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칠흑같이 어두운 밤 (2)
암살 길드 에코르셰.
그들이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에코르셰의 검이라고 불리는 특급 암살자의 존재 덕분이었다.
총 9번의 살행(殺行).
굵직한 인물들을 목표로 노렸던 에코르셰의 검은, 9번의 살행을 모두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목표물의 살가죽을 벗겨 버리는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
이번 암살.
10번째 살행이었다.
드디어 두 자릿수에 들어서는 기념비적인 날에, 암살자 코르트는 잔뜩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로만 드미트리. 최근 대륙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이라면, 내 10번째 목표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존재겠지.
과연 그가 죽을 때는 어떤 소리를 낼까.
소문에는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을 때는 초라해지는 법이지.’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드미트리의 경비 체계.
완벽하게 파악해 두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에코르셰의 암살자들을 네 방향으로 보냈고, 그들이 시선을 끄는 사이에 로만 드미트리를 직접 노릴 생각이었다.
이미 상대의 위치는 파악해 두었다.
패밀리어(familiar) 마법으로 길들인 생쥐를 로만 드미트리의 방에 보냈고, 그가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는 사실조차도 생쥐의 눈으로 확인했다.
조용한 방.
안정된 호흡.
거짓으로 수면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쥐의 예민한 감각은 상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인간에게 비롯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은 수면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9번의 살행도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암살에 성공했다.
아무리 강한 검사라고 할지라도 잘 때는 똑같은 인간일 수밖에 없고,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수면에 취한 상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화악.
마나를 일으켰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다.
몸에 새겨진 마법진을 통해, 일시적으로 생쥐의 시각을 공유했다.
‘멍청한 녀석. 드미트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아직도 잠에 빠져 있다니.’
수면 1시간째.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코르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클리프와 마찬가지로 인비저빌리티를 두른 망토를 활용했고, 마나를 끌어올려 발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그의 움직임은 날랜 고양이와도 같았다.
높디높은 성벽을 타고 올라가서 내부로 진입했고, 경비병들이 주변을 지나치는 데도 어둠을 이용해서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건물 내부.
그곳의 구조는 머릿속에 훤했다.
생쥐를 동원해서 보름간 주변의 위치를 확인했고, 로만 드미트리가 머무는 방까지 최단 거리의 길목을 계산했다.
그곳까지 가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경비병들의 순찰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혹시라도 다른 변수가 발생한다면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퇴로는 어디에 있는지.
변수를 정리했다.
그렇기에.
코르트의 움직임은 과감했다.
순식간에 로만 드미트리의 방 앞에 도달했고, 그는 마법 아티팩트를 발동해서 소음을 차단했다.
‘사일런스(silence).’
찰칵.
문을 열었다.
디테일적인 요소였다.
감각이 예민한 존재들은 문을 여는 작은 소리에도 눈을 깨기 때문에, 코르트는 그런 변수조차도 차단해 버렸다.
에코르셰의 암살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일반적인 암살 임무는 클리프와 길드원들 선에서 정리되었지만, 중요한 임무는 코르트가 종지부를 찍었다.
패밀리어를 활용한 완벽한 계산과 그것을 철저하게 따르는 수행 능력.
날이 밝았을 때 살가죽이 벗겨진 시체가 발견될 때면, 사람들은 에코르셰의 이름에 벌벌 떨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단검을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에게 다가가 숨통을 끊으려는데, 갑자기 로만 드미트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쥐새끼인가.”
그의 시선이.
정확히, 투명화를 발현한 코르트를 향했다.
* * *
어제저녁.
루카스가 보고한 내용이 있었다.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동선이 겹치는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본격적인 작전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며칠 안으로 작전을 실행할 것이 분명합니다. 일단 지금부터 경비 체계를 강화하고, 암살을 대비한 함정을 파 놓겠습니다.”
에코르셰의 계획.
처음부터 간파되었다.
그들이 암살을 시도할 것이고, 그게 오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는 잠을 청했다.
코르트가 파악한 사실은 거짓이 아니었다.
생쥐가 느낀 파동처럼 정말 잠을 이룬 상태였고, 문 앞에 도달할 때까지도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꿈을 꾸었다.
백중혁의 삶.
정점에 오를 때까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백중혁의 형제들은 호시탐탐 목숨을 노렸고, 무심코 마시는 차 한잔에도 독이 들어 있음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처음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암살자를 대비해야만 했고, 방구석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감각을 예민하게 세웠다.
하루, 이틀.
그렇게 일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을 때, 백중혁은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밤을 지새우는 것도.
자는 척, 연기하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때부터는 최소한의 힘을 들여서 적들을 경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눈을 감았다.
암살자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잠을 청했고, 대신에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조금의 인기척에도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위험했다.
바로 코앞에서 살기를 드러낼 때까지 일어나지 못해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실제로 목이 반쯤 베여서 피를 콸콸 쏟아 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점점 갉아 먹혔다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최소한의 힘을 들여서 적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어느 순간.
감각이 열렸다.
자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주변을 경계했고, 조금이라도 변화가 발생하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탁.
조심스러운 걸음.
소리나, 인기척은 없었다.
코르트는 그렇게 안일한 인물이 아니었는데도, 그가 문 앞에 도달한 순간부터 로만 드미트리는 이미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무림에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수많은 암살자.
그들에 비하면 코르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걸음을 옮기면서도.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암살을 경험했기에, 암살을 코앞에 두고도 대담하게 잠을 청했다.
코르트는 알까.
본인이 시도한 암살 횟수보다.
아니, 에코르셰 전체가 시도한 암살 횟수보다, 로만 드미트리가 공격당한 암살 횟수가 많다는 것을.
그건.
코르트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였다.
* * *
소름이 돋았다.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코르트는 일이 틀어졌음을 알았다.
하지만.
‘내게 실패란 없다.’
작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암살자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테니, 그때까지는 시간을 끌 필요성이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5성의 검사라는 것.
구스타보 기사단장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들었지만, 코르트의 선택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홀드(hold).”
화악.
마법 아티팩트의 발현.
동시에.
“헤이스트(haste), 스트렝스(strength).”
버프 계열의 마법을 사용했다.
코르트는 에코르셰 최고의 암살자이니만큼 다양한 무기를 갖추었고, 적의 몸을 옭아매는 찰나의 순간에 바로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헤이스트로 늘어난 속도와 스트렝스의 강력한 힘.
더불어서 단검에서 일어나는 폭발적인 오라는, 그가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콰르르르르릉.
4성의 오라.
그는 랭킹 외의 존재였다.
세상에 정확한 실력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4성의 오라를 기반으로 한 기습적인 공격은 그에게 9번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하는 것은 오만한 판단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허를 찌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훅!
일격.
바람을 갈랐다.
로만 드미트리는 고개를 틀어 피해 버렸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코르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타다닥.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을 뿐, 검을 뽑지도 않았는데 코르트의 머릿속에서는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 자신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있었다.
발이 진창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아직 제대로 공방을 주고받은 것이 아닌데도, 일련의 상황에 코르트는 얼굴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뚝.
땀이 떨어졌다.
코르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세를 잔뜩 낮추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죽는다.’
본능이 말했다.
위험한 적이라고.
그간 9명의 강자를 쓰러트린 코르트로서도,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
코르트가 다시 땅을 박찼을 때는, 오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파팟.
빨랐다.
헤이스트가 발현되어 있는 몸놀림은 마치 짐승과도 같았고, 단검을 뿌리며 상대의 틈을 노렸다.
대부분 피하고 마지막은 검으로 쳐 내는 로만 드미트리.
기회였다. 코르트는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더니, 하체의 방어를 유도한 뒤에 재빨리 방향을 틀어서 턱밑으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허를 찌르는 공격.
상대가 고개를 젖히자, 이번에는 오라를 폭발시키며 급소를 동시다발적으로 노렸다.
찰나의 순간.
6번의 공격.
코르트의 공격은 위협적이었으나, 번뜩이는 공격이 끝나는 순간 새빨간 피가 사방에 튀었다.
팟.
“……!”
팔이 날아갔다.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분명히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건만, 코르트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에 팔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로만 드미트리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구스타보 기사단장을 압도한 로만 드미트리가 암살을 알아차린 순간,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은 너무나도 멍청한 판단이었다.
10번째 암살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었을까.
코르트로서는, 무모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끝났다.’
패색이 짙어졌다.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떠나 지금은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플래시(flash).”
번뜩.
곧바로 마법 폭탄을 터트렸다.
최대 출력으로 사용한 마법 폭탄에, 새하얀 불빛이 폭발하더니 시야를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도망쳤다.
빛이 모두 가라앉았을 때는, 코르트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가 도망친 길을 따라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 흔적을 따라갔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내성으로 발을 들인 순간.
상대는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져 버렸다.
* * *
고통이 일었다.
코르트는 피로 물든 팔뚝을 손으로 감싼 채로, 미리 파악해 둔 퇴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빌어먹을. 이번 작전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내가 경험한 로만 드미트리의 무력이라면, 에코르셰의 길드원들이 도착한다고 할지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몰려들어서 도망칠 수 없게 되겠지.’
최우선의 목표.
생존이었다.
일단 길드원들이 확보했을 길목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목격했다.
번뜩.
“크악!”
에코르셰의 암살자.
그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퇴로로 생각해 두었던 길목에서는 전투가 벌어졌고, 드미트리의 병력을 진두지휘하는 존재는 코르트의 기억에도 있는 인물이었다.
바로 크리스. 에코르셰가 경계하는 존재였다.
그와의 격돌은 되도록 피하라는 내부 평가가 있었을 정도로, 크리스는 드미트리에서도 매우 위협적인 실력자였다.
그에 의해.
암살자들이 죽어 나갔다.
로만 드미트리를 직접적으로 암살하는 것만 실패한 게 아니라, 바깥의 사정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우리의 계획을 예상했단 말인가.’
일련의 상황.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의 암살에 반응하고, 밖에서도 전투가 벌어진 것을 보면 신빙성이 있었다.
물론 진실은 반만 맞았다.
드미트리가 에코르셰의 계획을 간파한 것은 사실이나, 코르트의 암살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전적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코르트는 일단 걸음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이런.”
그곳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아니.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 사이로, 한 사내가 코르트를 보았다.
그 또한 기억에 있는 인물.
케빈이었다.
케빈은 평소보다도 차가운 얼굴로, 코르트가 이곳으로 도망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간절하게.
본인이, 직접 복수를 행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