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4화 (354/615)

354화 치킨 게임(chicken game) (2)

산체스를 만나고서 일주일.

로만 드미트리는 발할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며, 이미 북부 전선을 무너트리고 난 이후의 상황을 고민했다.

“북부 전선의 최전방 방어 진지를 무너트리고 나면. 적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군대를 보내 우리를 저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보다 비에토 공작의 반란군을 먼저 처리하는 것. 반란군의 숫자가 적지 않기에 일단 하나에 집중하려 할 확률이 높다. 만약 후자를 택한다면, 그들은 분명히 크로노스 제국과 같은 요소들을 활용해 우리가 더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막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루에노스, 포트벨, 산티노 이 세 곳을 노릴 것이다.”

“……무모합니다. 그 세 곳을 처리하는 동안, 비에토 공작의 반란은 정리될 것입니다.”

“옳은 의견이다. 하지만 그 세 곳을 일주일 안에 함락시킬 수 있다면?”

북부에서부터 발할라 수도까지.

거리가 멀었다.

말이 최단 거리지, 실제로 행군하는 시간만 따지더라도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을 잡아야 했다.

그렇기에 마법 문물의 산물이 찬양받는 것이다.

산티노를 지나면 크로노스의 코르타스처럼 워프 포인트가 있는데, 만약 그것을 차지하는 순간 발할라로서는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워프 포인트의 좌표를 활용해 게이트를 오픈.

곧바로 발할라 수도를 공격할 수도 있고, 드미트리의 지원군을 발할라로 불러들일 수도 있고, 명분을 잃는 것을 감수한다면 헤르나드로 넘어가서 비에토 공작의 반란군을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로.

그들이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산티노가 무너지는 순간, 그들은 반드시 워프 게이트로 병력을 보내 막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일주일로 잡았다.

황제의 군대가 헤르나드로 이동해서 그곳을 함락시키려면 최소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아직 헤르나드가 무너지기 전에 산티노를 점령한다면 분위기를 앗아 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일주일의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쉽게 세 개의 영지를 연달아 함락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세 개의 영지를 이동하는 시간만 절반 이상을 써야만 했다.

늦어도 하루에 하나.

빠르게 무너트려야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촉박한 시간이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세 영지를 점령할 방법을 말했다.

“우리는 일단 병력을 루에노스 인근으로 움직일 것이다. 일정 거리를 두고 그곳에 진지를 형성하면, 발할라 제국은 시야로 확보되는 드미트리군의 모습에 집중하느라 다른 두 영지의 방비는 덜할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두 번째 영지인 포트벨에 잠입해 그곳을 무너트릴 계획이다.”

“……너무 위험합니다. 라스칼에서의 작전 이후로, 두 제국은 소수로 움직이는 게릴라 작전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에 관한 대비를 해 두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에도 크리스였다.

옳은 지적이었다.

라스칼에서의 일.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홀로 라스칼에 들어가 1만의 병력을 학살했다는 사실에, 드미트리를 적대하는 두 제국은 뛰어난 머리들을 동원해 그것을 막아 낼 방법을 연구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당할 수는 없는 법.

섣불리 침투해서 들어갔다가는, 그들이 미리 준비한 함정에 위험해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한 사내를 보았다.

“루카스. 포트벨을 공략할 준비는 끝냈나.”

그 말에.

루카스가 웃었다.

“예, 준비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로만 드미트리의 계획은 급물살을 탔다.

* * *

발할라가 암살을 시도한 그날.

로만 드미트리는 발할라를 적으로 규정했다.

언제고 그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루카스에게 여러 가지의 명령을 내렸다.

그중 하나는.

바로 첩자를 심는 것이었다.

“발할라는 지금 어수선한 상황이다. 나를 암살하려던 과정에서 발할라의 근본을 말하는 사람들과의 분란이 생겨나고 있으니, 이 혼란을 이용해 정보 길드의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투입하라. 정보원들의 역할은 다양할수록 좋다.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일반 직업의 사람들, 유사시에 적의 작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투 직종 등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작전은 착실히 진행되었다.

비에토 공작이 반란을 선언했을 때.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은 사람들은 하오문의 일원이었다.

발할라 황제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도록 옆에서 부추겼다.

그리고.

아레스의 도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발할라 제국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끌고 갔고, 세자르를 쓰러트리고 난 이후에는 분노를 토로하는 사람들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너희가 옳다, 발할라 황제가 잘못되었다, 이렇게는 안 된다, 비에토 공작을 따라야 한다.

로만 드미트리의 명령에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갔다.

전생.

사람들은 말했다.

천마 백중혁은 압도적인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냐고.

어느 정도는 옳은 말이다.

힘이 없었다면 무림 정벌이라는 업적을 이루지 못했겠지만, 삶의 밑바닥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능력이 떨어졌다면 애초에 그때까지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비겁한 행위가 아니다.

본인이 유리하도록 판을 만드는 것은, 지휘관으로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었다.

고로.

처음부터 준비되었다.

산티노는 마지막 관문이니만큼 경비가 삼엄해서 병사로 침투하지 못했지만, 포트벨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시각.

일부 병사들은 취침에 들어갔을 때, 한참 전에 드미트리의 명령을 받아 발할라에 침투한 정보원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써 교대를…… 컥.”

푹.

순식간이었다.

똑같은 병사의 행색에 익숙한 얼굴이었기에, 경비병들은 반가운 얼굴을 보이다가 갑작스럽게 당해 버렸다.

작전은 신속했다.

무려 십여 명에 달하는 정보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성문 주위의 경비들을 제압했고, 곧바로 성문을 조작했다.

끼이익,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는 사일런스(silence) 스크롤로 소음을 없애 버렸다.

다른 병사들이 알아차렸을 때는 늦었다.

성문이 움직이는 모습에 황급히 경고음을 울렸지만, 그때는 이미 해자 위로 성문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쿵.

쿠르르르르르릉.

성문 너머로.

다급하게 몰려드는 병사들이 보였다.

경고음이 포트벨의 밤을 밝히며, 다급하게 성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탁.

“모조리 죽여라.”

로만 드미트리를 필두로, 드미트리의 정예들이 성안으로 들어섰다.

* * *

웨에에에에엥-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난리가 났다.

단잠에 빠져들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나오면서,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화륵.

화르르르르르르륵.

주변이 불길에 휩싸였다.

후끈 달아오르는 열기 속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불쑥 나타나며 포트벨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푸확.

“크악!”

“사, 살려 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의 압도적인 무력에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포트벨의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라를 일으키며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어김없이 사지가 잘려 나간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포트벨의 지휘관.

포트벨 남작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마법 시스템을 가동하라! 당황하지 마라! 적은 소수일 뿐이다!”

[레인 샤워(rain shower)]

[레인 샤워]

[레인 샤워]

사방에서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레인 샤워.

소방(消防) 능력에 탁월한 마법이었다.

라스칼의 사건에서 로만 드미트리가 사용한 불길은 잘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발할라 제국은 강력한 마법의 힘을 요새에 심어 두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아무리 화마의 불길이라 할지라도 전능한 것은 아니었고, 소방에 특화되어있는 마법은 불길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보였다.

똑같은 방법.

똑같이 당하지는 않았다.

드미트리를 적으로 둔 존재들은, 로만 드미트리가 만들어 내는 변수를 연구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파스스스스스-

불이 꺼졌다.

이렇게 되면.

드미트리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로만 드미트리가 있다고 한들 그 숫자는 소수였고, 포트벨에는 무려 3만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라스칼에서 1만의 병력을 학살한 것과는 달랐다.

사방에 들끓는 병력을 일일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미트리의 정예라고 해도 분명히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런 미친.”

“저 괴물을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눈앞에 존재하는 괴물.

로만 드미트리를 수백, 수천의 피해로는 저지할 자신이 없었다.

달려드는 족족 도륙해 버리는 압도적인 기세에, 포트벨의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때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저 멀리.

성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불길을 일으키며 적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안, 드미트리의 정예들은 경비병들을 처리한 이후에 성벽에 마법 폭탄을 설치했다.

보통 성벽은 내외부의 강도가 달랐다.

적들이 침투하는 외부의 성벽은 강력한 마법 방어로 보호되어 있지만, 내부는 이미 뚫렸을 때 이후의 상황을 가정하기에 그리 철저하게 마법 방어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사방에서 붕괴하는 포트벨의 성벽에, 로만 드미트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발할라의 병사들은 들어라! 성벽이 무너지고도 포트벨에 남아 있다면.”

따라붙는 적을 베었다.

사방에 흩뿌려지는 피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음에는 성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적들의 방비.

예상했다.

레인 샤워의 정체를 눈치챈 로만 드미트리는, 소규모 게릴라 작전의 목적을 이전과는 다르게 설정했다.

요새의 역할은 성벽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성벽이 무너진다면, 포트벨의 병력이 건재한다고 한들 그들은 제자리를 지킬 수가 없다.

그들로서는 후방에 있는 산티노로 물러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루에노스가 고립됨과 동시에 세 개의 목표 중 하나를 가볍게 없앨 수 있다.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다.

루에노스 자작.

그는 그 사실도 모른 채, 후방의 지휘관들이 방심하도록 드미트리가 전쟁을 포기한 것 같다는 안일한 보고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미트리가 진군한다!”

“막아라!”

삼 일째.

드미트리의 군대가, 루에노스를 향해 무기를 뽑아 들었다.

* * *

삼 일 전.

드미트리가 막 북부 전선을 무너트렸을 그때, 비에토 공작은 일련의 상황을 전달받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모두 현실로 이루어 내다니.”

경악했다.

이번 반란.

로만 드미트리를 믿고 진행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로만 드미트리의 계획은 아레스를 통해 알바레즈와 세자르를 처리하고, 군대를 직접 움직여 북부 전선을 무너트린다고 했다.

발할라의 사람들이면 첫 번째 계획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레스는 유명인사이니만큼 그 실력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가 검술의 천재인 것은 분명하나 세자르는커녕 알바레즈를 쓰러트리는 것조차도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북부 전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최전방 방어 진지를 무너트리는 동안, 헤르나드를 점령한 반란군이 위험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로만 드미트리는 뱉은 말을 지켰다.

아레스의 승리와 더불어, 조금 전에 로만 드미트리가 북부를 함락시켰다는 말을 보고받았다.

산체스가 말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발할라 황실이 대놓고 암살 의도를 드러냈을 때도, 로만 드미트리는 도움 하나 받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고 자신한 인물입니다. 그가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는 그만한 확신이 있다는 것이고, 저는 그것을 믿고 반란을 진행하자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신뢰의 연결 고리였다.

산체스가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다면, 반란군은 헤르나드를 먼저 공격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발할라 황실이 혼란에 빠진 지금, 반란군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비에토 공작이 말했다.

“우리가 발할라 황실을 무너트릴 방법은 하나다. 헤르나드에서 최대한 버티며, 우리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사람들에게 전파해야만 한다. 우리가 버틸수록,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발할라의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발할라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로 인해 발할라 황실은 반란군 제압에 전력을 다하지 못할 터. 이곳 헤르나드에서 딱 보름만 버틴다면, 그때부터는 공포에 질렸던 사람들도 봉기(蜂起)를 일으켜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그들은 믿었다.

발할라 백성들의 의지를.

지금은 발할라 황제라는 명성이 부여하는 공포에 감히 움직이지 못했지만, 반란군이 명확한 성과를 보여 주면 반란의 불길이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게 반란군이 노리는 바였다.

그렇기에 반란군이 며칠 만에 무너진다면, 그때는 봉기와 같은 기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렇게까지 판을 만들어 주었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도 무너질 수는 없었다.

“반드시 버텨라. 보름. 그때부터가 기점이다.”

* * *

삼 일째.

날이 밝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루에노스를 공격하는 그때, 헤르나드 성벽 너머로 황제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저걸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눈앞의 광경.

어떤 이는 마른침을 삼키고.

어떤 이는 탄식을 내뱉었다.

장관이었다.

빼곡히 들어찬 황제의 병력은, 언뜻 보아도 수십만의 병력을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산체스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정보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발할라 황제는 정말 북부를 포기하고, 이곳 헤르나드를 점령하기 위해 백만의 군대를 모두 보냈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직속 군대인 로열 나이트(Loyal knight)의 모습들로 보아, 특수 전력으로 분류되는 이들도 동원된 것이 분명합니다.”

수많은 깃발 중.

로열 나이트를 상징하는 황금색의 깃발도 있었다.

치킨 게임.

발할라 황제는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북부에는 조금의 지원군도 보내지 않은 채, 헤르나드를 점령하는 것에 집중했다.

비에토 공작이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발할라 황제. 드미트리가 변수를 만들어 내기도 전에, 반란군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건가.”

상대의 의도.

명백했다.

화가 났고,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20만의 병력으로는 저들을 오랜 시간 막아 내기란 불가능하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밀렸다.

정말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보름은커녕,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비에토 공작이었다.

그렇게.

반란군의 명운이 걸린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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