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7화 (267/615)

267화 제1차 대륙 전쟁 (5)

사람들은 처음에, 백발의 마법사가 8서클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듣도 보도 못했기에.

하늘이 번쩍이는 그때까지도, 그들은 성벽에 겹겹이 두른 마법 방어진의 능력을 철석같이 믿었다.

번쩍.

하늘이 빛났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에서, 하나의 빛줄기가 그대로 성벽에 작렬했다.

콰앙!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었다.

마법 방어진이 발현되며 수십 개의 마법 실드가 허공에 형성되었지만, 그것을 부술 듯 작렬하는 번개에 카이로, 드미트리 연합의 병사들이 균형을 잃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넋을 잃은 얼굴로 올려다본 하늘은 그야말로 멸망의 전조와도 같았고, 마법 실드와 번개가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며 하늘을 전부 뒤덮었다.

문제는.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하얗게 물들어 가는 하늘은, 분노를 토해 내는 것처럼 연속해서 번개를 내리쳤다.

콰르르르르릉.

콰앙!

콰콰콰콰쾅!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마법 방어진을 설치했던 마법사들은 7서클 마법일지라도 최소 열흘은 버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건만,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마법 실드에 균열이 일어나며 차례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마법에 무지(無知)한 사람들조차 돌아가는 광경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법 방어진은 채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부서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때.

반덴버그 후작이 소리쳤다.

“마법 방어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여라! 크로노스의 마법사도 오랜 시간 마법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을 번다면, 분명히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그것은 발악이었다.

확실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상식의 영역에서 바라는 희망.

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마력을 일으키며 마법 방어진에 마력을 불어넣었지만, 그들이 맞닥트린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크악.”

“우웩.”

마법사들이 나가떨어졌다.

마력을 불어넣는 행위는 링크(link)를 의미했고, 마법 방어진에 작렬하는 충격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마법사들에게도 전달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마법사들은 버티질 못했다.

어떤 이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어떤 이는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냈다.

특히 서클이 낮은 마법사들은, 간접적인 충격만으로도 서클이 부서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확실했다.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백발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힘은, 반덴버그 후작이 그간 경험했던 상식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파비우스 백작의 말이 이런 의미였단 말인가.’

대화를 끝내고.

파비우스 백작은, 수뇌부들에게 뱀포드 공작이 어떤 말을 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참으로 오만한 발언이었다.

크로노스의 진짜 전력을 알고 나서는 전쟁에 흥미를 잃었다는 발언은,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의 광경은 달랐다.

카이로와 드미트리 연합은 상대의 공격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것에 대항할 방법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목을 내놓은 사형수처럼, 마법 방어진이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멍하니 지켜보았다.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크로노스와의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를 실감하는 것 같았다.

‘백발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은 분명히 7서클 이상이다. 그가 정녕 8서클의 마법사라면, 크로노스 제국은 그와 같은 존재를 세상에 밝히지 않고도 대륙 제일의 강국(強國)이라고 불렸다.’

숨이 막혔다.

겉으로 드러난 전력만으로도 대륙 정벌을 말할 수 있는 나라가 크로노스 제국인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전력마저도 상상을 초월한다면 이번 전쟁은 승산이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히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약소국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그간 보여 준 행보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크로노스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로노스의 역사는 켜켜이 쌓였고, 일개 개인의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 순간.

콰앙!

마법 방어진이 부서졌다.

그리고 곧바로 내리친 번개는, 성벽에 작렬해 철옹성(鐵甕城)이라고 믿었던 성벽을 단번에 무너트렸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성벽이 붕괴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겨우 10분.

카이로, 드미트리 연합은 절망적인 현실을 맞닥트렸다.

* * *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

뱀포드 공작은 벼락같은 명령을 내질렀다.

“전군, 공격하라!”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제국의 병력이 일제히 돌진했다.

전쟁에서 마법사들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나, 결국 마지막을 결정짓는 것은 병사들의 백병전(白兵戰)이었다.

성벽의 존재 의미가 상실한 이상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병사들의 모습에, 카이로와 드미트리 연합으로서도 가만히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파파파팟.

화살이 발사되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제국의 병사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지만, 그것만으로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군을 모두 막아 낼 수 없었다.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화살을 발사하는 궁수들은, 손을 벌벌 떨면서 이대로라면 적들과 맞닥트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였다.

성벽 위로, 마법사들이 나섰다.

“버닝.”

화륵.

화르르르르륵.

펠릭스와 피닉스의 마법사들이었다.

펠릭스의 존재감이 활활 불타오르더니, 강력한 화염 마법을 발현했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무려 7서클의 마법이었다.

펠릭스는 그동안 마법을 갈고닦았고, 버닝의 힘을 빌려 일시적으로 7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크로노스 제국군으로서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콰콰쾅!

“크아아아악.”

“뜨, 뜨거워!”

적들이 화염에 휘말렸다.

불길에 직접 닿는 이들은 새카맣게 타 버렸고, 화염의 영역에 존재하는 이들은 기도를 태워 버리는 불길에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피닉스의 마법사들도 연속해서 마법을 발현했다.

사방에서 화염이 일어나며, 파도처럼 밀려드는 병력이 일순간 증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닉스.

확실히, 마법의 위력에서만큼은 상위 클래스의 마법사들이었다.

서부 전선의 수뇌부들이 수성을 확신한 이유는, 완벽한 준비와 피닉스 마법사들의 존재를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들의 마법에 상황은 정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발의 마법사라는 변수가 존재했다. 그가, 펠릭스와 마법사들의 활약에 마법을 발현했다.

“윈드 스톰(Wind Storm).”

휘잉.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은, 펠릭스가 일으킨 파이어 스톰과 맞닥트리면서 격렬하게 불타올랐다.

그로 인해.

파이어 스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바람을 동반한 불길이 주변을 휩쓸어 버리는 것이 파이어 스톰의 능력인데, 윈드 스톰은 파이어 스톰이 어디로도 이동하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서클의 차이는 절대적이었고, 윈드 스톰의 바람은 어느 순간 파이어 스톰을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다.

팟-

바람이 흩어졌다.

불꽃이 흩날리는 모습에, 서부 전선의 수뇌부들은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발의 마법사.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마법사가 전장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그것도 8서클의 마법사라면 단 한 명에 의해 전세(戰勢)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증명했다.

천외의 경지는 달랐다.

마법 방어진을 부수고 성벽을 무너트리고, 단 한 번의 마법으로 펠릭스의 마법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결국.

“적들이 들어온다!”

“막아!”

성벽으로 제국군이 밀려들었다.

그들이 흉악한 얼굴로 서부 전선의 병력을 공격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번개 같은 오라가 떨어졌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릉.

“더는 지나갈 수 없다!”

강력한 오라의 폭발.

적들을 단번에 휩쓸어 버린 존재의 정체는, 바로 니콜라스 백작이었다.

* * *

한때 카이로 제일검(第一劍)이라고 불리던 사내.

그가 나타났다.

밀려드는 적군의 앞을 막아선 그가, 오라를 일으키더니 적들을 베어 버렸다.

번뜩.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에 그치지 않고, 니콜라스 백작은 앞으로 치고 나가며 적들이 성으로 들이닥치지 못하도록 무차별적으로 베었다.

일개 병사들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무려 5성의 검사가.

그것도 카이로 제일검이라고 불렸을 만큼 검술의 완성도도 뛰어난 그가 길을 막으니, 들이닥치는 족족 목이 날아갔다.

로만 드미트리와의 랭킹전.

그날, 니콜라스 백작은 치명상을 입었다.

한동안 요양에 전념해야 할 만큼 대단한 부상이었지만, 오히려 그로서는 마음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랭킹 1위라는 칭호.

그로 인한 부담감은 알게 모르게 상당했었고, 다니엘 카이로가 완벽하게 권력을 틀어쥐면서 복잡한 문제에서는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몸을 완벽하게 회복했다.

아니, 그때보다도 더 강력해진 기량에, 니콜라스 백작의 존재감이 폭발했다.

“죽어!”

콰르르르르릉.

크로노스의 기사가 달려들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정면에 둘, 양옆으로 셋.

그들은 각기 3성과 4성의 오라를 일으키며 니콜라스 백작을 압박했지만, 니콜라스 백작은 간결한 스텝으로 적들의 공격을 차분하게 막아섰다.

빛이 번뜩였다.

격렬한 충격이 일며 니콜라스 백작이 언뜻 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 번의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적의 목이 날아갔다.

“……?!”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니콜라스 백작이 막아 냈다는 사실에 추가 공격을 시도하려는 순간,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리고 그때.

다른 오라 검사들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와인이 익어 가듯, 니콜라스 백작의 검술이 꽃을 피웠다.

동시에.

“숙여!”

번뜩.

니콜라스 백작의 머리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그는 바로 크리스였다.

로만 드미트리와의 작전을 수행한 이후로, 그를 비롯한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곧바로 서부 전선으로 복귀했다.

적진에 남은 사람은 로만 드미트리뿐.

크리스는 성벽이 무너지는 상황에, 오라를 발현해 니콜라스 백작을 도왔다.

빨랐다.

니콜라스 백작은 힐끗, 크리스의 얼굴을 살폈다.

‘크리스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오라의 차이를 떠나.

자신일지라도 확실하게 막아 낸다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완성도가 높은 일격이었다.

소문대로였다.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수하들 또한, 그에 못지않은 괴물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도 아직 어린 나이에 불과하건만, 그가 보여 주는 검술은 찬란한 미래를 의미했다.

그에 이어 드미트리의 검사들이 차례로 나타나며 성벽을 틀어막았다.

8서클 마법사라는 변수에 생각보다 일찍 성벽이 무너졌지만, 해일처럼 밀려드는 적군들은 좁은 공간을 뚫을 만큼 예리하지 못했다.

아직.

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니콜라스 백작이 오라를 일으키며, 목에 마나를 실어 소리쳤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카이로, 드미트리의 병사들이여! 포기하지 마라! 서부 전선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 * *

성벽 위.

플로라 로렌스는 전장을 살폈다.

탁, 탁.

사다리를 걸어 크로노스 제국군이 성벽 위로 진입을 시도했다.

먹구름이 일어난 하늘은 시도 때도 없이 벼락이 떨어졌으며, 지상에서는 무너진 성벽으로 진입하려는 적군들과 성문을 뚫으려는 이들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플로라 로렌스는 적극적으로 화살을 발사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돌아가는 상황을 분석했다.

‘우리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빨라도 최소 3일의 시간이 필요해. 성벽을 내세워 버틴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첫날부터 성벽이 무너졌다면 상식적인 계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게다가.

문제가 있었다.

멀리서 상황을 관망하듯 지켜보는 8서클 마법사의 존재는,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지금의 상황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어쩌면 크로노스의 카드는 그뿐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백발의 마법사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대마도사였고, 그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가 추가로 나타날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했다.

크로노스 제국.

랭킹의 상위권을 발할라와 같이 독식하는 나라다.

로만 드미트리가 없는 상황에서, 랭커들이 나타난다면 백병전에서조차 승산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서부 전선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일까. 로만 드미트리가 바란 것은 작전을 실행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 굳이 서부 전선을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야. 무너진 성벽을 지키는 일은 예상보다 큰 희생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 차라리 빠르게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어.’

크로노스와의 전쟁.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상대가 되질 않았다.

강군이면서도 인해전술(人海戰術)을 사용하는 그들을 상대로는,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했다가는 언젠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로서는 진심으로 이 상황이 공포로 다가왔다.

크로노스라는 압도적인 존재에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믿었다.

그가.

반전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기에, 겨우 3일의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퍽!

성벽으로 올라선 적의 미간에 화살을 꽂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뛰어 반덴버그 후작에게 향했다.

“지휘관님!”

그 또한.

직접 전투에 가담했다.

피로 얼룩진 반덴버그 후작이 플로라 로렌스를 확인하자, 그녀는 다급하지만 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서부 전선을 버리고, 플랜 B를 명령해 주십시오!”

플랜 B.

최악의 상황에는, 그에 걸맞은 결단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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