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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61/615)

61화 철광산의 광부들 (3)

사고는 E구역 8번 갱도에서 발생했다.

헐레벌떡 사고 현장으로 뛰어간 모르칸은, 바글바글 모여 있는 인파를 뚫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이야!”

“모르칸 님! 8번 갱도가 무너졌습니다!”

“뭐?!”

E구역.

최근에 새로이 개발하고 있는 곳이었다.

순탄하게 갱도를 뚫으면서 곧 광부들을 투입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지진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사고라니.

흔하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기에 곧바로 상황 파악에 들어갔고, 방금까지 8번 갱도에서 있었다는 인부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8번 갱도는 지하로 내려가야 합니다. 분명히 지반이나 이동 장치를 걸어 둔 도르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한쪽 벽이 무너지면서 그대로 이동 장치와 함께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바로 밑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있었다는 겁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점심시간이라서 한 명만 내려가기는 했지만, 사고 직후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흙과 이동 장치에 깔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붕괴 사고.

그야말로 변수(變數)였다.

아무리 지반의 상태를 철저하게 확인했다고 할지라도,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바로 광업이었다.

붕괴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이동 장치를 연결하면서 지반에 무리가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며칠 전에 내렸던 폭우로 인해서 무언가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에는 인부가 있었고, 그 인부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수단이 부서졌단다.

그렇다면 사고 장소로 접근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데다, 언제 다시 지반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상자를 구하겠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선택이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무너진 지반을 확실하게 보수한 뒤에, 사다리를 내려서 부상자를 구하는 것. 그것만이 구조하는 사람과 구조받는 사람 모두 안전해지는 길이었다.

고민에 빠진 모르칸의 모습에.

인부가 닦달했다.

“어서 구해야 합니다! 이러다 죽는다고요!”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모르칸이 말하기도 전에, 로만이 앞으로 나섰다.

“사고 장소로 안내해라. 내가 가겠다.”

그 말에.

모르칸과 인부는, 동시에 당황한 얼굴로 로만을 홱 돌아보았다.

용기와 객기(客氣)는 다르다.

그리고 당연히, 모르칸은 로만의 결단을 객기라고 판단했다.

“절대 안 됩니다! 도련님은 드미트리 가문의 장자입니다. 부상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도련님이 위험해지신다면, 그걸 방관한 저희는 큰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일단은 상황을 파악한 뒤에…….”

“그랬다간 늦는다.”

로만이 말을 끊었다.

인부의 설명대로라면.

모르칸이 말한 방법은, 부상자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이동 장치는 무게가 수백 킬로에 달한다. 만약 그것에 깔린 상태라면, 시간을 지체하는 순간 부상자의 목숨을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네가 말한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지반을 확인한 뒤에 사람들을 내려보낸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도구 없이 이동 장치를 치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마나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를, 내가 직접 내려가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오라 검사.

초인(超人)의 영역에서 사는 인간.

로만의 말처럼, 직접 부상자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걸 저희가 모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걱정하는 것은 만에 하나입니다. 로만 도련님이 오라 검사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지만,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르칸.”

“말씀하십시오.”

“내가 말했었지. 철광산을 찾아온 이유를.”

로만이 말한 이상.

순간, 모르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드미트리의 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도자는 남들 위에서 군림하고, 안락과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것 또한, 내가 짊어져야만 하는 의무다. 드미트리의 사람이 붕괴 사고를 당했고, 때마침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내가 그 현장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도 위험을 외면하고 도망친다면, 나는 드미트리로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

로만.

아니, 백중혁은.

평생을 지도자로 살았다.

무림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는데도, 백중혁의 무림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맞이했다.

그건 백중혁의 가치관으로 인한 결과였다. 전장에서도 항상 선봉에 섰던 것처럼, 백중혁은 지도자로서 수하들의 충성을 받되, 절대 지도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직접 나섰다.

책임을 지고, 위험을 무릅썼다.

천마로서의 가치관.

항상 군림하며 살았기에, 로만은 현실에서 위험을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내가 도망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신뢰를 잃는다. 사람들이 천마라는 이름 아래에, 드미트리라는 이름 아래에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그만한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지하에 남은 부상자.

얼굴도 모르는 남이다.

그를 구하겠다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실리적인 선택이 아니지만, 로만은 그와 다르게 생각했다.

부상자를 구한다면.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광부들은 로만에게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며, 그로 인해 앞으로의 계획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이건.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지도자로서 의무를 다하면서, 일반인들의 신뢰를 얻을 절호의 기회.

명분과 이상이 부합한다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도련님…….”

모르칸이 말을 잃었다.

그는 로만의 속내를 몰랐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의무를 말하면서, 부상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결단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진짜였다.

한때 그를 배척했다는 것이, 미칠 듯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조심하십시오. 꼭 무사하셔야 합니다.”

“다녀오겠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로만은 모르칸을 뒤로하고, 사고가 발생한 구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8번 갱도로 내려가는 통로.

일반인이라면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하겠지만, 로만은 도착하자마자 몸을 날렸다.

탁탁.

경공술(輕功術).

로만의 움직임은 날랜 짐승과도 같았다.

마치 절벽을 내려가는 산양처럼 벽을 타면서 빠르게 내려갔고, 순식간에 땅바닥을 밟을 수 있었다.

주변은 흙먼지와 어둠으로 인해 시야를 확보하기 힘든 상태였다.

이동 장치가 추락하면서 횃불을 모두 부서트렸기 때문이었지만, 로만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화악.

마나를 눈에 집중했다.

밝은 대낮처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부상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붕괴사고로 인해 주변은 엉망이었다.

힘들게 만들었던 갱도가 대부분 무너졌고, 바닥에 박힌 이동 장치 주변으로 커다란 돌멩이들이 쌓여 있었다.

이 아래에 사람이 있었다면 즉사했을지도 모르는 일.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동 장치 주변을 확인해 보니, 젊은 사내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의식은 없었다.

맥을 짚어 보자,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구나.’

하늘이 무너지는 재앙 속에서.

사내는 다행히도 그 밑에 깔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돌멩이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터지고 다리와 팔이 하나씩 부러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목숨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 보였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재밌었다.

이 사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재앙을 경험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과도 같은 존재가, 때마침 주변에 있었다.

‘너는 죽을 운명이 아니다.’

꽉.

사내를 둘러업었다.

그러고는.

탁.

타탁.

로만은 곧바로, 내려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우오오오.”

“와!”

“로만 도련님이 부상자를 구하셨어!”

밖으로 나오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로만이 직접 구출하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만은 부상자를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하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일 텐데, 로만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부상자를 둘러업고 나타났다.

탁.

부상자를 내려놓았다.

환호하는 사람들.

지금은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로만은 부상자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마침 옆에 있던 인부에게 명령했다.

“부목으로 사용할 만한 것을 가져와.”

“예?”

“어서!”

로만의 호통에 인부가 화들짝 놀라며 뛰어갔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는 하나.

부러진 팔과 다리는 당장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로만은 부상자의 몸을 살피더니 그 안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진통의 효과와 출혈을 억누른 이후에, 손으로 직접 부상 부위를 어루만져서 뼈를 얼추 맞추었다.

뚜둑, 뚜둑.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잔인한 광경에 고개를 돌렸지만, 로만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치료를 이어 나갔다.

그 모습에.

로만을 도와주려던 모르칸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도 능숙하다니.’

부상을 치료하는 행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로만은 단순히 치료약을 발라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뼈를 맞추는 대범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건 본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는 불가능한 일.

로만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직접 갱도로 내려가서 부상자를 구한 것도 그렇고, 치료하는 모습까지 반전의 연속이었다.

사실.

로만에게 이런 치료는 익숙했다.

살얼음판 같았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부상은 일상과도 같았다.

백중혁은 살아남기 위해서 부러진 뼈를 직접 맞추기도 했고, 죽어 가는 수하들을 살린 경험도 많았다.

그렇다고 의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

실전에서 쌓이고 쌓인 경험이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지금 눈앞에 쓰러진 사내가 당한 부상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생에.

백중혁은 배가 갈라져서 터져 나오는 창자를 직접 밀어 넣고 봉합한 경험도 있었다.

당연히 치료하는 손길이 능숙할 수밖에 없었고, 환호하는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감탄사만 내뱉었다.

인부가 부목을 가져왔다.

그것을 대고 확실하게 고정한 뒤에야, 로만은 모르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바로 부상자를 치료사에게 데리고 가거라. 간단하게 응급 처치를 하기는 했지만, 후유증이 남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치료를 위해 포션(potion)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 값은 내가 지불할 테니 완벽한 치료를 부탁한다고 말해라.”

“알겠습니다.”

모르칸이 눈짓을 했다.

다른 인부들이 달려와서 부상자를 챙겼고, 그들은 금방 들것에 부상자를 실어 치료사에게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모르칸은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로만이 직접 부상자를 구했다.

그리고 치료까지.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경험한 탓인지, 넋을 잃은 눈빛으로 로만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로만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르칸을 보며 말했다.

“오늘 벌어진 일이 네가 말한 ‘안전 문제’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대비한다고 할지라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재앙은 어찌할 수가 없지. 지금부터 나는 드미트리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너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 보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모르칸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르칸은 앞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존경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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