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615)

114화 금의환향(錦衣還鄕) (1)

카이로의 대승.

엄청난 전과(戰果)였다.

남부의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지만,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도 카이로스는 사정이 달랐다.

“그 소식 들었어?”

“뭔데?”

“헥토르 왕국이 국경을 넘어서 남부 전선을 공격했다던데? 남부에서 넘어오는 상인들 말에 의하면,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했어. 이러다가 괜히 강제로 징집이 될까 봐 불안하네. 아직 50대가 되지 않은 남성들은, 유사시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잖아.”

“에이. 크로노스 제국이 공격해도 아무 일이 없는데, 헥토르가 공격했다고 설마 징집을 하겠어?”

카이로는 전쟁 국가다.

크로노스 제국이 시시때때로 서부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로서는, 헥토르 왕국의 결단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다.

더군다나 중앙 정부로 인해, 카이로는 그 어떤 나라보다 수도의 의미가 크다.

대대로 내려오는 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수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른 지역을 변방으로 취급하는 수도의 사람들은 남부의 위기를 그리 체감하지 못했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전쟁으로 인한 간접적인 여파였다.

“전쟁 예산 때문에 괜히 세금을 올리진 않겠지. 이놈의 나라는 어떻게 바람 잘 날이 없냐. 내가 크로노스 제국의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불안에 떨진 않았을 텐데. 약소국(弱小國)의 처지가 참으로 초라하구나.”

딱 그 정도.

지나가는 대화로 한번 투덜거릴 뿐, 그들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생활을 보냈다.

그들로서는 알 수 없었다.

헥토르 왕국이 무려 일만의 병력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섰으며, 후방 진지가 함락당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카이로의 영웅이 탄생했음을.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5성 검사인 버틀러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그들은 충격적인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아직은.

남부의 소식이 수도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일상적인 나날을 보내는 그때, 남부의 돌풍이 수도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 *

그 시각.

그날은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 D클래스 반에서, 검술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연습 대련이 진행되었다.

“다음 차례는 윌리엄 카스트로와 로렌 드미트리.”

교수가 학생들을 호명했다.

순간 희비(喜悲)가 갈렸다.

윌리엄 카스트로와 그 친구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감을 보였고, 한편에 홀로 앉아 있던 로렌 드미트리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윌리엄 카스트로. D클래스 반에서 악명이 높은 녀석이었다.

C클래스로의 승격이 거의 확정되었기에, 로렌 드미트리는 대련에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교수는 가혹하게도 두 학생을 호명했고, 제적을 당하기 싫다면 학생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했다.

삐익.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윌리엄 카스트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적으로 달려들었다. 서로 대련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승부가 난 싸움이었다.

로렌 드미트리는 잔뜩 움츠러들었고, 상대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타악!

타타타탁!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목검에 로렌 드미트리는 수비하기 바빴고, 윌리엄 카스트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카데미에서 배운 검술을 마음껏 펼쳤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로렌 드미트리의 얼굴이 땀으로 흠뻑 물들었다.

로렌 드미트리는 겨우 165cm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를 보유했기에, 체격 조건에서부터 압도되는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188cm의 윌리엄 카스트로.

그가 마치 거인처럼 보였다.

의도적으로 농락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로렌 드미트리는 상대가 의도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렸다.

그러다.

빡!

“악!”

목검이 등에 작렬했다.

승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약 5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농락을 당한 로렌 드미트리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등을 부여잡고 끙끙 앓는 그의 모습에, 윌리엄 카스트로는 교수한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병신.”

피식.

걸음을 돌렸다.

윌리엄 카스트로의 모습을 올려다볼 수는 없지만, 그와 그의 친구들이 환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굴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련의 결과에, 교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렌 드미트리. 내가 지난 수업에서 뭐라고 했었지? 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검사로서의 마음가짐을 갖추지 못했다는 거야.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에 입학해 검술을 배운다는 녀석이, 상대가 휘두르는 검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는 꼴이라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만약 본 시험에서도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E클래스로의 강등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E클래스.

15세 이하 반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18살의 로렌 드미트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지 뻔히 보였다.

주먹을 힘껏 쥐었다.

하지만.

로렌 드미트리는 소리를 지를 용기도, 상황을 뒤엎을 힘도 없었다.

* * *

대련이 끝났다.

휴게실에서 숨을 고르던 로렌 드미트리는, 안으로 들어서는 윌리엄 일당의 모습에 숨을 죽였다.

“어라?”

“우리 로렌이 있었네.”

그들이 이죽거렸다.

윌리엄 카스트로는 짐을 정리하며, 일부러 로렌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예전에 S클래스 선배님들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로드웰 드미트리 선배님은 정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했어. 그때는 내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드미트리 가문이 어쩌면 대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로드웰 드미트리.

수도에서 알아주는 이름이었다.

빠르게 S클래스로 승격한 그의 행보에, 자연스레 사람들은 같은 핏줄인 로렌 드미트리를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웬걸? 내가 깜빡 잊고 말았어. 세상에는 태생(胎生)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근본도 없는 가문에서 로드웰 드미트리 님과 같은 분이 탄생한 것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부르지. 사실은 우리가 아는 누구처럼 밑바닥에서 전전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야. 정말 안타깝지 않아? 태생의 한계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뭐라도 해 보려고 발악하는 꼴이.”

고개를 숙였다.

윌리엄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반응하면서도,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로드웰의 동생.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그렇지 않아도 유약한 성격을 보유한 로렌 드미트리는,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말을 잃었다.

“재미없네.”

“그러게.”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일까.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로만 드미트리가 호메로스를 쓰러트린 게 사실일까?”

“내가 장담하는데, 그건 무조건 드미트리에서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문인 게 분명해. 드미트리는 갑자기 출세한 졸부(猝富) 가문이잖아. 드미트리의 얼간이로 유명한 장남을 어떻게 해결하긴 해야 하는데, 평판이 너무 바닥에 떨어졌으니깐 소문을 반전시키려고 발악하는 거겠지. 한 가문에 두 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저기, 로렌 드미트리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또다시.

비교의 화살이 날아왔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드미트리 가문의 삼남.

로렌 드미트리는, 꾸역꾸역 감정을 삼켰다.

오늘따라.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로렌 드미트리였다.

* * *

수업을 끝내고.

로렌 드미트리는 길거리에 나왔다.

바깥공기를 들이키지 않으면, 꾹꾹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해 그대로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로만 형의 소식은 정말 사실일까?’

로만 드미트리.

그의 충격적인 행보는 수도에까지 알려졌다.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에 호메로스를 쓰러트린 것은 엄청난 결과였고, 사람들은 드미트리 가문에 새로운 기적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막상 드미트리의 핏줄인 로렌 드미트리로서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세간의 평판과는 다르게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그의 과거를 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드미트리의 얼간이.

괜히 그런 별명이 생겨난 게 아니다.

적어도 로렌 드미트리가 기억하는 형의 모습은, 세상 걱정 없이 사는 망나니 그 자체였다.

‘내가 기억하는 로만 형은 적어도 내게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 하지만 윌리엄의 말처럼, 누군가가 로만 형이 호메로스를 쓰러트린 게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자신이 없어. 누가 봐도 거짓말이잖아. 아버지가 대체 왜 금방 들통이 날 거짓 소문을 퍼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고향을 떠나는 날에도 로만 형은 술에 절어 있었어.’

한때.

로만도 정상적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가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훈련에 임했지만, 생각보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로드웰의 천재성이 부각되었다.

장남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일탈을 시작했고, 그렇게 드미트리의 얼간이라고 불렀다.

이해했다.

로드웰과 비교당하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그래서 나름 로만과 잘 지내 보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로만을 닮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아.”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멀리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소란을 일으켰다.

웅성웅성.

‘무슨 일이지?’

잠깐만이라도.

복잡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걸음을 옮겨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도열한 상태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

“확실하다니까! 내 친척이 남부에 사는데, 남부 전선이 헥토르 왕국에 완전히 넘어갈 뻔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그들을 물리치고 남부 전선을 되찾았대. 더욱 소름이 돋는 사실이 뭔지 알아? 그 과정에서 로만 드미트리가 정말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보여 주었다는 거야.”

“로만 드미트리? 호메로스를 쓰러트린 최연소 랭커?”

“그래. 이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겨우 이백의 병력을 가지고 헥토르 왕국을 패퇴시켰다는 말이 있어. 그뿐만이 아니라, 대전사 전투에서 헥토르 왕국의 5성 검사인 버틀러를 쓰러트렸다는 증언도 있기는 한데, 이건 너무 상식 밖이라 나도 믿지는 않아.”

주변 사람들의 말.

로렌 드미트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헥토르와의 전쟁.

그에 대해서는 들었다.

아카데미는 중앙 정부의 자제들이 많기에, 왕국의 정세를 논의하는 동기들의 말을 조금씩 엿들었다.

그런데.

헥토르 왕국을 물리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간에 섞인 내용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지금 내가 아는 로만 형을 말하는 게 맞아? 로만 형이 이백의 병력으로 헥토르 왕국을 물리치고, 그것도 모자라 헥토르 왕국의 랭커로 유명한 버틀러를 쓰러트렸다고? 이건 너무 심하잖아.’

소문이 과했다.

호메로스를 쓰러트린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남부의 소식을 들으니, 로렌 드미트리로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충격도 잠시.

“길을 비켜라.”

“남부의 영웅들이시다! 길을 열어라!”

사람들이 몰린 이유.

개선장군(凱旋將軍)을 환영하기 위함이었다.

앞에서 걸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비병의 모습에, 사람들은 일단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보냈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로렌 드미트리는 넋을 잃었다.

머릿속이 정리되질 않았다.

그 순간.

멋들어진 말을 타고 가장 앞에서 이동하는 한 사내의 모습에, 로렌 드미트리는 눈을 부릅떴다.

“……로, 로만 형?!”

로만 드미트리.

자신의 기억과는 매우 달라진 모습의 그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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