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615)

156화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 (4)

3개월 전.

로만은 마법을 분석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때부터 마법에 관한 책을 전부 모으기 시작했고, 틈이 날 때마다 마법을 분석하는 시간을 보냈다.

마법의 이해.

가장 기초적인 이론이었다.

예전에 한 번 읽은 경험이 있었지만, 로만은 다시 한번 내용을 되짚었다.

「마법이란 서클에서 비롯한 마나를 자연의 마나와 공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체내의 마나만으로는 마법을 완벽하게 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마나의 특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체내에 보유한 마나가 화(火) 속성과 친숙하다면 자연에 존재하는 불의 힘을 끌어들일 수 있고, 그만큼 화염 마법을 사용할 때만큼은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과의 공명.

마법의 뿌리였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마법의 이해』를 공부하며, 먼저 나아갔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걸맞은 마나의 특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불이면 불, 물이면 물, 바람이면 바람. 마법의 이해가 말하는 대로, 반대되는 속성보다는 적합한 속성을 찾아 그와 관련한 마법들 위주로 익혔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로만은 문자 그대로의 내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에드윈 헥토르를 한번 상대해 보고 난 지금, 로만은 다른 시각으로 책의 가르침을 해석했다.

‘자연과의 공명이란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에 일종의 신호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흔히 마법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신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지만, 마법의 이해가 설명하는 것처럼 마법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발현되는 힘이 아니다. 만약 내가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다면. 마법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고, 한발 빠르게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단순히 마나의 기운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패턴.

본질을 꿰뚫고자 했다.

아주 기초적인 이론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로만의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법은 잘 정리되어 있는 학문이다. 명확한 체계를 따라 행동하면 모두가 똑같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마법사들은 대대로 지식을 대물림하며 현재의 체계를 이룩했다. 그 말인즉, 정형화되어 있는 체계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마법 캐스팅. 서클에서 일어나는 마나가 자연의 마나와 연결되는 순간, 그 형태와 마나의 양, 그리고 마나의 속성에 따라 상대가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를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의 형태에 약간의 마나, 불의 속성을 보인다면, 마법사는 분명히 파이어 볼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을 미리 파악할 수만 있다면 이후 대응은 그리 어렵지 않다. 파이어 볼은 직선거리로 폭발하는 힘. 좌우로 움직이는 스텝만으로도, 파이어 볼을 피해 버릴 수 있다.’

상상의 나래에 빠졌다.

머릿속으로.

파이어 볼을 피하는 그림을 떠올렸다.

‘마나의 공명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 생각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의 마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나 또한 그 체계를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완벽한 승리는 상대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고가의 마법서들.

그것들을 사들였다.

책장에 모아 넣고는, 그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사실 자신이 마법사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았지만, 서클과 단전의 마나는 공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배운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써먹을 수 없는 힘.

오로지 마법을 분석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로만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마법사들과 똑같은 공부를 했다.

초반 1개월.

분석하는 속도가 매우 더뎠다.

아직 기반이 다져지지 않았기에,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꼼꼼하게 마법을 이해하는 것에 열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분석에 탄력이 붙었다.

책장 가득 책이 차오르면서, 로만은 마법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3개월이 되던 날.

로만 드미트리는, 실전과 병행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 * *

로만이 말했다.

“펠릭스 님의 마법에 한발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정한 패턴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마나의 양과 형태, 속성에 따라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를 미리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응법을 택했습니다. 파이어 볼을 사용할지, 파이어 웨이브를 사용할지, 룬플레어를 사용할지. 마법사가 특정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 그 마법이 어떤 마법이냐에 따라 목적을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첫 발언부터.

펠릭스를 경악시켰다.

로만은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방금 말한 이론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일단.

1. 공명을 읽어 내는 감각.

2. 공명의 형태만 보고도 마법의 종류를 알아내는 지식.

3.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대응하는 빠른 판단.

최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펠릭스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로만은 순차적으로 펠릭스가 던졌던 질문들에 답했다.

“홀드와 같은 저주 계열의 마법을 파훼한 것은 일종의 상쇄(相殺)였습니다. 마법 학계에 알려진 바로는, 체내에 침투하는 마나를 몰아냈을 때 저주를 풀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시간이 많이 소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1분 1초가 중요한 전장에서, 이와 같은 방식은 그다지 좋은 해결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체내의 마나를 활용해 외부의 마나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택했습니다. 체내의 폭발. 조금이라도 폭발의 범위와 강도를 잘못 조절하는 순간 큰 피해를 입겠지만,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저주를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말이 되지 않았다.

로만을 만나.

펠릭스는 세 가지를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발 빠르게 반응하는지, 저주 마법은 왜 통하지 않는지, 마법을 막아 낸 보호막은 무엇인지.

로만은 명확한 해답을 말했다.

하지만 펠릭스는 직접 귀로 들으면서도, 로만의 이론은 안다고 모두가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마법을 막아 낸 보호막은 오라를 외부로 표출해 ‘방패’처럼 형성한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검막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라의 강력한 힘을 방어적으로 활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방식입니다.”

검막.

무림의 방식이었다.

오라를 폭발적으로 사용하는 이 세상의 방식과는 달리, 검막은 외부로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만약 일반적인 검사들이 로만의 방식을 따라 한다면.

오라로 방패의 형태를 형성하기는커녕, 모양을 제대로 잡기도 전에 불안전한 오라가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처음 마법의 이해를 꺼내며.

펠릭스는 로만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연속되는 설명을 듣자, 펠릭스는 자신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탁.

로만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제 설명은 끝났습니다. 혹시 첨언을 할 부분이 있습니까?”

되물었다.

자신의 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그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런 로만을 올려보며.

“……없습니다.”

펠릭스는, 차마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 * *

대화를 끝내고.

펠릭스는 숙소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로만과의 대화로 그는 너무나도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체 뭘 듣고 온 거지.”

펠릭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이제껏 자신도 재능을 타고난 부류라고 생각하며 살았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괴물.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식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데, 상식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로만 드미트리. 단순히 본능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완벽한 계산 아래 나를 상대로 수십 번의 승리를 따냈다. 애초에 1만 골드를 보상으로 건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로만 드미트리는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기에, 일부러 거액의 보상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았다.’

일반적인 판단이 아니다.

아무리 자신감이 있다고 할지라도.

거금을 보상으로 내건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로만의 의도가 보였다.

지식의 유출보다.

머리를 맞대, 자신의 지식을 보완하기를 바랐다.

어차피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기에, 자신의 특별함을 숨기지 않는 과감함을 보였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만의 힘으로는 지식을 보완할 수 없다 할지라도, 혼자만 꼭꼭 숨겨 두고 그 희소성을 활용해 어떤 이득을 볼지 고민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판단이 부끄럽다는 건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로만이 더욱 돌연변이처럼 느껴졌다.

문득.

로만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펠릭스 님. 제가 당신을 이겼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펠릭스 님과의 대결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고, 그렇기에 어제와 오늘처럼 일방적인 대결은 제가 원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를 쓰러트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십시오. 마법적인 능력이라면,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허락하겠습니다.”

로만의 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자신의 힘을, 자신만의 지식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펠릭스와의 관계에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얻길 바랐다.

그 과정에서 거금을 소비하고 지식이 유출되는 것은 감수했다.

자신이 한 발자국 나아갈 수만 있다면, 누가 뒤따라오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단했다.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펠릭스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강자도 강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스승님이 실종되면서부터는 항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현실을 회피했을 뿐, 나는 피닉스의 마탑주로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드미트리행을 택한 것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정말로 의지가 있었다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택했겠지.’

결과론적으로.

로만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만약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렸다면, 얼마를 제시했던 드미트리행은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펠릭스는 거래를 잊어버렸다.

거금의 보상을 떠나, 로만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무언가를 얻길 바랐다.

‘남은 시간 동안. 나는 로만 드미트리와의 대련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나로 인해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얻기를, 나 또한 그와의 대결에서 무엇이라도 얻어 갈 수 있기를. 단순히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발전하기 위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인간이 있다.

높은 벽을 발견하고 절망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오히려 발전의 동기로 삼는 부류도 존재했다.

펠릭스는 후자에 속했다.

그때부터.

승패를 떠나, 펠릭스는 자신의 현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흘렀다.

마음가짐이 달라지고도 수십 번의 대련을 치렀지만, 펠릭스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를 못했다.

일방적인 패배.

승패는 개의치 않았다.

펠릭스는 항상 다양한 방법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무너트리기 위해 발악했고, 그 노력을 알았는지 로만은 매번 승리하면서도 특별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펠릭스는 매우 훌륭한 실험체였다.

그가 쌓아 주는 실전의 경험에, 로만 드미트리도 점점 능숙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드미트리에 도착한 지도 2달이 흘렀다.

프랑크를 떠나 생활하면서, 펠릭스는 그간 드미트리가 얼마나 이상한 땅인지를 알게 되었다.

‘드미트리는 변방의 남작 가문이다. 그런데 군사력이 일반적인 기준에 비해 월등하게 강력하다.’

성문의 경비병들.

그들도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고는 생각했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사병들을 보고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야말로 일당백(一當百)이었다.

갑옷과 투구를 씌우면 기사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일반 병사들조차 압도적인 무력을 보였다.

게다가.

그들의 충성심은 맹목적이었다.

가끔 훈련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로만의 말이라면 혀라도 깨물 것처럼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그건 드미트리의 백성들도 다르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나타나기만 하면 양옆으로 갈라져 예의를 표하는 사람들.

로만은 분명히 드미트리의 영주가 아닌데도, 드미트리 영지 안에서는 압도적인 입지를 보였다.

확실했다.

지배자(支配者).

로만 드미트리는 남을 다스리는 위치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태도와 사람들의 충성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펠릭스의 스승.

그의 부재로 마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약 피닉스에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중심이 있었다면, 피닉스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펠릭스는, 대장간의 장인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로만 도련님이 대장간을 자주 찾으시냐고요? 가끔 민생을 돌보기 위해 얼굴을 비추시기는 하지만, 직접 검을 만드실 때는 개인 대장간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마스터 블랙스미스 님에게 들은 말인데. 로만 도련님이 작업할 때는 화덕의 불길이 온몸을 휘어 감아, 마치 불의 신처럼 보일 정도로 대단하다고 합니다.”

우연한 대화였다.

작업할 때 불길이 온몸을 휘감는다는 표현에, 펠릭스로서는 그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설마.’

심장이 뛰었다.

불을 받아들이는 능력.

만약 대장장이의 말이 비약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간 펠릭스가 간절하게 찾고 있었던 해답이었다.

피닉스의 비기.

버닝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바로 불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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