전히 다정하구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칸더스는 리엔의 굳은 표정에, 그녀가 제 선물을 열어 봤음을 직감했다.

그의 시선이 카르시온에게로 잠시 향한다.

추적 마법을 걸어 놨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착이 심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구나. 리엔.

착한 리엔이 저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할 텐데.

자신에 대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것을 끝내고 안식을 찾으려 했던 몸.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리엔에게 미움받는 것이었다.

리엔마저 저를 부정한다면 자신에게 남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 하지 않을 터였다.

모두가 제 죽음을 환영하겠지.

“아칸더스가 제게 준 치료제. 그건 어떻게 만든 거예요?”

“…….”

“다른 질문을 할게요. 아칸더스, 당신이 몬스테라를 퍼트렸어요? 설마 아칸더스가 내 부모님을…….”

죽인 거야……?

리엔은 차마 마지막 말을 뱉지 못했다.

아칸더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아니라고 하면,”

그는 처음으로 리엔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하면 믿어 줄 거니?”

리엔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믿어 줄게요.”

내 가족이니까.

당신의 ‘유일한’ 가족이니까.

온 세상이 아칸더스를 범인이라고 해도, 당신이 아니라고 한다면 믿어 줄게.

카르시온은 리엔의 말에서 무언가를 눈치챘다.

‘믿는다.’ 가 아닌, ‘믿어 준다’고 했다.

정말 아칸더스가 범인이라고 해도 그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믿어 주겠다는 말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하지 않았다, 리엔.”

아칸더스가 작은 희망을 갖고 내뱉은 거짓말에, 리엔이 미소 지었다.

“다행이에요.”

리엔은 그의 대답에 더없이 기뻐 보였다.

분명 이렇게 쉽게 묻고 확신을 가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고 아칸더스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칸더스의 배신까지 받아들이기에 지금의 리엔은 너무도 지쳐 있었다.

“추적 마법을 풀고 그가 있던 곳으로 보내 줘, 카온.”

“……후회하지 않겠어?”

“그럼 내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해?”

거짓말하지 말라며 소리치며 따져야 할까?

“하지만 카온.”

아칸더스의 말만 믿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잖아.

나도, 아칸더스도.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카르시온은 리엔의 의사를 더 묻지 않았다.

“추적 마법은 거는 건 금방이지만, 해제하는 건 시간이 좀 걸려. 방에서 쉬고 있어.”

그러고는 리엔의 동그란 이마에 키스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카르시온의 마법이었다.

아칸더스와 둘만 남게 된 카르시온은 그를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카르시온이 아칸더스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벽으로 밀었다.

쾅-!

아칸더스가 갑자기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신음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네가 진짜 범인이냐고는 묻지 않을게.”

아칸더스는 제 목을 죄어 오는 카르시온의 손을 붙잡고는 숨을 헐떡였다.

카르시온은 그가 숨을 쉬기 어렵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네가 뭐라고 대답 하든 상관없거든.”

중요한 건 너 때문에 리엔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는 거지.

“리엔이 바라는 대로 널 보내 주기야 하겠지만, 추적 마법은 풀지 않을 거야.”

“큭, 커억-!”

“네가 리엔을 진실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근데 하나는 확실히 알겠더라고.”

일순간, 카르시온의 눈에 섬광이 스쳤다.

“네가 죽였지? 리엔의 부모님.”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말에 아칸더스의 동공이 극심히 떨렸다.

“……아아. 리엔은 다 좋은데 정이 너무 많아. 그래서 항상 손해를 보고 살지.”

그런 점도 사랑스럽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이미 답이 다 나온 사실인데, 넌 왜 굳이 거짓말을 했을까?”

아칸더스는 필사적으로 카르시온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금세 카르시온에게 속마음을 들키고 만다.

“……너, 리엔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거구나.”

웃기지도 않지.

“지금은 리엔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 지금 당장 지랄하지 않고 네게 기회를 줄게.”

카르시온은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가 힘을 풀자 아칸더스가 쉴 새 없이 기침을 토해 냈다.

“리엔이 정신을 추스르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죽음으로 도피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대신 네가 죽는다면 리엔의 기억을 지울 거야.”

애초에 너를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만들면 리엔도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겠지.

카르시온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 한번 죽어 보라고 그를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어때, 나도 꽤 자비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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