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탐욕의 수집가 (3)
발렌티노 후작.
재밌는 사람이었다.
드미트리는 아직 변방의 세력에 불과한데도, 그는 대담하게 드미트리에 배팅하겠다는 발언을 내뱉었다.
카이로의 네 파벌.
그들은 발렌티노 후작의 결단에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중립의 세력일 때는 대놓고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면, 드미트리를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방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멍청한 선택이었다. 베네딕트 후작의 ‘귀족파’를 따른다면 안정적으로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을 텐데, 안정적인 선택을 버리고 위험한 도박을 택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한 아군이 넝쿨째 들어온 상황에, 로만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인정합니다. 발렌티노가 드미트리를 지지한다면, 드미트리는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만은 이득이 된다고 해서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확한 기준이 있었고, 발렌티노는 아직 그 기준을 부합하지 못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드미트리는, 아니 저는 두리뭉실한 관계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직 드미트리 가문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발렌티노의 지지를 받는다면, 이후에 어떤 결과를 이루든 간에 발렌티노는 동등한 위치를 주장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드미트리 동맹. 동북쪽 일대의 귀족들은 단순히 드미트리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으로서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상대가 어떤 명성을 가졌든, 어떤 이득을 주든, 로만은 권력의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었고, 앞으로 드미트리 동맹과 같은 세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현재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충성심입니다. 한번 묻겠습니다. 발렌티노 가문은, 발렌티노 후작님은 드미트리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한발 물러나서 방관하는 입장이 아니라, 드미트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역으로 물었다.
발렌티노와 드미트리.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진 명성은 발렌티노가 높았다.
지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결정인데, 로만 드미트리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체.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이란 말인가.
발렌티노 후작은, 로만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파문이 일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카이로의 네 파벌을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다. 만약 내가 드미트리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상당한 위험이 따를 텐데도, 로만의 언행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다. 젊은 사내의 객기일까? 그건 아니다. 드미트리를 이끌고 동북쪽 일대를 단번에 휘어잡고,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카이로의 영웅은 객기 이상의 무언가를 보유하고 있다.’
히죽.
웃었다.
수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바로 희소성(稀少性)이었다.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에는 이런 인재들이 넘칠지 몰라도, 카이로와 같은 약소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나는, 로만 드미트리가 너무나도 끌린다.’
마음이 동했다.
애초에 권력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발렌티노가 건재할 수만 있다면, 최고가 아니라 최고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상대가.
평민 태생의 남작 가문일지라도 말이다.
“이 자리를 빌려 명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발렌티노는 드미트리를 따르겠습니다. 설령 볏짚을 끌어안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더라도, 당신의 명령이라면 웃으며 따르겠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었다.
상식과는 다른 결단을 내렸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발렌티노나 되는 가문의 충성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백중혁의 삶.
충성은 익숙했다.
본인에 대한 확신은, 발렌티노의 이름값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뿐이었다.
이로 인해 후폭풍이 생겨도, 그것은 언제고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로만과 발렌티노의 만남.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생겼다.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자리에, 발렌티노 후작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가문에 돌아가는 대로 블레이즈를 만든 장인의 정체가 로만 드미트리 님이라는 사실을 밝혀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대단한 검을 얻었는데, 주변에 자랑하지 않으면 참질 못할 것 같습니다.”
확실했다.
발렌티노 후작은, 참 독특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 * *
탐욕의 수집가.
그는 대단한 수집 욕구만큼이나, 본인의 컬렉션을 자랑하길 좋아했다.
수도 인근의 귀족들.
그들을 불러들여 간단한 다과회를 가지던 그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은근슬쩍 블레이즈를 선보였다.
“오오.”
“이게 바로 소문의 명검입니까?”
귀족들의 눈이 빛났다.
블레이즈.
엄청난 거금을 들여 낙찰을 받으면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블레이즈의 유명세가 상당했다.
오라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검.
세간에 알려진 소문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능력이었고, 무엇보다도 탐욕의 수집가가 낙찰받은 검이라는 사실이 품질을 완벽하게 보증했다.
발렌티노 후작이 말했다.
“크흠흠. 다들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검은 소문 그 이상입니다. 최근에 제 휘하 검사들을 상대로 간단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1성의 검사가 블레이즈를 들고 2성의 검사를 상대했는데, 놀랍게도 1성의 오라로 2성의 오라를 막아 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수집품을 가지고 거짓을 말한 적이 있습니까? 게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자랑하는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블레이즈를 만든 장인의 정체가 바로 로만 드미트리입니다. 헥토르 왕국을 물리친 카이로의 영웅이자, 대장장이들의 성지인 드미트리의 장자. 그가 블레이즈를 만들었습니다.”
“헉?!”
“설마, 이게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라는 의미입니까?”
“맞습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살면서 세 자루의 검을 만들었는데, 이 블레이즈가 두 번째 검입니다. 그리고 헥토르 왕국을 물리칠 당시, 로만 드미트리는 블레이즈를 사용해 버틀러를 쓰러트렸습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는 검의 품질만 보고 거액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검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로만 드미트리는 앞으로 카이로 최고의 검사가 될 인재인데, 그가 만들어 낸 검이라면 그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입니다.”
다들 난리가 났다.
그제야 알았다.
발렌티노 후작이 베팅한 금액은 푼돈에 불과하며, 앞으로 검의 가치가 폭등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탄하던 눈빛이.
금방 부러움으로 물들었다.
금전적인 가치를 떠나, 세상에 세 자루밖에 존재하지 않는 로만의 검이라는 사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발렌티노가 택한 명검.
그 명검을 만든 장인이 로만 드미트리라더라.
사람들은 검의 성능을 찬양했고, 검에 담긴 스토리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검의 가치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상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발렌티노 후작은 장인들을 불러들여 공개적으로 검증을 진행했다.
“……이건 소문보다 더 대단한 검입니다. 살면서 수많은 명검을 보았지만, 마나를 이렇게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검은 난생처음 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돈만 있다면 제가 구매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장인의 발언.
의구심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람들은 로만이 만든 검을 주목했고, 세 자루의 검을 ‘로만 드미트리 컬렉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들은.
예상치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 * *
드미트리 대장간.
그곳은 최근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원래부터 많은 주문을 받았는데, 로만에 관한 소문이 돌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로만 도련님의 검을 구매하고 싶다고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로만 도련님은 개별적으로 검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100명을 무장할 장비를 주문하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지금 주문이 많이 밀려서 최소 한 달의 시간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드미트리가 많은 대장장이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금은 주문을 빠르게 처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로만의 검을 문의했다.
당연히 번번이 거절당하는 상황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드미트리 가문에 제작 의뢰를 넣었다.
명검을 만든 로만 드미트리.
그의 가문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대장간 기술로 카이로 최고라고 불리는 가문인데, 신뢰도가 더욱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드미트리라면 믿고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드미트리 가문은 의뢰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최상품의 품질을 받은 사람들이 소문을 내자, 주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주했다.
화덕에 불길이 일었다.
대장장이들은 쉴 틈이 없었고, 드미트리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은.
로메로 남작에게도 보고되었다.
“……이렇게 된 상황입니다. 로만 도련님의 명성 덕분에, 반년 이상의 주문이 밀려 있습니다.”
헨드릭이었다.
그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었다.
대장간의 호황이 즐겁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로만의 가치를 알아준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뻤다.
“크하하하하, 다들 우리 아들의 검을 탐낸단 말이지.”
로메로 남작이 호탕하게 웃었다.
검사로서의 명성.
기뻤다.
아들의 성공은 당연히 즐거운 일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그 어느 때보다 로메로 남작을 즐겁게 했다.
“로만, 로드웰, 로렌. 내 아들들은 나를 따라 어릴 때부터 대장간을 들락거렸지만, 그 누구도 진심으로 강철을 대하는 아이는 없었지.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생부터 대장간에서 한평생을 보냈지만, 귀족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겠지. 그런데 로만이 카이로 왕국이 감탄하는 명검을 만들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란 말인가.”
세 아들.
후계자로 생각하는 장남이 가업(家業)을 받아들였다.
대장장이로서의 재능을 드러내는 상황에, 진심으로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로만 도련님은, 영주님의 뒤를 이을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그런가? 하하하하.”
후계 구도.
고민이 많았다.
로만은 망나니로 보낸 세월로 점수를 모두 깎아 버렸지만, 지금은 조금의 의구심도 없었다.
확신이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드미트리 가문의 완벽한 후계자였다.
* * *
세상이 떠들썩한 그때.
로만은 의외의 방문자를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맥킨이었다.
발할라 정보부 소속.
예전에 로만에게 영입을 제안했었던 그가, 오랜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최근에 로만 님에 관한 소문을 잘 들었습니다. 아주 대단하시더군요. 헥토르 왕국을 물리친 것으로도 모자라 버틀러를 쓰러트리다니. 저는 로만 드미트리 님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과소평가였나 봅니다.”
발할라 제국.
그들은 최근 심기가 불편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4성 검사라는 사실은 이제 그들만의 비밀이 아니었고, 카이로의 네 파벌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베네딕트 후작이 아주 적극적이었다.
애지중지하는 딸의 정략결혼을 조건으로 내거는 모습에, 발할라 제국은 이대로라면 인재를 빼앗긴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마음 같아서는 로만 님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부여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북쪽 일대를 중심으로 ‘드미트리 동맹’을 형성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카이로의 네 파벌이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려는 의도인 겁니까?”
드미트리 동맹.
소문은 언제까지고 틀어막을 수 없었다.
결국 발할라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고, 그들은 드미트리에게 더는 시간을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발할라 제국의 수뇌부는 로만 드미트리 님의 의중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미트리 가문이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만 님이 발할라에 충성을 맹세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만약에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확답을 듣기를 바랍니다. 협박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발할라 제국이 아니라 카이로 왕국의 일원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발할라 제국으로서는 미래의 위험 요소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호의는 사라졌다.
살의가 번들거리는 눈빛은, 웃는 얼굴로 협상할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드미트리 동맹.
심지에 불이 붙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중심으로 뒤얽혔던 권력의 체계가, 슬슬 붕괴하기 시작하는 징조를 보였다.
“선택하십시오. 발할라를 따를지, 아니면 발할라의 적으로 남을지.”
일방적인 통보였다.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발할라의 호의는, 위협적인 적의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끼익.
로만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맥킨을 바라보면서.
로만은, 차가운 표정을 보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제가 왜 당신들의 선택을 따라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