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분노가 차올랐지만, 오히려 정신은 또렷해졌다.
“해명하겠습니다.”
나는 바닥에 형편없이 주저앉아 있는 세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첫째, 약초가로서 더욱 다양한 약을 만들기 위해 연금술을 배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병을 새로이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한 실력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끔찍한 병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나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지 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둘째, 모기 기피제와 마나 이완제는 제가 만든 수많은 약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운이 좋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배운 레시피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수많은 약 중에서 몇 개가 이번 몬스테라 사태에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이상할 게 아니라는 거다.
“셋째, 제가 기르고 있는 것은 마물이 아닙니다. 비틀린 마나에서 태어났지만 불완전하지 않은, 완전 한 존재지요.”
내 흔들림 없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그녀가 몸을 움찔 떤다.
하지만 이내 악독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봤다.
“마지막으로, 저 또한 몬스테라의 피해자입니다. 제 부모님 또한 그로 인해 명을 달리하셨으니까요.”
세라와의 거리가 두 뼘도 채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상체를 훅 숙이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곳에 오기 전, 목이 날아갈 각오 정도는 하고 왔지?”
나를 건드렸으니 당연하잖아.
너는 내 목숨이 날아가든 네 목숨이 날아가든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목이 날아가는 건 어디까지나 그녀 하나다.
“세라.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잘 봐.”
“이, 이 마녀가……!”
그녀가 매섭게 치켜뜬 눈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손톱을 세워 얼굴을 할퀴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그대로 관망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느새 세라의 앞으로 이동한 카르시온이 그녀의 목을 틀어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녀의 발이 공중에 붕 뜬다.
꺄악-!
그의 돌발행동에 놀란 사람들이 곳곳에서 작은 비명을 질렀다.
어찌나 목을 세게 틀어쥐었는지 세라는 찍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그저 양손으로 목 부분을 틀어잡으며 숨을 쉬려 발버둥 칠 뿐이었다.
연회장은 사람들의 말소리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소란의 중심에 선 카르시온은 변함없이 싸늘하기만 한 얼굴이었다.
그가 느릿하게 황제를 돌아보며 입을 연다.
“폐하, 이자가 어떤 자인지 아십니까?”
그가 입을 열자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 장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아레나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던 시절, 제게 피해망상을 가지고 칼을 휘두른 죄로 우리 라그라스 제국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힘껏 저항하던 세라의 몸이 축 늘어진다. 기절한 듯했다.
카르시온은 그런 세라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이런 자의 말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몬스테라의 확산을 저지한 제 약혼자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그의 눈은 황제와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난폭했다.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이자의 편을 드는 순간,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소위 협박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황제는 섬뜩한 살기에 잠시 주춤했다가 미간을 좁히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소공작의 말과 눈빛은 마치 황제인 내게 협박을 하는 것 같군.”
카르시온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꼬리를 조용히 휘어 접을 뿐이었다.
두통이 인 듯 황제가 이마를 짚었다. 애써 화를 가라앉히려는 모양새였다.
과거부터 쭉 리시안셔스 가문과는 좋지 않게 얽혀왔으니, 그의 태도가 더욱 기분 나쁘게 들려왔을 테지.
“……누구의 말을 믿냐에 대한 질문은 답하지 않겠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수사를 진행하면 알게 될 테지.”
황제의 손끝이 내게로 향했다.
“여봐라, 저 여인을 마물 인공 배양 및 감염병 전파 혐의로 구금 하라. 수사가 진행됨에 있어, 누구도 만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 대공님이 황제에게 급히 호소하듯 말했다.
“폐하, 이 아이는 자신의 거짓된 명예나 영리를 위해 그런 추악한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텐가.”
“저 카리스데네스 포티투아의 이름을 걸고 보증하겠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황제의 미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좁혀진다.
“대공. 이름을 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지 않나. 만일 그녀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대 또한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대공님의 대답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황제는 이내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대가 연루되는 건 짐이 허락할 수 없다. 해치겠다는 게 아니다. 그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구금 하겠다는 거지.”
“하지만 그건……!”
“다들 저 여인을 잡지 않고 뭣들 하나!”
그러자 내 앞을 지키고 선 대공님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냈다.
잘 벼려진 검의 끝이 조명을 받아 날카롭게 빛이 난다.
“누구도 이 아이를 멋대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아직 무엇 하나 확실시된 것 없는 상황에서 어찌 하녀의 증언만을 듣고 이 아이를 핍박하려 하십니까, 폐하!”
나는 내 앞을 막고 선 대공님의 너른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아무리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이건 평범한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다.
황제의 명에 반해 칼을 꺼낸다니.
이러면 더 이상 모르는 척 외면할 수 없지 않나.
이대로 라그라스로 돌아가려 했건만. 더 파고들고 싶지 않았건만.
황제가 이맛살을 구기며 대공님으 말에 반박했다.
“……핍박이라니! 자그마치 마물 배양과 관련된 일이야. 죄목을 따지면 반역 바로 아래에 있는 중죄라는 말일세!”
“폐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아이는 무고합니다.”
“그거야 감옥에 넣고 조사해 보면 알 일이다.”
“조사, 좋지요.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판단하고 명을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사사로운 감정?”
“충분히 정황을 알아본 뒤에 아이를 소환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을 꺼내고 있는 것은 대공일세!”
황제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지금 대공님의 반응은 다른 이의 관점으로 봤을 때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
마물 인공 배양은 중죄이다.
거기에 감염병 전파 혐의까지 받게 되었으니 나는 무고가 입증될 때까지 구금되는 것이 맞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일반적인 평민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지금의 황제는 카르시온의 말에 분노해 다소 감정적으로 나온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때문에, 대공님이 나를 지키려 저렇게 강하게 나온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마물 인공 배양과 감염병 전파 혐의로 구금되는 것 자체가 내게 크게 타격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라스라스에서 카르시온과 결혼해 곧 고위귀족이 될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바스칸투스의 옥에 갇히는 것 자체가 크나큰 불명예였다.
사실 나는 귀족으로서 내 명예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리시안셔스에 폐가 가는 것은 죄송스럽기는 했지만 말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이 자리에서 구금된다면 ‘혐의’일 뿐인 이 범죄가, 대중들에게는 진짜 범인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거다.
왜, 그렇지 않은가.
악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무고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에는 대중들의 흥미가 이미 다 떨어진 후일 터다.
아무도 내가 실은 범인이 아니었다는 것에 관심 가져주지 않겠지.
그저 내게 향했던 화살이 진범에게로 옮겨질 뿐.
나는 그대로 감염병을 퍼트린 범인으로 낙인 찍히는 거다.
“아무리 대공과 개인적으로 연이 있었다고는 하나, 자네가 평생 충성을 바쳐 온 아바스칸투스보다 중요한가?”
황제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리 감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대공답지 않다.”
“……평생을!”
대공님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평생을 바쳐 왔으니, 제 모든 것을 바쳐 왔으니! 그러니 이 정도 주장은 믿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눈에는 핏발이 서고, 목과 손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
아아.
나는 눈꺼풀을 조용히 내리감았다.
대공님의 검은 눈동자를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황제의 노한 음성이 고막 깊숙이 파고들었다.
“카리스데네스! 어찌 말을 그리하는가! 정신 차리게. 고작 라그라스의 평민이다. 그대가 이리 감싸고 돌 사람이 아니라!”
그에 카르시온의 목소리가 이어 들린다.
“폐하, 고작 평민이라니요. 아까의 소개를 잊으신 모양인데, 장차 리시안셔스의 공작 부인이 될 여인입니다.”
눈꺼풀을 들자 지금껏 내가 보지 못한 표정을 한 카르시온이 두 눈에 담겼다.
“아무리 아바스칸투스의 황제라고 하나, 라그라스의 귀족을 함부로 할 권한은 없습니다.”
퍽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습조차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너만큼은 나를 버리지 않겠지.
오히려 자신만이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며 좋아할지도 몰랐다.
내 연인은 질투가 많았으니까.
상황은 심각했으나 절대적인 내 편이 둘이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나는 제국의 황제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들으셨나요? 저를 구금 하시려면 조금 더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셔야 할 겁니다.”
***
나는 황제가 벙찐 사이 카르시온의 마법을 이용해 곧바로 대공님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졸지에 황제의 앞에서 검을 뽑게 된 대공님도 데리고 말이다.
우리가 사라진 연회장은 안 봐도 뻔했다. 난리가 났겠지.
이튿날.
대공님은 새벽부터 황제에게 불려가 아침도 함께하지 못했다.
바깥이 시끄러웠다.
내 예상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황실에 구금되는 것은 막았지만, 오히려 그 행동이 사람들의 눈에는 범인이 제 발 저렸다고 보이는 듯했다.
내가 대공님의 집에서 손님으로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저택 앞쪽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당장 저 마녀를 불태워 죽여야 한다든지.
대공님이 마녀에게 홀린 게 분명하다든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몬스테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일 터였다.
카르시온이 조용히 커튼을 닫아 창을 가렸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카르시온의 배려인 듯했다.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들끓는 감정. 그 눈동자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카르시온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성녀라 불리기 원했던 적 없어.”
그저 묵묵히 약초가로서 할 일을 했을 뿐.
엄마가 그랬듯이.
하지만 우습게도, 성녀라는 호칭조차 마녀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대중들의 귀는 얇고 자신이 진실을 파헤쳐 보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며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두렵지는 않았다. 내 무고는 언젠가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라그라스에 있는 내 사람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억울한 건 억울한 거였다.
“짜증나.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해?”
“……리엔.”
하루빨리 모국인 라그라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혐의가 풀리지 않은 이상 이 나라를 떠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카르시온의 손을 다정히 맞잡고 저택의 중앙 현관으로 내려갔다.
흰 천으로 덮여 있는 거대한 액자.
며칠 전, 포티투아 저택의 사용인 한 명을 붙잡고 물었던 것이 떠오른다.
대공님의 가족에 관해 묻는 말에, 모두 전쟁으로 죽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아들은 대공님의 결혼 반대로 저택을 떠났다고 했지.
어찌나 거세게 반대했던지, 웃음이 떠날 일 없던 포티투아 저택에 살기가 가득해 숨도 쉬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 떠난 아들의 이름은…….
“이벨루안하르드.”
대공님의 저택에서 머무는 동안, 내가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그저 외면했을 뿐이지.
무서웠다.
가족이라는 그 이름이 내게 너무도 무거웠기에.
의지가 되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그들에 의해 인생이 바뀌고, 크게 배신당하기도 했지.
이런 내가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대로 모르는 척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했다.
아빠가 내게 남겼던 말 또한 마음속 한켠에 남아있었기에 더욱.
하지만 어제의 대공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황제의 앞에서 검을 뽑으면서까지 나를 지키려 한 사람을 내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손을 뻗어 액자를 가리고 있는 흰 천을 걷어 내었다.
천이 스르르 떨어지며 ‘대공님의 가족’이라는 사람의 초상화가 나타난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
하지만 장난스럽게 웃는 그 표정만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나는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잘 지내고 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안녕.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