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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화 (312/615)

312화 역작(力作) (3)

발렌티노 후작은 질문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을 황홀경에 빠트린 이 검이 겨우 하품이라는 사실을, 로만 드미트리가 부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제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은 맞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품’의 품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어 단계적으로 완성도가 상승했을 뿐이지, 노-네임 시리즈의 검들은 이전에 제작했던 것들보다 몇 단계 발전했습니다.”

경악스러운 대답이었다.

말문이 턱 막히는 상황에, 발렌티노 후작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써드 노-네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완벽했다.

대체 어떤 부분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수집가의 안목에서는 이보다 완벽한 형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검날과 적당한 그립감. 게다가 마나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단언컨대 사람들이 말하는 명검의 기준을 압도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가 로만 드미트리가 아니었다면.

허세를 부리지 말라면서 목소리를 높였겠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조심스럽게 진실을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마지막 네 번째 검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장인에게 있어.

검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제작하는 과정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한스가 검을 대령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서 들자, 발렌티노 후작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다.

“……아아.”

신음이 새어 나오듯.

감탄사를 흘렸다.

조명에 반사되는 검의 모습을 확인하자,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의문이 단번에 사라져 버렸다.

‘세상에 이런 검이 있다니.’

수집가들 사이에는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말이 있다.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는 존재.

진짜 보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한눈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마력(魔力)을 발산한다고 말이다.

그때는 측정기와 같은 복잡한 과정도 필요하지 않다.

직접 만져 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짜르르 육체를 관통하는 전율은 눈앞의 물건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게 된다고 했다.

지금이 그랬다.

검을 어루만지는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발렌티노 후작은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왜 노-네임 시리즈를 실험작이라고 표현했는지 알겠어. 이런 보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 과정마저도 예술적이었겠지. 로만 드미트리는 이제 장인으로서 완전히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섰어. 그의 검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집가가 망설임 없이 프리미엄(premium)을 덧붙여 지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겠지.’

1골드짜리의 검도.

로만 드미트리의 작품이라면 10골드를 제시하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블레이즈를 처음 구매했을 때, 발렌티노 후작은 ‘로만 드미트리의 작품’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했다.

그때도 일반적인 검에 1200골드를 투자하는 것은 무모한 판단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아마도 지금 블레이즈를 시중에 내놓는다면 충분히 2배에 달하는 금액을 받아 낼 것이다.

문제는.

발렌티노 후작으로서는 희소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집품을 되팔지 않는 수집가에게, 노-네임의 가치는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했다.

‘……써드 노-네임을 낙찰받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필요하다. 이 완벽한 검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상징성 하나만으로도, 수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

고뇌에 빠졌다.

너무나도 완벽한 결과물은, 오히려 혼란을 낳았다.

그때였다.

발렌티노 후작의 귀로, 로만 드미트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검의 이름은 디제스터(disaster)라고 합니다.”

재앙.

확실했다.

저 검을 마주하는 적들은, 검의 이름처럼 재앙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 * *

그날.

발렌티노 후작은 드미트리를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디제스터는 제가 감히 구매하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완벽한 작품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명검은 로만 드미트리 님과 함께 있어야 진정한 가치를 발하겠지만, 디제스터를 만들어 낸 시발점이었던 써드 노-네임만큼은 제가 반드시 낙찰받을 생각입니다. 이렇게 먼저 준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표정은 비장했다.

마치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것처럼, 발렌티노 후작은 낙찰을 각오하며 드미트리를 떠났다.

상황이 얼추 정리되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이제, 다크니스의 새로운 주인으로 생각해 두었던 사람을 만났다.

“……내게 왜 이걸 주는 거야?”

로드웰 드미트리였다.

안대로 안쪽 눈을 가린 그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내게는 이것보다 좋은 검이 많다. 하지만 이걸 네게 주려는 이유는 로만 드미트리의 동생이, 나의 빈자리를 유일하게 대신할 수 있는 네가 상징성을 이어 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드미트리는 나라가 되었다.

국가 단위의 권력 체계에서,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핏줄을 타고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크리스, 케빈.

충직한 신하들로는 대체할 수 없는 상징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로드웰 드미트리는 로만 드미트리의 빈자리를 대신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 그만한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무력으로나, 아니면 지도력으로나. 한참 모자랐다.

로만 드미트리의 동생이라는 상징성을 제외하고는,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그를 따를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드웰. 드미트리는 벼랑 끝에 섰다. 크로노스와의 대립에서 한 발이라도 물러나는 순간, 우리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겠지. 내가 없는 빈자리에는 그 자리를 대체할 확고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검을 받아 강해져라. 내가 없더라도 너라는 존재가 사람들을 안도시킬 수 있도록, 모두가 신뢰하는 그런 강인한 존재로 거듭나라.”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잖아.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형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어.”

그동안.

로드웰 드미트리는 악착같이 노력했다.

드미트리의 일원으로서 로만 드미트리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발악했지만, 크로노스 제국이 공격하던 그날에 헨더슨과 같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그때, 알았다. 강력한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은 로만 드미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압도적인 무력과 크로노스 제국이라는 강력한 적은, 로드웰 드미트리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검을 받을 수 없었다.

상징성을 이어받는다고 한들, 자신은 너무나 초라한 존재였다.

그런데.

“내가 재밌는 얘기를 하나 해 주지. 염화신공이라는 무공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피를 나눈 혈육(血肉)에 한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열기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지. 나는 지금부터 네게 화마의 불길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것은 일말의 힘이고,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 하지만 네가 화마의 불길을 받아들여 발아를 시킨다면. 너는 단언컨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의 경험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선택해. 네가 거절한다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이미 대답은 정해진 질문이었다.

드미트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로드웰 드미트리는 지금보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할게. 강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어.”

* * *

간단했다.

화마의 불길.

그중 정말 ‘미세’하다고 표현할 만큼 일부를 불어넣는 순간, 로드웰 드미트리가 눈을 부릅떴다.

화악-

“크흡?!”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불길이 들어온 부근부터 시작해서 체내의 장기가 모두 불타오르는 느낌이었고, 특히 단전에 용암이라도 들이부은 것 같은 느낌에 복부를 움켜잡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신음을 흘리며, 작게 몸을 웅크린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고통스러웠다.

고통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로드웰 드미트리조차도, 이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생소한 고통이었다.

겨우 일부다.

하지만 화마의 불길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염화신공의 열기를 섞어서 불어넣지 않았다면, 이미 연약한 육체는 모두 불타서 잿더미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끄윽, 크으윽.”

이를 악물었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로드웰 드미트리는 이 고통을 멈춰 달라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강해지고 싶었다.

크로노스 제국이 드미트리를 공격했을 때, 그도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케빈과 헨더슨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스벤과 같은 적들은 감히 상대할 수 없었고, 로만 드미트리가 크로노스 제국과 전면전을 벌일 때는 방관자의 역할로 남았다.

주제를 알았다.

드미트리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자신이 이번 전쟁에서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담했다.

같은 드미트리로서, 드미트리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심에 늘 최고여야만 했던 로드웰 드미트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매일 밤늦게까지 연무장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 로드웰 드미트리를 언급할 것이다.

그만큼 악착같이 노력했지만, 자신이 대체해야 할 존재가 너무나도 압도적이기에 자신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참았다.

기회를 움켜쥐고 싶었다.

로드웰 드미트리는, 형의 후광으로부터 비롯되는 부귀영화를 대가 없이 받아들이는 부류가 되지 못했다.

미련할지라도.

자신의 의무를 해내길 바랐다.

어렸을 때부터 장남의 역할을 맡았던, 로드웰 드미트리라는 사람은 그런 존재였다.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입 안쪽 살을 베어 무는 바람에, 입 속은 피로 흥건했다.

비릿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고통 속에서도, 로드웰 드미트리는 꾸역꾸역 뜨거운 열기를 삼켰다.

독종이었다.

크로노스와의 전쟁에서 눈 하나를 잃으면서까지 승부를 보았던 그는, 일반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력을 보유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의지는 마치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계속해서 두드리는 고통 속에서도,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면서도 끝까지 정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이.

로만 드미트리의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삶은 골육상쟁(骨肉相爭)을 강요하는 무늬만 가족이 아니라,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자신을 가족으로 여겼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로드웰 드미트리가 만약 조금이라도 주제를 벗어난 권력을 바랐다면, 그는 오늘과 같은 기회를 얻기도 전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백중혁이었다.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핏줄보다는 가족의 울타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울타리 안.

로드웰 드미트리를 받아들였다.

순수하게 드미트리를 생각하는 그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마침내.

“……크으윽.”

고통이 잦아들었다.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면서, 로드웰 드미트리의 단전에 마침내 불의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자리를 잡았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몽롱한 의식 너머로, 로만 드미트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네게 알려 줄 무공의 이름은 염화신공, 그리고 염화검법이라고 한다.”

화마의 불길을 연상시키는 검법.

그것의 주인은 바로, 로드웰 드미트리였다.

* * *

발렌티노 후작이 가문으로 복귀한 직후.

회의가 소집되었다.

가문의 가신(家臣)들은, 회의의 주제를 확인하고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잘 진행하던 보석 사업을 갑자기 철수하신다니요. 전쟁이 끝난 직후에, 사치품에 눈을 돌리는 귀부인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자 이미 상당한 양의 보석을 사들였습니다. 저희가 계약을 끝낸 장인들을 통해 가공을 진행한다면 적지 않은 수익을 거두어들일 텐데, 대체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리시는 겁니까?”

“설명이 필요합니다. 저희 주력 사업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사업을 철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발이 심했다.

보석 사업.

발렌티노의 주력 사업은 아니었다.

발렌티노는 철제, 식료품, 운송 등등 다양한 사업을 다루지만, 보석 사업은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발렌티노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업을 추구하는데, 사치품의 구매 고객은 너무나도 한정적이었다.

발렌티노가 추구하는 바와는 달랐다.

이번은 예외였다.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가끔 진행하는 이벤트성 사업이었는데, 돌연 보석 사업의 돈을 회수하겠다고 말했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신 중 한 명이, 진지하게 물었다.

“저희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가신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가신들의 시선에.

발렌티노 후작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가 저번부터 말했던 로만 드미트리 님의 검을 낙찰받기 위해서는, 겨우 3~4천 골드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기에 보석 사업에 투자했던 돈을 모두 회수하고, 그 자본을 경매에 투자할 것이다.”

단호한 어투.

순간, 가신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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