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615)

27화 사교 파티에서 생긴 일 (5)

바르코의 기사, 벤슨은 얼얼한 충격에 순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뺨을 맞았다고?’

뺨이 얼얼했다.

바르코 가문의 소속으로서 주변 일대에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다녔던 그로서는, 고통보다도 뺨을 맞은 행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대의 얼굴은 확인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을 왜 때렸는지는 알겠지만, 드미트리의 얼간이라 불리는 평판은 벤슨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컥!”

짜악!

다시 한번 고개가 돌아갔다.

당황한 벤슨이 뺨을 움켜잡으며 로만을 막아 보려고 했으나, 로만의 손은 또다시 뺨을 후려쳤다.

짜악!

짜악! 짜악!

한 번, 두 번, 세 번.

벤슨이 반격할 여유조차 없었다.

로만은 벤슨의 얼굴이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뺨을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처음에만 하더라도 당당하던 벤슨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알량한 자존심보다도 고통이 앞섰고,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는 다리에 벤슨은 양팔을 휘저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제, 제발……!”

아팠다.

너무 아팠다.

나름 고통에 익숙한 삶을 살았는데도, 로만의 손길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실수했다는 사실을.

하지만 로만은 사과할 기회도, 뭐라고 변명할 틈도 주지 않았다.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파티장의 귀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도, 차가운 얼굴로 벤슨의 얼굴을 수도 없이 후려쳐 버렸다.

피가 튀고.

이빨이 나갔다.

비틀거리는 다리는 무릎을 꿇었고, 어느새 벤슨은 헝클어진 머리로 로만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심각해지는 상황.

뒤늦게 케빈과 크리스가 말렸다.

“주군!”

“이 정도면 충분한 벌을 내리셨습니다! 상대는 바르코의 기사입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하들의 말이 옳다.

그들은 충언(忠言)을 내뱉었으나, 로만은 피가 튄 얼굴로 그들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충분한 벌의 기준은 내가 결정한다. 크리스, 케빈. 드미트리의 장자인 나를 험담하는 기사의 처벌에는 어떤 형벌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가. 폭력으로 인해 이 녀석이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뱉은 말의 대가일 뿐. 지나침은 없다.”

로만.

인자한 주군은 없었다.

벤슨은 로만이 정한 선을 넘어 버렸고, 그것이 천마의 잔인함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게 했다.

노련한 사교성과 수하들을 향한 마음.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결국 견고한 왕좌를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명백한 처벌의 기준이었다.

로만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을 넘은 자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벤슨의 얼굴을 움켜잡고 뺨을 때리려는 순간.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안토니 바르코.

그가 나타났다.

눈앞의 광경.

믿을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감히 바르코의 사교 파티에서, 바르코 가문의 기사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벌하고 있었다.

그것은 월권(越權)이었다.

당장에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안토니 바르코가 바락바락 소리쳤다.

“로만! 네가 아무리 드미트리 가문의 장자라지만, 바르코 가문의 기사를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당장 그 행동을 멈추고 네 무례한 행동에 대해 직접 사죄해라!”

밀실에서의 대화.

잊었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고개를 숙였으나, 안방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 것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과 로만을 번갈아 보는 시선. 숨을 죽이는 귀족들의 얼굴에는 흥미롭다는 기색이 떠올랐고, 그렇기에 안토니 바르코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는 생각했다.

로만이 선을 넘었다고.

지금은, 자신이 화를 낼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지?”

로만은 동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벤슨의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 채로, 안토니 바르코를 바라보며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

“파티장을 나섰을 때, 나는 바르코의 기사가 나를 험담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제를 운운하면서 드미트리 가문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더군.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감히 드미트리 가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안토니 바르코. 정녕,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 할지라도 이건 선을 넘었어!”

“선. 선이라.”

피식.

상대도 알았다.

이번 일이 벤슨의 책임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물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벤슨을 지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다.

한 번만 물러나 달라고.

본인의 체면을 지켜 달라는 안토니 바르코의 눈빛에도, 로만은 조금도 그 의도를 따라 주지 않았다.

“내가 밀실에서 너와 대화를 하면서 말했었지.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우리 둘의 관계, 나아가 가문의 관계가 어떻게 틀어질지 모른다고. 지금부터는 날 대하는 태도를 확실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네 달아오른 얼굴처럼 서로를 볼 때마다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들지. 내 인내심은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아. 그러니, 지금 네 태도를 결정해.”

주변의 사람들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트러블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설마 가문을 들먹이는 문제로까지 번질 줄은 몰랐다.

로만이 의도한 바였다.

생전의 로만은 얼간이였다.

동북쪽 일대의 실세인 드미트리 가문을 등에 업고도, 밖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얼간이.

그건 다른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지 못한 로만 드미트리의 잘못이었고, 로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그러한 사실을 지금 바로잡고자 했다.

‘내 이름은 로만 드미트리다.’

드미트리 가(家)의 장자.

바르코를 상대로도, 이런 무례한 발언을 내뱉을 수 있는 사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벤슨.

그는 빌미에 불과했다.

애초에 바르코의 사교 파티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로만은 대화로 주변 귀족들의 환심을 샀던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의도적이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실수로부터 비롯되는 상황에, 로만은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벤슨의 실수를 콱 물어 버렸다.

이빨을 드러냈다.

로만의 살벌한 기세에, 안토니 바르코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빌어먹을.’

로만의 적의.

주변의 시선.

마음 같아서는 같이 맞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실수를 돌이킬 수 없다.

밀실에서의 대화로 로만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개인 간의 원한으로 가문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는 발언은 허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일방적으로 바르코의 손해다.

조금만 참고 인내하면 로렌스의 비옥한 토지와 플로라 로렌스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괜히 드미트리의 자존심을 긁어서 원대한 계획을 망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씩.

안토니 바르코는 자기합리화에 빠졌다.

주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자신으로서는 하나의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잘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아. 만약 드미트리의 기사가 내가 보는 앞에서 날 험담하고 바르코 가문의 사람을 건드렸다면, 나 또한 똑같은 처벌을 했겠지. 이건 엄연히 우리의 잘못이야.”

한발 물러났다.

자존심을 굽히면서도, 애써 똑같은 상황에 자신도 같았을 것이라며 의미 없는 변명을 덧붙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로만은 웃으며, 벤슨의 머리를 앞으로 끌어왔다.

“네 생각도 그렇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공포로 물든 벤슨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로만은 그의 머리를 바닥으로 찍어누르며 말했다.

“이빨 꽉 깨물어.”

그 말에.

벤슨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벤슨은 들것에 실려 갔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은 피떡이 되었고,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이빨 조각과 피가 흥건히 고였다.

파티는 끝났다.

로만은 손수건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크리스와 케빈을 데리고 파티장을 나가 버렸다.

영지로 돌아오는 길.

말없이 로만을 따라가던 케빈이, 대역죄인의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주군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참담했다.

만약 자신이 크리스와 같은 기사였다면.

바르코의 기사들이 시비를 걸 일도 없을 테고, 로만도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도 말을 덧붙였다.

“저도 죄송합니다. 케빈이 맞는 모습을 보고도, 드미트리 가문이 모욕을 당했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로 징계를 내리신다면, 그 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는 힘이 있다.

그런데도 로만을 위해 참았다.

만약 로만이 바르코와 적대할 정도로 분노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검을 뽑아서 싸웠을 것이다.

탁.

걸음을 멈추었다.

로만은 수하들을 돌아보더니,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너희들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참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참고 기다려 주어서 고맙다.”

이번 일.

둘의 책임이 아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 바르코 가문은 힘이 있고,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함부로 대할 힘이 없다.

만약 로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바르코 가문과 시비가 붙었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와 케빈은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

로만의 무력은 인정하고 있지만, 세력으로서의 입지가 불안하기에 자존이 상해도 참고 버텼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대응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섣부름은 화를 부른다. 너희들의 선택은 최악은 면할 수 있으나, 내가 원하는 정답은 아니었다. 앞으로는 누군가 너희들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공부하여라. 그렇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카이로 왕국 동북쪽 일대에서, 감히 드미트리 가문에게 침을 뱉고도 참아야 하는 상대는 없을 테니까.”

밑바닥에서 살아갈 때.

백중혁은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구를 사용했고, 우두머리의 머리를 돌멩이로 부숴 버리면서 12굴의 왕이 되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세력이 없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세력을 짊어졌을 때의 선택에는 동료의 목숨이 걸렸다.

그렇기에.

때를 구분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때가 아니라면 웃음을 보였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무모하다고 판단될지라도 망설임 없이 상대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었다.

크리스와 케빈의 판단은 그들로서는 최선이었으나, 만약 ‘때를 구분하는 법’을 알았다면 오늘 참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르코 가문.

혹은 블러드 팽.

드미트리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그들은 선을 넘는다고 할지라도 문제가 없는 상대다.

그리고.

“설령 참아야 할 상대라 할지라도 상대의 얼굴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아 두어라. 단순히 참는 것과 무력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다르다. 언제고 그 상대를 반드시 짓밟아 버릴 테니, 두 눈의 독기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 위에 누군가가 올라와 있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를 발아래 두는 삶을 살아갈 날 따르기 위해서는, 그 방식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이 순간.

크리스와 케빈은 생각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반드시 군림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내다.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이 생각하는 상식의 선에서 노력해서는 안 될 것이다.

로만이 앞서 걸어갔다.

크리스와 케빈은, 그 뒤를 따라갔다.

로만의 듬직한 등을 바라보며, 두 사내의 발걸음에는 처음보다도 더 견고한 신뢰가 느껴졌다.

천마신교(天魔神敎).

무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력이, 이곳 카이로 왕국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