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9화 (369/615)

369화 남부의 무덤 (3)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방금의 발언.

오만했다.

발할라 제국의 전사들을 상대로 한 번에 달려들어도 좋다는 말은, 자존심을 툭툭 건드리는 도발적인 발언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쉴 새 없이 도전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 감히 도전하겠다는 발언을 내뱉지는 못했다.

처음 발데라스를 상대로 자비를 베풀었을 때.

사람들은 속으로 안도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도전자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승부에 도전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외면했다.

전사로서 발할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살아남은 발데라스의 모습이 그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앴다.

그리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도전의 대가가 죽음이었다.

과연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얼마나 죽어야 그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백 명?

천 명?

만 명?

어떤 숫자로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일만의 병력을 홀로 학살하고, 30만 대군을 상대로도 엄청난 무력을 보여 주었다는 등의 무용담은 로만 드미트리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승리의 전과였다.

단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상식 밖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한계를 알 수 없었다.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 몇 명이 필요할지.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 것인지.

일주일간의 혈투(血鬪)가 발할라의 승리로 끝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있었지만, 최소한 초반에 도전하는 전사들은 무조건 죽는다는 확신도 있었다.

예상이 아닌 확신.

아무리 발할라의 전사들이 긍지를 위해 목숨을 거는 부류라지만, 확정적인 죽음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공포가 번졌다.

모두가 망설였다.

명백히 유리한 상황인데도, 먼저 도전하겠다는 말을 선뜻 내뱉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우리가 도전하겠습니다.”

길이 열렸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비키자, 각양각색으로 생긴 수백의 사내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의 행색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거칠게 자란 머리와 수염, 발가벗은 상반신에 빼곡한 문신과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무기들.

발할라에서도 흔하지 않은 외형이었다.

특히 수십 명씩 통일되게 등판에 새겨 넣은 문신은, 같은 문신의 사람들이 목숨을 주고받은 형제임을 증명했다.

바로 소수 민족이었다.

발할라의 근본.

남부 밀림에서 시작된 제국의 시초이자, 그들은 발할라가 제국으로 도약한 상황에도 문명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았다.

밀림에 남아 발할라의 근본을 지키는 존재들.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발할라의 역사를 대변했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앞으로 나섰다.

이름은 게르.

검은 늑대의 일족인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약한 도시 녀석들. 대체 발할라가 언제부터 죽음이 두려워 도전을 피하는 나라였나. 발할라의 근본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것에 있다. 저 로만 드미트리가 아무리 위대한 검사라고 할지라도, 그가 발할라의 근본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살벌한 분위기였다.

수백의 전사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둘러쌌다.

게르는 손도끼 두 개를 빙빙 돌리며,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로만 드미트리. 발할라를 구해 준 일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안다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널 막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잘 알잖아. 이 모든 것은 네가 정도 이상으로 강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콰득.

콰득, 콰드드득.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게르를 필두로 육체가 뒤틀리더니, 몸집이 커지면서 몸 여기저기에서 거칠고 어두운 빛깔의 털들이 자라났다.

다른 전사들도 각기 다른 변화를 보였다. 소수 민족은 야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짐승의 모습으로 변하는 종족, 불을 뿜어내는 종족, 어둠으로 물들어 은신에 특화되어 있는 종족 등 소수 민족의 다양하고 기괴한 힘은 발할라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들 전부가.

목숨을 걸었다.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발할라의 긍지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선봉에 나섰다.

“크륵, 크르르르륵.”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

로만 드미트리는 덤덤히 검을 들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발할라 황제는 들고 있던 깃발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만! 전사의 시험은 이것으로 종료하겠다!”

* * *

일련의 상황.

발할라 황제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나서고 싶었다.

황제이기 전에 발할라의 전사였던 그로서는, 자신만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는 상황이 불편했다.

인생의 아이러니였다.

자신은 분명 발할라의 낭만을 위해 검을 들었지만, 막상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는 전사로서 존재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죽는다면.

그때는 후폭풍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막 폭군을 쓰러트린 상황에서, 발할라에는 반드시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역겨움을 삼켰다.

산체스의 말은 옳았다.

더는 전사들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이 옳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것은, 전사의 용맹함이 아니라 무지하고 미련한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발할라의 전사로서 긍지를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발할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의미한 희생을 지양해야만 한다. 로만 드미트리는 발할라의 은인이다. 우리가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만약 그를 저지한다고 한들, 수만의 전사들이 죽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전사로서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목소리를 높였다.

발할라의 낭만을 부르짖던 자신이,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옳은 일이다.

발할라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발할라는 최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내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 죽인 사람들 또한 발할라의 핏줄을 타고난 동족이다. 발할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발할라의 미래가 결정될 텐데,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무의미한 희생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명하게 생각하라. 제국의 백성으로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하라.”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전사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입니다.”

게르였다.

그가 사나운 얼굴로 반박하자, 발할라 황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강자를 상대로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대체 왜 문제가 된다는 거지? 위대한 전사 카를로스는 전사의 시험에 통과했다. 일주일을 버텼고, 다크 엘프의 마지막 관문마저 통과한 뒤에 남부의 무덤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발할라의 전사들은 6일째부터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않았다. 전사의 긍지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그의 강함은 충분히 입증되었기에 더는 피해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리고.

전설은 탄생했다.

황제가 아닌 존재가 처음으로, 남부의 무덤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백여 년 전의 선조들은 카를로스의 자격을 인정하기 위해서 6일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우리는 단 하루면 충분할 뿐이다. 게르. 너 또한 알지 않은가. 이 자리에서 소수 민족이 모두 죽는다고 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린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쳇.”

게르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발할라 황제의 말은 사실이었다.

소수 민족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사를 잃는다면, 발할라는 앞으로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다.

대륙의 양대산맥.

그 명성이 벼랑 끝에 몰렸다.

게르마저도 한발 물러나자, 발할라 황제가 소리쳤다.

“발할라 황제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로만 드미트리는 전사의 시험에 통과할 자격을 충족했으며, 우리는 위대한 전사를 위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 * *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다크 엘프의 시험.

사람들은 자리를 지켰다.

남부의 무덤에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크 엘프들이 나타날 것이다.

‘과연 마지막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까.’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마지막 시련.

사람들은 그것을 거울의 시련이라고 불렀다.

다크 엘프들은 현세에 허락되지 않는 위험한 존재들을 다루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라고 평가받는 도플갱어(Doppelgänger)였다.

도플갱어는 상대의 모든 것을 그대로 흡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일반인을 상대하면 일반인만큼의 힘을 발휘하는 반면, 오라 검사를 상대할 때는 오라 검사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했다.

고로.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를로스 또한 애를 먹었고, 로만 드미트리도 자기 자신을 상대하는 시련을 이겨 내야만 했다.

발할라의 사람들.

그들이 통과를 확신하지 못한 이유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강한 만큼, 도플갱어도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였다.

스르르륵.

밀림의 어둠 너머로.

어둠이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곧 형체를 갖추었고, 이전에 경험했던 엘프들과는 다르게 까만 피부의 다크 엘프들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무표정했다.

차가운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며,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시험의 무대를 향해 걸어왔다.

그들은 철렁거리는 쇠사슬로 무언가를 대동했다.

형체가 없는, 검은 연기와도 같은 것은 쇠사슬에 억압되어 요동쳤다.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살면서 다크 엘프들을 직접 보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험이었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다크 엘프들이 도전자를 바라보며, 문지기의 역할을 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

순간.

그들이 눈을 부릅떴다.

차갑고 무표정했던 그들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마주한 표정을 보였다.

그들이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수의 구원자시여. 다크 엘프 일족이 구원자를 뵙습니다.”

** *

예상치도 못한 전개였다.

구원자라니.

발할라의 사람들이 당황하는 그때, 로만 드미트리는 얼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세계수의 영향인 건가.’

아르카디아.

그곳에서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화마의 불길이 얼어붙었던 세계수를 녹여 주었다.

그때도 엘프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었다.

세계수를 구해 준 구원자라고 표현하며, 앞으로 엘프 종족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다크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일반적인 엘프와는 특성이 달랐지만, 그들 또한 세계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

세계수가 그에게 축복을 내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정에, 다크 엘프들의 고고한 콧대가 단번에 꺾였다.

“구원자시여. 저희는 감히 구원자를 시험할 자격이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저희를 지나가, 남부의 무덤으로 들어가십시오. 그 누구도 구원자의 뜻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외의 전개였다.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했던 다크 엘프들이, 오히려 로만 드미트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사람들이 당황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아니, 시험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호의를 거절했다.

발할라 황제의 선언으로 로만 드미트리는 겨우 이틀 만에 마지막 관문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발할라의 전사 중 몇몇은 이러한 상황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대세를 따랐다.

발할라의 미래를 위하여. 자존심을 꺾을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호의를 받아들인다면.

발할라의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것이다.

길을 열어 준 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손쉽게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존재. 과연 도플갱어가 나의 힘을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을까. 만약 모방한다면, 나는 나와 똑같은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흥미가 동했다.

승패를 떠나.

단순히 머릿속을 채운 의문을 해소하고자, 로만 드미트리는 마지막 관문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다크 엘프들이여. 나를 정녕 구원자라고 생각한다면, 예정대로 시험을 진행하라.”

* * *

구원자의 명령.

다크 엘프들로서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존재가 몸을 일으키더니,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던 쇠사슬을 풀어 버렸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스르르.

어둠이 퍼져 나갔다.

쇠사슬로 묶여 있던 존재가 로만 드미트리 주변을 배회하더니, 수차례 꿈틀거리면서 주변 마나를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체였던 것이 갑자기 뭉클거리는 액체 덩어리처럼 변했고, 사방으로 요동치며 어둠으로 짙게 물들었다.

꿀럭.

꿀럭, 꿀럭.

기괴한 장면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액체의 모습이 점점 변화했다.

찰흙을 만지는 것처럼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고, 그것은 로만 드미트리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였다.

형태 변화.

도플갱어의 능력이었다.

완벽하게 변화가 끝난다면, 그 존재는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런데.

끄륵, 끄르르륵.

도플갱어가 갑자기 심하게 요동쳤다.

변화를 거의 끝낸 상태에서, 다시 찰흙처럼 기괴하게 뭉개지더니 미친 듯이 들썩이는 모습을 보였다.

다크 엘프들도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맹약에 따라 도플갱어를 활용한 수많은 시험을 진행했었는데, 그중 단 한 번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여 준 적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다시 팔다리가 생겨났다.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냈고, 로만 드미트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성한 수염이 길게 자라났다.

“저, 저게 무슨…….”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노인이었다.

거대한 체구에 풍성한 수염.

상당한 나이와는 다르게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존재.

사람들은 그 존재가 누군지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단번에 알아챘다.

‘전생의 나다.’

천마 백중혁.

바로 그였다.

도플갱어의 형태 변화는 단순히 외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에 깃든 순수한 기운을 빨아들였고, 그 존재의 근본적인 모습을 받아들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외형적으로 드미트리 가문의 장남이나, 그 근본은 전생에 있었다.

한때 무림을 호령했던 백중혁의 모습이 세상에 나타나며, 도플갱어는 무한한 힘에 거대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였다.

끄에에에에엑.

입이 기괴하게 벌어졌다.

도플갱어가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고,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미친 듯이 들썩였다.

이것 또한.

다크 엘프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에 이와 비슷한 반응이 있다고는 들었다.

이윽고.

콰직.

파파파팍.

도플갱어가 부서져 버렸다.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인간의 육체였던 것이 어두운 액체 덩어리로 변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모습에.

다크 엘프들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로만 드미트리와 한때는 도플갱어의 육체였던 흔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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