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전쟁 포로 (1)
드미트리 기사단장의 집무실.
조나단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보고서를 읽었다.
“……크로노스 제국에 아군의 포로가 있는 것 같다고?”
“예.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10분 전에 서부 전선 너머의 좌표로 한 통의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보고서에 나온 내용대로 통신을 보낸 존재는 ‘도와, 여기는, 포로’와 같은 짧은 단어들을 나열했는데, 드미트리 직통 마법 통신으로 연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쟁 포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설이었다.
확실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지만, 조각조각 나누어진 정보들은 전쟁 포로의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현재 통신 기록에 남은 짧은 목소리와 행방이 확인되지 않아 사망으로 처리한 병사들의 목소리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정말 드미트리 소속의 병사라면, 늦어도 며칠 안으로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흠.”
조나단 기사단장이 곤란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행방불명자들.
참으로 애매한 존재였다.
시체를 확인한 이들은 사망으로 표기하면 되지만, 시체가 확인되지 않는 미복귀자들은 행방불명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이 무조건 죽었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 도중에 탈영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포로로 붙잡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체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죽는 바람에 ‘행방불명’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살아 있을 여지가 있었다면, 드미트리는 행방불명자들을 사망으로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로노스 제국과의 휴전 협상에서 그들은 포로를 모두 풀어 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고 일부 포로들이 드미트리로 돌아왔었지. 로만 도련님은 애초에 크로노스의 포로들을 살려 두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이후 포로 교환에 관한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았다. 만약 통신병의 말이 사실이라면. 크로노스 제국은 협상 자리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였다.
휴전 협상.
서로 전쟁을 끝내자고 합의를 보는 자리에서, 크로노스 제국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말은.
협상의 백지화를 의미했다.
전쟁 포로의 존재가 밝혀지고 그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다면, 최악의 가능성은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드미트리는 아직 안정을 찾아가는 단계에 있는데, 크로노스 제국의 얄팍한 거짓말이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로만 도련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
전쟁이 벌어질 당시.
로만 드미트리는 포로의 존재에 얽매이지 않았다.
아군의 포로를 살리겠다고 희생을 감수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적군의 목을 베어 승리를 쟁취했다.
모두가 로만 드미트리의 과감한 선택에 동의했다.
크로노스라는 대국을 상대로 포로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분명히 전쟁의 양상은 지금보다 좋지 않게 흘러갔을 것이다.
“자료를 챙겨라. 로만 도련님에게 보고하고, 수뇌부 회의를 진행할 것이다.”
결국.
결정은, 로만 드미트리의 몫이었다.
* * *
드미트리가 난리가 난 그때.
콱.
검은 손길이 사내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사내는 통신기를 붙잡고는 어떻게든 말하려고 했지만, 얼굴을 걷어차이는 바람에 비명을 토해 냈다.
콰직.
“크악!”
코가 뭉개지며 피가 튀었다.
사내가 얼굴을 움켜잡고 고개를 떨구자, 군화를 신은 발이 그의 머리를 밟았다.
빡!
“야 이 새끼야. 내가 뭐라고 말했어? 조용히 작업에만 전념하고 살면, 인간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죽이지는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지. 완전 개또라이 새끼네. 왜 사람이 말을 하는데, 알아 처먹지를 못해?”
머리를 걷어찼다.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는, 뺨을 수차례 날렸다.
짜악!
짜악, 짜악!
고개가 홱홱 돌아갔다.
사내의 건장한 골격은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보다 강해 보였지만, 먹지 못해서 그런지 야윈 얼굴은 반항할 힘이 없었다.
폭력은 끝날 줄을 몰랐다.
얼굴이 피로 물들고 사내가 정신을 잃은 듯이 신음은 내뱉자, 기사로 추정되는 존재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에 묻은 핏물을 털었다.
“씨발, 내 손이 다 아프네.”
그의 이름.
제이슨이었다.
크로노스 제국 출신의 기사인 그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마법 통신기를 빼앗아 드미트리에 연락할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대단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드미트리에 연락하면 로만 드미트리가 널 살리겠다고 한달음에 달려오기라도 할 것 같아? 참 착각도 심하단 말이지. 로만 드미트리는, 포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내의 얼굴을 틀어쥐더니, 반응하지 않을 때마다 뺨을 내리치며 정신을 깨웠다.
짜악!
“잘 들어. 로만 드미트리는 우리와의 전쟁에서 애초에 ‘포로 교환’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어. 그게 너희가 모시는 존재의 실체야. 이미 드미트리는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 포로 따위를 걱정이나 하겠어? 휴전 협상은 끝났다고, 이 새끼야. 휴전을 말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너희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드미트리도 너희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포로들을 데려오기 위해 무리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아, 아니…… 야.”
“아니긴.”
짜악-!
고개가 돌아갔다.
땀방울과 핏물이 뒤섞여, 땅바닥을 흥건히 물들였다.
사내가 축 늘어졌다.
제이슨은 재미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에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고문실로 데려가. 명령을 어긴 쥐새끼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 주지.”
“예!”
병사들이 사내를 일으켰다.
이번 기회로.
드미트리의 포로들은, 사내와 같은 행동에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 * *
팍-
“……크으윽.”
사내가 바닥에 내던져졌다.
그의 얼굴과 몸 곳곳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상체는 칼에 베인 상처로 인해 성한 곳이 없었고, 손톱과 발톱은 모두 뜯겨 나가서 고름이 맺혔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물을 들이붓고 전기 마법으로 충격을 가하는 등의 고문으로 인해서, 피부 일부분의 괴사(壞死)가 진행되고 있었다.
“캐롤!”
“괜찮아?!”
어둠 너머로.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은 바로 포로들의 감옥이었고, 캐롤은 고문을 끝내고 이곳에 다시 버려졌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어! 내가 만약 이 감옥에서 살아서 나가게 된다면. 제이슨, 그 악마 같은 녀석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 무조건 죽여 버릴 거라고!”
사내들이 악에 받쳤다.
그들 모두.
드미트리의 포로였다.
분명히 서류상으로는 죽었다고 기록된 존재들이었는데, 어쩌다가 이곳에 포로로 수감된 것일까.
때는 전쟁 당시.
크로노스 제국이 서부 전선을 공격했을 때, 성이 무너지면서 많은 병사가 포로로 붙잡혔다.
그때 한니발에 의해 포로들은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캐롤을 비롯한 포로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벌벌 떨고 있었는데, 크로노스 제국이 진군하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일부 포로들을 후방으로 빼돌렸다.
포로들이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포로들은 크로노스 동부에 있는 ‘맥히튼’이라는 영지로 옮겨졌다.
얼마 뒤.
전쟁이 끝났다는 소문이 들렸다.
밖에서 떠들어 대는 적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포로들은 이만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포로들을 풀어 주라는 명령이 없었다.
분명히 돌아가는 분위기는 휴전을 의미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적군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날.
제이슨이 말했다.
“드미트리가 너희를 버렸어. 지금부터 선택지를 주지. 얌전하게 우리의 명령을 따르면서 맥히튼의 노예로 남을지, 아니면 그냥 지금 뒈질지.”
그때.
목소리를 높이던 포로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머리가 잘려 나갔다.
포로들은 살기 위해서 노예를 택했다.
지옥의 시작이었다.
맥히튼에는 채석장(採石場)과 같은 인력이 필요한 곳이 많았는데, 포로들은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만큼의 음식만 먹으면서 고된 작업을 진행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다.
장비를 들고 작업에 나서는 포로들은, 돌에 깔려 죽는 동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간.
고통이 찾아왔다.
가혹하게 작렬하는 채찍질은, 빨갛게 달아오르는 피부를 찢어발겼다.
그래도 참았다.
드미트리가 자신들을 구해 주리라고 믿었는데, 포로 중 한 명이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크로노스 제국이 휴전 협상에서, 더는 포로가 존재하지 않다고 말한 것 같아. 그래서 드미트리는 ‘행방불명’으로 분류되는 병사들을 사망자로 처리한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 있는 포로가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드미트리는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을 거야.”
절망에 빠졌다.
한 줄기 희망마저도 사라진 상황.
그래서 캐롤이 목숨을 걸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생존 사실을 알려서, 로만 드미트리가 포로들을 구해 주기를 바랐다.
“크윽, 끄으윽.”
신음을 삼켰다.
고통스러워하는 캐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끝났어. 캐롤도 제대로 통신을 보내지 못했고, 드미트리는 이미 휴전 협상을 체결했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언급하기 싫어할 거야. 겨우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리자고 크로노스 제국과 다시 전쟁을 벌일 수는 없잖아. 잔인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야.”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그들은 넋을 잃은 얼굴로 현실을 마주했다.
고문을 당한 캐롤의 모습처럼, 자신들은 이곳 맥히튼에서 노예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 *
그 시각.
맥히튼의 회의실에서, 수뇌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설마 드미트리가 포로의 존재를 눈치챘을까요?”
“절대,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포로가 통신을 연결한 시간은 극히 짧았고, 마나의 흐름도 원활하지 않아서 말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드미트리가 통신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조각조각 나누어진 단어들로는, 이쪽의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크흠.”
제이슨의 말에도.
수뇌부들은 안도하지 못했다.
맥히튼 남작이 말했다.
“이게 다, 로만 드미트리가 포로들을 모두 죽이면서 생긴 일이다. 참으로 이중적인 녀석이지. 겉으로는 드미트리의 사람들을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포로 교환은 생각지도 않고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지. 로만 드미트리는 알고 있었을 거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그런데도, 그는 진실을 외면하고 포로들을 남기지 않았다.”
“맞습니다. 이건 전부, 로만 드미트리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휴전 협상.
그때, 크로노스 제국은 이미 포로들을 다수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드미트리는 포로 교환을 진행할 포로들을 데리고 있지 않기에, 크로노스 제국은 대가 없이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행위를 허락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포로의 존재를 숨겨 버렸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행적이 드러난 포로들을 이미 풀어 주었다고 말하고, 뒤로는 몰래 일부 포로들을 채석장으로 보내 노예로 활용했다.
옹졸한 복수였다.
발각될 걱정은 하지 않았다.
포로의 존재를 작정하고 숨기면, 드미트리로서는 포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포로 중 하나가, 드미트리에 마법 통신을 연결한 것이다.
책임자인 제이슨은 상황을 수습했다.
“다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드미트리는 포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할지라도 휴전 협상을 체결한 상황에서 이 판을 뒤엎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저희는 상부의 명령으로 이번 일을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일이 잘못되더라도, 저희가 책임을 떠안을 이유는 없습니다.”
다들 표정이 누그러졌다.
제이슨의 말처럼.
발각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였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병사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전했다.
“……여, 영주님! 조금 전에, 로만 드미트리가 병력을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순간.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발각 이후의 다양한 상황을 논의했지만.
예고도 없는 국경 침범은, 그들의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전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