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제2차 대륙 전쟁 (3)
쿠르르릉.
어둠이 요동쳤다.
에드윈 헥토르의 정신이 심연(深淵)에 빠져 있는 그때, 현실에서의 그는 바닥에 기절한 듯 누운 채로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천공의 마탑주는 그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대륙 제일의 마법사가 드디어 제자를 찾았다면서 둘의 관계를 치켜세웠지만, 진실은 그와 달랐다.
“너는 모르겠지. 내가 그동안 너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셰피르.
그리고 천공의 마탑주.
알렉산드르를 따르는 마법사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고서클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존재했다.
애초에 마법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되는 힘이 아니기에, 그 경계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태생의 한계를 초월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타인의 마력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선천(先天)의 기운은 서클의 힘을 증폭시켰고, 항상 새로운 재능을 집어삼킬 때마다 그 이상을 먹어 치우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났다.
고만고만한 녀석들로는 발전할 수 없었다.
7서클의 경지에 오르고 정체의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천공의 마탑주는 운명의 존재를 만났다.
바로 에드윈 헥토르였다.
찬란한 재능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일었고, 환경적인 문제로 마법을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으나 에드윈 헥토르는 분명히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다.
그때부터 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천공의 마탑주는 에드윈 헥토르야말로 자신을 8서클의 세계로 인도할 재능임을 확신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그의 마음을 현혹했다.
그냥 잡아먹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최대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의 재능이 조금 더 무르익도록 직접 가르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게 진실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얼마나 애가 탔겠는가.
에드윈 헥토르는 이미 잡아먹을 조건을 충족했지만, 헥토르의 왕자라는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발할라 제국을 들쑤시지 않았다면.
천공의 마탑주는 알렉산드르의 명령대로, 앞으로 몇 년은 자신의 존재를 숨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때가 왔다.
알렉산드르가 생각한 완벽한 타이밍은 아니었으나, 조금 앞당겨서 샐러맨더 대륙을 정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만약 에드윈 헥토르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천공의 마탑주는 먼저 그를 찾아갔을 것이다.
어둠의 마나가 요동치며 선천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모습에, 그것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보는 천공 마탑주의 표정이 점점 광기로 물들어 갔다.
“더, 더, 더……!”
애가 탔다.
군침이 돌았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완벽해야 했기에, 선천의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때였다.
꿀럭, 꿀럭.
쿠르르르르르릉.
마나가 요동쳤다.
뭔가 이상했다.
원래라면 선천의 기운이 잠식되면서 잠잠해져야 하는데, 처음보다 더 요동치며 마치 어둠의 마력에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럴수록 천공의 마탑주는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대단한 재능이라는 의미이기에, 그는 코앞에서 에드윈 헥토르가 잠식되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번뜩.
누워 있던 에드윈 헥토르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나와 같이 가자.”
콱.
천공 마탑주의 목덜미를 움켜잡고는, 그대로 어둠의 마력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환마의 무공.
그 효과가 발현되었다.
이성을 되찾은 직후, 에드윈 헥토르는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정신지배는 이성을 찾음과 동시에 구속이 풀려난다. 하지만 어둠의 마법은 다르다. 끝까지 정신을 파고드는 힘은 계속해서 정신의 균열을 일으킬 것이고, 한 번이라도 굴복하는 순간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버릴 것이다.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숙주(宿主)를 끌어들여 어둠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 잡아먹힐 바에, 네가 상대를 먼저 잡아먹어라.”
가르침을 기억했다.
에드윈 헥토르는 잠시 어둠의 속박을 벗어나, 천공의 마탑주를 자신과 같은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꾸르르르르륵.
어둠에 빠져들었다.
천공의 마탑주는 정신적으로 에드윈 헥토르와 연결된 상태였기에, 7서클의 마법으로도 목덜미를 움켜쥐는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반발은 엄청났다.
어둠의 공간으로 빨려든 천공의 마탑주는, 분노하는 기색을 보이며 마력을 일으켰다.
[감히!]
눈을 부릅떴다.
에드윈 헥토르를 완벽하게 집어삼킬 생각이었으나, 이렇게까지 반항한다면 얘기가 달랐다.
[네 녀석 따위가 나를 해하려고 하다니. 그간의 정을 생각해 마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으나, 지금부터는 너에 대한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리고 영혼을 잃은 네 시체를 종으로 부려, 너로 인해 헥토르가 멸망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악에 받쳤다.
마력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정신의 공간에서, 천공의 마탑주는 에드윈 헥토르를 무너트리려 했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숙주를 자신과 같은 공간에 들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에드윈 헥토르는 상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천공의 마탑주는 무려 7서클의 마법사다.
그와 정신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선천의 기운이 흡수되면서 정신이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때, 에드윈 헥토르가 이를 악물었다.
“정신의 공간에서 현세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상대와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
믿었다.
상식적으로는 7서클의 마법사를 이길 수 없는 게 정상이지만, 에드윈 헥토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마력을 일으켰다. 정신을 붕괴하려는 힘에 대항했다. 격렬한 충돌이 일었다.
정신이 완전히 날아갈 것 같았지만, 상대의 힘에 대항하며 서클의 힘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확.
쿠르르르르릉.
천공의 마탑주와 똑같이, 상대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 *
이 상황.
천공의 마탑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어둠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것으로도 모자라, 역으로 마력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정도를 넘어섰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에드윈 헥토르의 영혼을 소멸시킬 작정으로 마력을 일으켰고, 이렇게 되면 선천의 기운을 흡수할지라도 효과는 크게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히 자신에게 빌붙어 가르침을 받는 주제에, 역으로 자신을 넘보는 행태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이상했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힘이 밀렸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둠의 마법은 알렉산드르에게 직접 하사받은 것이고, 인간 따위에게 굴복당할 종류의 힘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악을 썼다.
전력을 끌어올리며 발악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력이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환마.
마교의 역사를 넘어, 중원 무림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
인간의 두뇌를 극한으로 탐구한 그 존재는, 정신계열의 무공에서 무림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백중혁조차도 그의 영역을 인정할 정도였다.
셰피르의 정신을 굴복시키는 등의 정신과 관련한 목적을 위해서 환마의 무공을 발현한 이유는, 그 이상의 무공은 없기 때문이었다.
고로.
효과는 극적이었다.
정신을 굴복시키려는 힘에 대항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히려 어둠의 마력을 점점 흡수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공의 마탑주가 경악했다.
그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나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에드윈! 멈춰라! 지금 당장 그 위험한 힘을 거두어라!]
확실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패배할 것이다.
에드윈 헥토르가 무슨 방법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힘은 정신 지배를 압도했다.
[내가 잘못했다. 잠깐 욕심에 눈이 멀어, 내 사랑스러운 제자를 해하려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해 이쯤에서 멈추어다오. 네가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준다면, 나는 헥토르 왕국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 발할라 제국, 크로노스 제국. 그 악의 무리가 헥토르를 무너트릴 수 없도록, 내가 전력을 다해 너를 도와주겠다.]
간절한 목소리였다.
그가 빌고 또 빌었지만, 에드윈 헥토르는 이미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든 상태였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도 잊었다.
흐름을 타듯 폭발하는 마력에, 에드윈 헥토르로부터 비롯되는 마력이 그대로 어둠의 마력을 휩쓸었다.
[아, 안 돼!]
단말마의 비명.
마력이 폭발했다.
천공 마탑주의 존재가 옅어지며, 어둠의 공간이 그대로 소멸되었다.
콰앙!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 * *
집무실 밖.
호위로 따라나선 버틀러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황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마탑의 방문.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비밀 유지를 위해 사일런스(silence) 마법을 사용했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그동안은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 말인즉. 이전과는 다르게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했다는 것인데, 그 사실이 왠지 모를 불길함을 일으켰다.
호위 기사.
변수를 차단하는 존재다.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잠시 안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마탑주님이 그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그냥 확인만…….”
“불가능합니다.”
천공의 마법사.
집무실을 지키는 존재가 싱긋 웃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버틀러가 한 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는 척하다, 그가 갑작스럽게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이 일로 인해 징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내부를 확인해야겠어.’
콰르르르릉.
마력의 폭발!
당황한 마법사가 대응할 틈도 없이, 버틀러가 그대로 문을 부숴 버렸다.
쾅!
콰직.
박살이 났다.
산산조각이 나는 문 너머로, 버틀러는 예상치도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왕자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공의 마탑주는 찾아볼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에드윈 헥토르가 정신을 잃은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천공의 부탑주.
베르데는 황급히 걸음을 서둘렀다.
“빌어먹을. 설마 흡수에 실패하신 건가.”
조금 전.
수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버틀러가 마법사들을 공격했으며, 마탑주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베르데는 천공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탑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에드윈 헥토르가 방문했다는 말에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천공의 마탑주는 오늘만을 기다렸다.
에드윈 헥토르를 흡수하고서 곧바로 여덟 번째 서클을 형성하기 위한 수련에 들어간다고 말했기에, 그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실패의 가능성?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그간 충분한 공을 들였기에, 에드윈 헥토르의 힘으로는 절대 정신 지배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짜증이 일었다.
확실한 것은.
일이 틀어졌다.
버틀러는 천공의 마법사들을 공격했고, 에드윈 헥토르는 정신을 잃었지만 일단 목숨은 무사한 상태. 베르데는 마법사들을 대동하고 집무실로 향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면.
일단 버틀러와 에드윈 헥토르를 제압하고,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막상 집무실에 도착하자,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 어떻게?!”
집무실 안.
난장판이었다.
그곳을 지키던 마법사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한 존재가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아 베르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눈앞의 존재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옭아매는 듯한 눈빛은 불길한 상상을 일으켰다.
그는 바로.
에드윈 헥토르였다.
분명히 죽었어야 할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베르데. 지금부터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라. 날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넌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