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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139/615)

139화 로만 드미트리의 사람들 (3)

헨더슨.

그가 무명에 불과한 인물이었다면 사람들은 이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로서 명성을 떨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나, 이 자리에는 그의 농민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웅성웅성.

“저게 헨더슨이라고?”

“헨더슨이 테일러 기사님을 이겼어!”

“우리가 지금 잘못 본 거 아니야? 오라는 ‘마나’를 느끼는 과정에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며. 그런데 우리랑 같이 농사를 하던 헨더슨이, 대체 어떻게 오라를 사용할 줄 아는 건데?”

다들 당황했다.

헨더슨은 친숙한 인물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갑자기 성장했을 때는 그의 전부를 알지 못해서 상식 밖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면, 이곳에는 헨더슨을 경험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같이 맥주잔을 기울이던 친구들, 농번기 때마다 일손을 도와주던 동료들, 그리고 그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마을의 어르신들까지.

다들 헨더슨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아는데, 이건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헨더슨이 로렌스를 떠나던 날.

사람들은 그를 붙잡고 말했다.

“너 정말 미쳤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았던 놈이 왜 지금 와서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겠다고 지랄이야. 인생은 극적이지 않아. 농사꾼은 농사꾼으로 살다 죽어야 하고, 검사는 태생부터 타고난 이들에게 허락된 삶이야. 내가 장담하는데, 반년도 지나기 전에 너는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게 헨더슨과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런데 지금.

헨더슨은 오라 검사를 무너트렸다.

그에게 험한 말을 내뱉었던 사람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헨더슨의 모습을 멍하니 우러러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자신들이 매번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는 동안, 헨더슨은 로만 드미트리를 따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삶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것을.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헨더슨의 모습에, 그를 알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헨더슨을 기억하는 사람들처럼.

눈앞의 결과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부류가 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헨더슨은 분명히 5조 최약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오라 검사를 쓰러트렸단 말입니까.”

“설마 이대로 헨더슨이 5조에서 우승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동북쪽 연합회였다.

그들은 5조와 6조.

헨더슨과 맥버니가 포함된 조의 승리를 확신했다.

맥버니야 초반 대진운이 좋아서 2~3라운드까지는 진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오라 검사를 만난 헨더슨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헨더슨은 테일러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야 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테일러를 단숨에 쓰러트려 버렸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콘라드 자작은, 애써 밝은 얼굴로 말했다.

“다들 평정심을 잃지 마십시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헨더슨이 우리의 생각처럼 검 하나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녀석이었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그를 대회에 출전시켰겠습니까?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차분하게 기다리시지요. 대회는 한두 번 이긴다고 우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분명히 헨더슨과 같은 녀석들은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태생의 한계를 드러낼 것입니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보았다.

테일러를 쓰러트린 체계적인 검술은, 평민 출신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었음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회는 시작되었고.

이제 도망칠 길은 없었다.

“저를 믿으십시오. 최후의 승자는 동북쪽 연합회일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자신이 아직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 *

헨더슨의 승리.

이어서 맥버니도 이겼다.

맥버니의 상대는 그리 대단한 검사가 아니다 보니, 외팔이 검사의 승리에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2라운드.

다음 조의 순서를 기다리지 않았다.

끝나는 조부터 곧바로 다음 라운드를 진행했다.

“아들아.”

“예.”

“동북쪽 일대의 서열을 정리하겠다면서, 굳이 번거롭게 대회를 진행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냐? 동북쪽 연합회의 귀족들은 영악하다. 만약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드미트리에게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로메로 남작이었다.

이번 계획.

로만의 생각이었다.

로메로 남작은 아들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로만이 말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동북쪽 연합회는 박쥐와도 같은 인간들이라,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간에 그들의 진심을 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북쪽 연합회는 그들의 ‘힘’으로 드미트리를 상대할 수 있다는 안일한 자신감에 빠져 있습니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나, 그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되는 실수는 중앙 정부가 기뻐할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동북쪽 일대.

이곳의 왕은 드미트리다.

동북쪽 연합회는 본인들이 여우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녔다.

그들의 알량한 자신감.

위험 요소였다.

혹시라도 동북쪽 연합회와 실제로 무력 다툼이 벌어진다면, 드미트리 가문은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피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결국 전쟁이기에.

동북쪽 연합회와 같은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과정에서, 드미트리는 병력을 잃고 동북쪽 세력은 한발 후퇴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만은, 동북쪽 일대를 온전히 집어삼키길 바랐다.

“아버지. 저는 동북쪽 연합회와 전쟁을 치르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의 전쟁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동북쪽 연합회를 무너트리고 제 발아래 두더라도, 카이로 왕국의 실질적인 권력인 중앙 정부를 상대로는 목소리를 높일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동북쪽 연합회. 그들은 대회가 6개의 조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에 우승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을 테고,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알량한 자존심입니다.”

세 개의 단계.

그중 두 번째다.

이번 작전으로, 동북쪽 연합회는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아직 환상에 빠져 있는 동북쪽 연합회가 압도적으로 패배한다면. 단 하나의 조에서도 우승은커녕 상대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고도 드미트리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동북쪽 일대를 손아귀에 넣는 것은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완벽한 굴복. 동북쪽 연합회가 현실을 직시했을 때, 저는 그들의 말랑말랑해진 정신을 단번에 굴복시킬 생각입니다.”

아버지의 표정은 확인하지 않았다.

때마침.

무대 위로.

케빈이 올라서고 있었다.

* * *

2조의 케빈.

그는 지금 심기가 불편했다.

‘……내가 크리스보다 느렸어.’

앞선 1라운드.

크리스는 3초 만에 적을 쓰러트렸다.

상대는 오라를 사용할 줄 아는 검사인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케빈도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1라운드에서 전력을 다했다.

크리스보다도 빠르게 상대를 무너트릴 생각이었는데, 상대가 딱 한 번 공격을 막아 내면서 무려 8초의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충분히 빨랐다.

하지만 케빈은, 자신의 결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크리스는 강하다. 나는 아직 그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만약.

사람들에게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제일 먼저 떠올릴까?

간단한 문제다.

모두가 크리스를 말할 것이다.

크리스는 드미트리의 천재 검사라고 평가받던 존재고, 실제로도 로만을 따른 이유로 그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칼 같은 리더십에 3성의 오라 검사를 쓰러트린 실력.

로만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기에, 그가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케빈은 그게 싫었다.

자신이 먼저 로만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크리스가 로만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알려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리스가 내 상관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상관의 명령에 충실한 수하가 되겠지만, 드미트리의 검으로 크리스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주군이 나를 가장 신뢰하기를 바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 한 명의 힘이 필요할 때, 크리스가 아니라 나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로만 드미트리.

케빈에게는 하늘이었다.

케빈은 항상 로만의 인정을 갈구했고, 오늘과 같은 증명의 자리에서는 자신이 최고가 되길 바랐다.

실력으로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3초.

케빈은 그처럼 빠르게 끝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 가치를 증명한다.’

주군은 말했다.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 주라고.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상대의 모습에, 케빈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 * *

펄럭.

대결이 시작되었다.

케빈의 상대.

동북쪽 연합회 소속의 검사 마일스는, 시작부터 전력을 다했다.

‘상대는 드미트리의 악귀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꼴사나운 모습으로 패배할 수도 있다.’

쿠르르르릉.

오라를 일으켰다.

이번 대결.

날이 없는 가검(假劍)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오라를 사용한 그 순간부터는, 목숨을 건 실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타닥.

케빈은 빨랐다.

간결한 스텝으로 마일스의 공격을 흘려보내더니,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연계 공격도 가뿐하게 막아 냈다.

케빈의 검에는 마일스와 같은 오라가 피어올랐다.

이미 케빈이 오라를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일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케빈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카앙!

카카카캉!

아직 초반이지만.

마일스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승부였다.

예상외의 전개에 동북쪽 연합회 사람들은 주먹을 움켜쥐며, 마일스가 제발 승리하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훅.

간발의 차이.

케빈이 공격을 피했다.

앞으로 파고들더니, 검을 뻗어 미세한 틈을 공략했다.

퍽.

“크윽.”

충격이 일었다.

오라로 황급히 몸을 보호했지만, 옆 가슴을 얻어맞으며 충격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마일스는 이를 악물며 케빈을 공격했다.

깊숙이 치고 들어온 케빈이 위태로운 모습을 연출했지만, 마일스의 공격은 단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이런 쥐새끼 같은 녀석이!’

홱홱.

속에서 열이 부글부글 끓었다.

겨우 한두 걸음.

케빈과 자신의 간격이었다.

분명히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는 자신의 공격을 피하기 힘들 텐데, 케빈은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보여 주면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흘려보냈다.

직접 상대하면서도 황당한 움직임이었다.

케빈은 오라로 자신의 몸을 조금도 보호하지 않았고, 오로지 움직임 하나만으로 공격을 모두 무효화시켰다.

대단한 배짱이었다.

저러다가 공격을 허용하면 충격이 대단할 텐데도, 케빈은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다.

‘한 번만 걸려라.’

타닥.

이판사판이었다.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살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케빈의 뼈를 취할 생각이었다.

홱.

바로 눈앞에서.

케빈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오라로 몸을 보호하자.

퍼억-

“크억.”

또다시 충격이 일었다.

급소를 공격당하진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다리가 비틀거릴 만한 충격이었고, 뒷걸음질을 치며 황급히 케빈의 모습을 찾았다.

한발 뒤.

그곳에 케빈이 있었다.

케빈은 마일스의 사정거리 안에 존재했고, 그렇기에 마일스로서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진정시킬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본능에 따른 대결. 눈에 보이면 검을 휘둘렀고, 공격을 당할 것 같은 상황에는 오라를 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훅!

이번에도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짜증이 났다.

바로 코앞에서 공방을 주고받는데도.

자신의 공격은 통하지 않고, 상대의 공격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씨발.’

실력의 차이가 명백했다.

케빈과 마일스.

오라의 경지는 어떨지 몰라도, 둘은 실력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불과 반년 전의 케빈은 빈민가의 소년에 불과했지만, 극한의 수련과 전쟁에서의 경험이 그를 성장시켰다.

퍽!

“……!”

이번에도 충격이 마일스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아팠다.

비틀거리면서 물러나던 그는, 문득 뒤늦게 눈앞의 광경을 확인했다.

“너 이 새끼 설마.”

케빈.

그가 한발 물러났다.

이제껏 상대의 후속 공격에 대비하느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케빈은 공격을 성공시키고 단 한 번도 이어서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방적인 농락이었다.

대놓고 마일스가 회복하는 시간을 부여하는 모습은, 이번 대결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3초 만에 상대를 끝낸 크리스.

그 모습을 보며, 케빈은 생각을 바꾸었다.

크리스가 단시간에 끝냈다면.

케빈은 반대로 했다.

오히려 승부를 끝낼 수 있는데도 일부러 질질 끌면서, 상대와의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 주었다.

“이 새끼가!”

콰르르르르르릉.

타다닥.

마일스가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패배라는 결과를 떠나,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딱 한 번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한 방 먹이고 싶었다.

오라로 일렁이는 검이 케빈을 베어 버렸지만, 이번에도 케빈은 한발 물러나는 것으로 공격을 피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허점을 드러냈다.

이대로 공격을 당한다면 불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데.

히죽.

케빈이 물러났다.

공격하지 않았다.

본인의 승리가 확실한데도, 그는 한발 물러나 마일스가 정비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한 상황에.

마일스의 멘탈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기권하겠습니다.”

상대가 포기하게 만드는 것.

케빈의 방식이었다.

케빈은 빠르게 끝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최대한 오래 끌면서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증명해 냈다.

마일스가 무너졌다.

한때는 검사로서 성공하길 꿈꾸었던 변방의 재능은, 오늘 넘볼 수 없는 벽을 만나고 말았다.

“2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드미트리 가문의 케빈이 승리하며, 3라운드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케빈의 승리.

무려 10분이나 걸렸다.

대회를 통틀어 가장 오래 걸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0분이라는 시간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케빈은 웃을 수 없었다.

케빈이 마일스를 상대하는 동안.

2라운드 5초.

3라운드 8초.

4라운드 10초.

크리스는 그 짧은 시간에,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지으며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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