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로만 드미트리의 사람들 (2)
로만을 대표하는 6인.
그들은 각자의 평판이 있었다.
크리스와 케빈은 동북쪽 일대에서 유명했다.
크리스는 전장에서 활약하기 이전부터 드미트리의 천재 검사로 불렸고, 바르코와의 대전사 전투에서 케빈과 같이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카이로의 섬광과 악귀라고 불리는 존재.
그들의 무력을 실제로 본 이들이 많기에, 사람들은 되도록 둘과의 승부는 피하길 바랐다.
볼칸과 푸키.
그들은 출신과 외형으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전쟁 용병이었다는 사실은 녹록하지 않은 경험을 의미했고, 애초에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피지컬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앞선 두 인물보다 평판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둘의 존재를 실물로 마주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 반해.
맥버니와 헨더슨.
둘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맥버니는 한때 대단한 전사였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팔락이는 소매가 팔이 하나 없음을 증명했다.
외팔이 검사.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맥버니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외팔이인 맥버니가 조금은 수월한 상대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헨더슨은.
단언컨대 최약체였다.
판단의 근거는 한 소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대표해서 헨더슨이 나온다고? 설마 헨더슨이 그 로렌스의 헨더슨인가? 말도 안 돼! 내가 알기로 헨더슨은 검을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한 일반 농민에 불과하다고. 로만 드미트리를 따라가면서 열심히 훈련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래도 태생이 농민인 녀석이 어떻게 검술 대회에 출전하겠다는 거지?”
평민 출신.
그것도 농민.
사람들의 시선이 헨더슨을 향했다.
대단한 발전이 있었다 할지라도, 스타트 라인이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인물이었다.
케빈도 헨더슨과 마찬가지로 출신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대전사 전투에서의 임팩트가 강력하다 보니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헨더슨은 케빈과 달랐다.
농민으로 지내던 시절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입을 모아서 헨더슨은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첫 시험에서.
헨더슨은 활을 마주하며 오줌을 지릴 뻔했다.
그때의 모습이 사람들이 아는 헨더슨이기에, 사람들은 헨더슨이야말로 가장 최약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일까.
대회 당일.
헨더슨의 조에 포함된 사람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쓰!”
“이거지!”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그들은 모두 확신했다.
최약체 조.
이곳에서의 우승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헨더슨의 1라운드 상대로 배정된 한 기사도 다르지 않았다.
* * *
“5조의 1라운드 경기, 헨더슨과 테일러 앞으로.”
헨더슨과 테일러.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무대로 올라오는 모습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테일러의 승리를 확신했다.
‘시작부터 오라 검사라니.’
‘끝났네.’
‘헨더슨으로서는 테일러를 이길 수 없어.’
테일러.
그는 로렌스 출신의 방랑 검사였다.
한때 로렌스에서 살았던 그는, 헨더슨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오랜만이네.”
“……테일러 님?”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농번기 때 일손을 도우며 잠시 신세를 졌었지. 그때는 검이라고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던 네가, 한 명의 검사가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나다니.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다니까. 세상을 방랑하며 수많은 일을 겪어도, 인간의 삶은 항상 새로운 충격을 주거든.”
테일러가 웃었다.
지난 인연.
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테일러는 헨더슨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헨더슨. 너와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대회를 포기할 기회를 주지. 너도 알다시피, 나는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 2성의 경지에 올랐어.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지. 나는 이번 대회를 통해 나를 증명하고 명성을 얻을 생각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매 경기 확실한 임팩트를 보여야 하는데, 네가 날 상대하겠다고 버틴다면 나도 봐줄 수가 없어. 우리가 초면도 아니고 구면인데, 괜한 싸움으로 한쪽이 피를 볼 이유는 없잖아?”
섣부른 판단이 아니다.
1년 전과 오늘.
시간의 한계가 있다.
아무리 빠르게 발전했다고 한들, 테일러는 헨더슨이 자신의 발끝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
다들 헨더슨을 얕보았다.
헨더슨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최약체였고, 모두가 그를 잡아먹고 위로 올라가기를 바랐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척.
검을 집었다.
헨더슨은, 사람 좋은 미소를 거두며 테일러를 보았다.
“당신이 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최선을 다하십시오. 만약 조금이라도 제게 자비를 베푸는 순간,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을 쓰러트릴 겁니다.”
날카로운 눈빛.
예전과는 달랐다.
테일러는 의외라는 표정을 보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검을 들었다.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그 순간.
펄럭.
“시작!”
심판이 대결의 시작을 알렸다.
* * *
평민 출신과 오라 검사의 대결.
사람들이 상상한 그림이 있다.
오라 검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벌어진 상황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확.
타닥.
선공(先攻)은 헨더슨이었다.
헨더슨은 빠르게 땅을 박찼고, 아직 탐색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테일러를 곧바로 공격했다.
카앙!
카카카캉!
검과 검이 부닥쳤다.
테일러는 생각보다 강한 힘에 놀란 표정을 보였고, 헨더슨은 첫 공격에 이어서 후속 공격을 시도했다.
완벽하게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헨더슨의 연계 공격은 너무나도 매끄러웠다.
상대가 어떻게 막든 곧바로 껄끄러운 부위를 공략했고, 폭풍같이 몰아치는 공격에 테일러가 숨을 들이켰다.
‘이게 무슨?!’
예상외였다.
헨더슨의 검술.
완벽한 체계를 갖추었다.
농민 출신이기에 어중간하게 흉내나 내리라고 생각했는데, 헨더슨의 연계 공격에는 허점이 없었다.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사병 시험에 통과하고.
헨더슨은 매일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로만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 중에는 실력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처음부터 헨더슨과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특히 케빈의 모습을 보며 정말 놀랐었다.
자신보다도 머리 하나는 작은 소년이, 정말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몰아붙일 때면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뒤늦게.
자신의 현실이 보였다.
단순히 의지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헨더슨은 남들과 비교해 너무 뒤처져 있었다.
‘크리스 님과 대화를 나눈 이후에, 나는 어떻게든 주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어. 확실히 난 그리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존재가 아니야. 금방 오라를 발현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마나를 느끼는 과정부터 발현하는 것까지 많은 애를 먹었었지. 항상 맨 끝에서 남들을 따라가는 존재. 그게 바로 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헨더슨은 거북이였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천천히 올바른 길을 향해.
헨더슨은 자신만의 노력을 쌓아 갔다.
테일러는 일 년 전의 자신을 기억하겠지만, 지금 발휘하는 검술에는 그간의 피와 땀이 녹아들어 있었다.
타닥.
카가가강!
강하게 몰아붙였다.
수라 검법.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108개의 투로가 담긴 검술에, 테일러는 예상이 가능한 범주를 벗어나질 못했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감정이. 시간이 갈수록 경악으로 물들었다.
헨더슨이 단순히 선공의 기세를 이어 간다고 생각하기에는, 검술의 체계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알았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
그들도 당황했다.
이건 아니었다.
적어도 헨더슨은, 그들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수준을 보여야만 했다.
훅!
테일러가 반격했다.
헨더슨은 뒤로 물러나지 않은 채로,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공격을 옆으로 흘려 버렸다.
팔락.
바람이 불었다.
공격에 적중당했다면 부상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헨더슨의 시선은 테일러에게서 벗어나질 않았다.
‘나는 이 정도에 무너지지 않아.’
그간의 훈련.
상대는 케빈, 크리스, 나아가 로만 드미트리였다.
예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괴물들을 상대하면서, 헨더슨의 반응 속도는 평범한 사람의 기준을 넘어서 버렸다.
아직도 로만을 따르는 사람 중에는 부족한 재능이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그는, 이번 대회를 대표하는 상위 6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타닥.
허점을 포착했다.
한순간에.
공간을 파고들었다.
허수를 펼쳐 테일러의 자세를 무너트리고, 상대가 막을 수 없는 각도의 공격을 시도했다.
‘끝났다.’
막을 방법은 없었다.
자세가 무너진 테일러.
당황으로 얼룩진 그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씨발.”
콰릉.
콰르르르릉.
오라의 발현.
상식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테일러는 상식을 벗어난 힘을 발휘했다.
* * *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양쪽 다리의 마나를 폭발시켜서 공격을 회피한 테일러는,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마나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대는 평민 출신이다.
마나를 느껴 보지도 못한 존재.
헨더슨을 상대로 순수하게 검술로만 쓰러트리고 싶었는데, 막상 겨루어 보자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패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라의 폭발로 위기를 모면한 그는, 검을 통해 오라를 발현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화악.
콰르르르릉.
“미안하지만, 이만 끝내 주마!”
1성의 오라.
승부가 갈렸다.
헨더슨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도, 오라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콰르르르릉.
헨더슨의 검에서도 똑같이 오라가 발현되었다.
그 힘은 대단하지 않았다.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평민에 불과했던 그는 결국 오라를 발현하는 경지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는 테일러의 반응만 보더라도, 헨더슨의 발전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몰랐다.
헨더슨의 발전은 다른 이들에 비해 빠른 속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수라 심법을 통해서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볼칸과 푸키 같은 기본기를 갖춘 이들을 시작으로 하나씩 오라 발현에 성공했다.
아직.
헨더슨의 오라는 약했다.
헨더슨은 그 사실을 잘 알았고, 일부러 상대의 오라를 빗겨 치면서 공격을 그대로 쳐 내 버렸다.
팍-
양팔이 튕겨 나갔다.
무방비 상태의 테일러.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헨더슨은 대회 전날 크리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헨더슨.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나를 찾아왔을 때의 너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제대로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부류였고, 만약 그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면 네 인생은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검사로서만이 아니라. 어떤 시련을 맞이하든, 항상 너는 패배자에 불과했겠지. 지난 한 달. 너는 상위 6인에 해당하는 승률을 보였다. 다른 압도적인 실력자들과는 다르게 너는 매번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남들이 패배를 받아들일 때 너는 어떻게든 한 번의 승리를 더 꿈꾸었다. 이것이 그 결과다.”
웃었다.
크리스가, 헨더슨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너는 주군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그 사실을 보장하마.”
그리고 지금.
헨더슨은 자신을 믿었다.
아직도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악착같이 노력했던 시간들.
평민이었던 존재가 조금씩 변화해 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아직도 평민이라 기억하지만, 헨더슨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세상을 경험했다.
테일러가 반격하든.
테일러가 피하든.
아니면, 검으로 막아 내든.
모든 상황이 경험 안에 있었다.
테일러는 검을 들어서 막았으나, 헨더슨은 그대로 몸을 부딪쳐 상대의 자세를 무너트려 버렸다.
그리고는.
척.
목에 검을 갖다 댔다.
승부가 끝났다는 의미에, 테일러는 창백한 얼굴로 현실을 인정했다.
“……제가 졌습니다.”
5조 1라운드.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헨더슨의 승리.
웃고 떠들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충격적인 결과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