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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213/615)

213화 지하에 숨겨진 비밀 (1)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

홀로 훈련에 몰두하던 로만 드미트리는, 한스로부터 철광산 지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있다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철광산 지하.

갱도를 뚫는 작업은 인위적으로 길을 확보하는 것이다.

흙과 돌덩이로 똘똘 뭉쳐 있는 땅을 작업에 적합한 형태로 만드는 것인데, 그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애초에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다.

대체 어떻게 지하 통로를 만들었으며, 그 용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던전(Dungeon)의 가능성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말들에 의하면, 대마법사들은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고 했다.

철광산에 도착했다.

산을 몇 개 넘어야 하는 곳이었고, 모르칸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자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여기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확실히 인위적이었다.

그것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자,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사실에 종지부를 찍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도 이것을 확인하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처음 갱도 작업을 위해 지반을 조사했을 때는, 분명히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갱도를 뚫으면서 비어 있는 공간이 공백을 형성했고, 그로 인해 붕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체 누구 지하에 이런 걸 만든 걸까요.”

거대한 문.

통로의 끝에는 강철 문이 길을 가로막았다.

단순히 통짜 형태의 강철이 아니라 문양이 각인되어 있는 강철이었고, 문의 존재는 이곳을 통해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끝없는 산맥은 드미트리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고, 이곳을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펠릭스를 불러라.”

“알겠습니다.”

오라를 일으켜 강철을 베어 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마법적인 함정이 있을 가능성을 대비해서, 펠릭스를 통해 개문을 시도하고자 했다.

얼마 뒤.

펠릭스가 도착했다.

펠릭스는 곧바로 문을 살펴보았고, 금세 결론을 내렸다.

“강철 문에 전체적으로 마법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만약에 강제적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면, 마나가 폭발을 일으켜서 지하 통로가 붕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제가 마나를 활용해 폭발의 여지를 없애겠습니다.”

지루한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3일.

펠릭스는 강철 문에 달라붙어 신중하게 마나를 없앴다.

웬만한 실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정교한 작업이었고, 펠릭스로서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3일의 시간이 흘렀을 때. 로만 드미트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펠릭스는 마침내 개문에 성공했다.

“……문을 열었습니다!”

화악.

마나가 휘몰아쳤다.

강철 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마나의 기운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끼익.

문이 열렸다.

그때였다.

펠릭스가 기대감으로 문 너머를 확인하려는 순간,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고는 벽면으로 던져 버렸다.

당황스러운 감정은 잠깐이었다.

펠릭스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던진 존재를 확인하자, 로만 드미트리가 앞으로 튀어 나가며 펠릭스가 있던 공간을 막았다.

그러자.

파파파팍-

수십 발의 화살이, 그대로 로만 드미트리를 덮쳤다.

* * *

문 너머.

예민한 감각에 화살의 존재가 포착되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빠르게 반응해, 펠릭스를 뒤로 날려 보내고는 검막을 형성해서 화살을 모조리 막았다.

타타탁.

화살이 바닥에 떨어졌다.

당황한 얼굴의 펠릭스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함정이 설치된 던전인 것 같습니다.”

방금.

펠릭스는 반응하지 못했다.

마법사의 감각을 압도할 만큼 화살 공격은 위협적이었고, 그렇다면 이곳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강철 문의 존재로 통로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면서, 폭발의 기운을 담은 마나와 문을 열자마자 화살을 발사하는 함정이라니.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안을 확인하겠다.”

“위험합니다! 던전에는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정의 존재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만약 이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은 증가할 터. 너희는 이곳에서 기다려라.”

걸음을 옮겼다.

판단을 내렸고, 위험할지라도 그것이 최선임을 모두가 인정했다.

탁.

문 너머로 발을 들였다.

감각을 확장하고,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했다.

겨우 열 걸음.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벽면이 갈라지더니 화살을 장착한 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파파박.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사방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발사되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이번에도 검막을 일으켜서 공격을 막아 냈다.

함정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습적으로 화살이 발사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땅바닥이 갑자기 내려앉으며 그 안에서 날카로운 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독?’

매캐한 가스가 분사되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유형의 독이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그것을 들이키자마자 곧바로 마나를 일으켜 해독해 버렸다.

사천당문의 독을 경험했던 로만 드미트리다.

지하 공간을 형성한 존재는 많은 준비를 했지만, 상대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그 어떤 함정도 통하지 않았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곳의 주인은, 통로를 만들었으면서도 모순적으로 타인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갈세가(諸葛世家)의 기관진식이 이러했었지.’

정파의 오대세가.

사천당문이 독으로 애를 먹였다면, 제갈세가는 뛰어난 머리와 미리 함정을 설치하는 기관진식으로 마교도들을 궁지에 몰았다.

그때도 백중혁의 무력은 상대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제갈세가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천재들이었지만, 계획을 넘어서는 무력을 감당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함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말의 여지라도 있어야만 한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러한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지하 공간의 함정을 모두 돌파했다.

드디어 끝이 보였다.

길목이 끝나는 지점에 안으로 통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굵고 성난 목소리.

예상대로였다.

끝없는 산맥의 지하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 * *

목소리의 주인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의 땅이다. 더 접근한다면, 단언컨대 네 녀석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까랑까랑한 음성.

미지의 존재는 적의(敵意)로 들끓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타협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이곳이 끝없는 산맥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드미트리 가문의 로만 드미트리다. 끝없는 산맥은 드미트리의 영역이고, 우리는 철광산을 개발하는 도중에 지하 통로를 발견했다. 정체를 드러내고 너희의 신분을 밝혀라. 만약 이를 해명하지 않는다면, 드미트리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나로서는 방관할 수 없다.”

끝없는 산맥.

드미트리의 안전망이었다.

그곳은 타국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고, 로만 드미트리는 끝없는 산맥에 드미트리를 위한 최후의 보루를 형성해 두었다.

십만대산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한 이후.

산맥의 평지를 활용한 농사가 발달했고,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드미트리는 자급자족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끝없는 산맥에 드미트리와 무관한 생명체가 있다면.

예상할 수 없는 변수는, 최후의 보루라는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개소리! 우리는 너희에게 해명할 이유가 없다!”

“그건 너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대륙에는 끝없는 산맥이 카이로의 땅이라 명시되어 있고, 드미트리는 그 권리를 물려받았다. 나는 너희와 협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드미트리의 땅에 터전을 형성한 존재들을 없애 버려야 할지, 아니면 너희들의 생존권을 인정해 주어야 할지.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상황은 호전될 수 없다.”

슥.

검을 뽑았다.

공간 너머.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마나에 접촉되는 그들의 형태가,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였다.

“빌어먹을 인간 새끼들. 인간의 법도를 우리에게 들이밀지 마라!”

분노에 찬 음성과 함께.

목소리의 주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작은 키.

딴딴한 몸.

덥수룩한 수염.

그들의 신체적인 특성은 하나의 존재를 가리켰다.

‘……드워프?’

확실했다.

그들은 이종족이었다.

모루의 축복을 받았다고 알려진 장인의 종족이고, 인간과 비슷한 신체적인 조건을 갖추었으나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사실 이종족은 전설 속의 존재가 아니다.

흔하지는 않아도 대륙에 존재했고, 남부 밀림에는 다크 엘프들이, 바다를 건너 이름 없는 섬들에는 세이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들이 있다.

그리고 간혹.

노예 시장에 이종족 노예가 나타났다.

그들은 부르는 게 값이고, 드워프의 경우에는 보통 대장간으로 팔려 가는 경우가 많았다.

드워프가 말했다.

“인간들이 어떤 기준으로 국경을 나누었는지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이곳 지하에 자리를 잡았고, 그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만 드미트리라고 했나? 나는 올해로 이백팔십 년의 삶을 살았다.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나 동족들의 축복을 받을 때도 인간들은 이곳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건만, 너희는 대체 무슨 명분으로 이곳을 너희의 땅이라고 주장하느냐!”

목소리가 적의로 가득했다.

이종족.

그들은 인간을 싫어했다.

옛날에는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이종족을 노예로 부리는 몇몇 사람들의 욕심이 관계를 파멸로 이끌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감정이 뼛속 깊이 박혔다.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드워프는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떨고 있군.’

드위프의 손.

도끼를 움켜쥐고 있는 큼지막한 손이, 정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들도 보았다.

함정을 완벽하게 파훼하는 모습에, 본인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런데도.

얼굴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본인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산맥에 존재하는 이종족이라. 이들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이번 문제.

종족(種族)의 구분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상대가 드워프라는 사실을 떠나, 그들이 끝없는 산맥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고민했다.

그들의 말처럼 끝없는 산맥의 소유권은 인간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드미트리를 위험에 빠트릴 요소가 있다면,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

지휘관의 몫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필요하다면 잔인해질 의향이 있었다.

“네 말처럼 이곳이 드미트리가 아닌 너희의 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너희들의 존재가 드미트리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끝없는 산맥은 드미트리와 땅을 맞닿고 있다. 우리가 너희의 땅에 발을 들인 것처럼, 너희 또한 언제든 우리의 땅에 발을 들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내게 확신을 주어라. 너희들을 적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너희와의 공존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복잡한 문제였다.

대륙 정벌을 바라는 크로노스와는 다르게, 드미트리와 드워프들은 서로의 생존이 걸렸다.

만약 그냥 넘어간다면.

이전처럼 서로의 존재를 무시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철광산의 광부들을 통해 드워프의 존재가 알려질 것이고, 어떤 식이든 서로의 존재는 신경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분란은 싹이 튼다.

로만 드미트리는 천마로서 군림하며 작은 분란이 어떻게 커지는지를 수도 없이 보았기에, 애초에 드워프와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길 바랐다.

끝없는 산맥 일부가 그들의 땅인 것처럼.

또 다른 일부도 드미트리의 땅이 확실했다.

드미트리의 역사가 그를 증명했고, 이번 문제는 종족의 구분과는 상관이 없었다.

“확신이라니. 우리가 대체 어떻게 확신을 준단 말이냐!”

드워프가 당황했다.

그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로만 드미트리가 원하는 대답이 선뜻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려 대던 드워프가, 문득 로만 드미트리의 검을 보았다.

순간.

눈빛이 몽롱하게 물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검의 외형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혹시 그 검을 살펴볼 수 있겠나.”

그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말 황당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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