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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205/615)

205화 칠흑같이 어두운 밤 (1)

드미트리 광장.

사람들이 활발하게 왕래하는 그곳에, 그늘진 벤치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내가 있었다.

질겅질겅.

사내는 육포를 씹었다.

로브를 뒤로 넘긴 얼굴은 다소 창백하고 핼쑥한 인상이었고, 조금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드미트리는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중에는 빈민가 출신도 있고, 유흥 업소 종사자들도 있으며, 대륙에서 활동하는 용병들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다 보니, 묘한 분위기 정도로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사내의 이름.

클리프였다.

암살 길드 에코르셰(écorché)의 부마스터인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광장에 머무르는 1시간 동안, 드미트리의 경비대가 2번이나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인즉, 드미트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다수의 경비대를 순찰에 동원한다는 의미다. 보통의 영지들은 절대 이만한 경비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 상당한 인력이 필요한 일인 데다, 경비대가 발견하는 사건 사고는 사실상 시비가 붙는 정도. 영지에 대단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기에 무의미한 고생이라 할 수 있지.’

간단한 논리다.

백의 노력을 들여 1의 사고를 대비할 바에는, 방관하고 1의 사고에 2의 해결을 해 주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드미트리의 경비는 빡빡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실력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서부에서의 소문이 거짓이 아닌가 보군. 일반 병사들이 웬만한 기사에 버금가는 기세를 보이다니. 이런 곳에서 일이 틀어졌다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육포를 삼켰다.

긴장한 기색은 없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에는 이보다 더 위험한 일들이 많았고, 지금 하는 일은 암살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상대를 과소평가할 바에는 과대평가하라.

암살 업계에서 유명한 명언이었고, 클리프 또한 최근에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드미트리를 과소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때마침.

옆으로 한 사내가 다가와 앉았다.

마치 일행인 것처럼 친숙한 표정을 보이던 그는, 사람들 몰래 그간의 일을 보고했다.

“철광산에 잠입해 주변을 파악한 결과, 드미트리는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것에 비해서 사건 사고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드미트리 경비대가 허울만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면 5분 내외로 출동하는 편이고, 실력도 대단해서 험악한 용병들조차도 한 수 접어 준다고 합니다. 야간 경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간보다는 덜한 편이나, 다른 영지들과 비교하자면 야간 또한 상당한 수준입니다.”

“다른 유의 사항은?”

“영지 내에 실력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름 전.

암살 길드의 일원들은 이미 드미트리에 파고들었다.

클리프가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크로노스 제국의 암살 예고에, 과도할 정도로 경비를 빡빡하게 형성한 것 같았다.

재밌었다.

살고자 발악하는 몸부림이,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난 말이야. 내 목표물이 발악하면 발악할수록 피가 끓어. 매일 언제 공격당할지 몰라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준비한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고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으면 그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 육포마저도 모두 삼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보원들에게 전해.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 * *

결전의 날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림자처럼 스며든 존재들은, 야간에도 순찰하는 경비병들의 모습에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중.

회색의 망토를 두른 사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성(內城)으로 향할수록 경비의 숫자는 많아질 것이다. 똑같은 포인트에 적들이 도착하는 간격은 약 15분 내외고, 우리가 처음으로 경비병들을 처리하고서 15분 안에 무조건 내성으로 진입해야만 한다. 명심해라. 크로노스는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제국의 명령을 받아 그간 모든 암살에 성공했을지라도, 단 한 번의 실패가 우리를 나락에 빠트릴 것이다.”

클리프였다.

이번 작전.

암살 길드의 명운이 걸렸다.

마스터는 반드시 성공하라고 신신당부했기에, 클리프의 마음가짐은 평소와 달랐다.

“내가 선두를 맡겠다. 경비병을 처리하면, 빠르게 시체를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수하들.

클리프는 경비병들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몸에 두른 회색 망토의 능력을 발현했다.

“인비저빌리티(invisibility).”

화악.

은은한 불빛이 일었다.

회색 망토로부터 비롯되는 불빛이 클리프의 몸을 감쌌고, 그는 주변에 스며들어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마법 아티팩트였다.

암살자들은 자신보다 강한 존재들을 죽이기 위해서 많은 도구를 활용하는 편이고, 회색의 망토는 그중에서도 제일 고가의 물품이었다.

인기척을 죽였다.

조심스레 움직이며, 2인 1조로 움직이는 경비병들을 향해 다가갔다.

‘적은 단 두 명뿐. 그간 파악한 경비 체계에 따르면, 이 녀석들을 처리하고서 곧바로 내성으로 이동하면 그 안에 경비병들과 마주치는 경우는 한 번밖에 없다. 로만 드미트리. 전장에서는 네가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도, 어둠을 틈타 이루어지는 암살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간.

수많은 강자를 죽였다.

그중에는 랭커라 불리는 존재들도 있었지만, 대비하지 못한 공격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클리프는 강한 확신을 지니고, 경비병의 뒤를 따라붙었다.

상대의 숨소리가 들렸다.

죽음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고 주변을 살피는 경비병의 모습에, 클리프는 곧바로 단검을 들었다.

그리고 목을 베어 버리려는 순간.

카앙!

‘……?!’

공격이 막혔다.

경비병이 순간적으로 몸을 틀더니, 클리프의 공격을 쳐 내 버렸다.

당혹스러운 상황.

경비병과 클리프가 시선을 마주치자, 경비병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호각을 강하게 불었다.

삐이이이이이익-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 * *

혼란스러웠다.

일개 경비병이다.

내성으로 진입하는 과정이라면 몰라도, 초입에서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빌어먹을. 얼른 이 녀석들을 처리해!”

바락, 소리를 질렀다.

몸을 숨기고 있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고, 흔적을 지우고자 경비병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그런데.

카앙!

카카카캉!

경비병들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득달같은 공격에도 밀리지 않았고, 두 명의 경비병이 서로의 등을 보호하며 위험한 상황을 차단해 주었다.

그제야 클리프는 입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경비병이 운이 좋아서 공격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들은 절대 일반 경비병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익!

“저기다!”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주변을 둘러쌌고, 클리프와 암살자들은 도망갈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절체절명의 위기. 클리프의 신호에 암살자들이 한곳에 뭉쳤다.

급습에 강한 암살자들로서는 정면 대결에 약하나, 지금은 살기 위해서 달리 방도가 없었다.

단검을 움켜쥐었다.

공격을 시도하면서 투명화는 이미 풀려 버렸다.

클리프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미트리의 병사들.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클리프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너, 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기억 저편.

며칠 전에 자신과 부딪쳤던 식당 주인 토마스의 얼굴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사내와 정확히 부합했다.

심장이 뛰었다.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단단히 잘못되었다.

“클리프. 암살 길드 에코르셰의 부마스터. 네가 드미트리에 발을 들인 것은, 크로노스 황제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겠지.”

처음 공격을 막았던 경비병.

그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 보니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변장으로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미리 파악한 정보에는 루카스라는 이름의 사내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보름 전. 에코르셰의 암살자들이 드미트리에 발을 들였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너희는 너희가 완벽하게 정체를 숨겼다고 생각했겠지만, 3일 전에 본격적인 작전을 위해서 네가 합류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아냈는지 궁금한가 보군.”

하오문.

루카스는 정보 길드를 만들었다.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일상에 녹아들면서 그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모두 보고했다.

별다른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조합해, 루카스는 쓸모있는 정보를 만들어 냈다.

“너희가 드미트리에 발을 들였을 때 처음 만났던 식당 주인. 그는 드미트리 정보 길드의 소속이었다. 너희가 광장에서 주변을 둘러볼 때, 너희 바로 옆에서 장사하는 상인 또한 정보 길드의 소속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관 주인, 대장장이, 철광산의 광부. 그들은 모두 드미트리의 눈과 귀고, 그들은 본인들이 목격한 이상한 존재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그때부터 너희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크로노스 제국이 암살자를 고용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에코르셰는 그에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했지.”

처음부터.

드미트리는 에코르셰의 존재를 방관했다.

그들이 주변을 살피는 것을 알면서도 정보를 파악하도록 두었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보고에 곧바로 경비병들을 새로이 구성했다.

루카스는 헨더슨과 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다른 구역도, 적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인력들을 배치했다.

어둠 속에서의 공격.

클리프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루카스의 의도에 놀아난 장난감이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클리프가 주변을 살폈다.

예상하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들의 은밀한 움직임은 예상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파악하다니.

결국은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기에.

아무리 신분을 조작하고 로브로 얼굴을 가린다고 할지라도, 그 정보들은 모두 하오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루카스는 조금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암살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그가,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공격해.”

그 순간.

클리프도, 독기를 머금은 얼굴로 소리쳤다.

“길을 열어라! 적들을 뚫고, 곧바로 내성으로 향한다!”

* * *

암살자.

그들이 강한 이유는, 본인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급습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반대로 정면 대결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푸확.

“크악!”

“컥.”

일방적인 구도였다.

서로 부닥치자마자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암살자들을 몰아붙였고, 몇 번 공방을 주고받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나마 클리프의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그는 샤프니스(sharpness)를 사용한 단검으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러한 활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루카스가 달려들었다.

그가 몰아붙이자, 클리프는 순식간에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강하다!’

루카스.

사병 모집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존재다.

다른 쓰임새가 있어서 정보 길드로 빠졌지만, 전장에서 산전수전을 경험한 그는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 중에 상위권에 해당하는 전투 능력을 보유했다.

일반적인 검보다는 조금 짧은 검과 단검.

두 개의 무기를 현란하게 사용하더니, 순식간에 상대의 가슴팍을 베어 버렸다.

서걱!

“크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클리프가 뒤로 물러나자, 루카스는 그의 발목을 걷어차더니 그대로 넘어트렸다.

콰당.

끝이었다.

클리프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그의 목에 검이 겨누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10초 주지. 내가 너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도록.”

슥.

검이 목을 파고들었다.

검날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에, 클리프는 실성한 모양인지 얼굴 가득 웃음을 보였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벌써부터 너희들이 승리했다고 착각하지 마라. 크로노스 제국이 암살을 예고했음에도 우리를 고용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작전을 성공시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 에코르셰는 진짜 검(劍)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와 더불어 사방에서 공격하는 암살자들이, 지금쯤 내성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히죽 웃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그렇기에 상대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이번 작전.

자신만의 임무가 아니었다.

에코르셰는 내성을 기준으로 네 방향으로 공격을 시도했고, 에코르셰의 검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따로 움직였다.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전.

자신은 통솔력과 그간의 세월을 인정받아 에코르셰 부마스터의 자리에 올랐지만, 사실 실력 면에서는 그리 대단한 편이 아니었다.

미끼 중 하나일 뿐.

작전은 결국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거 말고. 다른 정보는 없어?”

상대의 반응.

클리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발언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루카스가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말할 게 없다면 죽는 수밖에.”

서걱.

“크르륵.”

피거품을 물었다.

목을 베어 버린 검에, 클리프는 애처로운 손길로 핏줄기를 막아 보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적들을 모두 처리한 상황.

루카스는,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2조는 주변을 정리해라. 그리고 1조는 지금부터 나를 따라, 내성을 기준으로 적들이 도망칠 수 없도록 포위망을 형성할 것이다.”

내성 안.

그곳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자신이 아닌 로만 드미트리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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