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몬스테라 감염병을 퍼트린 범인이 자수했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지 않았다.
재판이 열리기로 예정된 날은 내일이었다.
불과 하루를 남겨 두고 범인이 자수한 것이다.
마치 내 재판을 막기 위해 급히 자수한 듯이.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카르시온과 눈을 맞췄다.
“카온. 설마……. 아니겠지?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그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는지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입술을 말아 물었다.
몸이 잘게 떨렸다.
카르시온은 내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듯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그의 양어깨를 부여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어서 말해 줘.”
아니라고.
그가 아닐 거라고 말해.
카르시온은 내 손을 차분히 잡아 내렸다.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날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수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도 이제는 인정해야 해, 리엔.”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흔히 볼 수 없는 단호한 얼굴이었다.
“넌 알고 있잖아.”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나지막이 내뱉어진 말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현실 감각이 훅 끼쳐 들어 왔다.
“카온, 나는, 나는…….”
부모님을 죽인 아칸더스를 용서한 게 아니야.
용서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저 그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그를 믿고 의지했던 과거의 내가 너무 가여워서.
그래서 아칸더스가 내게 거짓말을 하기를 바랐다.
내 기대에 보답하듯 그는 내게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 했고, 나는 그를 믿어 줬다.
그런데 라그라스에 자수한 사람이 정말 아칸더스라면…….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물어야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왜 우리 부모님을 죽였는지.
***
사용인이 가져온 소식 이후, 나에 대한 재판 또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달 되었다.
아니, 사실상 재판은 없던 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라그라스에서 나타난 범인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물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몬스테라 바이러스의 설계도.
마물인 모기에 관한 연구 자료들, 실험 결과와 더불어 직접 퍼트린 정황까지.
하나같이 진범이 아니면 내놓지 못할 증거들이었다.
입 안이 썼다.
몬스테라를 퍼트린 범인은, 아바스칸투스가 아닌 라그라스 황실에 자수했다.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라그라스 제국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마법이라는 것은 참 편리했다.
검문소를 거치지 않고도 국경을 넘나들 수 있었으니까.
물론 이런 꼼수를 쓰는 범죄자들을 잡으려 관련 마법을 걸어 놓았지만…….
마법은 언제나 더 상위의 마법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곤 했다.
나와 카르시온은 라그라스로 출발하기 위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공식적으로 아바스칸투스의 포티투아 저택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그를 만나려면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준비를 마친 카르시온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 볼까?”
문득 내가 지금 불법 입국에, 황실 감옥 안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에 걱정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카르시온의 소매를 꼭 붙잡았다.
“들키지는 않겠지?”
그는 내가 잡은 소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흐물흐물해진 얼굴로 눈썹을 그러모았다.
“리엔 너무 귀여워…….”
긴장 따위라고는 한 줌도 보이지 않는 기색이었다.
“들킬 일 없어.”
카르시온이 눈가를 휘어 접으며 빙긋 웃었다.
“알잖아, 내 마법 실력.”
그가 내 이마에 입술을 맞추는 순간,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시야가 빙글 돌며 어둠 속에 잡아먹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꺼풀을 감고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팡이 핀 냄새와 녹슨 철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그가 갇혀 있는 라그라스 황실의 감옥이 분명했다.
천천히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경비병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카르시온이 수를 쓴 듯했다.
시선을 돌리자 눈에 익은 한 사람이 보였다.
아칸더스.
나는 힐끔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추적 마법을 걸어 놓기라도 한 듯 정확한 좌표 선정이었다. 그를 찾기 위해 어느 정도 돌아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카르시온이 단단히 내 손을 잡아 온다.
그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아칸더스는 철장 안, 한쪽 구석에 사지가 포박된 채였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그라는 것을 확인하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건 슬픔일까 분노일까.
“아칸더스.”
그의 금안이 내게로 향했다.
평생 죄라고는 지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선한 눈동자.
아래로 내려간 눈매가 더욱 그렇게 보이게 했다.
나를 발견한 그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다정히 웃었다.
“왔구나, 리엔.”
내가 찾아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저 태연한 태도는 뭘까.
분명 내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있을 텐데.
무엇을 물어볼지 훤히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카르시온의 도움을 받아 무리 없이 그가 있는 철장 안으로 들어갔다.
“왜 그랬어요?”
목소리가 떨려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아칸더스는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묻는지 모르겠구나.”
“……알고 있잖아요.”
“내가 감염병을 퍼트린 것? 너에게 범인이 아니라 거짓말한 것? 아니면 이제 와서 자수한 것?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네 부모님을 죽인 것?
아.
이제야 내 감정을 알겠다. 이건 분명…….
분노였다.
“당신이 죽인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
차분하게 시작된 말은 뒤로 갈수록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대체 목적이 뭐길래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인 거야? 대체 왜!!”
“나는 아바스칸투스와 라그라스를 혐오한다. 내 인생을 망친, 두 제국을 혐오해.”
“그래서 복수했다?”
아칸더스가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버릴 것처럼 웃었다.
“리엔. 넌 내 과거를 몰라.”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해.”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도 벅찬데 내가 왜 너를.
“부모님이 칼에 찔려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직전까지 갔고, 맞아 죽지 않을까 항상 벌벌 떨어야 했지.”
끔찍했던 과거가 떠오른 듯 아칸더스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그러다 겨우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됐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부모님을 죽인 살인마인 것을 알게 됐다.”
월터 교수님인가.
“복수하고 싶었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모든 걸 없애버리고 싶었어.”
“하.”
동정 따위 하나도 일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말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정당화하려는 그가 역겨웠다.
“어쩌죠. 불행한 과거 하면 나도 할 말 많은데.”
근데 이게 다 당신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이야.
당신 작품이라고.
“부모님의 사지가 썩어들어 가는 걸 두 눈으로 담았어. 매일 같이 얻어맞으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웃어야 했지. 그런데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 부모님을 죽인 살인마이기까지.”
말을 하면서 나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나, 당신 인생과 비슷하네.
그의 복수심이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게 너무 소름 끼쳤다.
“아니라며.”
들끓는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며. 그래서 믿어 줬잖아! 도망치라고 놔주기까지 했잖아!!”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뜻으로!
나는 그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왜 우리 부모님이었어? 왜……! 왜 하필 우리 부모님이었냐고!”
질문을 받은 그는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덤덤히 답했다.
“바르몬 크니리나의 치료제를 만든 게 너의 어머니였으니까.”
“……뭐?”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친 듯한 충격이 강타했다.
바르몬 크니리나.
그저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 들어있지 않은가.
“아직도 내 진짜 이름을 모르고 있니, 리엔?”
아니. 나는 그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었다.
“바르……몬.”
무의식적으로 더듬거리며 답한 말에 아칸더스가 활짝 웃었다.
“처음으로 네게 이름을 불려 보는구나.”
미쳤구나.
당신은 정말 미쳤어.
“바르몬 크니리나의 치료제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죽였다고?”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고작 그거라고?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나는 어느 순간 뚝 웃음이 끊어 냈다.
“차라리 나도 부모님과 같이 죽이지 그랬어?”
아칸더스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내 눈과 마주친 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동요했다.
“오히려 당신을 방해한 거로 치면 내가 더 거슬려야 하는 거 아닌가?”
맞잖아.
당신이 만든 몬스테라의 치료제를 만든 게 나인데.
“나를 살려 둬서 이렇게 된 거잖아. 모기 기피제에, 마나 이완제까지. 당신 계획이 전부 어그러졌네?”
이쯤 되니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살려 둔 거야? 그리고 왜 나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 전에 자수했지?”
“…….”
“대답해. 왜 그랬어?”
그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왜!!!”
“지키고 싶었다. 가족이니까.”
짜악-!
거센 마찰음이 감옥 안을 꽉 채웠다. 아칸더스는 옆으로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원래대로 되돌렸다.
나도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다.
지금 장난해? 어떻게 그따위 말이 나올 수 있어?
“다시 말해 봐. 누가 가족이라고?”
“리엔 네가 나의…….”
짜악-!
다시금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
“감히 누가 누구의 가족이라는 거야. 넌 내 가족이 아니야.”
나는 당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내 과거를 사무치게 후회해.
아칸더스의 눈동자에 절망이 들어찬다.
더는 내 눈을 마주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그의 행동에서 어떤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거다. 이거구나.
당신이 지금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게 뭔지 알겠어.
“그거 알아요, 아칸더스?”
나는 그의 턱 끝을 잡고 강제로 들어 올려 내 눈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당신 따위 없어도 의지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
그를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리고 싶었다.
더 더 더.
“이제 당신 옆에는 아무도 없어. 지옥에 떨어져도 안타까워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겠지.”
이게 당신의 최후야.
“있잖아요, 아칸더스. 아니, 이제는 바르몬이라고 불러야 하나?”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하긴 뭐라 부르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이제 당신을 만날 일은 없을 텐데.”
“…….”
“당신이 자수해서 내 무고를 입증해 주면 내가 기뻐할 줄 알았어요?”
나는 미친 사람처럼 깔깔 웃고는 덧붙였다.
“아니 정정할게요. 사실 조금 기쁜 것도 같아.”
그러자 아칸더스의 눈에 자그마한 기대가 싹텄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완전히 끊어 낼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뻐.”
“아……?”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희망을 짓밟았다.
“다행인 일이죠? 미련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
분노를 토해 내고 나니 남는 것은 이상하게도 허망함이 아니라 후련함이었다.
“이 이상 내 손을 더럽히지는 않을게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뜨려고 할 때였다.
그가 눈물을 쏟으며 내게 마지막 희망을 얻으려는 듯 물어봤다.
억지로 웃고 있는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래도……. 저번에 나를 놓아준 것은 사실 너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거지? 그렇지, 리엔?”
나는 안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같잖지도 않았다.
“망상이 지나치네. 그건 당신에게 배신당한 내가 너무 불쌍해서 현실을 부정했던 거야.”
알아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