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615)

157화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 (5)

펠릭스는 기억을 더듬었다.

버닝을 완벽하게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스승님에게 들었던 몇 마디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버닝은 하루 이틀 만에 터득할 수 있는 종류의 기술이 아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불에 관한 친화력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하기에, 아무나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르칠 수가 없다. 제자야. 네가 정녕 나의 뒤를 잇고 싶거든, 매일 불을 가까이하고 어떻게든 불을 온전히 받아들일 방법을 찾거라. 거센 불길이 너의 몸을 휘감아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너는 불의 화신(化身)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다.”

피닉스 마탑.

강력한 비기를 보유하고도 그들의 세력이 약한 이유는, 지식을 전수하는 방법에 명확한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피닉스의 전대 마탑주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을 받아들였고, 펠릭스의 스승은 어렸을 때 당한 방화 사건으로 인해 압도적인 불의 속성을 얻었다.

그렇다고 스승의 경험이 정답인 것도 아니었다.

일부러 몸에 불을 지르는 가학적인 방법을 시도하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으로 신체 일부를 쓰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결국, 버닝은 재능의 영역이었다.

언제라고 단언할 수 없는 시간을 거쳐, 불을 온전히 받아들이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는 화덕의 불길이 휘감아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버닝의 기본 조건인 ‘압도적인 불의 친화력’을 갖추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와 대련할 때도 로만 드미트리의 반응은 확실히 상식을 벗어났다. 넘실거리는 불길에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을 떠나서, 웬만한 뜨거움에는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마법의 체계를 분석한 것처럼 로만 드미트리는 불길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대대로 화덕의 불길과 친숙했던 드미트리 가문이라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부풀어 오른 희망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버닝.

피닉스의 전부다.

버닝의 전수자가 마탑에 존재할 때는 사람들이 피닉스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지만, 지금과 같이 명맥이 끊겨 버린 상황에서는 쓸모없는 애물단지 취급을 당했다.

그만큼 버닝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버닝을 터득한 마법사는 전장에서 그야말로 자연재해라 불리기에, 단 한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닉스 마탑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미래.

피닉스가 건재하기 위해서는, 마탑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자신이 반드시 버닝을 발현해야만 했다.

대장장이와의 대화를 끝내고.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당장.

로만 드미트리를 만나야만 했다.

* * *

로만을 만났다.

매일 같이 보던 얼굴인데도, 버닝의 실마리를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펠릭스가 말했다.

“……대장장이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로만 드미트리 님은 대장간에서 작업하실 때 맨몸으로 화덕의 불길을 받아들인다고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마나로 몸을 보호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불을 받아들이는 로만 드미트리 님만의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명확한 목적을 묻지는 못했다.

다만.

두 가지의 선택지로 대답을 끌어냈다.

전자라면 필요 없는 방법이었고, 후자라면 로만 드미트리에게 피닉스 마탑의 미래가 걸렸다.

로만은 펠릭스를 보았다.

목적을 밝히지 않았으나, 눈빛 너머로 그의 의중을 읽었다.

“불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요. 대장간에서 제가 보여 준 모습이 타고난 것이라고 물어보는 질문이라면,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이 불길 앞에서 뜨거움을 느끼지만, 저만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로만이 자신이 바라는 정답을 명확하게 말하자, 입이 바짝 마르고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내가 바라는 목적을 알고 있다.’

사실.

숨길 것도 없었다.

피닉스 마탑이 불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찾아다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그 어떤 사람도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불의 친화력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것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의 영역이고, 그렇기에 불을 가까이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만약에라도 로만이 진짜 정답을 제시한다면.

펠릭스는 로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었다.

‘피닉스 마탑이 그간 저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비기를 전수하는 과정에 명확한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불의 친화력을 개화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현재 마탑의 상황처럼 버닝의 전수자가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마탑은 전력을 전부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버닝의 기본 조건을 충족할 방법이 생긴다면. 피닉스 마탑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체계가 생긴다는 것.

상황을 반전시켰다.

펠릭스를 시작으로 안정적으로 버닝을 전수한다면, 피닉스 마탑이 도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후우-.”

심호흡을 내뱉었다.

손발이 떨렸다.

긴장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펠릭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피닉스 마탑은 로만 드미트리 님의 그 기술이 필요합니다. 어떤 조건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무조건, 그 조건에 맞춰 드리겠습니다.”

희망이 부풀었다.

악몽 같았던 지난 3년.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희망의 끈을 붙잡았다.

그런데.

“제가 그 기술을 가르쳐 드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로서는 그렇게까지 호의를 베풀 이유가 없습니다.”

2달의 시간을 매일 만나며, 어쩌면 로만 드미트리가 상당히 호의적인 인물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펠릭스와 로만 드미트리.

둘은 남남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관계가 무르익어 간다고 생각했지만, 둘은 단 한 번도 ‘처음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마법 지식을 솔직하게 공개한 것은 이득이 되기 때문이지, 무분별하게 자신만의 지식을 퍼 주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로만은 확실한 관계를 바랐다.

펠릭스가 욕망을 드러낸 지금, 그것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약점이 되었다.

‘이런.’

펠릭스의 표정이 굳었다.

불을 받아들이는 능력.

피닉스 마탑은 그것이 간절하다는 것을 드러내 버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선을 그어 버린 상황에, 절대적인 을(乙)은 피닉스 마탑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로만은 불화보다는 타협을, 상대의 열망이 강력하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를 바랐다.

로만이 말했다.

“드미트리는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단순히 대련을 위해서 1만 골드의 보상을 걸 만큼 금전적으로 풍족하고, 그렇다고 다른 부분에서 피닉스 마탑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생각해 보고 말씀해 보십시오. 피닉스 마탑은, 그 하나를 얻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까?”

툭 던진 물음.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펠릭스는 더는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 * *

대답은 잠시 미루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펠릭스는 곧바로 피닉스의 마법사들을 불러들였다.

로만과 있었던 일을 충분히 설명하자, 이번에도 다른 마법사들을 대표해서 녹스가 앞으로 나섰다.

“솔직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미트리에서 한 달. 처음에는 펠릭스 님이 무슨 의도로 저희를 불러들였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지내며 드미트리가 세간의 소문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방의 영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체계를 갖추었고, 이곳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맹목적인 신뢰를 보여 주었습니다. 솔직히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마탑주님이 행방불명된 이후에 저희 피닉스의 마법사들은한순간도 안정을 찾지 못했는데, 드미트리의 사람들은 너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펠릭스가 느꼈던 것들.

다른 마법사들도 똑같았다.

드미트리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드미트리라는 땅이 얼마나 이상적인 환경인지를 피부로 체감했다.

그래서일까.

애초에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드미트리로 마음이 기울었다.

“우리는 지난 한 달간 로만 드미트리와 수차례 대련을 진행했고,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방심이 불러일으킨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힘을 합친다고 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릴 방법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단언컨대 마법사의 천적입니다. 언제고 그와 같은 존재를 전장에서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간의 패배.

펠릭스만의 몫이 아니었다.

녹스를 비롯한 피닉스의 마법사들도 있었고, 그들도 반복되는 패배에 로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적이라는 표현.

너무나도 정확했다.

적어도 마법사를 상대로는, 로만 드미트리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그쪽으로 합류하라고. 프랑크 왕국이 처음과는 다르게 피닉스를 천대하고 있는 지금, 버닝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피닉스를 로만 드미트리에게 바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펠릭스 님도 그것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저희를 부른 것이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나?”

“저희도 눈치라는 게 있습니다. 애초에 긍정적이지 않았다면, 저희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을 겁니다.”

녹스의 말.

다른 마법사들도 동의했다.

한곳으로 모이는 의견에, 펠릭스는 말을 삼켰다.

‘드미트리 가문이라.’

13개의 마탑.

그들은 모두 각기 다른 국가들과 손을 맞잡았다.

마법사들의 희소성은 대단하기에, 개인적으로 귀족 가문과 인연을 맺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틀을.

피닉스는 벗어나려 했다.

카이로 왕국이 아니라, 드미트리라는 일개 가문에게 강하게 이끌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피닉스는 전부를 바칠 정도로 버닝의 존재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마침내.

“알겠다. 우리는 현 시간부로, 피닉스 마탑의 미래를 로만 드미트리에게 맡기겠다.”

마탑주의 대행으로서.

펠릭스가 결단을 내렸다.

* * *

그날.

펠릭스는 마법사들을 끌고 와 충성을 맹세했다.

수십의 마법사.

그들이 일제히 충성을 맹세하는 상황에도, 로만은 담담한 얼굴로 그들의 충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마법사라는 존재.

로만에게는 특별하지 않았다.

크리스와 케빈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피닉스를 울타리 안에 들였을 뿐이었다.

다만.

‘내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다.’

로만은 의도적으로 피닉스 마탑을 택했다.

선택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대련 상대가 필요한 시점에, 펠릭스는 처음 설명했던 것처럼 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택지였다.

정보 길드를 통해 알아본 정보대로라면.

펠릭스는 돈을 보고 드미트리행을 택하겠지만, 반복되는 패배에 어떻게든 승리할 방법을 찾고자 발악할 독기를 가졌다.

두 번째.

펠릭스는 공격 마법에 특화되었다.

단순히 가성비만을 따진 선택이 아니라는 의미다.

펠릭스와의 반복되는 대련을 통해, 분명히 얻을 것이 있다고 판단했다.

세 번째.

이건 미지수였다.

소문에 따르면 피닉스 마탑은 버닝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불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로만의 염화신공이 그에 딱 부합하였다.

이것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피닉스가 바라는 바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퍼즐이라면. 로만은 무조건 이득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의 선택으로.

세 가지의 이득을 취했다.

결정적으로 피닉스의 마법사들이 로만을 찾아온 것은, 카이로 왕국에 큰 파란을 일으킬 결과였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도와 멀리 떨어진 이곳 드미트리에서. 나는 차곡차곡 드미트리만의 성을 쌓아, 카이로 왕국의 권력 체계를 단번에 쓸어 버릴 것이다.’

생각에 빠졌다.

앞으로의 계획.

로만은, 차근차근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 * *

며칠 뒤.

피닉스 마탑의 이주는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드미트리를 따른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고, 프랑크 왕국에 있는 짐들을 하나씩 옮기며 드미트리에서 자리를 잡았다.

‘내 선택이 부디 틀리지 않았기를.’

앞으로.

대련이 끝나고 염화신공을 배우기로 했다.

그것이 정말 버닝의 실마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피닉스의 결단에 다른 조건을 덧붙이지 않았다.

충성을 맹세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로만은 이주 과정에서부터 확실하게 지원해 주었다.

그때였다.

“마탑주님! 마탑주님!”

“무슨 일이지?”

피닉스의 마법사였다.

서클은 그리 높지 않으나, 셈이 빨라서 잡무를 맡은 인물이었다.

그가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문서 하나를 건넸다.

“이걸 보십시오. 드미트리가 저희 앞으로 배정한 예산안입니다!”

“……예산안?”

펠릭스.

그는 아직 로만이라는 사람을 잘 몰랐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른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