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615)

66화 로메로 남작의 고민 (3)

로만이 만든 검이라니.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나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로만. 지금 네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드미트리 가문의 마스터 블랙스미스다. 평생을 이 땅에서 철제를 다루었고, 그렇기에 굳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가 기술자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나를 이리 우롱하다니. 세간에 로만 드미트리가 달라졌다는 소문은 모두 거짓이었구나.”

목소리가 분노로 들끓었다.

진실은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옛날에.

로만은 후계자 수업을 위해 대장간을 찾았었다.

그때의 로만은 망치질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배우려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아서 헨드릭을 분노에 빠트렸다.

그날 이후로 로만은 단 한 번도 대장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내성에 드미트리 가문을 위한 대장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지만, 향락에 빠져서 후계자로서의 본분을 잊어버렸던 로만 드미트리가 장인으로 성장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눈앞의 검.

명검이다.

철제를 다루는 기술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 마나를 다루는 영역은 자신보다 뛰어난 장인의 작품.

그게 로만일 리 없었다.

과거와의 괴리감에, 헨드릭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헨드릭 마스터님.”

로만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상대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헨드릭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흔들림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마스터님이 그렇게 반응하시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장장이의 기술은 오라와 마찬가지로 하루 이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대장간에서 충분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제 말을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이 진실입니다. 이 검의 이름은 대륙의 이름을 따서 샐러맨더라 지었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제가 만든 검입니다.”

“이 새끼가 진짜……!”

붉게 달아오르는 헨드릭의 얼굴.

자신을 농락하는 로만의 뺨을 시원하게 날리려던 그는, 곧바로 이어진 발언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방식으로 검을 만들었는지를. 드미트리 가문을 대표하는 마스터 블랙스미스의 안목이라면, 백 번의 말보다는 한 번의 행동이 제 말이 진실임을 알아보지 않겠습니까?”

“……?!”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로만의 말에.

헨드릭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얼룩졌다.

장소를 옮겼다.

내성의 대장간.

그곳으로 이동하며, 로만은 헨드릭에게 말했다.

“저는 중요한 싸움이 있을 때마다 제 목숨을 맡길 검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신체 능력을 완벽하게 살릴 수 있는, 그리고 제가 발현하는 오라와 부합하는 형태의 검을 말입니다. 샐러맨더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바르코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화덕의 불길을 마주하며 수도 없이 강철을 내리쳤습니다. 그때만큼은 대장간이 성역(聖域)처럼 느껴집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 자신과 강철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기분을 헨드릭 마스터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

묵묵부답이었다.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일단 보여 주겠다니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대장장이의 심정을 공감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만은.

대장장이가 아니다.

단 한 번도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 주지 않았는데, 딸랑 결과물만 보고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헨드릭이 어떻게 반응하든.

로만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는 앞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간 로만 드미트리라는 사람은 끊임없이 발전을 이루었고, 그래서 샐러맨더를 대신할 검을 최근에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헨드릭 마스터님에게 보여 주려는 것은 그 검을 제작하는 과정입니다. 직접 보고도 믿지 않으신다면, 그때는 아버지에게 보고해서 처벌을 내리셔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탁.

대장간에 도착했다.

로만은 작업을 준비했다.

사실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매일 저녁 대장간에 살았기에, 로만이 작업하던 환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훌렁.

윗옷을 벗었다.

화덕의 불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장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순간 헨드릭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대장장이로서 기본조차 모르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더 볼 필요도 없다.

안전 장비조차도 갖추어 입지 않은 장인은, 철을 진심으로 대할 태도가 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때였다.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딱 한 번.

로만이 망치로 강철을 때리는 순간, 헨드릭의 표정이 돌변했다.

카앙!

경쾌한 소리.

로만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본격적으로 강철을 내리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헨드릭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 세상과 무림. 두 세상의 철제를 다루는 기술은 다르다. 이 세상은 마나를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기에 검 자체의 능력에 많은 투자를 한다면, 무림은 기본적으로 기(氣)의 운용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기의 효율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켜 주는 검. 그것이야말로 무림에서 명검이라 불렸고, 나는 투쟁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는 수많은 검을 만들었다.’

헨드릭이 감탄했던 포인트.

높은 마나 반응도는 무림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무림에서도 백중혁은 장인이라 불렸다.

백중혁의 검은 무림의 보물이었고, 그러한 기술력이 새로운 세상에서 ‘샐러맨더’라는 검을 만들었다.

카앙!

캉!

강철을 두드렸다.

불길이 일었고,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염화신공.

뜨거운 불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검을 만드는 과정은 수련의 일부이며, 현재의 자신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도록 검과 자신을 동화했다.

앞으로.

헨드릭에게 말한 것처럼 전장으로 떠나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그간의 삶에 로만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군림하며 살아갈 것이다.’

최소 3개월.

로만은 새로운 검을 제작하기 위해 공을 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검이 완성되었을 때, 드미트리 가문을 대표해 전장으로 떠날 것이다.

작업에 푹 빠졌다.

잡념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검에만 집중했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

로만이 검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이러할까.

로만의 모습을 바라보며.

헨드릭은 넋을 잃었다.

카앙!

캉!

‘……이럴 수가.’

마스터 블랙스미스.

그는 로만에게 말한 것처럼 장인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그렇기에.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강철을 두드리는 로만의 모습에, 상식이라는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이게 로만 드미트리라고?’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헨드릭이 경험한 로만은 분명히 대장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는데, 강철을 대하는 태도와 망치질 소리는 분명히 능숙한 장인의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헨드릭을 완전히 매료시킨 포인트는, 화덕의 열기를 정면에서 마주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자세에 있었다.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뜨거워서 분명히 견딜 수가 없을 텐데, 로만은 강철과 사랑이라도 빠진 듯이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는.

강철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근육이 폭발할 듯 꿈틀거렸다.

마치 아름다운 운율을 따라 망치를 내려치듯, 일정한 속도는 음악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maestro) 같았다.

“이게 대체.”

확실했다.

로만은 장인이었다.

분명히 상식의 영역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해 주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장인이 아니라면 그 누구를 장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무조건 로만을 부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지금은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명검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강철을 대하는 태도, 강철을 두드리는 속도, 망치와 강철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맨몸으로 화덕의 열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마치 로메로 남작님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구나. 결국, 핏줄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건가. 로드웰 드미트리가 아니라, 장남인 로만 드미트리가 대장장이의 피를 타고나다니.’

꿀꺽.

갈증이 일었다.

로만의 작업 안에.

마나 반응도를 높인 비밀이 있을 것이다.

헨드릭은 어느새 관중석에 앉은 관객이 되어 버렸고, 의심을 내려놓은 채 눈앞의 공연을 즐겼다.

시간이 흘렀다.

작업을 멈출 생각도.

작업을 말릴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로만은 작업에 몰두했고, 헨드릭은 망부석이라도 되어 버린 것처럼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둘은 알았다.

이미.

증명의 의미는 상실했음을.

헨드릭은, 작업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로만의 말이 진실임을 믿었다.

툭.

작업이 끝났다.

땀으로 흠뻑 젖은 로만의 모습을 바라보며, 헨드릭은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다. 네가 진정 검의 주인이었구나.”

사과는 빨랐다.

헨드릭은 장인이다.

대장간에 평생을 바쳤기에 자부심이 대단했고, 로만의 발언이 자신을 우롱한다는 생각에 당연히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실을 확인하고는 태도를 돌변했다.

로만이 정녕 샐러맨더를 만든 장인이라면, 헨드릭으로서는 로만과의 과거가 어떻든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로만이 웃었다.

이번 자리.

과거의 악연을 청산하기 위함이었다.

드미트리의 사람으로서 완벽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헨드릭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로만이 말했다.

“샐러맨더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오늘 보셨다시피 저는 새로운 검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헨드릭 마스터님의 검을 제멋대로 팔아 버린 일도 있으니, 이것으로 보상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샐러맨더를 선물로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로만의 말에.

헨드릭의 손이 벌벌 떨렸다.

사실.

샐러맨더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다.

새로운 형태의 검이었고, 샐러맨더를 분석해서 그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다.

그런데 검을 주겠다니.

헨드릭이 헛기침을 했다.

불같이 화를 냈었던 기억이 있어서 마냥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싫었다.

“……크흐음. 고, 고맙다.”

더듬거리며 말하는 헨드릭.

애초에 거절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의 검이라는 듯이.

샐러맨더를 품속에 고이 모시는 헨드릭의 모습을 보며, 로만은 그가 나쁘지 않은 사람임을 알았다.

헨드릭과 로만.

둘의 관계는 로만이 망쳤다.

드미트리의 후계자이면서도 대장간 일에 소홀했고, 헨드릭 마스터의 걸작을 팔아 버리면서 당연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헨드릭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로만이 자신과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의 불같던 성질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전생에도 그랬다.

한 분야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언제든 제 작업을 보러 오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방긋 웃는 헨드릭.

샐러맨더에 로만의 기술까지 보게 해 준다고 하니, 그의 얼굴은 행복으로 차올라 날아갈 것 같았다.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날.

헨드릭과 로만의 악연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그 시각.

로메로 남작의 명령을 받은 하인이, 헨드릭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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