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드미트리에 드리운 그림자 (5)
의식이 확장되었다.
1m 거리에 스벤이 존재하고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포착하던 감각이, 더욱 세밀하게 주변의 상황을 파고들었다.
스벤이 내뱉는 호흡,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다양하게 파악되는 정보는 확률적으로 높은 선택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바로 지금처럼.
확-
콰르르르르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스벤의 공격이 스쳐 지나갔고, 스벤과 케빈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얽혔다.
순간.
번뜩.
검이 공간을 갈랐다.
케빈의 기습적이고 빠른 공격에, 스벤 또한 물러나지 않고 오라를 일으켰다.
검과 검의 격돌은 명백하게 케빈에게 불리한 싸움이다. 서로 격돌하기 직전, 케빈은 방향을 틀더니 땅을 박찼다.
타닥.
정면에서 왼쪽으로.
스벤의 시선이 따라갔다.
그런데 막상 왼쪽을 확인했을 때는, 케빈이 마치 귀신처럼 오른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콰르르르르릉.
극성의 보법.
광마의 무공이었다.
상대의 눈을 현혹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고, 스벤이 드러내는 찰나의 틈을 케빈은 놓치지 않았다.
스벤의 다리를 얕게 베었다.
그게 케빈이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었고, 스벤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들어간 대가로 케빈의 머리 위로 벼락같은 오라가 떨어졌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케빈이 빠졌다.
절대 정면으로는 상대하지 않았다.
잠식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들, 스벤의 공격은 범접 불가의 영역임을 본능이 끊임없이 말했다.
[정면!]
[앞이다!]
일심동체(一心同體)였다.
머릿속을 장악한 자아들이 경고음을 내뱉는 순간, 케빈은 어김없이 고개를 틀어 스벤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몰아치는 오라의 파동만으로도 살갗이 전부 뜯겨 나갈 것만 같았다.
스벤은 득달같이 따라붙으며 연계 공격을 펼쳤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케빈의 시선은 상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불리한 승부다.
백 번을 공격해도.
한 번의 공격에 죽을 것이다.
케빈의 달아오른 감각은, 서로 뒤얽히는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정면 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해!”
스벤이 즐겁다는 듯이 소리쳤다.
로만 드미트리의 부재.
변수를 창출하는 위험 요소가 사라진 이곳에, 자신을 막아 낼 검사는 존재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겨우 3성의 오라 검사가 보여 주는 모습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의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기에 정면 대결을 피하는 방식이라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벌써 십수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는데, 케빈은 철저하게 오라의 충돌을 배제하면서 시간을 어떻게든 끌고 있었다.
마치 짐승과도 같았다.
본능적인 움직임.
일정한 체계가 없고, 자신의 공격에 따라 즉각적으로 변화하면서 악착같이 대응했다.
고로.
확신했다.
‘드미트리는 절대 살려 둘 수 없다.’
이 땅.
이 나라.
위험한 존재들이다.
아직 약소국에 불과한 세상에, 케빈과 같은 인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때 제국을 건국한 역사적인 인물들처럼, 로만 드미트리는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흘러가는 시간.
드미트리는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지금 짓밟지 않는다면, 앞으로 1년 뒤에는 또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지 몰랐다.
“재밌는 시간이었다.”
콰르르르릉.
마력의 확장.
어둠이 폭발했다.
스벤의 마력이 주변을 장악했고, 방금과는 완전히 다른 힘과 스피드를 보였다.
콰콰콰쾅!
스벤이 공간을 치고 들어갔다.
케빈은 분명히 적의 존재를 인식하고 반응했는데도, 어느새 나타난 스벤의 검이 자신의 살갗을 가르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마나를 빠르게 일으켰다.
몸을 보호하는 마나가 공격의 피해를 어떻게든 차단하는 사이에, 케빈은 역으로 상대의 급소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과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케빈은 짐승처럼 허점을 노렸으나, 애초에 이 승부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6성과 3성.
단순히 2배의 차이가 아니다.
까마득한 경지의 차이는, 사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콰앙!
콰콰콰콰쾅!
충격이 일었다.
서로의 공격이 격렬하게 부닥치자, 케빈의 오라가 급격하게 사그라지면서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잠식의 단계로도 벌어들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다.
처절하게 밀리는 상황에도, 케빈은 상대를 막겠다는 ‘단 하나의 욕구’를 잃지 않았다.
그것은 광기였다.
어떻게든 목적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생명이 타들어 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공방을 주고받았다.
번뜩.
피가 튀었다.
상대를 몰아붙인 스벤의 검이, 마침내 케빈의 가슴팍을 갈랐다.
살이 찢겨 나갔다.
훤히 드러나는 가슴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어났지만, 케빈은 상대를 바라보며 오히려 웃고 있었다.
스벤이 말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그때였다.
스벤은 곧바로 검을 들어 옆을 막았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옆으로 밀려나는 스벤.
시선을 돌려 확인하자, 오라를 극성으로 끌어 올린 페르난도의 모습이 보였다.
* * *
페르난도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가 도착함과 동시에, 헨더슨과 맥버니와 같은 인물들이 차례로 현장에 나타났다.
‘,,,,케빈.’
페르난도가 케빈의 상대를 힐끗, 살폈다.
케빈은 바닥에 시체처럼 널브러졌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었고, 가쁘게 내쉬는 숨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몰랐다.
6성의 오라 검사를 상대로 케빈은 5분에 달하는 시간을 버티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페르난도는 그런 케빈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미련한 녀석.’
사실.
애초에 이곳에는 드미트리 공작이 존재하지 않았다.
크로노스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비밀 공간’으로 대피시켰지만, 케빈은 일부러 이 자리에 남았다. 그래야만 했다.
자신과 같은 전력이 드미트리 공작의 방을 지키지 않는다면, 드미트리 공작의 부재를 눈치채고 그림자들이 추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련한 존재였다. 적당한 타협으로 길을 열어도 되었을 텐데, 케빈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단 한 발자국도 지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꽉.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페르난도는, 스벤을 경계하며 주변 동료들에게 말했다.
“상대는 6성의 검사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공격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페르난도를 비롯한 드미트리의 검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스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선두는 페르난도가 맡았다.
그나마 스벤과 공방을 조금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드미트리에서 그가 유일했다.
콰앙!
콰르르르릉.
정면에서 부닥쳤다.
페르난도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은 충격이 일었지만, 오히려 오라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면서 상대를 밀어붙였다.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도 4성의 오라를 각성한 존재였다.
무공을 터득하며 급격하게 발전한 그의 오라는, 6성의 오라를 상대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페르난도가 정면을 압박하자, 사방에서 드미트리의 검사들이 달려들었다.
확.
콰앙!
헨더슨이었다.
페르난도의 공격과 절묘하게 들어맞는 타이밍에, 헨더슨은 스벤의 머리를 노리고 검을 내리찍었다.
빠른 반격에 헨더슨이 튕겨 나가자, 이번에는 맥버니가 공간을 파고들며 급소를 노렸다.
동시에.
다른 검사들이 뒤를 노렸다.
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협공(挾攻).
드미트리의 검사들은, 로만 드미트리와의 훈련에서 다양한 기술을 훈련했다.
“성가신 새끼들.”
콰르르르르릉.
스벤이 오라를 폭발시켰다.
오라의 파동만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물리치더니, 앞으로 치고 나가며 페르난도를 향해 강력한 일격을 시도했다.
대기가 일그러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오라였다. 이건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페르난도는 빠르게 스텝을 밟았고, 격돌하기 직전에 몸을 틀어 피했다.
“파이어 캐논(Fire Cannon).”
콰앙!
화르르르르륵.
녹스였다.
성벽 위에는 펠릭스가 있다면, 이곳에는 녹스가 나타나 협공의 균형을 형성했다.
스벤으로서도 강력한 화염의 불길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림자의 능력이 아예 통하지 않았고, 몸을 집어삼키려는 불길에 황급히 오라를 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동시에 페르난도와 같은 검사들이 치고 들어갔다. 끊임없이 훈련했던 상황에서, 그들은 스벤과 같은 강자를 상대하는 법을 익혔다.
콰르르르릉.
페르난도가 정면에서 압박하고.
콰콰쾅!
사방에서 다른 검사들이 급소를 공략했다.
정신없는 공방이었다.
스벤이 정면을 막으면 양쪽에서, 양쪽을 막으면 앞과 뒤에서, 그것을 모두 막아서 반격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녹스의 마법이 날아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스벤이 밀려나고 있었다. 케빈이 확보한 5분의 시간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희 모두를 죽여야겠다.”
스벤은 아직.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연(深淵)의 악마들은 저마다의 힘이 다르다.
악마로 살아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들은 현세에 허락되지 않는 힘을 얻게 되고, 로만 드미트리가 상대했던 피닉스의 마탑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스벤과 미스틱. 이번 임무에 투입된 존재들은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모두 수백 년을 살았던 존재들이다.
케벤이 보여 준 모습은 찰나의 기적일 뿐, 애초에 스벤을 쓰러트린다는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콰앙!
땅을 밟았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변이 뒤흔들리더니, 어둠의 마력이 퍼져 나가 주변의 존재들을 휘감았다.
어둠의 속박.
스벤의 힘이 확장되었다.
동시에 공간을 파고들며, 페르난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일단 이 녀석부터.’
페르난도.
협공의 중심이었다.
그를 처리하는 순간, 드미트리의 검사들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일그러지는 페르난도의 얼굴.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 * *
일련의 상황.
헨더슨은 눈을 부릅떴다.
페르난도가 죽는다면, 스벤을 쓰러트리는 것이 어려워지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대로라면 끝이다.’
문득.
과거의 기억에 빠져들었다.
평범한 평민 출신이었던 헨더슨은,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반해 전혀 무관했던 검사의 길을 택했다.
지난 시간.
헨더슨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전장에서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냈고, 로만 드미트리를 대표하는 자리에서도 상대를 쓰러트리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을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자신은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다.
딱.
노력한 만큼.
그렇게 발전했다.
주변에서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는 이들이, 자신의 재능이 범인(凡人)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크리스는 드미트리의 섬광이라고 불리면서, 로만 드미트리를 제외한 드미트리 최고의 검사가 되었다.
사실 크리스의 성장은 당연한 결과다.
애초에 드미트리의 천재라고 평가받았던 존재가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등에 날개를 달고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들 또한 특별했다.
케빈은 한참이나 어린 소년에 불과했는데 크리스에 버금갈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페르난도는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자마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영역에서 헨더슨이 특별함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볼칸과 푸키는 전쟁 용병 출신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보유했다면, 맥버니는 외팔이 검사에 불과하나 전장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한때.
생각에 빠졌다.
나름대로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무리에서 자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들 각자만의 재능을 발전시킬 때.
헨더슨은 중간에 있었다.
어중간한 재능이었고, 그렇기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정말 만약에.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찾아온다면. 다른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평범한 재능일지라도. 나 같은 사람도 감당할 수 있는 일을.’
그날의 결론을 항상 가슴에 품었다.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헨더슨은 오라를 폭발시키며, 전력을 다해 뛰어들었다.
콰직!
오라가 부서졌다.
엄청난 충격이 일며, 헨더슨은 눈을 부릅뜨고 스벤을 보았다.
놀란 표정의 스벤.
설마 페르난도의 목숨을 노린 공격에, 대신 죽겠다고 뛰어드는 놈이 존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슴팍이 찢겨 나갔다.
헨더슨은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도, 오라를 일으켜 상대의 힘에 최대한 대항했다.
그 순간.
“고맙다.”
페르난도가.
헨더슨을 지나치며, 스벤을 향해 오라를 폭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