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검 한 자루의 가치 (3)
명검 블레이즈.
사회자의 설명을 들으며, 발렌티노 후작은 블레이즈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블레이즈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마나 반응도가 10단계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아델리안 경매장에서 수많은 명검이 판매되었지만, 그중에 10단계의 마나 반응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7단계의 니들. 그것보다도 3단계 높은 마나 반응도라서 높은 가치를 책정받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10단계의 영역을 허물었다는 상징성을 보유하고 있다.’
최초.
희소성 하나만으로도 낙찰 욕구가 들끓었다.
그런데 사회자는 마나 반응도와 더불어 오라의 능력을 상승시켜 준다고 말했고,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충격적일 정도의 성능이었다.
검이란 원래 무기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마법사들이 따로 인챈트를 하지 않는 이상, 검의 역할을 벗어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명검과 마법검.
검사들의 딜레마였다.
전력을 다해 오라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무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어중간한 검사들의 경우에는 그런 명검을 사용해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기에 마법검을 선호했다.
대중적인 마법검으로는 샤프니스(sharpness)를 인챈트한 검이 있다.
하지만 랭커라고 불리는 고수의 반열에 올랐을 때는, 자신의 오라를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명검의 존재는 거금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
‘오라 검사들이라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탐을 낼 만한 물건이다. 그리고 최초는 그다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검을 만들어 낸 장인이 두 번째, 세 번째 검을 시장에 내보낸다면. 최초의 의미를 지닌 블레이즈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상승할 수밖에 없겠지. 장인의 컬렉션(collection)이란, 능력의 정도를 떠나서 최초라는 의미만으로도 그 상징성을 인정받는다.’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한 결과.
발렌티노 후작은 강한 욕망이 일었다.
카이로에서 수집가로 통하는 그로서는, 블레이즈를 어떻게든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명검이 내 컬렉션에 포함된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겠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낙찰가 600골드.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는 그때, 발렌티노 후작은 신호를 보냈다.
“아아아아아아! 53번 손님이 더블을 부르면서 낙찰가가 1200골드가 되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아델리안 경매장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낙찰가입니다!”
1200골드.
압도적인 액수였다.
소리를 지르는 사회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말을 잃어버렸고, 12번으로서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2배.
그건 단순히 1200골드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금액을 제시하든 반드시 낙찰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사실 12번도 웬만해서는 따라갈 생각이었다.
1200골드 이상도 제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상대가 발렌티노 후작이기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탐욕(貪慾)의 수집가.
이쪽 바닥에서는 광기 어린 수집욕을 보이는 사람과 대립했다간, 자신도 피를 볼 수 있음을 알았다.
예전에 카이로에서 나름 재력으로 인정을 받았던 인물이, 발렌티노 후작과 치열하게 낙찰 경쟁을 벌이다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가격에 낙찰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렇게 끝났다면 승자로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겠지만, 이후에 발렌티노 후작은 낙찰 물품을 빼앗으려고 금전적인 압박을 넣었다.
이미 경매에서 많은 돈을 소모해 버린 재력가는, 집요한 압박에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낙찰받았던 물품을 헐값에 팔아 버리고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그 주인공이 발렌티노 후작이다.
그가 강한 의지를 표출했을 때는,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다.
결국.
탕탕!
“1200골드, 1200골드에 53번 손님이 낙찰하셨습니다!”
아델리안 경매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보물.
명검 블레이즈의 주인은, 카이로의 대부호인 발렌티노 후작이 되었다.
* * *
경매가 끝나고.
낙찰 물품을 받기 위해 발렌티노 후작은 자리를 옮겼다.
1200골드라는 엄청난 대박에, 경매장 관리인인 모리스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후작을 반겼다.
“결제는 어떻게 진행해 드릴까요?”
“지금 바로 결제하도록 하지. 그래야 블레이즈를 조금이라도 빨리 가져오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과연 명성에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보통 낙찰 금액이 높으면 돈을 만들 시간이 필요한데, 발렌티노 후작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가 신호를 보내자.
수하들이 금화가 담긴 상자를 옮겼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상자에, 발렌티노 후작은 모리스를 보며 말했다.
“정확히 1300골드네.”
“결제 대금은 1200골드입니다만.”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1200골드는 블레이즈의 값으로 지급하고, 100골드는 내 개인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하게나. 나는 거래가 확실한 사람이야. 아델리안 경매장이 익명의 거래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융통성을 발휘해야 나와 같은 고객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지 않겠나. 검을 만든 장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게나. 절대 아델리안 경매장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는 선에서, 그 장인을 직접 한번 만나 보고 싶네.”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100골드라는 엄청난 대가를 조건으로.
발렌티노 후작은 익명의 장인을 만나 보고 싶었다.
그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블레이즈를 만들어 낸 사람의 얼굴이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명검을 만들어 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슥.
모리스가 상자를 밀어냈다.
100골드의 돈.
자신도 탐이 났다.
사실 익명의 소유자라고 해도 암암리에 정보를 사고파는 일이 일어나지만, 이번 일은 거래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블레이즈의 주인은 아델리안 경매장을 믿고 물건을 맡겼다.
이번 거래의 수수료만 무려 120골드인데, 그와의 신뢰를 지킨다면 훗날에도 물건을 맡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건 손익의 문제였다.
발렌티노 후작과 같은 거물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블레이즈를 만든 장인과의 신뢰를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아델리안 경매장을 위한 일이었다.
단호한 태도에.
발렌티노 후작은 한발 물러났다.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제 사정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경매장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겠지. 다만, 다음에도 장인이 물건을 경매에 내보낸다면, 그때도 내게 먼저 말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거래는 순탄하게 마무리되었다.
대금을 지급하고.
물건을 받은 발렌티노 후작은, 블레이즈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대단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매끈한 검날과 마나에 반응하는 능력.
수많은 명검을 수집한 발렌티노 후작도, 이런 종류의 검을 만들어 낸 장인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수하를 불러 명령했다.
“지금부터 카이로 전역에 소문을 퍼트려라. 아무리 대단한 명검이라 할지라도,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그 가치가 상승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얼마를 투자해도 좋으니 블레이즈를 만든 장인을 찾아내거라. 아마도 ‘아델리안 경매장’에서 처음 거래된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일단은 드미트리의 마스터 블랙스미스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
“명을 받들겠습니다.”
탐욕의 수집가.
그런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장인의 정체를 알아낼 것이고, 그와의 인연을 만들어 가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순수한 욕망.
그가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 * *
익명의 소유자.
루카스는, 수수료를 제외한 1080골드라는 낙찰 금액에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나 많이 받을 줄이야.”
경매 전.
그도 정보망을 활용해 시세를 확인했다.
300골드에 낙찰되었던 니들이라는 사례가 있기에, 그보다 3배 많은 900골드가 낙찰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블레이즈가 얼마나 대단한 명검인지를 알고서 내린 판단이었다.
사람들의 자금 사정에 따라 800골드 내외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건만, 발렌티노 후작은 1200골드를 선언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 이상도 제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보였다.
한순간에.
1000골드를 벌어들였다.
바르코 가문이 수천 골드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몰락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검 한 자루의 가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대체 주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로만 드미트리.
버틀러를 쓰러트린 괴물이다.
그런데 그런 괴물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도, 장인들이 수십 년을 노력해도 만들지 못할 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드미트리의 핏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라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효과는 드미트리에도 없는 기술이었고, 로만은 자체적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한계를 예상할 수 없었다.
만약 로만이 대장장이로서 성공하길 바란다면, 드미트리는 또 다른 의미의 부흥기를 맞이할 것이다.
‘주군은 검을 판 돈을 정보 길드의 자금으로 사용하라고 말했지만, 1000골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주군이 폐관 수련을 끝내는 대로, 이 사실을 알리고 낙찰금은 전부 돌려드리자.’
그는 몰랐다.
익명으로 확실하게 자신의 신원을 숨겼지만, 애초에 드미트리 가문이 대장간 기술로 유명하다는 사실이 꼬리를 밟히게 되는 이유가 되리라는 것을.
로만이 폐관 수련을 떠난 한 달의 공백기.
그동안, 밖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대회까지 약 보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크리스는 대회 준비를 위해 더욱 열을 올렸다.
훅!
바로 앞에서.
검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헨더슨은 예리한 공격으로 크리스의 허점을 노렸지만, 크리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모한 공격이었다.”
툭!
콰당!
발을 걸었다.
헨더슨은 처참하게 바닥을 굴렀고, 빠르게 일어나 보았으나 어느새 그의 목에 목검을 겨눈 상태였다.
헨더슨이 참담한 표정을 보였다.
그간 얼마나 많은 대련을 했는지 얼굴에 성한 곳이 없었지만,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고통보다도 무력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졌습니다.”
“노력은 가상하나 항상 공격의 예리함이 부족하다. 네가 승부수를 던졌을 때, 상대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대련이 끝났다.
힘없는 걸음으로 물러나는 헨더슨의 모습에, 크리스가 말했다.
“다음.”
보름 전.
로만은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헥토르와의 전쟁을 끝내고 끓어오르는 혈기를 분출할 곳이 없던 수하들은, 그때부터 6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단연 압도적인 사람은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사실상 한 자리를 확보한 상태였고, 그는 다른 수하들을 상대해 주면서 그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었다.
‘지금까지 확정적인 사람은 나와 케빈, 그리고 볼칸과 푸키 정도인가.’
남은 2자리.
애매했다.
누가 선별될지는 모르겠으나, 크리스는 로만의 명예를 위해서 단 한 사람도 패배하지 않길 바랐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상대.
볼칸이었다.
사병 모집에서 가장 먼저 도전했고, 시원하게 패배했던 인물.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빠르게 발전한 인물 중 하나인 그는, 확실히 시작부터 강하게 크리스를 몰아붙였다.
거구로부터 비롯되는 폭발적인 공격.
크리스에게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쉴 틈 없이 몰아붙였지만, 남들이 발전하는 것만큼 더욱 빠르게 발전한 인물이 바로 크리스였다.
철벽.
공격이 통하질 않았다.
로만과 전쟁을 한번 경험하면서부터, 크리스는 완전히 다른 경지로 접어들었다.
툭.
타닥.
검을 쳐 내면서 앞을 파고드는 간결한 동작으로.
볼칸의 방어를 허물었다.
빠르게 검을 회수하는 모습에, 이번에는 사이드 스텝을 밟으면서 볼칸의 옆구리를 공략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순간.
크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철광산을 보유했기에 폭발음은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소리의 근원지가 로만이 폐관 수련하는 장소라는 것이었다.
“모두 멈춰! 지금 곧바로 주군에게로 간다!”
명령이 떨어졌다.
로만의 검.
크리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만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로만.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크리스를 비롯한 수하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