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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57)화 (157/161)

157화

세라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연회장 안이 크게 술렁였다.

“저 미친년이…….”

카르시온은 눈을 번뜩이며 튀어 나가려고 했다.

나는 나서지 말라는 의미로 그의 팔을 잡아 세웠다.

그녀가 몬스테라를 퍼트린 범인으로 나를 지목한 이상,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의심받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럴 때 카르시온이 나서서 그녀를 초주검으로 만든다면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아지겠지.

“폐하, 뭔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기사들이 세라를 끌고 나가려 하자 세라가 다급히 말을 쏟아 냈다.

“마나를 다루는 사람은 마법사나 숙련자인 검사가 아니라면 다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약초가인 그녀가 어떻게 마나를 다룰 수 있을까요?”

“닥쳐라, 어디 폐하의 앞에서 하녀 따위가 목소리를 높이는가!”

“그녀는 사실 약초가가 아니라 연금술사이기 때문입니다! 몬스테라와 같이 끔찍한 병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수준급의 연금술사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썩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게다가 옛날부터 연금술과 관련된 사람들은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연금술사’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주 작정하고 나를 범인으로 몰려고 했군.

그녀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황제가 손을 들며 기사들을 저지했다.

“잠깐. 저자의 주장을 들어 보지.”

마물을 인공적으로 만들었을 때의 처벌은 최소 사형.

한낱 하녀의 말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큰 사항이긴 했다.

일순간 세라의 눈에 희열이 스쳤다. 제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황제는 이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나와 세라를 번갈아 봤다.

아직은 그녀의 말을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사들이 세라의 팔을 놓자 그녀가 더러운 것과 닿았다는 듯 드레스를 털어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며 입을 뗐다.

“모두 이 일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기를 통한 감염병이 어떻게 유행할 줄 알고 모기 기피제를 만든단 말입니까?”

그녀가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말을 잇는다.

“몬스테라가 전염병이 아니라 마물인 모기에 의해 퍼지는 감염병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널리 알린 것도 리시안셔스가 아니었습니까?”

“흠…….”

“게다가 리시안셔스에서 그 사실을 밝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나 이완제로 모기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지요.”

세라의 눈동자가 연회장의 조명을 받아 번뜩였다.

“마치 미리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놓은 듯 말입니다.”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사실 나도 이런 의심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긴 했다.

내 업적을 치하받는 도중에, 그것도 국외 추방이 된 세라에게 그 의심을 받을 줄은 몰랐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녀가 만든 약은 모두 그녀의 절친한 친구의 상단에서 팔고 있죠.”

세라의 시선이 잠시 내게로 향했다가 떨어진다.

“그녀가 지금 라그라스에서 뭐라 칭송받고 있습니까?”

성녀.

라그라스에 있는 팔불출들 때문에 붙은 호칭이었지만…….

내가 그 호칭을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봤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

나는 주변을 힐끗 둘러봤다.

봐라. 벌써 나를 보는 눈빛이 바뀌었지 않은가.

세라가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네, 모두 아시다시피 성녀지요.”

이번에는 그녀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내게 향했다.

“그렇다면, 이번 몬스테라 사건으로 인해 가장 득을 본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궤변을 가만히 듣던 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그녀의 주장에 반박하고 나섰다.

“라그라스에서 유통하고 있는 약은 전부 적정가에 팔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쿤이 아카데미에서 존댓말만 쓰다가 황자로서 말하는 것을 보니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분노가 담겨 있어서 더욱 그랬다.

쿤은 다른 귀족들에게도 잘 생각해 보라는 듯 말했다.

“애초에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이 우선이었다면 그녀가 약의 가격을 그리 책정하지도 않았겠지.”

맞는 말이었다.

금전적으로 확실히 이득을 보려 했다면 가격을 지금의 세 배 이상은 올렸을 터였다.

또한, 지금 한스가 무리해서 생산 설비를 늘리는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곧바로 세라의 반박이 날아들었다.

“지금이야 괜찮다고 하나 언제 갑자기 가격을 올릴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녀는 쿤이 아닌, 이곳에 있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나선다면 그때는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줄곧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나지막이 입술을 뗐다.

“폭리를 취한 적은 없으나, 곧 취할 것이기 때문에 제가 가진 정당한 권리를 내놓아야 한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 논리가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하네요.”

“정말 사람들을 생각했더라면 애초에 레시피를 전역에 풀고 독점판매를 하지 말았어야겠죠.”

개소리였다.

개발한 레시피를 공개하고 말고는 오로지 나의 권리였다.

과거에도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치료제나 관련 약들이 개발된다면 그 소유는 개발자에게 있었다.

약의 개발은 돈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보통 약의 개발은 개인이 아닌, 귀족이나 황가에서 연구자들을 후원해서 만들어 내는 형태가 가장 흔했다.

세라의 주장대로라면 누가 필사적으로 약을 개발하려 할까.

어차피 그 권리는 빼앗길 게 뻔한데.

그리고 모기 기피제는 몰라도 마나 이완제는 몇 년 전부터 한스네 상단에서 독점으로 팔고 있던 약이었다.

세라의 주장은 명백히 억지고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레시피를 풀면 원재료의 가격이 폭등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나요? 원재료가 공개된다면 당연히 여기저기서 사재기가 일어나겠죠.”

오히려 지금보다 가격이 비싸지면 비싸졌지, 절대 싸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 그래도 정말 사람들의 목숨을 생각했더라면……!”

“또한!”

나는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고는 말을 이었다.

“레시피를 풀어서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그건 누가 책임지죠?”

세라가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당연히 그 약을 개발한 리엔, 당신이죠!”

하.

헛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 내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정말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앞뒤 분간 못 하고 아카데미에서 칼을 휘둘렀겠지만.

“레시피를 지키지 않고 약을 만든다면? 누군가 가짜를 유통시킨다면? 그래도 제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한스네 상단에서 산 약은, 구매한 이력만 확인된다면 부작용이 나타날 시 나와 상단이 책임지고 배상을 진다.

하지만 레시피를 전역에 공개한다면 알 수 없는 곳에서 약을 산 사람들도 상단에 책임을 묻겠지.

헌데,

“제가 왜 그 리스크를 짊어져야 합니까?”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이 고요하게 일렁였다.

“세라. 제가 언제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고 했습니까? 성녀가 되고 싶다고 했나요? 그런데 왜 제게 희생을 강요합니까?”

반박할 말이 없는지 그녀는 입술을 짓씹을 뿐 오래간 입을 열지 못했다.

“네가 황실에서 주최한 연회를 망치면서까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고작 이게 단가?”

쿤의 질책에, 세라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몰랐는지 한껏 당황한 얼굴이었다.

“다, 다들 저 여자의 간악한 혀 놀림에 속고 계신 겁니다. 외모만 봐도 가히 악마의 현신 같습니다. 저리도 까만 흑발에 흑안이라니 다들 소름이 끼치지 않습니까?”

멍청하긴.

급해서 아무 말이나 나온 것은 알겠으나, 최악의 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공님 또한 나와 같은 흑발 흑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은 나와 이 아이가 악마의 현신이라는 건가?”

대공님이 내 등을 한번 토닥이고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옛날이 생각나는군. 제국 전쟁 때는 라스라스 제국군에게 종종 듣곤 했지.”

한 발, 두 발.

세라와 대공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리 말했던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대공님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아스라이 매만졌다.

황궁 안에서 검을 소지할 수 있는 귀족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제약에서 대공님만은 예외였다.

어차피 그가 죽이겠다 마음먹는 순간, 칼의 유무와 상관없이 목적을 이뤘을 테니까.

“전부 땅으로 돌아갔지.”

대공님이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으며 세라를 응시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세라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는다.

그때였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귀족 몇몇이 분노하며 말을 토해 냈다.

“말도 안 됩니다! 대공님을 어떻게 악마와 비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라그라스 제국군이 대공께 저항할 힘이 없어 그리 불렀던 것이지, 대공님은 아바스칸투스의 영웅이십니다!”

당연하겠지만, 세라가 나를 건드렸을 때와는 굉장히 다른 반응이었다.

황제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데려가라.”

피곤하다는 듯 그가 손을 휘휘 내젓는다.

“황실의 권위도 많이 떨어졌군. 하녀가 짐의 앞에서 이리 날뛸 수 있다는 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마녀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알고 있습니다……!”

세라를 빤히 바라보던 황제는 무언가 생각하다가 결국.

“들어 보지.”

“폐하!”

쿤과 대공님이 동시에 황제를 불렀으나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단, 네 말이 이번에도 머리카락 색과 같은 시답지 않은 주장이라면 네 벌을 태형 정도로 끝내지 않겠다.”

그에 세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는 그녀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일 때, 실제로 마물을 기르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녀가 거론한 마물이 도비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내 안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무언가가 ‘팅’하며 끊어졌다.

세라.

그렇게 도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또 건드리려고?

황제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세라에게 물었다.

“네가 본 것이 마물이 확실한가?”

“네. 늑대의 몸에 거대한 날개를 가진, 온몸이 검게 물든 마물이었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리시안셔스 령에서 마물을 데리고 다니는 그녀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다수 나왔습니다. 사람을 시켜 조사하면 진실인지 아닌지 금방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연회장 안이 다시금 술렁인다.

사람들에게 마물은 ‘악’ 그 자체였다. 그런 마물을 기르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겠지.

내가 모기를 마물로 변이시켜 몬스테라를 퍼트렸다는 것에 신빙성을 더하는 증언이었다.

피부로 사람들의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여론이 다시 세라에게로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자신감을 얻은 듯 주변을 둘러보며 앙칼지게 외쳤다.

“이게 모두 우연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세라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나였다.

광기 어린 눈을 보고 있으려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널 망칠 거야. 네가 날 나락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내가, 너를.

나는 예쁘게 세팅된 검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뒤로 쓸어 넘겼다.

“하.”

지랄하고 있네.

누가 누구를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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