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드미트리로 향하는 사람들 (2)
팔락.
서류를 넘겼다.
빽빽하게 본인을 어필하는 내용을 읽으며, 조나단 기사단장은 적잖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이 정도의 검사가 기사단도 아니고 일반 사병으로 지원했다는 건가.”
“예. 지난 사병 모집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았다는 사실을 고려했습니다만, 그래도 ‘사병’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이런 사람들이 몰려들 줄은 몰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무리 많이 받아도 귀족 가문에 귀속되는 것보다는 턱없이 적은 임금이지 않습니까?”
접수처의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타당한 말이었다.
드미트리가 다른 가문들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고는 해도, 이번 모집은 엄연히 사병을 받아들일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서류의 내용을 보니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이름을 올렸다.
[파비르]
-올해 나이 39세. 움베르토 명문 가문에서 ‘기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3성의 오라를 발현할 수 있습니다. 귀족의 호위와 같은 예절과 실력이 뒷받침되는 많은 임무를 맡았으며, 기사단을 그만두기 직전에 부기사단장 직을 맡았다는 사실은 제 지휘 능력을 증명하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경험한 전쟁으로는…… 등등이 있으며, 최근 드미트리 가문이 크로노스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때, 자진해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여관에서 말하던 사내 중 하나였다.
파비르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서류 심사에 합격하기 위해서 자신의 강점과 경력을 구구절절 설명해 주었다.
사실상 프리패스였다. 이만한 사람이 ‘사병’으로 지원하겠다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대규모 용병단 부단장]
[특급 용병]
[기사]
[오라 검사]
파비르 외에도.
다양한 스펙이 있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조나단 기사단장이 드미트리에 충성을 맹세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동료들은 대체 왜 드미트리로 가냐는 말을 할 정도로 드미트리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서류로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들의 스펙만 보더라도 달라진 위상을 증명했고, 무엇보다도 최근에 옛 동료들로부터 청탁 연락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내 아들이 이번에 오라를 각성했는데…… 드미트리 기사단에 넣어 줄 수 있겠니?”
“조나단. 잘 지냈어? 아니, 그냥 안부나 물으려고. 그래, 예전에 너와 같이 훈련하면서 정말 힘들었었는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드미트리 기사단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옛정을 생각해서, 날 좀 데려가 줘.”
그들의 연락.
처음에는 안부를 묻던 사람들은, 마지막에 꼭 드미트리에 받아 달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그렇게 연락하는 사람들의 스펙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오라 검사라고 불리는 그들이 이렇듯 드미트리에 목을 매는 이유는, 합당한 보상과 최근에 퍼진 소문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크로노스와의 전쟁에서 크리스와 케빈은 자신보다 강한 오라 검사들을 쓰러트렸어. 그때, 드미트리가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드미트리를 향한 오라 검사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 어쩌면 알렉산드르를 넘어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 드미트리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받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이해는 되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가르친 기술.
그것을 전수받은 한 사람으로서, 드미트리의 검술은 이만한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계속해서 서류를 넘겼다.
기본적인 사항들을 확인했는데, 순간 조나단 기사단장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서류 안.
[프레드]
-크로노스 제국, 멤피스 가문의 기사단장 출신
단 하나의 경력.
조나단 기사단장을 놀라게 만든 사람은, 아델리안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바로 그 로브인이었다.
* * *
정신없는 하루였다.
전쟁이 끝나고부터 밀려드는 일들을 처리하던 멤피스 후작은, 드미트리와 관련한 소식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멍청한 녀석들. 한번 승리했다고 전부 드미트리에 붙는 꼴이라니.”
최근.
드미트리 가문의 사병 모집은 뜨거운 감자였다.
단순히 드미트리 내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의 출신들이 시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상황에 난리가 났다.
귀족들로서는 가문의 검사들을 지키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평소에는 1실버라도 덜 주려고 아득바득 발악하던 사람들이, 자진해서 1골드를 더 얹어 주겠다면서 검사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황당했다.
멤피스 가문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어쩜 이리 멍청할 수 있을까? 오델리아의 소멸은, 크로노스 제국의 변심으로 배반한 것이 아니라 오델리아가 쓸모도 없는 주제에 기생하려 했기 때문이거늘. 능력이 있고 제국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은, 대륙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늘 승자로서 남게 되겠지.”
관점이 달랐다.
사람들은 오델리아의 소멸로 인해 더는 크로노스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애초에 왕국 연합이라는 ‘무늬’만 들고 온 오델리아는 그렇게 버려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오델리아가 움베르토, 프랑크, 레드포드의 동의를 구해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서 협력을 말했다면, 크로노스 제국은 그들의 존재를 이용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델리아, 단 하나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왕국 연합에 둘러싸여 있는 그들은 전력의 분산만 낳을 뿐이고, 크로노스 제국으로서는 그들의 영토를 점령하고 대륙 정벌의 교두보로 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이 그렇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크로노스는 대륙을 정벌할 것이다.
멤피스 후작은, 제국의 유구(悠久)한 역사를 믿었다.
‘황제 폐하는 우리에게 약 일 년의 시간을 예고했다. 그 이후에, 대륙 정벌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지금은 복잡한 문제들로 한발 물러나는 것을 택했지만, 크로노스가 전력을 드러내는 그때부터는 드미트리가 어떠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상황을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심연.
그곳엔 악마들이 살았다.
드미트리와의 전쟁은, 아직 일부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멤피스 가문의 기사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그는, 이상하게 불편한 얼굴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프레드 기사단장이 일주일째 출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성실하던 프레드가? 무슨 일이 있겠지. 사람을 보내, 프레드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하라.”
“그게 사실…… 크음. 이걸 어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며칠 전에, 프레드 기사단장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때는 바로 보고를 하지 못했습니다만, 오늘 프레드 기사단장이 가족들과 같이 워프 게이트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뚝.
“뭐?”
행동을 멈추었다.
멤피스 후작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며, 기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사가 말했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의 종착지는 바로 ‘코르타스’였습니다.”
코르타스.
로만 드미트리에 의해 점령당했던 땅.
혹은, 동부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 게이트를 보유한 장소.
처음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멤피스 후작이, 이윽고 경악으로 물든 표정을 보였다.
“설마 지금, 멤피스 가문의 기사단장인 프레드가 드미트리로 도망쳤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냐?!”
그건 정말이지.
멤피스 후작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 * *
일련의 상황.
크로노스 황제에게 보고되었다.
오델리아의 소멸과 찰튼 남작의 죽음은 생각보다 큰 균열을 낳았다.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이대로라면, 제국의 인재들이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멤피스 후작이 분노하며 말했다.
프레드의 배반.
당장에라도 찢어발기고 싶었다.
가문의 기사를 잃은 사람들을 멍청하다며 놀렸었는데, 설마 자신의 기사단장이 야반도주를 택할 줄은 상상도 하질 못했다.
최근에 멤피스 후작은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프레드 기사단장을 만나지도 못할 만큼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크로노스 황제가 말했다.
“재밌는 일이구나.”
웃었다.
알렉산드르의 의식.
현재 빙의한 상태였고, 로만 드미트리가 일으킨 엄청난 파란에 진심으로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련의 상황.
단순히 오델리아를 소멸시키고, 찰튼 남작을 죽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패배.
크로노스 제국이 역사적으로 처음 패배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크로노스 제국도 무적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크로노스 제국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 크로노스 제국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충성을 부르짖는 이유는, 그만큼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리는.
차선책을 부여했다.
크로노스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왕실 기사단에 명하라. 지금부터 반역 행위를 일삼는 이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모조리 몰살하라. 크로노스 제국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드미트리를 따르겠다고 목숨을 거는 멍청한 녀석들이다. 그런 존재들은 크로노스의 기강만 흩트릴 뿐. 크로노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 아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멤피스 후작이 물러났다.
자신의 명령에.
크로노스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크로노스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공포였다.
‘로만 드미트리. 자신의 사병들에게는, 드미트리만의 특별한 기술을 알려 준다지.’
흥미가 돌았다.
알렉산드르는 오라의 창시자다.
비록 도중에 포기하면서 마법사로서의 길로 갈아탔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힘도 절대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구자(先驅者)로서 자신이 발굴해 낸 힘과 진짜 무공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고자 했다.
그것은 어쩌면.
열등감일지도 몰랐다.
드미트리와의 관계를 떠나, 스스로 만들어 낸 힘도 대단한 업적이라는 사실을 증명받고 싶었다.
그렇기에.
크로노스 황제와 같은 자신의 조각들을 보냈다.
그들이 합격한다면.
빙의를 통해, 직접 무공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 *
드미트리의 사병 모집.
접수한 인원은 무려 십만 명에 달했다.
그들이 모두 검을 쥐고 싸울 수 있을 만큼의 나이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드미트리 내부에서도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공고 한 번에 십만 명을 불러들일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낼 줄은 생각지 못했다.
문제는.
테스트할 인원이 너무 많았다.
일차적으로 거르고도 수만에 달하는 사람이 남은 상황에, 루카스를 비롯한 하오문의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간단한 자질 테스트와 신분 조사를 진행했다.
본인이 기재한 정보와 조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탈락.
그리고 담력 테스트와 같은 이전에 진행했던 방식을 활용해서, 드미트리의 테스트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지를 여러 방법을 통해 확인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합격의 여부는 무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의지가 나약한 이들은 우수수 떨어졌고, 보름에 걸친 테스트 끝에 3차 테스트 명단이 확정되었다.
테스트 당일.
이전 테스트에서 살아남은 5천 명의 참가자가 몰려들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이중 딱 500명만을 선별할 것이고, 나머지 인원은 사병은 아니더라도 드미트리 군에 입대할 기회를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인지 다들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쟁의 분위기가 약했지만, 지금부터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쟁자였다.
그때였다.
“크리스다.”
“드미트리의 섬광!”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의 선두에는 익숙한 인물이 있었는데, 크리스는 사람들을 가로지르더니 모두가 보는 앞에 섰다.
크리스가 말했다.
“지금부터 3차 테스트 방식을 설명해 주겠다. 테스트 방식은 간단하다. 내 뒤로 너희들의 선배들이 있다. 너희들과 똑같이 테스트를 통과하고,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뒤에 지금까지 드미트리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존재들이지. 너희들은 호명된 순서부터, 내 뒤에 있는 선배 중 한 명을 택해서 대련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대련.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크리스의 뒤에 도열한 사람들은 케빈과 같이 얼굴이 알려진 존재도, 그렇지 않은 존재도 있었다.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3차 테스트의 합격 조건은 아니다. 승리한 사람들은 확정적으로 마지막 테스트로 넘어가겠지만, 패배하더라도 유의미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 사람은 합격이다.”
도전자들.
그들은 대부분 긴장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명성을 떨친 존재들이 많기에, 그들은 드미트리의 사병들을 상대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재밌는 상황이었다. 크리스는 웃음을 보이며,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나 또한 대련 상대로 지목할 수 있다. 더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 지금부터, 제3차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긴장감이 차올랐다.
마침내.
“첫 번째 참가자, 파비르 앞으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