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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45)화 (145/161)

145화

카르시온은 아칸더스가 허튼짓을 할 수 없도록 그의 연구실을 폭파시키고 감시인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이후 리엔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마물인 모기를 잡으러 나섰던 것도 멈추고 말이다.

리엔이 언제든 자신을 부를 수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가 되어서야 도착하고,

뒤늦게 수습하며 위로하는 것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났다.

얼마 전 리엔이 렉스에게 납치당했을 때는 하룻밤 새 정말 미치는 줄만 알았다.

눈이 반쯤 돌아간 채 리엔을 찾기 위해 제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부름이 반나절만 더 늦었더라면 황제를 협박해 군대를 동원했을 터였다.

“빌어먹을 렉스 새끼.”

오늘 아침에도 그와 놀고 왔으나 다시금 화가 올라왔다.

내일은 강도를 더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는 정원에서 도비와 장난치며 놀고 있는 리엔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칸더스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리엔의 기억을 지운다는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걸 실행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기억을 지우는 마법은 할 수 있었다.

물론 마탑에서 금지한 마법이긴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 그다지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이유는 마법에 걸린 사람이 부작용으로 백치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쳤다고 리엔에게 위험한 마법을 걸겠는가?

그리고…….

“렉스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겨 냈으니,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이것도 이겨낼 수 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이제 막 렉스에게서 자유로워진 리엔이었다.

렉스의 납치 이후 조지 교수가 쓰러지고, 아칸더스의 배신을 알게 되고.

폭풍이 따로 없지 않았는가.

가족이라고, 은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라니.

현실을 부정할 만했다.

“차라리 아칸더스를 놓아준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지금의 리엔은 정신적으로 너무 약해져 있었다.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카르시온과 눈이 마주친 리엔이 옅게 웃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카르시온은 마주 웃으며 생각하던 것을 구석에 몰아 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엔이 카르시온에게 자연스럽게 안기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냈다.

“있지, 카온. 내가 왜 연구실이 아니라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아?”

“글쎄. 나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어제 몬스테라 치료제에 대한 임상 실험을 마쳤어.”

“그래?”

“조금 신기한 게 내가 어렸을 때 만든 치료제랑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아니, 완전히 똑같아.”

웃는 얼굴에 밝은 목소리 톤.

그러나 카르시온은 그 안에서 리엔의 절망이 느껴졌다.

“내가 전에 조지 교수님께 꽈리 복용을 멈추라고 했었는데 큰일 날 뻔했다, 그치.”

카르시온은 그녀가 병에 걸려 돌아가셨던 부모님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녀 또한 아칸더스가 제 부모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모르는 척 그녀를 감싸 안으며 답했다.

“리엔 너는 어렸을 때도 천재였나 보다.”

“하하, 그런가 봐.”

리엔의 웃는 모습을 봐도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저건 진짜 웃음이 아니었다.

리엔이 졸업하고 나서 힘든 일을 겪은 게 이번이 대체 몇 번째지?

그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등에 굵은 핏줄이 올라온다.

평생 무서운 거 없이 맘 내키는 대로 살아왔기에 자만했다.

리엔 한 명쯤 지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심한 놈.

성격대로라면 뭐든 쓸어버렸겠지만, 문제는 리엔이 그러한 방식을 싫어한다는 거다.

죽이는 것에 있어 망설임이 없는 부분에서는 저도 아버지를 닮긴 닮은 듯했다.

“카온.”

“응. 듣고 있어.”

“내 꿈을 말한 적 있나?”

“……꿈?”

“음. 그러니까 인생 목표 말이야.”

그녀의 눈이 카르시온의 푸른 벽안에 고정되었다.

“나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절대 끊어지지 않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웃기지?

그렇게 당해 놓고 아직도 가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봐.

리엔이 바람결에 흐트러진 카르시온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곧 이룰 수 있겠지?”

그러자 카르시온이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이미 이룬 거 아니었어?”

“법적으로 안 이어졌으니까 아직은 아니지.”

“……너무 단호하잖아.”

리엔은 시무룩하게 쳐진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는 거 알지?”

“미안하지만, 그건 동의할 수 없는데.”

“뭐?”

“리엔은 친분이 있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잖아. 나는 정말 너밖에 없어. 너만 있으면 돼.”

딱 콩.

리엔이 카르시온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공작님이랑 공작 부인이 서운해하시겠어.”

그는 조용히 어깨를 으쓱였다. 리엔은 그런 카르시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카온, 너도 꿈이 있어?”

“있지. 아직은 못 이뤘는데 나도 곧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그에 리엔은 뭔가를 눈치챈 듯했지만, 모르는 척 웃으며 되물었다.

“흐응, 그게 뭔데?”

카르시온은 검지를 입술에 대고 눈을 접었다.

“비밀.”

* * *

나는 카르시온과 상의 끝에 월터 교수님을 풀어 드리기로 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교수님. 억울하기도 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으셨을 텐데.”

이곳에 있는 동안 어쩐지 짐이 많아진 그는 아련한 표정으로 공작성을 올려다 봤다.

“뭔지는 몰라도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구나, 리엔.”

“교수님.”

“그래.”

“아쉽다는 표정 좀 관리하시는 건 어때요.”

“많이 티 났냐?”

“네.”

월터 교수님이 간절해진 표정으로 내게 매달렸다.

“한 달만 더……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셔야죠. 교수님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읽어 주기를 바라는 책들도 잔뜩일걸.”

……그 성인용 로맨스 소설들?

내가 다 큰 어른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뼈 삭아요, 교수님.”

나는 마차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용인과 기사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월터 교수님의 양쪽에 기사들이 팔짱을 껴 그를 질질 끌고 간다.

그의 짐도 사용인들에 의해 착착 마차에 실렸다.

“으아아아아!”

“잘 가세요, 월터 교수님.”

“마음대로 데려와 놓고 이렇게 버리는 게 어디 있어! 이거 놔! 난 여기서 살 거야!”

나는 그런 월터 교수님을 향해 차분히 손을 흔들어 줬다.

공작부인께 잘 말해서 교수님 연봉을 조금 올려 달라고 해야겠다.

휴가는…….

여기서 많이 쉬셨으니까 이제 일 좀 하시라지 뭐.

월터 교수님이 탄 마차가 공작성을 나가고 난 후, 카르시온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맞이해야 할 다른 손님이 있었다.

다름아닌 한스와 제인.

그간 몬스테라의 치료제를 연구하느라 하지 못한 일이 많다.

친구들과의 연락이라거나. 에르한을 조져 준다거나.

아, 그러고 보면 이모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한 지도 꽤 됐지.

쿤에게도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바로 읽고 답장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내가 약초가로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으니, 뒤로 미뤄 왔던 내 일을 할 차례였다.

카르시온의 마법으로 수도에 있던 제인과 한스가 영주성에 도착했다.

“……그.”

한스의 어색하고 떨떠름한 목소리가 다도실을 울렸다.

나는 그런 한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안 어울리게 왜 저렇게 눈치를 본담.

“너 뭐 사고 쳤어?”

“아, 아니! 그냥 리엔 네 옆이 조금 신경 쓰여서 그랬달까, 하하…….”

“내 옆에?”

고개를 돌리자 한스를 흉흉하게 노려보고 있는 카르시온이 담겼다.

“아. 카온은 신경 쓰지 마. 요즘 나랑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좀 예민해서 그래.”

한스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게 조금이냐는 표정이었다.

그런 한스를 보던 제인이 도도하게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리엔. 네 애인 좀 말려 봐. 솔직히 대단하신 소공작님이 죽일 듯 노려 보시는데 안 무서울 리가 없잖아.”

“제이인……!”

제인의 말에 감동한 한스가 그녀를 와락 안는다.

“그래그래.”

제인은 익숙하다는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제인?”

“나도 사랑해.”

“지랄 났네.”

카르시온의 마지막 발언에 다도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그를 타박했다.

“카온, 예쁘게 말해야지.”

“알겠어…….”

한참이나 말을 고르던 그는 해법을 찾을 듯 입을 열었다.

“★♡☞지랄 났네☜♡★”

그 예쁜 걸 말한 게 아니잖아.

머리를 짚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제인과 한스는 카르시온이 뭐라고 하든 둘만의 세계에 빠져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 요즘 귀족 영애랑 부인들 상대하느라 많이 힘들지? 내가 어깨 주물러 줄까?”

“너도 감염병 건으로 상단 일에 치여 살잖아. 내가 해줄게.”

달달한 모습에 카르시온이 나와 제인 커플을 번갈아 본다.

그러자 한스가 어쩐지 우쭐해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노한 카르시온이 그에게 뭐라 하려다가 말고 열렬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날 왜 쳐다봐.

“설마 너도 해 달라는 건 아니지?”

“…….”

맞나 보다.

대체 왜 저런 아무것도 아닌 걸 부러워하는 거지?

오늘 아침만 해도 같은 침대에서 일어난 주제에.

나는 카르시온에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려 느른히 말했다.

“어젯밤에 잔뜩 스킨십 했으면서 그거로도 모자란 거야?”

“어, 어……?”

머리에 과부하가 온 듯 그가 말을 더듬었다.

사실 어제는 손만 잡고 잤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만한 언사였다.

내 발언에 제인과 한스가 눈을 반짝이며 우리를 응시했다.

카르시온은 얼굴을 서서히 붉히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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