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265/615)

265화 제1차 대륙 전쟁 (3)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일었다.

능글맞은 파비우스 백작의 반응에, 뱀포드 공작은 인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내가 대화를 청한 이유는 잘 알겠지. 대륙법에는 전쟁 도중에, 무차별적인 학살을 유발하는 독의 사용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약속하는 최소한의 양심이지.

그런데 드미트리는 어째서 독을 사용한 거지? 너희들의 그 선택이, 이번 전쟁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

양심을 운운하며.

본인들의 잘못은 말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선제공격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크로노스 제국은 조금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이다.

헥토르가 기습적으로 국경을 넘었던 것처럼, 드미트리의 본거지를 공격한 일은 대륙법에 어긋나기는 해도 역사적으로 반복해서 벌어지던 일이다.

하지만 독은 다르다.

베헤모스 마탑을 보유하고도 그들이 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사들 틈에 섞여 있는 민간인들도, 무분별한 학살의 영역에서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뱀포드 공작은 분노를 보였다.

감히 크로노스도 사용하지 않는 독을, 드미트리 따위가 사용하냐는 듯한 책망의 발언이었다.

파비우스 백작이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건 권고일 뿐이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국경을 넘어도 ‘전쟁’이라는 명분에 문제가 되지 않듯이. 저희는 독의 사용을 그에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파비우스 백작. 지금부터는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내뱉는 게 좋을 거야.”

뱀포드 공작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십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가슴 속에서는 거센 분노가 일었다.

크로노스.

그의 나라다.

황제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공작의 작위는 나라를 위해 가장 헌신했기에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뱀포드 공작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대륙법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법은, 보통 그러한 법을 만들게 한 시발점이 있다. 파비우스 백작. 샐러맨더 대륙의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왜 독을 금지했다고 생각하지?”

“그야,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맞아. 아주 오랜 옛날. 크로노스가 제국의 칭호를 얻기 전, 세상에는 지금보다 많은 왕국이 존재했다. 그들이 어떻게 멸망했을까? 서로의 영토를 차지하겠다고 그들은 무서운 전염성을 지닌 독들을 활용했고, 그로 인해 전쟁에 관련되어있는 국가 중 세 개의 나라가 인구의 30프로가 죽어 나가는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다. 그 숫자에 민간인이 얼마나 포함되었다고 생각하지? 내가 책임을 묻는 부분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마지막 양심마저 저버린다면, 크로노스와의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너희가 잔인하다고 말하는 우리의 방식은, 생각보다 그리 잔인하다고 할 수 없다.”

일부는 옳은 말이다.

상대가 크로노스 제국이 아니었다면.

파비우스 백작은, 나름대로 괜찮은 발언에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예 예, 잘 알겠습니다. 옛날 일은 궁금하지도 않고, 그래서 뭐. 우리보고 이대로 목을 내놓고 순순히 죽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그놈의 인간으로서 마지막 양심을 지키자고? 죄송합니다만, 드미트리를 궁지에 몰아넣은 크로노스 제국에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파비우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 * *

상대는 크로노스다.

명백한 강자.

평소 파비우스 백작의 소문을 들었던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불리는 그가 크로노스를 상대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부는 맞는 말이었다.

상황과 때가 맞아서 크로노스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언제든 돌아서겠지만, 지금 그가 따르는 사람은 로만 드미트리였다.

배신은 결단력 있게.

하지만 새로운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처럼 최선을 다하라.

인생의 모토였다.

로만 드미트리를 마음에 품은 파비우스 백작에게, 크로노스 제국은 수많은 적 중 하나일 뿐이었다.

파비우스 백작이 말했다.

“30프로의 인구가 소멸한 그 나라들은, 훗날 크로노스 제국에 흡수되어 지금의 제국을 이룩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결국, 크로노스가 이득을 보았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지?”

“아니,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막말로, 다른 나라들이면 몰라도 크로노스 제국은 독의 사용을 지적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크로노스가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세상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제 주군이 드미트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크로노스 제국은 흑마법의 힘을 대놓고 드러냈습니다. 독보다 악독한 것이 흑마법입니다. 독이 애들 장난이라면, 흑마법은 인류(人類)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이란 말입니다.”

태도가 비딱했다.

처음부터, 그는 원활한 대화를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당한 만큼 되돌려주었을 뿐입니다. 이를 문제 삼는다고 할지라도, 사죄할 생각은 없습니다.”

“파비우스 백작.”

“예, 말씀하십시오.”

“크로노스 제국이 흑마법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나? 정황 말고, 증거가. 로만 드미트리가 돌아오는 길에 공격당했던 일은, 크로노스 제국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 폐하께서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을 예고했었지만, 그것과 그때의 일은 별개의 문제다.”

“아, 그렇습니까?”

파비우스가 히죽, 웃었다.

크로노스는 이런 나라였다.

그림자가 그들의 소속임을 모두가 아는데도, 그들은 힘으로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게 했다.

“예, 크로노스의 잘못은 하나도 없겠지요. 제 주군에게 암살을 시도하고, 그림자들을 동원해서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흑마법을 사용하고, 드미트리의 본거지도 공격했었지만, 결국은 독을 사용한 드미트리가 전적으로 잘못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희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어차피 우리를 멸망시키겠다고 병력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까? 인류고 뭐고, 전쟁에서 패배하면 우리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크로노스가 이제껏 어떻게 행동했든 상관없이, 우리는우리가 살아갈 길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쿨하게 넘어갑시다. 크로노스의 흑마법, 드미트리의 독. 서로 양심을 운운할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길로 돌아서면 죽자고 달려들 사이에, 이런 것까지 따지지 맙시다.”

“감히……!”

“그리고.”

파비우스 백작이 정색했다.

“뱀포드 공작님도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제 주군이 보유한 독은 베헤모스 마탑으로서도 해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저희가 정녕 무분별한 학살을 바랐다면, 수도 한복판에 독을 풀어 버렸을 겁니다. 그러니까 괜한 소리는 마십시오. 저희는 나름대로 저희만의 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서로 막장으로 가길 바란다면, 그때부터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대담하게도.

파비우스 백작은, 크로노스의 거물을 상대로 이빨을 드러냈다.

* * *

분위기가 변했다.

파비우스 백작의 발언에, 분노를 보이던 뱀포드 공작이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갑자기 가라앉았다.

“알겠다. 서로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번 일은 마무리하도록 하지.”

협박은 통했다.

파비우스는 시간을 벌기 위해 수도에도 독을 사용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뱉었고, 이로써 크로노스 제국은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32종류의 독을 완벽히 해독하기 전까지는.

그들로서는 혹시 모를 독의 사용을 걱정해, 이전보다는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뱀포드 공작이 느닷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마도 드미트리에게는 이번 전쟁을 결심하게 만든 그럴듯한 계획과, 그 중심에 로만 드미트리가 존재하고 있겠지. 솔직히 인정한다. 라스칼을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일만의 병력을 학살하고, 시선을 끄는 사이에 독을 풀어 십만의 병력을 죽인 것은 우리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감탄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행보를 바라보며, 한때는 그가 크로노스 제국의 출신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미래를 의미했다.

로만 드미트리와도 같은 존재가 크로노스라는 날개를 달았다면, 대륙 정벌의 야망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앞당겨졌을 것이다.

너무나도 시시한 일이었다.

적어도 뱀포드 공작은, 대륙 정벌의 과정에 고난과 역경이 있기를 바랐다.

“한때는 나도 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때야말로 나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고,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내게 ‘공작’의 작위가 부여되었지. 사실 아직도 나는 귀족들이 입는 거추장스러운 옷이 많이 불편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뱀포드 공작이라는 사람은, 수도에서 안락한 삶을 보내는 것보다는 전장에서의 삶이 익숙하거든. 그런데. 내가 왜 전장을 떠난 줄 아나? 나이를 먹었기에? 예전보다 전쟁의 빈도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전부 아니다.”

주제와는 어긋난 대화였다.

뱀포드 공작은, 같잖은 존재에게 진실을 보였다.

“크로노스 제국의 전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얼마나 강한지. 내가 굳이 발악하지 않아도 승리라는 보상이 원래 따라왔을 것이라는 사실에, 그때부터는 전쟁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았다. 로만 드미트리. 대단한 인물이지. 변방의 영지에서 태어나 그 젊은 나이에 6성의 경지에 올라섰고, 그간 보여 준 행보는 크로노스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로만 드미트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뿐. 크로노스의 전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로만 드미트리가, 크로노스 제국의 야망을 가로막을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기대할 뿐이지.”

웃었다.

파비우스가 믿는 자신감의 근원을 떠올리며, 그는 진심으로 가소롭다는 표정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발악하면 발악할수록. 드미트리, 단 하나가 무너지는 것만으로도 샐러맨더 대륙의 사람들은 크로노스 제국이 대륙을 지배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부디 끝까지 발악하거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너희의 선전(善戰)을 기대하고 있겠다.”

뱀포드 공작은 걸음을 돌려, 본인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 * *

그 시각, 드미트리.

한스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환자들의 몸을,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 주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의 시선에.

케빈이 보였다.

몸을 닦기 위해서 상의를 벗긴 상태였는데, 케빈의 몸은 성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가득했다.

이번에 전쟁을 치르며 새롭게 생겨난 상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간의 전쟁에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가. 그렇게 겹겹이 쌓여 간 상처가, 케빈의 노력을 증명했다.

참.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케빈을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독기는 있어도 검사로서 자질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불쑥 성장해서 대륙이 인정하는 검사가 되었다.

특히 스벤을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케빈의 공은 매우 컸다.

그가 스벤을 막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알았다.

케빈이 희생한 이유를.

드미트리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염원(念願)에, 모두가 케빈이 무사히 정신 차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옆에.

헨더슨이 있었다.

케빈은 그래도 외관상으로는 많이 회복한 모습이었지만, 헨더슨은 산송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매일같이 헨더슨의 가족이 찾아오며 눈물을 흘렸지만, 로만 드미트리를 원망하는 발언을 내뱉지는 않았다.

케빈과 헨더슨의 생존을 위해서 로만 드미트리는 전력을 다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그들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보였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들을 돌볼 때면, 괜히 눈물이 맺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손님들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주변을 조금이라도 정리하고자 했다.

슬플 때면 바쁘게 일하는 것이 좋았다.

그게 한스가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열심히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슬픈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정리를 끝내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아 탁한 음성.

한스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케빈!”

힘겨운 얼굴로 몸을 일으킨 케빈이, 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