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615)

140화 로만 드미트리의 사람들 (4)

이번 대회.

일찍 끝낼수록 다른 조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케빈이 크리스를 의식할 때.

크리스는 밑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에만 완전히 빠져들었다.

‘나는 주군을 대표하는 검이다. 상대가 누구든 완전히 압도해야만, 사람들은 감히 주군의 자리를 넘볼 수 없다.’

동북쪽 연합회.

그들은 아직 현실을 몰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전장에서 보여 준 모습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드미트리와 반대되는 길을 걷는 어리석은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보여 주고 싶었다.

자신이 왜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자신의 무력으로 로만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느끼길 바랐다.

2라운드 상대.

그는 과감했다.

1라운드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크리스를 향해 달려들며 오라를 일으켰다.

콰르르르릉.

척.

크리스는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물러나지 않았다.

상대를 똑바로 직시했고, 상대의 검이 자신을 공격할 때 똑같이 나아가며 맞받아쳤다.

캉!

파바박!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되었다.

크리스는 상대의 검을 쳐 냄과 동시에, 급소를 가격해 상대를 쓰러트렸다.

겨우 5초.

상대는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고, 기대감에 주먹을 움켜쥐었던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로 둘의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승부였다.

1라운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설마 2라운드에서도 겨우 5초 만에 승부를 마무리할 줄은 몰랐다.

‘아직 부족해.’

갈증이 일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며.

크리스의 눈빛이 열망으로 타올랐다.

단순히 빠르게 끝냈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감히 로만을 올려다보지 못하도록 더 압도적이길 바랐다.

3라운드.

이번에는 크리스의 선공이었다.

시작부터 압도적으로 몰아쳤고, 상대는 뒤로 밀리다가 결국 공격을 허용 당했다.

8초.

앞선 두 사람보다는 조금 더 버텼다.

그만큼 실력은 있었지만, 그게 10초의 벽을 넘길 정도는 아니었다.

“……와.”

“크리스가 이 정도로 강했다고?”

“바르코와의 대전사 전투에서 크리스는 이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어. 대체 남부 전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람들이 감탄했다.

크리스의 의도처럼 그들은 경외 어린 반응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크리스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더, 더.’

메마른 사막처럼.

아무리 욕구를 충족해도 만족이 되질 않았다.

지금보다도 더 압도적인 승부만이, 로만을 증명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4라운드 상대.

신중했다.

수비적이었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퍼억-

“……!”

그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뒤로 무너지기까지는, 이번에도 10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4번의 대결.

4번의 승리.

4라운드 상대마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사람들의 경악한 시선이 크리스에게 집중되었고, 크리스의 열망은 마지막 한 경기를 두고 절정에 올랐다.

‘결승전이다.’

쓰러진 상대.

돌아보지 않았다.

앞선 대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크리스는 오로지 앞만 바라보았다.

* * *

첫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

대회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열을 맞추는 수하들의 모습에, 조나단 기사단장은 특유의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대회는 알다시피 로만 드미트리 도련님이 개최하는 대회다. 그리고 드미트리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었던 크리스가 출전하는 대회기도 하지. 너희들의 선배가 어떤 경기를 보여 주는지를 지켜보고, 드미트리의 기사로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참고하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예!”

수하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로만이 떠나고.

드미트리 가문은 전체적으로 병력을 확충했다.

특히 드미트리 기사단은 크리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입 기사들을 받아들였는데, 오늘 조나단 기사단장을 따라 나온 이들이 바로 그 신입들이었다.

아직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송이들.

그들에게 드미트리 기사단에 어떤 부 기사단장이 있었는지를, 이 기회에 보여 주고 싶었다.

‘크리스.’

1라운드 무대.

제자가 무대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멋도 모르는 애송이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 엊그제 같은데, 크리스는 어느새 불쑥 커서 멋들어진 자태를 보였다.

소문으로는 남부 전선에서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로만의 밑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가 되었다.

마침내.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때, 눈 한번 깜빡일 사이에 상대 검사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퍽-

일방적인 승부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를 쓰러트리는 크리스의 모습에, 신입 기사들은 놀란 나머지 입을 떡 벌렸다.

“헐.”

“……너무 압도적인데요?”

당황스러운 건 조나단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의 상대.

맥스는 그리 만만한 검사가 아니다.

나름 동북쪽 일대에서 이름을 알린 검사인데, 설마 이렇게 쉽게 이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건가.’

심장이 뛰었다.

제자의 발전.

기쁜 일이다.

만약 딱 그 정도였다면, 조나단 기사단장은 순수하게 기뻐했을 것이다.

2라운드 5초.

3라운드 8초.

4라운드 10초.

이어진 승부에서도 크리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경악하다 못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신입 기사들처럼, 조나단 기사단장도 큰 충격에 빠져 버렸다.

‘이게 무슨.’

다른 사람들과 조나단은 다르다.

조나단 기사단장은 크리스의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았고, 그가 드미트리의 천재라고 불리도록 옆에서 지도해 주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크리스의 포텐을 알았다.

바르코와의 대전사 전투에서 활약했을 때도 크리스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의 결과는 얘기가 달랐다.

상식 밖.

정도를 넘어섰다.

성장의 그래프가 있다면, 가파르게 올라가던 크리스의 상승세가 그야말로 지붕을 뚫어 버렸다.

한 신입 기사가 말했다.

“조나단 기사단장님. 왜 기사단장님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저런 대단한 검사가 드미트리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직을 맡았었는데, 우리가 그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로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훈련에 임하겠습니다.”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크리스의 스승을 조나단으로 알았고, 저런 대단한 실력이 조나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성과였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열심히 훈련할 명분을 얻었다.

그런데.

조나단은 웃지 못했다.

크리스가 다가가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조나단의 시선은 그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로만 드미트리.’

분명했다.

이 결과의 모든 시작점은,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조나단 기사단장은 온몸에 돋아 오르는 소름에, 한동안은 로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크리스가 포함된 1조.

강자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죽음의 조라고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1조의 대결 진행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기권하겠습니다.”

“크리스 같은 녀석이랑 붙어서 굴욕을 당할 바에야, 그냥 여기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를 상대한 검사들.

그들은 대부분 부전승으로 올라왔다.

1라운드의 압도적인 결과를 확인한 후에, 어차피 우승 확률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사람들은 새로운 포인트에 관심을 보였다.

“파렐이 크리스를 이길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같은 2성의 오라 검사이지만, 크리스는 워낙 압도적인 검술을 보유하고 있잖아.”

“그래도 10초 이상은 버틸 수 있겠지. 지금까지 상대한 검사들을 보면,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잖아. 설마 파렐 정도 되는 검사가 10초 만에 패배하겠어? 나는 파렐이 최소 30초는 버틴다는 것에 1실버 건다.”

패배는 확실시되었다.

다만.

상대를 얼마나 빨리 쓰러트리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동안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었지만, 그래도 파렐은 나름대로 명성을 떨친 검사인 데다 수비적인 검술로 이름을 알린 케이스였다.

상성이 맞물렸다. 공격적인 크리스라 할지라도, 이번만큼은 조금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 선수 무대 위로.”

차례가 되었다.

무대로 올라서는 두 검사.

파렐은 잔뜩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간의 명성이 있어서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크리스를 이길 자신은 없다. 하지만 버티는 건 다른 문제야. 다른 검사들이 모두 10초 만에 패배했으니, 딱 1분만 버티더라도 내 존재감은 빛을 발하겠지. 파렐아. 딱 1분만 버텨 보자. 혹시 모르잖아. 해 보는 데까지 해 보다가, 크리스를 쓰러트릴 틈을 발견할지도.’

마음을 먹었다.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크리스가 강한 것은 인정하나, 그렇다고 절대 상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펄럭!

대결이 시작되었다.

파렐은 오라를 일으켰다.

상대가 어떻게 공격하든, 모조리 막아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번뜩.

퍽.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 * *

대회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크리스가 강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했건만,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겨우 1초 만에 상대를 쓰러트렸다.

“어, 어떻게 쓰러트린 거지?”

“검을 휘두르는 것도 보지 못했어.”

당황하는 사람들.

심판도 넋을 잃었다.

잠시 얼을 타던 그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이, 이것으로 크리스가 1조의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모두 우승자에게 힘찬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 주십시오!”

우승.

경악스러운 성과였다.

압도적인 결과에, 사람들은 크리스를 우러러보았다.

‘내 검술이 통했다.’

방금 파렐을 쓰러트린 기술.

섬전이었다.

섬전검의 무공을 기반으로 하되, 자신만의 방식을 첨가했다.

‘조나단 스승님은 내게 자신의 비기를 알려 주셨다. 오라의 폭발력을 증폭시켜서 검의 스피드를 상승시키는 기술이었지. 그건 섬전과 비슷한 형태의 기술이고, 나는 그간 둘을 조화시킬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를 얻었다.’

로만의 가르침.

크리스는 보고 들은 가르침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세상에서, 그 기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방법을 연구했다.

바닥에 쓰러진 파렐.

그게 연구의 결과였다.

크리스는 검을 거두었다.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담담한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우승 자체에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조의 우승 확정.

총 5번의 대결을 진행하는 동안, 크리스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때까지 겨우 2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결과는.

동북쪽 연합회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 * *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한 귀족의 중얼거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과는 달랐다.

크리스는 상대를 완전히 압도했고, 약체라고 분류되던 존재들도 착실히 상대를 쓰러트리고 있었다.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1조.

이미 승부가 끝났다.

2조.

케빈의 압도적인 무력을 보자니, 아무리 봐도 우승을 빼앗을 수 없을 것 같았다.

3조와 4조.

볼칸과 푸키는 앞선 두 사람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를 밀어붙이자 처참하게 무너지는 검사들이 속출했다.

그들의 우승도 사실상 확정인 것 같았다.

 큼지막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은, 상대 검사들의 공격에도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였다.

5조.

이변이었다.

헨더슨은 분명히 1라운드에 떨어져야 했건만, 어떻게든 상대를 쓰러트리며 착실하게 위로 올라갔다.

그렇다면 희망은 6조뿐이었다.

외팔이 검사.

아무리 생각해도, 맥버니만이 유일한 구멍으로 보였다.

때마침.

퍽!

“헨더슨이 3라운드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헨더슨의 승리.

귀족들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했다.

“……콘라드 자작님.”

“이제 자작님밖에 없습니다.”

맥버니의 3라운드 상대.

그는 바로 콘라드 자작의 검사였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