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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204/615)

204화 운명의 수레바퀴 (4)

이른 아침.

차가운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켜며, 크리스를 필두로 로만 드미트리 직속 부대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구보를 시작한다.”

간단한 훈련이었다.

처음에는 몸을 풀기 위해 적당한 속도로 달렸고, 플로라 로렌스는 사내들로 득실거리는 무리에서 곧잘 따라붙는 모습을 보였다.

호흡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참모들의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궁술을 훈련하며 체력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폐부가 시릴 정도로 호흡을 안정시킬 새도 없는 상황에, 플로라 로렌스는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딱 한 번.

호흡이 망가지면 끝이다.

일주일의 테스트에서, 첫 훈련에서부터 낙오되고 싶지는 않았다.

“후욱, 후욱.”

약 1시간.

아침부터 시작된 구보로 인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위로 묶은 머리에서는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뜨겁게 달아오른 몸과는 달리 피부에 닿는 공기는 차가웠다. 아침 훈련이라기에는 시작부터 강도가 조금 센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군대는 길어야 30분 내외의 구보로 훈련을 마무리하는데,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아침 구보를 일상적인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끝이 보였다.

이제는 멈추리라고 생각했는데, 크리스가 돌연 산길로 들어섰다.

‘설마.’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구보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크리스는 가파른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턱밑까지 차오르다 못해 뇌를 자극하는 호흡은 현기증을 동반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미리 이 정도의 강도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체력적인 분배라도 했을 텐데, 1시간이나 달려 놓고 본격적인 구보는 따로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무엇보다도.

자신과는 달리, 아직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은 병사들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하악, 하악.”

호흡이 거칠어졌다.

페이스 조절의 영역을 넘어섰다.

플로라 로렌스는 정신력으로 버텼고, 악착같이 따라붙는 모습에 크리스가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아침 구보는 생존을 위한 훈련이다. 전장은 너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얼마나 이른 아침인지, 밥은 먹었는지, 체력은 건재한지. 항상 완벽한 상태에서 싸울 수는 없다. 그러니 매일 너희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어라. 정말 죽을 것같이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너희들이 전장에서 맞이할 ‘현실’이 보일 것이다.”

몸을 가꾸려는 훈련이 아니다.

생존.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훈련마저도 그에 준하는 강도가 필요했다.

“체력 훈련은 직책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단순히 머리를 쓰는 직책일지라도. 그들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장소는 안락한 막사가 아니라, 언제 적들이 공격할지 모르는 야전(野戰)일 것이다. 그 순간에 체력이 없다는 이유로, 상황이 긴급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전장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직책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군량을 나르는 직책일지라도, 어떠한 지형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려면 두 다리가 끝까지 버텨야만 한다.”

노골적인 저격이었다.

점점 뒤처지는 플로라 로렌스를 보며, 크리스는 그녀의 현실을 말했다.

그의 말.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드미트리의 군대는 시작부터 훈련의 강도가 너무 강했다.

몸풀기 구보 1시간.

본격적인 산악 구보 1시간.

총 2시간의 구보가 끝났다.

본대와는 조금 뒤처질지라도 끝까지 구보를 완수한 플로라 로렌스는, 땀을 비처럼 쏟아 내며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을 보였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뛰면서 속에 있는 것들을 수차례 토해 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릿속에 당장 주저앉고만 싶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크리스의 뒤이은 말은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지금부터 검술 대련을 시작하겠다!”

끝까지 않은 훈련.

지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 * *

정말 미친 일정이었다.

체력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진행되는 검술 대련에, 크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체력이 극한에 달했을 때, 얼마나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느냐다. 처음 적과 격돌하고서 10분. 그때는 완벽한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 주겠지만, 10분만 지나도 전신에 족쇄를 매단 것처럼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들 것이다. 그때부터가 진짜 전쟁의 시작이다. 호흡이 정상적이지 않고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육체가 정신의 통제를 따른다면, 단언컨대 일반적인 병사들은 그런 너희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훈련의 목적은 명확했다.

극한(極限).

병사들을 한계에 몰아넣었다.

앞선 구보로 인해 다들 체력 소모가 적지 않았지만, 그들은 싫은 소리 하나 없이 훈련에 돌입했다.

“후읍.”

타닥.

카카카캉!

대련은 실전과도 같았다.

드미트리의 병사는 호흡을 들이키더니, 맞은편에 있는 병사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크리스가 말한 전제처럼 육체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공격은 매우 날카로웠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착실하게 급소를 공략했지만, 방어하는 병사의 수비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격정적인 대련.

연무장 전체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일련의 상황에, 플로라 로렌스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평소 훈련이라고?’

드미트리의 훈련.

그야말로 극한의 난이도였다.

한평생 육체를 단련하는 기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강도인데,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일련의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련을 치르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그들 개개인의 무력을 떠나서, 구보를 2시간이나 했는데도 그들은 소름 돋을 정도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문득.

전장에서의 드미트리를 떠올렸다.

그들은 강군(強軍)이었다.

강하기로 유명한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을 압도했고, 기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전투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뒤늦게 추격하는 상황이라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했을 텐데,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원동력.

바로 훈련에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훈련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데, 어떻게 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사실 높은 강도의 훈련으로 병사들을 단련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이론이야. 하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극한으로 몰아넣는 상황에 병사들의 반발심이 생기기 때문이지.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조금도 불만을 가지는 기색이 없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며, 본인들 스스로가 발전하려는 의욕을 보여 주고 있어.’

완벽한 통제.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이었다.

확실한 보상과 명확한 결과는, 병사들에게 자신들이 행한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신뢰는 켜켜이 쌓였다.

바르코를 무너트리고, 헥토르를 무너트리고, 베네딕트와 크로노스를 무너트리는 과정에서.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로만 드미트리만 믿고 따른다면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니 아무리 고된 훈련이라고 할지라도, 이 훈련에 목숨이 걸렸다고 생각하면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들 열의로 타올랐다.

치열하게 대련을 펼쳤고, 정말 실전처럼 위험한 상황도 연출되었다.

부상은 걱정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사고가 난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책임진다는 믿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간간이 발생하는 사고에서 드미트리는 확실한 대응을 보여 주었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치료사가 고가의 포션을 활용해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이후에도 경과를 살피면서 안전을 챙겨 주었다.

그간의 선례가.

눈앞의 광경을 만들어 냈다.

플로라 로렌스는, 사내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열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나도 포기할 수 없어.’

힘들었다.

구보로 소진한 체력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플로라 로렌스도 한편으로 가서 대련에 동참했다.

다행히도 아직 상대가 배정되지는 않았다.

허수아비를 상대로 간단하게 검술을 연습하는 정도였는데, 크리스의 날카로운 눈빛은 조금도 쉬는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웬만한 사람은 자괴감에 빠졌을 상황.

하지만 플로라 로렌스는 달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에 이를 악물면서도, 그녀는 처음과 똑같은 열의를 보였다.

‘벌써 초조할 필요는 없어. 나는 전투 자원이 아니기에, 체력 훈련에서는 내가 부족할 수밖에 없어.’

아직.

자신을 증명할 차례는 오지 않았다.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

플로라 로렌스는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훈련의 의미를 되새겼다.

* * *

며칠 뒤.

크리스가, 로만 드미트리에게 보고했다.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이 훈련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첫날 훈련이 끝나자마자 쓰러지고, 이틀째 훈련에서는 구보에서부터 실신하고 탈수 증상을 보였습니다만, 정신이 들면 어떻게든 훈련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물론 아직도 훈련에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으나, 결격 사유는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체력 부족은 결격(缺格) 사유에 해당하지 않았다.

만약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을 바랐다면,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그 누구도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헨더슨과 같은 일반인 출신들.

그들이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체력이 바닥에 떨어져도 어떻게든 훈련에 임하겠다는 의지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일주일의 테스트는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드미트리의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도, 그것을 버텨 낼 의지만 있다면 발전의 길은 열렸다.

문제는.

플로라 로렌스의 역할이었다.

“전투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궁술은 제법 정확도가 높은 편이나, 실전 능력이 떨어지고 근접전에는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참모다.

그렇다면 그녀가 테스트에서 증명해야 할 영역은, 전투 능력보다는 전략적인 능력에 있었다.

“삼 일째 진행되었던 전술 훈련에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플로라가 포함되어 있는 조가 열에 아홉 번을 승리. 한 번은 변칙적인 전략에 패배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끝까지 해결책을 찾아내며 상황을 수차례나 뒤집었습니다.”

슥.

자료를 내밀었다.

전술 훈련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인데, 로만 드미트리는 그것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9번의 승리.

정석을 따랐다.

변수를 최대한 차단하는 방식의 정석적인 공략법이었지만, 눈에 띄는 포인트는 마지막 1번의 패배였다.

웬만해서는 정석적으로 공략하되. 임기응변에도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실상 1번의 패배는 상대의 지휘관인 케빈이 정말 예리한 포인트를 공략했기에 패배했을 뿐, 플로라 로렌스의 능력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끝까지 접전을 펼쳤다.

게다가.

플로라 로렌스는, 아직 드미트리에 적응하지 못했는데도 이 정도의 능력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물었다.

“크리스. 네가 보기에는 플로라 로렌스가 드미트리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그 말에.

크리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예. 플로라 로렌스는 드미트리에 필요한 자원이라고 확신합니다.”

일주일간의 테스트.

그것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 * *

반란의 종결.

드미트리 공국의 개국.

그로부터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드미트리가 평온한 삶에 빠져들 무렵, 드미트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토마스가 어디론가 헐레벌떡 달려갔다.

‘아직 식료품들이 있어야 할 텐데.’

최근.

드미트리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철광산에서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에게 장사하려는 상인들이 가판을 열었으며, 자연스레 유흥 문화도 발전했다.

그야말로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토마스도 너무 많은 손님이 밀려드는 바람에, 예상보다 일찍 식료품이 떨어져서 그것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보통 식료품은 아침에 모두 동이 난다.

혹시라도 자신이 원하는 식료품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토마스의 걸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퍽!

콰당.

“크윽.”

골목길을 들어서려다 한 사내와 부닥쳤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로브로 얼굴을 가린 사내였는데, 그는 토마스를 보고는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눈 똑바로 뜨고 다녀.”

묘하게 위협적인 음성이었다.

토마스는 밀려오는 고통에 뭐라고 말하려다가, 상대의 눈빛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눈빛만 봐도 대충 감이 왔다.

상대는 상당히 위협적인 냄새를 풍겼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가는 피를 본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이 말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토마스의 판단은 옳았다.

빠른 사과에, 사내는 시선을 거두고는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사내가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서자, 갑작스럽게 주변에서 그림자처럼 몇몇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행색은 평범했다.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에,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획은 지금부터 3일 뒤에 진행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드미트리의 경비 체계와 같은 정보를 모아라. 이틀 뒤 이 자리에서, 정확한 계획을 설명해 주겠다.”

“알겠습니다.”

사내들이 물러났다.

그러자 처음 나타났던 모습처럼, 그들은 그림자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그리고는.

명령을 내린 사내 또한,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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