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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62/615)

62화 철광산의 광부들 (4)

붕괴 사고 소식.

사건에 대해 보고받은 로메로 남작은, 장남이 개입되어 있다는 말에 곧바로 로만을 호출했다.

“어디 몸은 다친 곳이 없느냐?”

“없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일에 나섰느냐? 붕괴 사고는 제아무리 오라 검사라 할지라도 몸을 부지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다. 다행히도 결과가 좋아서 네가 이렇듯 무사할 수 있었지만, 네 무모한 용기로 인해서 나는 아들을 잃을 뻔했다. 이건 네가 ‘드미트리 가문’의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만약 철광산의 다른 인부들이 너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나는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이 위험에 빠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메로 남작은 걱정과 분노를 드러냈다.

한때 인부의 입장이었기에.

로만이 얼마나 위험한 일에 나섰는지를 알았다.

“아버지, 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로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제 결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철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때마침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제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드미트리 가문의 장자가 영지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길 바라십니까? 세상을 살아가며 항상 안전한 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드미트리의 성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허어.”

로메로 남작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들의 위험천만한 결정에 가슴이 내려앉으면서도, 의젓한 아들을 보자니 흐뭇한 감정이 일었다.

드미트리의 주인이기 전에.

그는 아버지였다.

로메로 남작이 말했다.

“그래서 철광산에서의 일을 계속할 생각인 것이냐?”

“예.”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철광산에서 일하라고 말한 적이 없거늘,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 아비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대장간에서 일하겠다고 말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철광산과 대장간.

로메로 남작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그는 철광산의 인부들을 귀하게 대해 주나, 대장장이 출신이니만큼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들이 대장간에 관심을 보이길 바랐다.

적어도 드미트리의 주인이라면, 철광석을 캐는 방법보다는 강철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저는 드미트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광산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미트리가 대장간의 제련(製鍊) 기술로 명성을 쌓았다지만, 결국 영지민의 대부분이 생업을 위해 일하고 있는 곳은 철광산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장간이 아니라 철광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느냐?”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이라니.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로메로 남작은, 아들이 철광산에서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아내려 하는 줄은 몰랐다.

“계속 말해 보거라.”

“철광산의 인부들은 모두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급여를 지급해 주고, 적절한 휴식과 안전 시스템은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광업은 안전을 관리한다고 할지라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언제 지진이 일어나 갱도가 무너질지 모르고, 오늘과 같은 붕괴 사고가 흔하지는 않더라도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곳입니다.”

“나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네 말처럼 대비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천재지변.

그렇게 표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인력(人力)으로는 막을 수 없기에, 사람들은 철광산에서의 사고를 천재지변이라고 불렀다.

로메로 남작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뿐.

로만은, 결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제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철광산에서 일하며.

로만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고를 직접 경험한 이후에,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마법 문물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인부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마법 문물.

아마도 아티팩트(artifact)를 말하는 것일 터.

로메로 남작은, 아들이 참으로 현실 감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안전을 위해서 마법 문물을 활용한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아티팩트의 가격이 얼마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십수 골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갱도 전체를 마법 문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가고, 우리는 하늘에 돈을 뿌리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옳은 말이다.

광업.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인부를 고용해 일하는 것인데, 인부들을 보호하겠다고 버는 돈보다 많은 돈을 안전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건 영주의 자비로움과는 다른 문제다.

배보다 배꼽이 큰일을 벌이다 보면, 아무리 드미트리와 같은 대부호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로만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붕괴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상시에 에어 실드(air shield)를 형성하는 아티팩트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수백 골드가 들어갈지, 수천 골드가 들어갈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티팩트의 성능은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마법의 효능을 잃어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면,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이고도 또다시 교체하는 데 돈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냐?”

“예.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안전을 위한 대책.

이상론(理想論)이 아니었다.

로만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실질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말을 내뱉었다.

“철광산에서 일하며 베테랑 광부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드미트리는 대륙 최고의 매장량과 품질을 자랑하는 철광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안전의 문제로 그것을 완벽하게 활용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만약 인부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충분한 부를 창출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최대한 안전에 심혈을 기울인 대가로 철광석의 생산량이 떨어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영주다.

그러나 뛰어난 영주는 아니었다.

만약 로메로 남작이 욕심이 있었다면, 장사치로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아티팩트의 설치는 단순히 안전을 대비한다는 의미로 끝내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아티팩트를 설치함으로써 인부들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철광산의 생산량은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안전의 문제로 이제껏 철광산에 투입하는 인원과 개발을 제한해 오고 있었지만, 아티팩트를 설치하면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기회비용입니다. 아티팩트를 설치하는 데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간다고 해도,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면 그건 손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 더.

로만은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안전을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하셔야 합니다. 그들에게 확실한 투자를 해서 매일 안전을 체크하도록 하고, 그로 인해 상승하는 수익 일부를 다시 인부들의 복지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건 선순환(善循環)을 유도하는 투자입니다. 아버지는 이번 일로 많은 돈을 사용하게 되겠지만, 그 예산으로 인해 분명히 드미트리는 큰 이득을 얻을 것입니다.”

가문의 투자.

로만의 진짜 목적이었다.

단순히 사람들의 안전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로만은 좋은 명분 밑에 자신의 의도를 숨겼다.

로메로 남작으로서는 진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주장이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로메로 남작은, 아들을 자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얼마나 투자하면 되겠느냐?”

30분 전.

로만은 모르칸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 안전을 대비하기 위한 예산을 받아 내고, 철광산의 안전을 전담해서 관리하는 책임자로 모르칸, 너를 추천할 것이다. 너는 오랜 세월을 철광산에서 일했다. 그 누구보다도 철광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기에,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리라고 생각한다.”

로만의 계획.

완벽했다.

아티팩트를 설치하겠다는 말만 들어도, 모르칸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실리적인 이득을 얻겠다는 로만의 의도를 알기에, 분명히 대가를 요구하리라고 생각했다.

“……조건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너는 안전 책임자로서 매일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거라.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에게 보고 들은 것들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모두 기록하거라. 아마 사람들은 네게 많은 것을 말할 것이다. 내가 받아 낸 예산을 사람들의 복지로 사용한다면, 그들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고 하겠지. 그 과정에서 값진 정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산 일부를 보상으로 주어도 좋다. 나는 드미트리 가문의 돈으로 인부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대신, 너를 통해서 ‘정보’를 얻어 내길 바란다.”

정보.

로만의 진짜 목적이었다.

철광산은 드미트리 그 자체다.

많은 사람이 철광산에서 일하고, 그렇기에 드미트리와 관련한 정보는 철광산에 모일 수밖에 없다.

그게 시작이다.

모르칸을 통해 정보를 거래한다면.

사람들은 좋은 정보를 주기 위해 안달이 날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음에는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나아가 길거리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듣는다면 그 모든 것들을 모르칸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건 부정행위라고 볼 수 없었다.

로만이 아버지에게 말한 것처럼, 복지를 위한 혜택을 대가로 그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렇다.

로만은 아버지의 돈으로, 아주 실리적인 명분으로, 정보 세력인 하오문(下汚門)을 이 세상에 구현해 내고자 했다.

무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정보를 다루는 능력으로 명성을 떨친 두 집단이 있다.

개방과 하오문.

둘은 공통점이 있었다.

개방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지들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를 취합했다면, 하오문은 주루의 점소이와 같은 사회 취약계층들이 귀를 열고 정보를 모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는 권력자들과는 다르게,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람들은 정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로.

로만은 철광산의 인부들을 택했다.

그들은 드미트리의 전부였고,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통해 동북쪽 일대의 정보를 휘어잡을 수 있다.

인력은 인부들이.

재력은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그렇다고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부들은 안전과 돈을, 아버지는 늘어나는 생산량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

그야말로 윈윈(win-win)이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계획이었고, 그렇기에 아버지와 모르칸 그 누구도 로만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로만은 만족을 몰랐다.

‘아직은 부족하다.’

로만이 생각하는 정보 길드는 동북쪽 일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대륙의 정보들을 긁어모으길 바랐다.

모체(母體)는 드미트리의 철광산에 있으나, 그 예산과 인력이 뻗어 나가 하오문과 같은 세력을 형성하길 바랐다.

그렇기에.

로만은 추가로 생각한 것이 있었다.

‘모르칸은 정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인력이 아니다. 결국, 그에게 받은 정보를 정리하고, 나아가 드미트리 상단과도 연계해서 동북쪽 일대 밖에서도 정보를 모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책임자는 모르칸과는 다르게 계산이 빠르고 현실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산전수전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 그런 사람만이, 내가 생각하는 정보 길드를 현실로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딱 한 명.

마침 적임자가 있었다.

로만은 한 사람을 호출했다.

그는 바로.

“부르셨습니까?”

이번 사병 모집에 통과한.

B급 용병 루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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