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615)

132화 검 한 자루의 가치 (1)

동북쪽 연합회 사람들이 다시 한번 모였다.

“드미트리 가문에서 개최하는 검술 대회. 이건 우리가 지난 굴욕을 복수할 좋은 기회입니다.”

콘라드 자작이었다.

그는 소문을 듣자마자, 동북쪽 연합회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로만 드미트리는 백 골드의 상금뿐만 아니라 우승자의 요청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만약 동북쪽 연합회에서 우승자를 배출한다면. 우리는 우승자의 자격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로만 드미트리의 사과를 받아 내는 것이 아니라 지난 일은 덮어 두자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희가 얻는 이득은 명확합니다. 단 한 번의 용서로, 우리는 드미트리와의 관계를 되돌리고 바닥에 떨어진 명예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파비우스 백작과의 연락.

로만 드미트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려다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느니, 적당한 선에서 서로의 체면을 챙겨 주는 작전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로만의 언행을 용서하는 동북쪽 연합회.

명예를 회복함과 더불어, 로만과 새로운 인연을 도모할 좋은 기회였다.

한 귀족이 말했다.

“문제는 우리가 우승할 수 있느냐입니다. 동북쪽 연합회를 제외하고도 대회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 모두를 제치고 우승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녀석 중에 크리스와 케빈이라는 놈들이 있습니다. 왜, 예전에 바르코와의 대전사 전투에서 로만과 같이 나온 녀석들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놈들입니다. 그때도 대단한 전투 능력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만약 그놈들이 드미트리를 대표해 대회에 출전한다면 우승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큰 걸림돌이었다.

우승.

모든 계획은 정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나 가능했다.

사람들의 우려에, 콘라드 자작은 웃음을 보였다.

“예. 저도 쉽게 우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회는 총 6개의 조로 진행됩니다. 크리스? 케빈? 그들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몸이 6개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대회에 참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드미트리가 내보낼 수 있는 검사 중에는 분명히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노리는 포인트는 바로 그것입니다. 가문의 전력을 끌어내 6개의 조에 골고루 출전시키면 됩니다. 그럼 분명히, 하나의 조에서는 우승자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과연 신빙성이 있는 말이군요.”

“듣다 보니 나쁘지 않은 계획인 것 같습니다. 우승자를 딱 한 명만 배출해도, 우리의 계획은 성공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지난 며칠.

동북쪽 연합회는 상당히 굴욕적인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고, 로만과의 사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복수와 타협.

두 가지를 모두 성공시키기에는, 단언컨대 이번만 한 기회가 없었다.

콘라드 자작이 말했다.

“대회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입니다. 다들 명심하십시오. 하늘이 내려 준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바닥에 떨어진 동북쪽 연합회의 명성을 되찾을 방법은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십시오. 외부의 고수를 ‘동북쪽의 사람’으로 위장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우승자를 배출하면 됩니다. 그리고 막말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드미트리의 세력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6개의 대회를 모두 독식할 만큼 압도적인 그런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그들도 변방의 한 가문일 뿐입니다. 이번 기회로 우리는 다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 달.

그들은 생각했다.

굴욕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고, 동북쪽의 박쥐들은 언제나처럼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이다.

* * *

그 시각.

로만은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크리스, 케빈, 맥버니 등등.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로만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도 내가 대회를 개최한다는 소문을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에게 무한 경쟁을 선포할 것이다. 앞으로 한 달간. 너희들은 서로 경쟁하고 실력을 겨루며, 드미트리 가문을 대표해 대회에 출전할 6명의 전사를 선별할 것이다. 그간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한 달간의 성적이, 너희들의 현재 위치를 대변한다는 의미다.”

순간.

수하들의 눈빛이 변했다.

아무런 보상을 내걸지도 않았는데, 경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분위기가 무겁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남부 전선을 떠났지만, 우리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노선을 확실하게 밝힌 순간부터는 카이로의 실세들과 부딪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드미트리에 머무르는 동안 전장에서 이어 온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 언제든 발검(拔劍)할 수 있는 날카로운 검처럼. 수하들이 강함을 열망할 수 있도록 그만한 명분을 부여할 것이다.’

전쟁.

로만과 수하들은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수도에서의 안락한 휴식에 나사가 완전히 풀려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전장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전장에서의 활약으로 주변에서 보내는 찬사.

복합적인 이유로, 전쟁은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드미트리에서의 생활.

마음가짐이 해이해질 때였다.

로만은 그런 변화를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잃은 수하들에게 타오를 수 있는 명분을 부여했다.

“드미트리를 대표해 명성을 드높인 존재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필요하겠지. 6명의 검사로 선발되고,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다면. 나는 우승자에게 ‘상위 등급’의 기술을 알려 주도록 하겠다. 기술의 종류는 다양하다. 심법이든, 검법이든, 아니면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든. 현재 너희의 경지에서,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적합한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상위 기술.

수하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단순히 충성심을 평가하는 자리였어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어떻게든 우승하려고 발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위 등급의 기술이라니.

수하들은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주군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대륙에서 보물이라고 불릴 만한 수많은 지식을 알고 있고, 그중 일부를 하사받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그런데 주군이 현재에 적합한 상위 등급의 기술이라고 표현할 정도라면. 그건 엄청난 기연이다. 백 골드의 상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을 알려 줄 것이 분명하다.’

불꽃이 튀었다.

헥토르와의 전쟁으로.

그들은 동료애가 쌓였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견고해졌지만, 로만이 대놓고 깔아 준 판에서 어쭙잖게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같은 무리 안에서.

기왕이면 최고가 되기를 바랐다.

로만이 던진 불길에, 그들의 눈빛은 벌써부터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 대회의 목적은 두 가지다. 동북쪽 일대 귀족들의 현실을 직시시키고, 내 수하들을 완벽하게 단련시키는 것. 대회가 모두 끝나고 나면, 아마 동북쪽의 상황이 제법 볼만하게 변하겠지.’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기회.

로만은, 수하들의 고삐를 풀어 버렸다.

“지금부터 무한 경쟁을 시작하겠다.”

* * *

수하들을 해산시키고.

로만은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한 달. 그건 나 자신을 정비할 시간이기도 하다.’

남부 전선.

로만은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버틀러와 검을 섞으며 대륙에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강자들이 있음을 알았고, 에드윈 헥토르의 마법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로 살아가며 처음으로.

목숨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연속되는 위기에 로만은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활활 불태울 수 있었다.

천마 백중혁은.

사선(死線)에서 탄생한 존재다.

위기는 익숙한 것이었고, 로만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 나는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을 뿐이고, 그때와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강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수하들이 앞으로 한 달간 무한 경쟁을 진행하는 것처럼. 나 또한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앞으로 나아갈 방도를 찾을 것이다.’

전장에서 얻은 깨달음.

폐관 수련이 필요한 때였다.

이번에도 대장간에서 지내며, 자신의 상태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새로운 검을 만들 생각이었다.

검(劍).

그건 도구일 뿐이다.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검이 필요했고, 자신에게 완벽하게 어울렸던 염화는 이제 자신의 힘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항상 현재에 적합한 검을 제작하기에, 앞으로 한발 나아갔을 때는 그전에 사용하던 검은 과거의 잔재가 되었다.

폐관 수련을 하기 전.

로만은 루카스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정보 길드의 수장.

루카스는 그간 많은 일을 이루었다.

드미트리의 인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주변 일대를 장악했고, 최근에는 정보 길드인 블랙 문(Black Moon)을 흡수해 버렸다.

로만의 예상은 옳았다.

루카스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인물이었고, 명확한 보상을 제시했기에 그는 빠르게 하오문의 체계를 만들어 갔다.

과거와는 달랐다.

만약 지금 바르코의 정보를 원한다면, 루카스는 단 5분 안에 정보를 대령할 능력을 갖추었다.

“앞으로 한 달간 나는 폐관 수련을 진행할 생각이다. 그동안은 그 어떤 보고도 받지 않을 것이나, 딱 하나 예외는 있다. 가문의 변고가 생길 경우. 그때는 내게 사실을 전달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검의 판매를 부탁한다.”

로만이 검을 건넸다.

염화였다.

앞으로 새로운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검을 떠나보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본래의 이름은 염화라고 부르나,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기에 블레이즈(blaze)란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판매의 방식은 어떤 것이든 좋다. 내가 검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선에서, 블레이즈의 새로운 주인을 찾아다오. 그 수익은 정보 길드의 자금으로 활용해도 좋다.”

천마 백중혁의 방식이었다.

천마로 살아가며.

백중혁은 여러 검을 제작했고, 새로운 검을 제작할 때마다 기존의 검을 미련 없이 떠나보냈다.

장인의 욕심이었다.

현재의 자신에게는 필요 없는 검이 되었지만, 그게 다른 사람들 손에는 빛을 발하길 바랐다.

그렇게 세상에 풀린 천마의 검은 보물이라고 불렸다.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주인을 만났고, 그들이 명성을 떨치면서 천마 백중혁이 장인으로서도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명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한 달.

로만은 새로운 검을 받아들일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잔재를 떠나보내는 것이고, 검이 새로운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로만 드미트리’의 명성은 조금도 관여되지 않기를 바랐다.

만약 카이로의 영웅이 만든 검이라면.

어떤 검이든지 상관없이, 분명히 돈이 많은 수집가가 높은 가격으로 가져갈 확률이 높았다.

그런 결말은 싫었다.

적어도, 자신의 검이 가치를 알아주는 주인을 찾아가길 바랐다.

검을 받아 드는 루카스.

“한 달 뒤에 뵙겠습니다.”

그 만남을 끝으로.

로만은 걸음을 돌렸다.

폐관 수련.

지금부터는, 뜨겁고 치열한 시간을 보낼 차례였다.

* * *

로만과 헤어지고.

루카스는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엄청난 명검인데, 이런 걸 왜 팔려고 하시는 거지?”

그는 대장장이가 아니다.

하지만 전장을 전전하며 좋은 무기를 구별하는 안목을 갖추었고, 눈앞의 이 검은 명검이 확실했다.

매끄럽게 뻗은 검날.

번뜩이는 예기(銳氣).

침이 꼴딱 넘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거금을 주고 사용하고 싶었지만, 그건 주군이 명령한 목적과는 달랐다.

‘정말 아쉽네. 내가 아직 필드에서 뛰고 있다면 이걸 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했을 텐데.’

루카스는 공과 사가 명확했다.

로만의 명령이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랐다.

검에 대한 욕망을 억누른 그는,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군은 검을 판매하는 방식은 어떤 것이든 좋다고 했어. 만약 카이로의 영웅이 제작한 이 검을 익명(匿名)으로 경매에 내보내면 얼마큼의 가치를 받을 수 있을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겠네. 주군도 검이 제 주인을 찾길 바랐으니, 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높은 가격을 부르겠지.’

완벽한 방법이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

동북쪽 상업의 중심지.

수도와 직결되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아델리안 백작의 영지로 향했다.

아델리안 경매장.

앞으로 그곳에서 벌어질 일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루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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