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615)

143화 양자택일(兩者擇一) (1)

북부의 실세.

더글라스 백작은 최근에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콰앙!

“아직도 그 쥐새끼들을 찾지 못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인근에서 활동하는 도적 떼들을 모두 소탕했지만, 비자금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바르코 가문으로부터였다.

더글라스와 바르코.

각각 북부와 동북쪽 일대의 실세들은, 한 귀족 파티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서로 나쁠 것이 없는 관계였다.

 더글라스 백작은 중앙 정부의 인맥은 없으나 북부에서만큼은 확실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반대로 바르코 자작은 더글라스 가문에 없는 인맥이 있었다.

상부상조(相扶相助).

서로를 위해 희생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필요에 의하면 도움을 줄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러한 관계가 문제를 낳을 줄은.

“더글라스 백작. 돈을 조금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 통의 연락.

로렌스와의 전쟁을 앞둔 바르코 자작은, 골든 뱅크 이외에도 인맥을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돈을 끌어모았다.

패배는 허락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고, 더글라스 백작과 같은 우호 세력들에게 빌린 돈을 더해서 호메로스를 데려오는 강수를 두었다.

더글라스 백작은 바르코의 승리를 확신했다.

설마 로렌스 따위에게 패배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이번 기회에 관계를 공고하게 다지자는 생각에 무리해서 거금을 빌려주었다.

어차피 금방 돌려받을 돈이다.

로렌스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면 상당한 돈을 벌어들일 테니, 바르코가 돈을 갚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바르코가 패배했다.

그것도 야밤에 도망치다 죽는 바람에, 돈을 회수할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더글라스 가문이 발칵 뒤집혔다.

무리해서 빌려준 돈이라 그들의 사정도 여의치 않았고, 어떻게 해서든 돈을 돌려받아야만 했다.

문제는 골든 뱅크의 존재였다.

이미 바르코 가문에 들이닥친 그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을 모두 회수해 버렸고, 그들이 먼저 권리를 행사하겠다는데 감히 자신이 먼저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침묵을 지켰다.

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더글라스 백작은, 돈을 돌려받을 유일한 방법을 알았다.

‘바르코 가문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골든 뱅크는 비자금의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는 바르코 자작과의 술자리에서 비자금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비자금만 확보한다면. 빌려준 돈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정보 길드를 고용했다.

바르코 자작이 말한 단서를 조사했고, 결국 비자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양의 금괴.

동북쪽 일대에 숨겨져 있던 금괴를 마차에 실었고, 남들 몰래 북부로 옮기려고 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도중에 도적 떼를 만나서, 금괴가 모두 사라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더글라스 백작이 말했다.

“그만한 금괴를 도적 떼들이 흔적 없이 처리했을 리가 없다. 동북쪽 일대, 아니 카이로 왕국 전체를 뒤져서라도 반드시 금괴의 행방을 찾아라. 그건 바르코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고, 다른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눈이 충혈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그때 잠시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주변 일대.

도적 떼들의 씨를 말렸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더글라스 백작은 금괴를 직접 확인할 때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그때.

정보 길드 블랙 문(Black Moon)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주군! 드디어 금괴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 * *

블랙 문의 수장.

도노반이 더글라스 백작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비자금이 도적 떼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자금을 옮기던 병력이 죽어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인근에서 악명을 떨치는 도적 떼들의 시체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암시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금괴를 판매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금괴를 금화로 바꾸는 작업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라, 그들로서는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확보하기 위해서 암시장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잠복한 결과, 금괴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래, 대체 어떤 새끼들이 내 금괴를 훔쳐 간 것이냐?”

“도둑놈들의 정체는 도적 떼가 아니었습니다. 동북쪽 연합회. 그들이 금괴를 훔쳐 간 범인입니다.”

“뭐라고?!”

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동북쪽 연합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처음에는 도적 떼가 비자금을 옮기던 병력을 습격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동북쪽 연합회의 병력이 그 상황을 포착했고, 도적 떼들을 모두 물리친 이후에 금괴가 들어 있는 마차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고민에 빠졌겠지요. 분명히 더글라스 백작님의 마차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진실을 묻어 두고 금괴를 가져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 증거로 한 달 전에 암시장에 금괴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바르코의 비자금과 동일한 숫자와 형태였고, 그것을 암시장에 내보낸 사람이 동북쪽 연합회 소속인 콘라드 자작을 따르는 하수인이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분노가 폭발했다.

그동안.

금괴의 분실로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감정은 켜켜이 쌓였고,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한 지금은 분노만이 남았다.

더글라스 백작이 분노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도노반은 고개를 숙이고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눌렀다.

‘내가 말한 정보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실제로 동북쪽 연합회는 금괴가 실린 마차를 발견했고, 더글라스 백작의 소유임을 알면서도 금괴를 빼돌리는 선택을 내렸지. 만약 내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동북쪽 연합회는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겠지만, 주군을 적으로 돌리면서 너희들은 위기를 자초했다.’

블랙 문.

동북쪽 일대에서 명성이 높은 정보 길드.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모른다.

블랙 문은 루카스가 이끄는 하오문에 흡수되었고, 겉으로는 아직도 중도 세력인 것처럼 활동했다.

고로.

로만의 명령에 따라 정보를 흘렸다.

더글라스 백작은 본인이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분노를 토해 냈다.

“지금 당장 동북쪽 연합회 녀석들에게 연락을 넣어라! 이번 기회에, 남의 돈을 훔쳐 간 개새끼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호전적인 성향의 더글라스 백작은, 곧바로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 * *

한 통의 연락.

동북쪽 연합회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로만의 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발생한 문제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이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글라스 백작은 북부의 실세입니다. 그와의 관계가 틀어졌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더글라스 백작은 3시간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 안에.

동북쪽 연합회가 모두 모여, 이번 일을 해명하라고 말이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동북쪽 연합회의 사람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더글라스 백작의 것을 건드려서는 안 됐습니다. 금괴는 금화와는 달리 쉽게 취급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언제고 꼬리가 잡힐 문제였다면, 차라리 더글라스 백작에게 직접 연락해서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 나았는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더글라스 백작의 성격을 다들 알지 않습니까? 그는 이번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더글라스 백작.

북부의 맹수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한번 열이 받으면, 자신이 다칠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받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세를 갖추었는지를 떠나, 웬만해서는 더글라스와 척을 지려 하지 않았다.

콘라드 자작이 말했다.

“대체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바르코 가문의 비자금은 더글라스 백작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바르코 가문에게 빌려준 돈이 있고, 비자금에서 우리의 몫을 가져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남들 몰래 비자금을 빼돌린 사람이 더글라스 백작이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도 떳떳한 입장이었다면, 쥐새끼처럼 비자금을 빼돌리려 했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우리의 입 밖에 나오는 순간, 이번 문제는 끝납니다.”

그의 말처럼.

동북쪽 연합회는 바르코 가문에게 빌려준 돈이 있었다.

바르코는 더글라스 백작만이 아니라 동북쪽 일대 가문들에게도 돈을 빌렸고, 애초에 바르코 가문의 라인을 타던 사람들로서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에 대한 반감이 더욱 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서 바르코가 무너지며, 막대한 돈을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비자금을 빼돌린 일.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적어도 아무런 권리가 없는 돈을 차지한 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이 더글라스 백작에게 먹히겠습니까?”

“먹히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금괴로 벌어들인 돈을 다시 뱉어 낼 수 있습니까? 이미 우리는 그 돈을 모두 사용했고, 더글라스 백작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가 빼돌린 금괴보다도 더한 돈을 뱉어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더글라스 백작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우리가 ‘한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더글라스 백작이 먼저 선수를 쳤다는 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논점을 흐려야 한단 말입니다.”

“일리가 있군요.”

“콘라드 자작님의 말을 따릅시다. 어차피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이 아닙니까?”

의견을 모았다.

개개인일 때는 약할지 몰라도, 동북쪽 연합회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에서 그들은 용기를 보였다.

때마침.

회의실에 기사가 찾아와 말했다.

“더글라스 가문에서 마법 통신을 신청했습니다.”

순간.

콘라드 자작을 비롯한 동북쪽 연합회의 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예상대로였다.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더글라스 백작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 돈을 빼돌리다니요. 당장 해명하십시오!]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다.

사자와도 같은 음성.

더글라스 백작의 성난 얼굴을 마주하며, 콘라드 자작은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침착하시지요. 그리고 ‘제 돈’이라니요. 더글라스 백작님이 왜 화를 내시는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바르코 가문의 비자금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더글라스 백작님과 마찬가지로 바르코 가문에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만약에 더글라스 백작님이 비자금의 존재를 명확하게 밝히고 보다 큰 권리를 주장했다면, 우리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적절한 보상만으로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먼저 돈을 빼돌린 것은 더글라스 백작님이지않습니까?”

꼬리를 물었다.

더글라스 백작의 잘못을 지적하며, 논점을 흩트리려 했다.

타당한 말이었다.

상식의 범위에 있으나, 문제는 그간 켜켜이 쌓여 버린 감정이었다.

[이런 개새끼들이 내 돈을 빼돌리고 뭐 어쩌고저째? 그건 전부 내 돈이야. 내가 바르코의 비자금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비자금의 권리는 더글라스 가문에 있다고!]

“백작님. 일단 침착…….”

[닥쳐!]

말을 끊었다.

석 달 전이었던가.

더글라스 백작은 동북쪽 일대 귀족들을 초대해 파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비자금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큰돈을 옮기다가 잃어버려서 속상하다는 말을 했었다.

그 자리에는 콘라드 자작을 비롯한 동북쪽 연합회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분명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가식적인 얼굴로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웃겼다.

잠깐이나마 그들의 위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지금 떠올리면 엄청난 분노로 돌아왔다.

[석 달 전에 있었던 파티에서 너희들은 내게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었지. 더글라스 백작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잘 해결될 것이라고. 너희들은 내가 우습게 보이지? 서로 하하호호 웃고 지내니까, 내가 너희들과 똑같은 수준의 평범한 귀족으로 보이는 거지?]

말릴 수 없었다.

콘라드 자작이 계속 뭐라 말했지만, 그는 귀를 막고 분노를 토해 냈다.

북부의 맹수.

그가 발동이 걸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면, 그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잘 들어. 나는 준비가 끝나는 대로, 중앙 정부에 연락해서 너희와의 영지전을 신청할 거야. 어디 동북쪽 일대 떨거지 새끼들이 힘을 합쳐서 한번 막아 보라고. 바르코 가문의 비호가 사라진 동북쪽 연합회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내가 그 현실을 똑똑히 보여 주지.]

탁-

통신이 끊겨 버렸다.

콘라드 자작은 재차 통신을 연결했다.

하지만 받지 않는 연락에, 그는 창백한 얼굴로 동북쪽 연합회의 귀족들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귀족들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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