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615)

32화 모병 (5)

사교 파티.

그때와는 달랐다.

그날의 로만은 귀족으로서 잘 포장되어 있는 화려한 공작새 같았다면, 지금은 당장에라도 전투에 나갈 것 같은 무장(武裝)을 갖추었다.

기세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길을 내주었고, 양쪽으로 갈라진 인파들은 로만의 눈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의 시선.

사람들의 반응.

로만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새로운 천마로서 인정을 받았던 십만대산(十萬大山)에서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정파인들을 도륙하고 무림을 정벌했을 때도.

로만, 아니 백중혁은 군림하는 자로서 살았고, 그렇기에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알았다.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의 소문에 이끌려 사병 모집에 지원하였으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일반 사병의 위치로는 과한 인력이라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러나 로만을 직접 만나니 예상과는 다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풍기는 분위기.

우러러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일반인과는 다른 존재였고, 왁자지껄 떠들던 사내들도 지금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침묵이 맴돌았다.

마침내.

로만이 사람들 앞에 섰다.

오백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로만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명령이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로만은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로만의 기세에 휘말렸다.

“공고문에서도 밝혔다시피,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나를 위해 싸울 30명의 병사를 선별할 것이다.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할 것이 있다. 나 로만 드미트리는, 변방의 영지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며 살아갈 생각이 없다. 항상 지금보다 높은 위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나를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지금이라도 걸음을 돌려라. 전장에서 목이 날아가는 순간 너희가 후회해야 할 것은, 전장으로 너희들을 몰아넣은 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대륙 최고로 우뚝 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밖에 없을 것이다.”

“……!”

사람들이 경악했다.

로만의 발언.

오만했다.

대륙 최고는커녕 드미트리 가문에서도 후계자의 자리가 위태로운 로만 드미트리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륙 최고를 말했다.

문제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로만이 풍기는 카리스마와 그가 보여 주는 확고한 태도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알았다.

로만의 말이 헛소리임을.

하지만 소문에 따라, 이상(理想)을 따라 찾아온 사람들은, 차마 로만을 보고도 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로만이 말했다.

“만약 너희가 시험에 통과하고 나의 사람이 된다면. 너희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포식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 로만 드미트리가, 그것 하나만큼은 약속하마.”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걸음 물러나는 로만 드미트리.

마침내.

시험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 * *

환호는 없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

아직도 로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크리스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1차 테스트의 진행 방식을 말해 주겠다.”

오백의 지원자.

루카스는 사병 모집에 지원한 사람들의 수준이 예상보다 높다고 생각했지만, 로만의 기준에서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마도 크리스의 검조차 받아 내지 못할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방법을 통해 병사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일이 로만으로서는 그렇게 낯설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12굴에서 나와.

백중혁은 처음으로 집단을 형성했다.

그때도 백중혁의 곁에는 오합지졸들밖에 없었지만, 백중혁은 단 하나의 가치만을 확인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이다. 태생부터 야수의 심장을 타고난 자들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빠르게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만이 나와 함께할 수 있다.’

야수의 심장.

그것은 선천적인 재능이다.

팔을 자르라는 명령에 서슴없이 칼을 들었던 케빈이나, 처참하게 패배하고도 승자에게 강해질 방법을 물었던 크리스.

그런 부류가 바로 야수의 심장을 타고난 케이스였다.

새가슴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태생부터가 다른 존재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30명.

조건은 없다.

칼을 휘두를 줄을 몰라도, 승리를 위해 칼을 맨손으로도 잡을 수 있는 그런 재능을 바랐다.

크리스가 말했다.

“테스트의 방식은 단순하다. 지원자가 지정된 위치에 서면, 우리가 준비한 궁수가 지원자를 향해 세 발의 화살을 쏠 것이다. 화살은 지원자의 몸에 박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 등 뒤에 있는 판에 박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세 발의 화살이 모두 발사되는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사람만이, 1차 합격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시험.

그것은, 담력(膽力)을 확인하는 테스트였다.

* * *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지원자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 두 번째 차례인 모리슨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딴 테스트라니. 다들 정신이 나갔어!’

모리슨.

그는 일반 평민이었다.

철광산의 광부(鑛夫)를 생업으로 삼은 그는,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직업이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크리스와 같은 멋들어진 기사가 되기를 바랐다. 기사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지는 전혀 모른 채,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갑옷을 보면서 남자로서의 망상에 푹 빠졌다.

그런 그에게.

사병 모집은 절호의 기회였다.

8실버라는 매력적인 급여에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험에 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리슨은 시험에 목숨을 걸 생각 따위는 없었다.

‘시발, 시발, 시발.’

벌벌벌.

몸을 떨었다.

무서웠다.

궁수(弓手)가 활에 화살을 먹이는 모습에, 곧 자신에게 닥칠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대체 저 궁수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아무리 백발백중의 명사수라고 해도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 실수의 대가는 내 목숨이 될 수도 있어. 나는 죽기 싫어. 내가 시험에 응한 이유는 병사로서 훈련을 받으면서 기사가 될 기회를 얻으려는 것이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생각 따위는 없다고!’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첫 번째 지원자가 지정된 위치에 섰다.

모리슨과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지원자의 모습에, 모리슨은 슬쩍 로만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덤덤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사고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모습에, 모리슨은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래. 이건 단순한 테스트야. 로만 드미트리가 아무리 용감한 병사를 원한다고 할지라도, 테스트 과정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불상사는 바라지 않을 거야. 아마도 테스트를 진행하는 궁수는 대단한 실력자일 테고, 절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지. 그게 맞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병을 모집하는 테스트에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살인마를 따를 사람은 없어.’

손을 쥐었다 폈다.

땀이 흥건했다.

처음 시험의 진행 방식을 들었을 때는 극단적으로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크리스가 일부러 사람들을 공포로 밀어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라는 것은 상상으로부터 비롯된다.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궁수가 백발백중의 실력을 보여 준다고 할지라도, 크리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한 그 순간부터 지원자들은 겁에 질려 시험에 임할 수밖에 없다.

정신력의 싸움이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버틴다면, 분명히 화살이 빗겨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설마 무식하게 피를 보면서 테스트를 진행하겠어?’

안도했다.

차분하게 숨을 고르는 그 순간.

퍽!

“크악!”

첫 번째 지원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첫발.

뒤에 있는 판에 박혔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경로를 이탈하고 말았고, 보기 좋게 첫 번째 지원자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퍽!

“크악!”

지원자가 쓰러졌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내질렀고, 화살이 관통한 부위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사방으로 얼룩지는 붉은 핏방울.

크리스를 비롯한 대기 병력이 황급히 지원자를 치료했지만, 피를 본 순간부터 모리슨을 비롯한 다른 지원자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들은 보았다.

허벅지를 관통하는 화살.

궁수는 명사수가 아니었다.

만약 화살이 허벅지가 아니라 머리를 관통했다면, 지원자는 곧바로 즉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친.”

“정말 화살을 맞을 각오를 하라는 거였어?”

“이건 말도 안 돼.”

사람들이 동요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뒤로 물러나는 그들의 모습에, 지원자를 치료하던 크리스가 속으로 웃었다.

‘예상대로네.’

첫 번째 차례.

계획된 일이었다.

궁수는 근방에서 알아주는 명사수였고, 첫 번째로 지원한 사내는 자신의 허벅지가 관통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각오하고 시험에 나섰다.

적당히 치명상을 입지 않는 부위에 화살을 쏘는 것으로 사전에 약속했고, 로만은 그 대가로 막대한 보상을 지급했다.

괜찮은 거래였다.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꽥꽥 지르는 것도, 로만이 거래의 대가로 요구한 행동이었다.

크리스는 부상자의 상태를 확인했고, 계획했던 대로 큰 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마치 매우 위험한 상처라는 듯이, 다급한 손길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주군의 말대로야. 단순히 말뿐인 위협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조건의 사람을 찾을 수 없어. 그렇기에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줄 필요가 있어. 단 한 번의 사고. 그것이 백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원자들은 1%의 가능성에 겁을 먹고 말겠지.’

공포 장치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백에 하나.

앞으로도 4명의 피해자가 더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지원자들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 줄 것이다.

부상자를 옮겼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부상자에 따라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고, 방금까지만 해도 의지를 다지던 모리슨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첫 번째 차례부터 이런 사고가 벌어졌으니, 안전장치를 만들어 주든가 시험의 방식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다음.”

크리스의 말.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다음 차례를 부르는 모습에, 모리슨은 그 자리에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포기 선언.

백기를 들었다.

그 모습에, 크리스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야수의 심장을 타고나지 않은 녀석들은, 일차 테스트를 통과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차례는 지원자가 포기한 것으로 처리하겠다. 화살이 몸에 박힐 것을 두려워하는 녀석들은 지금에라도 포기해라. 몸에 화살이 박히더라도 이를 악물고 참아 낸다면, 그 사람은 당당하게 합격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겁쟁이들은 당장, 이 시험장에서 꺼져!”

일차 테스트.

시험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