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615)

59화 철광산의 광부들 (1)

철광산의 마스터.

제이콥의 허락을 받고 일을 하기로 한 첫날, 광부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다.

“드미트리의 도련님이 오늘부터 철광산에서 일한다는데?”

“로만 드미트리가? 왜?”

“이유야 나도 모르지. 확실한 건 일이라고 해 봤자 대충 하는 시늉만 하다 가겠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했다.

진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부가 아니라면, 로만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드미트리의 장자다.

자신들이 모시는 가문의 후계자인데, 대체 어떻게 편하게 일할 수가 있겠는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 광부들은 너도나도 불만을 표출했다.

특히.

베테랑 광부인 모르칸은, 유독 까칠하게 반응했다.

“드미트리 영주님도 감을 다 잃으셨네. 아들내미 후계자 교육을 하는 건 좋은데, 그럴 생각이라면 진즉에 했어야지. 이제까지 대장장이들만 챙기고 우리 광부들은 홀대했잖아. 드미트리의 세 후계자는 어릴 때부터 대장간에 가서 철을 다루는 법을 배웠지만, 단 한 번도 철광산에서 일하는 법은 배우지 않았어. 그런 태도가 드미트리 영주님이 우릴 차별한다는 증거지.”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비약이라니! 드미트리의 뼈대는 철광산에 있는데, 모든 영광을 대장간이 가져가는 건 맞잖아!”

그동안.

모르칸은 속에 쌓인 감정이 있었다.

광업(鑛業)의 도시라고 불리는 드미트리는 분명히 광부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것을 가공하는 대장장이들만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물론 로메로 남작이 완전히 홀대했다는 것은 아니다. 광부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는 했으나, 후계자와 관련해서 조금은 차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철광산과 대장간.

둘 다 드미트리의 뿌리이건만, 후계자들을 대장간으로만 보내는 결정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등 떠밀려 왔겠지만, 나는 드미트리의 도련님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해 줄 생각이 없어. 너희들도 명심해.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는 우리의 태도가 결정해. 그러니까 무작정 고개 숙일 생각 말고, 로만 드미트리에게 철광산에서의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를 보여 줘. 그래야, 그 위까지 우리의 얘기가 올라가겠지.”

“알겠어.”

“모르칸의 말이 맞아. 드미트리의 도련님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고.”

헨드릭의 생각은 옳았다.

철광산의 외골수들.

그들은, 로만의 존재를 그리 반겨 주지 않았다.

* * *

아침 일찍.

로만은 복장을 갖추고 철광산으로 향했다.

로만을 위한 환영식은 없었다.

다들 모자란 잠에 하품을 내뱉기 바빴고, 피곤함이 역력한 얼굴로 안전모를 눌러쓰며 열을 맞추었다.

철광산에서는 일상 같은 풍경이었다.

이내 간단한 체조로 몸을 푼 사람들은, 철광산의 마스터인 제이콥의 명령에 따랐다.

“항상 명심해라. 철광산에서의 작업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피곤함을 억누르고 오늘도 이 철광산을 찾아왔다. 너희가 안전하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안전에 신경 쓸 테니, 너희들도 규율을 따르길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아침 조회를 끝내고.

광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로만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철광석을 캐는 줄 알았으나, 제이콥은 로만을 따로 불러서 말했다.

“도련님은 운반조를 따라가 흙과 철광석을 나르는 일을 해 주십시오. 특별히 특혜를 주려는 게 아닙니다. 광석을 캐는 일은 로만 도련님과 같은 초심자에게 맡길 수 없으니, 힘을 쓰는 단순 업무로라도 도와주시면 됩니다. 괜히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쓴답시고 무리하다가 다치면 저희도 곤란해집니다. 그러니까 제발, 안전하게 조심히 일하십시오.”

로만이 달갑지 않은 건 제이콥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부탁하는 바람에 일하는 걸 승낙하기는 했지만, 말을 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로만은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이곳에서는.

제이콥의 말처럼 자신은 초심자에 불과하다.

로만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갱도를 타고 한참이나 내려가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 빨리빨리 움직여.”

“할당량을 채우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거야.”

끼익끼익.

선임들이 수레에 흙과 철광석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로만은 묵묵히 그들이 하는 일을 도왔다.

먼저 다가가서 같이 흙과 철광석을 옮겼고, 수레가 가득 차오르자 그걸 끌고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부터는 단순 업무의 반복이었다.

처음에는 로만과 같이 일을 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러워하던 사람들도, 로만이 열심히 일에만 전념하자 금방 본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광업의 도시.

그건 허명이 아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흙과 철광석을 사람들은 재빠르게 날랐고, 그걸 담는 사람들과 옮기는 사람들을 구분해서 일했다.

그리고 밖에서는 안에서 날라 온 것을 정리해서 다른 장소로 옮겼다.

업무 분담이 확실했고, 일하는 틈틈이 갱도(坑道)를 살펴본 결과 안전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철제 기둥과 나무 기둥을 곳곳에 세워서 무너지지 않도록 틀을 만들었고, 바닥에는 수레를 끌고 다닐 레일이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

드미트리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장소였다.

로만은 일을 하는 와중에도, 찬찬히 보고 들은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는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드미트리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이 땅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드미트리의 일상을 경험하는 이 과정들이 분명히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일상을 경험하는 것.

로만의 방식이었다.

남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로만은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첫날은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없었다.

땀을 흘리며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고, 그렇게 철광산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 * *

셋째 날.

로만은 한 광부로부터 철광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드미트리산 철제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대장간에서 잘 가공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철광석 자체의 품질부터가 최상급(最上級)에 해당하기에, 카이로 왕국의 사람들은 드미트리산 철제라고 하면 그 값어치를 인정해 줍니다. 그리고 드미트리는 철광석을 거래하지 않습니다. 철광산에서 나온 모든 철광석은 드미트리가 직접 가공해서 판매합니다. 보통은 철광석을 구하는 유통 과정에서 상당한 손해가 발생하는데, 드미트리는 철광석을 직접 캐고 가공하는 과정을 모두 영지의 인력으로 해결하다 보니 수익이 많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괜히 도련님의 가문을 대부호라고 부르겠습니까?”

설명하는 광부의 음성은 자부심이 넘쳤다.

그가 한 말들.

애초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광부의 설명을 들어 보니,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를 구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모두 영지의 인력으로 해결한다니. 게다가 최상급 품질의 철광석과 드미트리의 대장장이들이 가공했다는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드미트리산 철제는 다른 것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 드미트리가 쌓은 부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대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재력은 내 것이 아니다. 가문의 장자라는 신분으로 받아 낼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기에, 내가 이 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전생과 같았다.

백중혁은.

마교의 후계자라는, 그 신분과 배경을 이용해 힘을 키우고 결국 천마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후계자로서 가만히 떨어지는 콩고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받아 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철광산을 찾았다.

드미트리의 일상은 로만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줄 테고, 그렇게 얻어 낸 결과물로 로만은 자신만의 ‘힘’을 만들어 갈 생각이었다.

가문과는 별개의 것.

비록 가문으로부터 비롯된다고는 하나, 대단한 배경을 두고도 혼자만의 힘으로 고군분투하는 것은 멍청한 판단이다.

궁금한 건 많았다.

철광석의 매장량은 얼마나 되는지.

하루 생산량은 어느 정도인지.

로만은 광부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려고 했으나, 근처를 지나가던 모르칸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도련님. 여기는 잡담이나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일하려거든 일을, 일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괜히 다른 사람들 방해하지 말고 나가십시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해야 하루 할당량을 채울 수 있습니다.”

“크흠.”

모르칸의 지적에.

로만과 대화하던 광부는 멋쩍은 얼굴로 가 버렸다.

모르칸은 로만이 화를 내리라고 생각했는지, 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로만을 보았다.

그런데.

“미안하다. 일에 집중하도록 하지.”

로만은 한발 물러났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기 때문일까.

다시 일에 집중하는 로만의 모습을 바라보며, 모르칸은 한동안 로만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 * *

일을 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로만은 드미트리의 광부들과 몸을 부대끼며 일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부족했다.

사실 다른 광부들과의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선뜻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 바닥의 텃세인 건가.’

첫날부터.

로만은 본인이 배척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광부들은 의도적으로 로만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모르칸이 지적한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방해했다.

그것이 텃세인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의 터전이라지만, 감히 드미트리의 땅에서, 드미트리의 후계자를 배척할 정도라면 애초에 대화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감내했다.

먼저 일을 하겠다고 들어온 입장이기에.

로만은 후계자랍시고 목을 뻣뻣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협력하며 일하는 것을 택했다.

삐익.

“점심시간입니다. 모두 밖으로 나오세요!”

휴식은 칼 같았다.

로메로 남작은 평민 출신이었던 만큼 인부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었고, 휴식과 퇴근에 한해서는 완벽하게 보장해 주었다.

휴식을 알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하는 일을 멈추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로만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먹었던 호화스러운 음식을 따로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흙바닥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주저앉아서는 텁텁한 빵과 수프로 배를 채웠다.

처음에는 다들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다.

고귀한 도련님이 먹기에는 다소 척박한 음식인데도, 로만은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전생에.

로만은 더한 상황도 경험해 보았다.

마교의 훈련에는 아귀(餓鬼)의 시련이라고 해서 음식 없이 한 달을 버티는 훈련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벌레와 뱀 가릴 것 없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었었다.

빵과 수프? 적당히 배를 채우기에 이만한 것도 없었다.

로만은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고, 어느새 수프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거의 다 먹어 가는데, 로만의 앞에 누군가가 털썩 앉았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바로.

모르칸이었다.

로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주일 내내 로만을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모르칸이, 처음으로 사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제는 도련님의 진심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여기에서 일하시는 겁니까?”

지난 며칠.

모르칸은, 로만이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