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4화 (244/615)

244화 필살(必殺) (4)

마법사들의 실종.

피닉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피닉스 마탑주의 실종에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연달아 사라지는 마법사들이 생겨나면서 ‘사건의 연관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다. 마법사들의 실종은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와 관련한 명확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피닉스의 마탑주가 그림자가 되어 나타났다.

로만 드미트리는 숨이 멎어 버린 시체를 찬찬히 살피며, 펠릭스가 말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얼굴 절반을 뒤덮은 화상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사용한 마법의 체계가 피닉스의 마법과 매우 흡사했고, 어둠의 마력을 사용하면서도 마법의 근간은 불의 속성에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불에 강력한 내성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불의 마법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피닉스의 마탑주가 왜 그림자로 전락했느냐다.

그의 실종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크로노스 제국과의 연관성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합리적인 의심은 흑마법을 활용한 강제적인 복종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무림에도 그와 비슷한 사술을 사용하는 존재들이 있었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지(理智)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애매했다.

적어도 로만 드미트리가 상대한 피닉스의 마탑주는,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흑마법은 내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세계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강제적인 복종 방법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크리스.”

“예.”

“마법 영상기를 통해 시체들의 얼굴을 기록하라. 후에, 그들의 신분을 전부 확인할 것이다.”

“……크로노스 제국이 정말 흑마법으로 마법사들을 강제적으로 조종한 것입니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 일은 국제사회에 정식으로 건의해서 문제 삼아야만 합니다. 아무리 크로노스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가 분노한 표정을 보였다.

흑마법.

금단의 영역이다.

공공의 적이 인륜(人倫)을 저버리는 힘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크로노스 제국을 따랐든, 강제적인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든. 중요한 사실은 크로노스 제국이 ‘발각’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흑마법사들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아니, 예전부터 흑마법사들의 존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크로노스의 음지에서 활동하는 세 개의 그림자. 흑마법사들이 그중 하나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현실을 부정했을 뿐 확인하고자 했다면 애초에 알아낼 수 있었겠지.”

크로노스.

그들이 점점 대담해지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발할라 영토를 대놓고 침범하며, 카이로 왕국과 관련한 분쟁에서도 크로노스 제국은 본인들의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힘이 있는 자의 만행. 오히려 그들은, 진실이 전쟁의 신호탄이 되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모두가 눈을 뜬 채로 대륙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륙 정벌의 야욕.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그널은, 크로노스 제국의 욕망이 곧 활화산처럼 분출할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재밌는 일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만약 상식 안에 살아가는 존재였다면.

처음 크로노스의 눈 밖에 난 순간, 진실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병력을 정비하라. 1시간 뒤에. 곧바로 무역 도시로 향할 것이다.”

드미트리까지는 멀었다.

크로노스는 분명히.

로만 드미트리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 *

시간의 싸움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무역 도시에 도착해야 하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절대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언제 도착하든.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만약 무리하게 이동하다가 도착 직전에 크로노스의 공격을 받는다면, 드미트리의 병력은 최악의 몸 상태로 그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확실하게 휴식을 취했다.

인근 도시에 들러 물자를 확보하고, 필요하다면 하루 전부를 투자하더라도 행군의 피로를 풀었다.

그러한 일정 속에.

산체스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림자들과의 전투를 되새길 때면, 분노와 더불어 무력감이 일었다.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대체 어떻게 그림자들을 상대할 수 있었던 거지? 그들 전부가, 발할라의 전사들보다 강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연기처럼 흩어지는 그림자들의 몸을 베어 내며, 우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분명히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의미겠지.’

전투가 끝나고.

로만 드미트리는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지만, 산체스와 발할라의 전사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발할라의 긍지가 걸린 일이다.

이번 선택으로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로만 드미트리가 무사히 돌아가기 위한 발판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그림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필수였다. 또다시 전투가 벌어진다면, 적어도 그림자들을 저승길의 길동무로 삼고자 했다.

한참을 망설였다.

이윽고, 결단을 내린 산체스가 로만 드미트리에게 다가갔다.

“로만 드미트리 님. 제게 그림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승낙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비기의 전수는 예민한 문제였고, 로만 드미트리가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할지라도 상대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만약 자신일지라도 비기의 전수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기에, 부탁하면서도 산체스는 무리한 부탁임을 인지하는 표정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알겠다. 크리스를 통해,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발할라의 전사들은 그림자와의 전투로 의지를 증명했다. 너희는, 내게 기술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담담한 말.

산체스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일었다.

발할라는 전사들의 헌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편견으로 바라보았던 타국의 이방인이, 전사들의 헌신을 인정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행군 도중에 가르침이 진행되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명령대로 크리스가 교육을 맡았고, 크리스는 그들에게 기술의 원리를 설명했다.

“그림자를 공격하는 원리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림자들의 약점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육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때 그 틈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취약한 타이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공략한 방법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마나의 흐름을 간파하고, 육체 간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설명은 간단했다.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받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기술을 터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것.

애초에 훈련 과정에 포함된 일이고, 그것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다 보니 충분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산체스와 발할라의 전사들은 달랐다.

며칠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들은 감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이걸 어떻게 성공했는지 경악한 기색을 보였다.

“드미트리에는 다들 마나의 천재들만 있는 겁니까? 대체 어떻게, 마나의 흐름을 그렇게 쉽게 느끼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산체스의 물음.

그제야, 크리스는 깨달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가르쳐 주었던 것들.

그간의 가르침이, 얼마나 값지고 귀중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확실했다.

발할라 황제는 자신의 충성을 바랐지만, 검사로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끝까지 로만 드미트리의 밑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었다.

상대가 크로노스 제국이든, 발할라 제국이든. 그러한 믿음에는 이제 불신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고 로만 드미트리를 넘어선다면.

그때는.

세상이, 자신을 대륙 제일검이라 부를 것이다.

* * *

발할라가 들썩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동하는 길에 도시에 들를 때면, 발할라의 사람들이 달려 나와 존경심을 표했다.

“아아!”

“로만 드미트리 님을 뵙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열광하는 사람들.

그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고,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절을 하는 시늉도 보였다.

발할라 사람들에게 로만 드미트리는 더는 이방인에 불과하지 않았다.

크로노스 제국의 음모에도 정면으로 돌파하는 모습은, 한때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영웅의 일대기를 연상시켰다.

사람들은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언제고 전사의 세계로 올라갈 위대한 전사야. 그분의 행보를 보라고. 독을 복용하고도 바르보사를 쓰러트리면서 전사의 투쟁심(鬪爭心)을 증명했고, 크로노스 제국이 대놓고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있어. 샐러맨더 대륙에. 이제껏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존재는 없었어.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륙의 양대산맥을, 검 하나로 쓰러트리려는 전사의 긍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발할라가 동경하는 이야기였다.

검 한 자루.

다른 배경적인 문제들은 모두 배제한 채, 로만 드미트리는 오로지 무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약소국의 출신은 오히려 영웅의 특별함을 더했다.

제국과는 다르게 믿을 배경조차 존재하지 않는데도, 강력한 무력이 모든 전제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바르보사는 7번의 공격에 무릎을 꿇었고.

크로노스 제국은 대놓고 암살 의도를 드러냈는데도, 이전의 역사와는 다르게 이례적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살해하는 일에 번번이 실패했다.

영웅의 행보였다.

그간의 일들이 하나하나 거론되면서, 발할라의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특별하게 여겼다.

무역 도시로 향하는 길.

눈과 귀가 집중되었다.

그림자들의 괴롭힘은 계속되었고, 전투가 벌어질 때면 어김없이 승전보가 발할라를 강타했다.

보라!

로만 드미트리가 승리했다!

이번에도, 그의 검에 크로노스의 쓰레기들이 죽어 나갔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면, 로만 드미트리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어 댔다.

그로부터 2주 뒤.

마침내 무역 도시를 코앞에 두었을 때, 드디어 발할라의 병력이 로만 드미트리를 찾아왔다.

* * *

“지금부터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본인을 로드리게스라고 밝힌 사내였다.

발할라의 무력 단체 중 하나인 녹야(綠野)를 이끄는 인물로, 랭킹은 바르보사보다 한 단계 낮은 7위였다.

희소식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상황에, 로만 드미트리는 싸늘하게 반응했다.

“가식은 배제하도록 하지. 너희의 도움은 필요 없다. 크로노스가 발할라의 영토에서 날뛰는 것은, 발할라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써서 일부러 병력을 보낸 모양인데, 서로가 진실을 모르지 않으니 적당한 명분만 챙기고 물러나는 게 좋을 거야.”

“소문대로 정말 대담한 분이시군요.”

로드리게스가 히죽, 웃었다.

바르보사의 죽음.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발할라의 땅에서 로만 드미트리를 두려워할 이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발할라의 음모라고 생각하신다면, 대체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시는 것입니까? 여론은 이미 로만 드미트리 님의 편입니다. 도시 하나를 잡아서 시간을 보내면, 발할라로서는 결국 로만 드미트리 님을 안전하게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일은.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왜 날뛰어서, 상황을 이리 악화시킨단 말입니까?”

로만 드미트리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죽여야만 하는 이유는 명확해졌다.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는 로드리게스의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 또한 가벼운 웃음을 보였다.

같잖다는 듯이.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전제가 잘못되었어. 너희는 날 죽일 수 없다. 크로노스를 불러들이고, 너희가 날 직접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겠지. 너희가 아무리 발악한다고 한들, 내가 발할라의 땅에서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로드리게스의 표정이 굳었다.

살벌하게 일어나는 기세가,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내가 드미트리로 돌아가는 대로 너희는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러니까. 날 죽이려거든 최선을 다해라. 지금이 아니라면, 이보다 좋은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로만 드미트리.

그는 미친 것이 확실했다.

발할라의 땅에서, 크로노스 제국의 공격을 받으면서.

대륙의 양대산맥을 모두 적으로 돌려놓고, 그는 대담하게 두 제국 모두에게 공격할 명분을 내주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앞으로 며칠.

로만 드미트리가, 정말 드미트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로드리게스는 본능적으로,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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