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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242/615)

242화 필살(必殺) (2)

처음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공격당했다는 말에, 발할라의 사람들은 유언비어(流言蜚語)로 취급했다.

“그게 말이 돼? 이곳은 발할라야.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녀석들이, 감히 제국의 영토에서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할 수 있겠어. 뭔가 착각한 것이 분명해. 듣기로는 사람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행렬을 이룬다던데, 그 과정에서 트러블이 일어났나 보지.”

제국의 땅에서.

발할라가 존경하는 전사를 누가 건드린단 말인가.

같은 발할라의 사람들은 그런 일을 벌이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타국의 소행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상대가 크로노스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발할라의 영토에서 누군가를 죽이려고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경은 어떻게 넘을 것이며.

발할라 제국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소문에 불이 붙었다.

현장의 상황을 지켜봤다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증언과 더불어 영상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한 존재들은 크로노스 제국의 ‘그림자’가 분명해. 빌어먹을 새끼들.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을 대놓고 공표하더니, 이제는 발할라의 영토에 발을 들여 로만 드미트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 모두 이 영상을 보라고. 이 안에, 그때의 일이 생생히 담겨 있으니.”

영상을 확인하는 방법은 마법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영상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영상을 확인한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 로만 드미트리에게 벌어진 일들이 빠르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상은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따라 행렬이 이루어졌고, 갑작스러운 그림자들의 공격에 로만 드미트리는 일단 발할라의 사람들을 대피시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장면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본인이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발할라 사람들의 목숨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로만 드미트리가 의도한 바였다.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들을 ‘증인’으로 활용한 것도, 발할라의 사람들을 전장에서 배제하고 목숨을 구제한 것도 영상으로 모든 장면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발할라로서는 직접적으로 살의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 뻔했다.

발할라의 축제에 나선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했다간 나라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기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방관만이 유일했다.

그 말인즉.

발할라가 원하지 않는 상황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짊어지도록 퍼트리는 것이다.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가 공격당한 일에 분노를 표출했고, 이건 명백히 크로노스 제국이 발할라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당장에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들끓었다.

모두가 로만 드미트리를 도와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진실을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지금 크로노스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면, 그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했다.

사람들이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발할라’의 긍지가 무언지를 몸소 보여 준 분입니다. 그런 존재가, 발할라의 영토에서 제국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발할라의 긍지를 입에 올릴 수 없습니다. 발할라의 백성들이여. 일어납시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야만 합니다.”

열병처럼 일어나는 사람들.

그들의 시선이 발할라 황실을 향했다.

도움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발할라 황실은 당연히 병력을 움직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흐르고도.

발할라 황실은, 로만 드미트리를 위한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 * *

발할라 황실.

그들은 대세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크로노스 제국의 행보에 같이 분노하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를 도와주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

“크로노스 제국의 그림자들이 로만 드미트리 말고도 발할라의 주요 인사들을 공격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함으로써 시선을 유도하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발할라의 백성들이여. 혼란을 일으키지 마라. 그들은 지금 발할라를 상대로 적의를 드러냈고, 발할라 황실은 그들이 무엇을 계획했든 단 한 번의 승리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발할라 황실의 입장이었다.

진실은 없었다.

발할라의 주요 인사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발언을 뒷받침할 근거는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다.

발할라 곳곳에서 그림자를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향한 관심을 흩트리려는 수작질이었고, 신중하게 움직인다는 핑계로 병력을 보내지 않는 명분을 만들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죽는다면 책임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죽음을 유도한 것보다는, 이유가 있는 방관이 사람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이었다.

거짓 소문.

발할라는 영악했다.

사람들이 전사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르게, 소문을 활용해서 상황을 주도하는 방법을 알았다.

실제로 크로노스 제국이 발할라의 영토를 침범했다면 그것은 전쟁으로 직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발할라가 허락한 일이었고, 나중에 이번 일은 크로노스에게 적당한 책임을 물어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잘 만들어진 판.

의도적으로 방관했다.

병력을 보내겠다면서 말뿐인 분노를 표출하는 동안, 로만 드미트리의 병력은 그림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첫날.

그림자들은 대놓고 공격했다.

둘째 날부터는 밤 시간대를 이용해서 원거리에서 공격을 시도했고, 로만 드미트리의 병력이 휴식을 취할 때면 어김없이 소음을 통해 본인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마음 편히 쉬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였다.

그리고.

주변에 식수로 활용할 만한 우물과 같은 곳이 있다면, 그림자들은 반드시 그곳에 독을 풀어 외부에서 무언가를 확보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그림자들의 의도가 명백하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하루 이틀 안에 로만 드미트리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발할라의 방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한 달의 시간을 본인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열흘째.

발할라도 슬슬, 로만 드미트리를 도와주려 한다는 근거를 보여 주기 위해 병력을 보냈다.

물론 실제로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워프 게이트의 폐쇄라는 그럴듯한 명분은, 로만 드미트리와의 거리를 핑계로 삼을 수가 있었다.

상황이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 갔다.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발할라의 사람들은, 일상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로만 드미트리의 행보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그 무렵.

로만 드미트리를 찾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발할라 황실이 아닌, 바로 산체스를 따르는 무리였다.

* * *

발할라의 방관.

크로노스의 공격.

산체스는 분노했다.

모랄레스를 통해 진실을 들었기에, 그는 당장 스승을 따르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로만 드미트리를 도와야만 합니다. 만약 스승님이 살아 계셨다면. 그분은 바르보사를 쓰러트리면서 발할라의 긍지를 증명한 로만 드미트리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발할라 황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결국, 한통속인 그들을 믿고 기다릴 바에는, 우리가 직접 발할라의 긍지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시다.”

발할라.

낭만을 아는 나라.

현실에 찌들어 변질하였지만, 모랄레스를 따르던 사람들은 가슴속에 저마다 뜨거운 불길을 품었다.

그들이 병력을 이루었다.

전야제부터 시작해서 무리를 형성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고, 무려 수백이 넘어가는 병력이 산체스를 따라 로만 드미트리를 찾았다.

그들의 힘은 단순히 숫자만으로 평가할 존재가 아니었다.

모랄레스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그들 대부분이 야인이거나 전장에서 평생을 보냈을 정도로 전투에 능숙한 존재들이었다.

해가 저문 시각.

산체스는,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 지금부터 저희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진심 어린 말.

산체스는 목숨을 걸었다.

이번 일로 권력자들과 반대되는 길을 걷겠지만, 모랄레스를 따르면서 애초에 권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발할라의 전사로 태어나. 부귀영화보다는, 그저 가치 있게 죽기를 바랐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나를 도우려 하는 마음은 감사히 받겠다. 하지만 너희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은 품지 마라. 크로노스 제국은, 애초에 너희와 같은 애국자(愛國者)들이 나설 것을 예상했다. 내가 단언하지. 너희의 그 결정이, 너희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다.”

“……괜찮습니다. 살길 바랐다면,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미련한 녀석들.”

산체스와 전사들.

그들은 실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경고에도, 그들은 강한 열망을 보였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이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택을 무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래도, 자의에 의해 이 위험을 감수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군.”

늦었다는 말.

그것은 명백한 의미를 나타냈다.

로만 드미트리가 검을 뽑는 순간, 하늘에서 일어난 번개가 수풀로 우거진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다.

번쩍.

밝아지는 주변.

어둠이 밀려났는데도, 수풀은 어둠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수백.

아니, 그 이상의 그림자들.

그들이 마침내 살의(殺意)를 드러냈다.

* * *

첫날과는 달랐다.

그림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듦과 동시에, 그들의 후방에서 강력한 어둠의 마나가 휘몰아쳤다.

“다크 라이트닝(dark lightning).”

콰르릉.

콰콰콰쾅!

하늘이 번쩍였다.

어둠의 번개가 내리치며, 그 아래 있던 생명체들이 단번에 소멸되었다.

그림자의 한 갈래.

심연(深淵)의 악마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에,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적이다!”

“방어 대형을 형성하라!”

벼락이 내리치는 순간.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마법 방어를 형성했다.

그들은 피닉스 마탑이 합류한 이후로 마법사를 상대하는 전투를 끊임없이 훈련해 왔다.

로만 드미트리가 적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공격에 대비하라는 말에,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대응을 택했다.

그때였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그림자들이,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카앙!

카카카캉!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림자들은 머릿수를 앞세워서 병사들을 공격했고, 한 명에 서너 명씩 달라붙으면서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하게 압박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림자 둘이 앞에서 단검으로 공간을 차단하면, 다른 그림자는 그림자를 일으켜서 병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을 묶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다른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어둠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추진력을 얻은 그림자는, 오라를 일으킨 단검으로 병사의 숨통을 끊었다.

공략하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그림자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흑마법사들은 한둘이 아닌 모양인지 그림자들의 후방에서는 마법이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다크 플레임(dark flame).”

화륵.

화르르르륵.

불길이 일었다.

악마들의 마법이 병사들의 진영을 와해시켰고, 그 틈으로 그림자들이 파고들면서 주변을 난도질해 버렸다.

열흘에 걸친 준비 기간.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알게 모르게 체력이 갉아 먹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그림자들은, 산체스와 그의 병력에도 개의치 않고 지금이 공격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도.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세 명씩 진을 형성하더니, 그간 연습했던 합격술(合擊術)을 발휘해 서로의 허점을 보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일사불란한 대응이었다.

그림자들의 공격은 비상식의 영역에 있는데도, 그간의 경험은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을 일당백의 전사로 만들었다.

그에 반해.

산체스와 전사들은 당황했다.

그림자를 경험한 이들과는 다르게, 그들의 공격은 그림자들을 상대로 통하지 않았다.

파사삭.

“……?!”

흩어지는 몸체.

산체스가 당황했다.

황급히 검을 회수해 공격을 막았지만, 다른 전사들은 그림자들의 공격에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크악!”

“컥!”

일방적인 학살.

로만 드미트리의 병사들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는 말.

그것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대체.’

산체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눈에.

그림자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신은 그림자 하나도 무찌르지 못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는데,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자 감탄이 일었다.

로만 드미트리와 그의 병사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단 말인가.

발할라의 영토에서, 크로노스의 악마들을 상대로도 그들은 밀려나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문제는 흑마법사들이었다.

후방에서 분출되는 마법은, 병사들이 형성한 마법 방어로도 완벽하게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대형을 유지하라!”

로만 드미트리.

그가 공간을 쇄도했다.

그림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로만 드미트리를 막아 보려고 했지만,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오라가 그들의 존재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다수를 공격하더라도 그림자의 능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그림자로 흩어지려는 그들의 몸체는, 마나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서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순간.

흑마법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둠에서 드러난 그들은 거의 열에 달했고,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는 마법이 로만 드미트리를 노렸다.

그런데.

그들은 몰랐다.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한 펠릭스와 마법사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로,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인정했다.

“단언컨대, 주군은 마법사들의 천적(天敵)입니다.”

콰릉.

콰르르르르릉.

사방에서 일어나는 마력.

로만 드미트리가, 마력의 소용돌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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