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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 (211/615)

211화 칠흑같이 어두운 밤 (7)

다급한 목소리.

헐떡이는 숨.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한 그림자의 반응은, 통신기 너머에 로만 드미트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찰튼 남작이 말했다.

[정말 대단해. 에코르셰의 본거지를 공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림자들을 전부 처리하다니. 우리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로만 드미트리. 너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도 위험한 인물이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암살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지. 에코르셰와 그림자들. 그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사실상 암살이라기보다는 군대를 동원하는 정도의 전력일 테니까.]

일방적인 대화였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데도, 찰튼 남작은 상대의 존재를 확신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크로노스가 포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마. 크로노스 황제 폐하는 너의 목숨을 바라고, 우리는 단 한 번도 황제 폐하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어. 한 번 실패했다면 두 번을, 두 번 실패했다면 세 번을, 세 번마저도 실패했다면 네 숨통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암살자들을 보내 주지. 과연 일개 개인이 제국의 공격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카이로와 드미트리 따위로는 널 보호해 주지 못해. 크로노스를 적대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의미하지.]

말뿐인 협박이 아니다.

지난 세월.

크로노스 제국은 본인들의 존재를 증명해 왔다.

감히 반기를 드는 이들을 처참하게 짓밟았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한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대륙 정벌의 목표를 공공연하게 밝히는 강대국(強大國)인데, 분노의 화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처음에는 그들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반복되는 만행에도 침묵을 지키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찰튼 남작은 정신적으로 압박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인정하되, 그 또한 언제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보였다.

그런데.

“재밌네.”

[……재밌다고?]

“언제부터 크로노스 제국이 행동보다 말이 앞섰지? 크로노스 황제가 처음 암살을 공표했을 때, 너희들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보였다. 그리고, 결과는 지금 확인했다시피 나는 건재하게 살아 있지. 앞으로도 암살을 계속 시도해도 좋다. 또 다른 암살 길드를 고용하든, 그림자를 보내든.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내가 하나 경고하도록 하지.”

콱.

로만 드미트리가 그림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발버둥 치는 그림자를 강하게 억누르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통신기 너머로 흘려보냈다.

“네 저택 어딘가에. 내가 보낸 선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너의 암살을 결정했다면, 그 수단으로 사용했을 맹독(猛毒)이지. 명심해. 암살은 너희만의 것이 아니고, 나를 죽이고 싶거든 같잖은 암살 시도가 아니라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선포하는 게 빠를 거야.”

처음이었다.

크로노스의 협박에도.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존재는, 찰튼 남작의 기억에는 없었다.

“선물을 확인할 너의 얼굴이 진심으로 기대되는군.”

그것으로.

툭.

로만 드미트리는, 통신을 끊어 버렸다.

* * *

찰튼 남작의 저택이 발칵 뒤집혔다.

로만 드미트리의 선물이라니.

그것은 저택의 보완이 뚫렸다는 의미고, 찰튼 남작의 불호령에 하인들은 저택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그 결과.

비품 창고에서 의문의 상자를 발견했다.

“……최근 일주일간 외부 인물의 출입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감시를 뚫고, 창고 안에 상자를 놓고 간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찰튼 남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상자 안.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이 있었다.

처음에는 맹독에 중독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건드리지도 않았고, 하인들이 상자에 보관한 채로 곧바로 마탑 베헤모스(Behemoth)로 이동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맹독에 의한 암살을 예고했다.

만약 이것을 암살에 동원한다고 생각한다면, 맹독을 해독할 수 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베헤모스.

독과 같은 치명적인 무기를 주로 다루는 집단이다.

실험 도중에 중독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그들은 해독 기술 또한 대륙 제일로 평가받았다.

베헤모스의 마법사.

마테오는, 실눈을 뜨며 액체를 살펴보았다.

찰랑.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맹독이라니. 참 곤란한 물건을 들고 오셨습니다.”

“잔말 말고 해독부터 가능한지를 확인해.”

“알겠습니다.”

마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해독 마법이 모든 독을 치료해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해독 마법의 영역은 일부일 뿐.

정말 치명적인 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법사가 해독 성분을 발현해서 맹독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기술력으로는 베헤모스가 대륙 제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고, 처음에만 해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맹독을 살폈다.

일단 실험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노예에게 독을 먹인 뒤에, 이후 반응을 지켜보았다.

독의 진행 속도는 급작스러웠다.

아무런 징조가 없다가, 갑자기 노예가 핏물을 토해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 살려 주십…… 쿨럭.”

중독 현상이었다.

마테오는 먼발치에서, 마법의 힘을 발현했다.

“큐어 포이즌(cure poison).”

화악.

빛이 일어났다.

해독의 기운으로 노예의 몸을 살펴보았고, 체내 곳곳에 기운을 퍼트리며 맹독을 치료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예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어느 순간부터 땀으로 흠뻑 물들었고, 진심으로 치료에 전념하며 어떻게든 치료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결국.

노예가 쓰러지고 말았다.

창백한 안색의 시체를 바라보며, 마테오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이런 물건을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독의 성질이 매우 독해서, 처음 경험한 마법사들은 절대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저도 이 독의 해독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실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이 독에 중독되었다면. 나를 살릴 수 있었겠느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찰튼 남작의 표정이 굳었다.

베헤모스가 치료할 수 없는 독.

사실상 현재로서는 해독이 불가하다는 의미고, 로만 드미트리는 그런 맹독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보니.

코르트의 죽음과 똑같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만약 자신의 암살을 바랐다면, 이 독에 의해 자신은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코르트가 피를 토하며 죽을 때는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내려다보았는데, 그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자 이건 그냥 간과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독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라. 크로노스 제국을 적대하는 세력이 보유한 무기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찰튼 남작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로만 드미트리.

알수록 보통 놈이 아니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경험한 일련의 상황들을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 * *

일련의 상황들.

그림자의 실패부터 맹독에 대해 전해 들은 크로노스 황제는,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크로노스 제국에 반기를 드는 녀석들은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들 중, 크로노스 제국과 정면으로 맞닥트리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은 녀석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찰튼 남작. 너는 로만 드미트리를 어떤 유형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부러질지언정, 고개를 숙이는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말대로다. 카이로 왕실을 압박해서 로만 드미트리의 팔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왕국 연합을 끌어들여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암살을 시도한 지금. 에코르셰와 그림자는 카이로 국왕의 목도 베어 버릴 수 있는 전력이건만, 암살에 실패한 것으로도 모자라 역으로 암살을 시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로만 드미트리는. 단 한 번도 우리와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인물은 없었다.

강하게 나갔을 때, 똑같이 강하게 나오는 인물들의 최후는 그간의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찰튼 남작은 몸을 움츠렸다.

크로노스 황제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기에, 감히 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제국이 제국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선례도 허락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로만 드미트리가 말하는 전쟁을 선포할 시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크로노스가 대륙을 정벌할 전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아직 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 하나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크로노스는 대업을 이룩할 수 있겠지.”

로만 드미트리는 진실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전력.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크로노스의 힘은, 크로노스의 전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상대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다.

크로노스의 진짜 힘을 알았다면 감히 반기를 들지도,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선포하라는 망언을 내뱉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크로노스 황제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아무리 악을 쓰고 발악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는 역사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한 마리 개미에 불과할 테니까.

다만.

그렇다고, 살려 둘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연(深淵)의 악마들을 불러들여라.”

찰튼 남작이 눈을 부릅떴다.

심연의 악마.

마인이라고 불리는 그림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들을 동원한다는 것은, 어떠한 변수가 발생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를 죽이겠다는 필살의 의지였다.

“명을 받듭니다.”

찰튼 남작이 고개를 숙였다.

크로노스 제국.

황제의 말은 법이고, 그것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상황은 허락되지 않았다.

“머지않은 시기에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 크로노스 제국을 적대하는 세력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라. 크로노스에 반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이 영웅으로 떠받드는 로만 드미트리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모습으로, 다시는 우리를 올려다볼 수 없는 선례를 남기거라.”

몸을 기댔다.

왕좌에 앉은 그는, 찰튼 남작 뒤로 도열한 귀족들을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귀족들은, 침묵으로 황제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들은 확신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크로노스 황제의 말처럼, 머지않아 ‘하나의 잔인한 선례’로 남을 것이다.

* * *

그 시각.

로만 드미트리는 영지로 향했다.

찰튼 남작.

그를 공포에 빠트린 맹독은, 전생의 기술을 구현한 것이었다.

‘아마 생소한 종류의 독이겠지. 마법의 힘을 빌린다고 한들, 해독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독의 출처.

바로 사천당문(四川唐門)이었다.

수천 가지의 맹독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그들은, 백중혁이 무림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마교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다수의 적을 학살하는 것에 최적화된 세력.

백중혁이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무림 정벌은 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결국.

사천당문의 당주는 백중혁에게 목이 날아갔다.

당주가 쓰러지자 그들은 백기를 내걸었고, 사천당문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지식 또한 얻었다.

찰튼 남작이 만약 해독에 성공할지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코르트를 죽이고 찰튼 남작에게 보낸 맹독은 수천 가지 중 하나였고, 로만 드미트리의 머릿속에는 그보다 위협적인 독들이 많았다.

주변 환경이 달라져서 사천당문의 독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에는 제약이 있지만,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면 독을 동반한 암살은 적들을 공포에 빠트릴 것이다.

자신의 무기 중 하나.

일부러 드러냈다.

크로노스가 암살을 시도하기에, 암살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한번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이로써 크로노스 제국은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드미트리 또한 암살로 반격할 가능성이 있기에, 무분별하게 주변 인물들을 죽여서 서로의 살을 갉아먹으려고 하지 않겠지. 결국은 크로노스가 유리한 싸움이지만, 맹독은 무분별한 학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무기다.’

일종의 협박이었다.

적들은 계획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다.

다시 한번 암살을 시도하든가, 아니면 자신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을 죽이든가.

로만 드미트리는 맹독을 활용해 후자를 대비했다.

혼자서 모든 상황을 대비할 수 없기에, 상대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 주변 인물들을 보호한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한 계획.

일시적인 방책이었다.

언젠가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기에,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크로노스 제국은 대륙 정벌의 야망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그들은 대륙 정벌을 선포할 것이 분명하고, 그때부터는 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로서는 최대한의 준비를 할 뿐. 우리를 위한 완벽한 해결책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밖에 없다.’

바람이 비릿했다.

피 내음이 느껴졌다.

드미트리는 이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피와 죽음에서 절대 멀어질 수 없다.

이윽고.

드미트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승전보를 알리기도 전에 로만 드미트리를 기다리는 소식이 있었다.

“……주군. 발할라 제국으로부터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발할라 제국.

크로노스라는 하나의 산을 넘으니, 이번에는 또 다른 포식자가 이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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