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제2차 대륙 전쟁 (5)
며칠 전.
조나단 기사단장은 루카스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아레스가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예민한 문제였다.
곧바로 정색하는 조나단 기사단장의 반응에, 루카스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미트리의 경비를 총괄하는 조나단 기사단장님이니 제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보 길드의 수장으로서, 주군으로부터 감찰(監察)의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드미트리에 소속된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수상한 정황이 있을 경우 사생활을 파헤쳐서라도 진실을 밝혀냅니다. 최근 가장 눈여겨본 사람들은 당연히 ‘사병 모집’에 통과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첩자가 사병 모집에 지원했던 만큼, 합격자 중에서도 첩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아레스가 첩자라는 정황이 발견된 겁니까?”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개를 저었다.
정황이 있었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발할라로 떠나기 전, 정비 기간에 아레스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했을 것이다.
“아레스는 흠잡을 것이 없는 인물입니다. 과거도 깨끗하고, 수상한 정황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발할라 랭커들을 쓰러트리는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저도 솔직히 아레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번 발할라행입니다. 주군이 발할라로 다시 떠나는 상황에서, 아레스는 피로하다는 이유로 드미트리에 남겠다고 했습니다.”
“그야, 그만큼 대단한 임무를 하지 않았습니까.”
“조나단 기사단장님. 정보 길드의 임무는 모든 의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길을 지나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서 배회하는지를 의심하면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백의 의심 중 단 하나만 진실일지라도. 저희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때까지는.
조나단 기사단장은 괜한 억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발언은, 들으면 들을수록 불길한 상상을 자극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얘기는 ‘만약’을 전제로 합니다. 만약 크로노스 제국이 드미트리 내에 첩자를 심었고, 첩자를 활용해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누가 제일 위협적일 것 같습니까? 주군과 크리스, 케빈이 모두 드미트리를 떠난 상황에서, 아레스는 그야말로 첩자이면 절대 안 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인물이기에, 이럴 때일수록 아레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민하게 확인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깨끗했습니다. 그를 의심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저는 아직도 그가 주군을 따라나서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발할라는 그의 조국이고. 만약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그 어떤 인물보다도 아레스가 발할라행에 적합하다는 것은 명백하니까요.”
역지사지(易地思之).
생각을 바꾸었다.
적의 입장이었을 때, 루카스의 발언처럼 아레스는 적의 승리를 이끌 적절한 포지션에 있었다.
“정말 혹시라도 이번 발할라행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의심을 어느 정도는 확신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료를 의심한다는 도덕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레스가 발할라로 떠나지 않은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쟁마저 벌어진다면 그의 위험성은 대폭 증가합니다. 그러니까 드미트리의 경비를 총괄하는 조나단 기사단장님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장면을 발견하는 순간 무조건 아레스의 행동을 차단해야만 합니다.”
“……이거 참, 복잡한 문제군요.”
착잡했다.
증거는 없지만.
일리는 있었다.
동료를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나단 기사단장은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이에 대해 보고는 하셨습니까?”
의심 정황이 존재한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히 대응책을 말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루카스는 의심이 생기자마자 보고했지만, 그 결과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예, 그래서 조나단 기사단장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 * *
똑같은 얘기였다.
조나단 기사단장에게 한 얘기를 그대로 말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루카스.”
“예.”
“우리가 발할라 제국에 투입한 정보원의 인원은 몇 명이지?”
“약 1만 명 정도 됩니다. 대부분이 점조직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인 신분으로 발할라 곳곳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래. 우리는 무려 1만이 넘는 첩자를 발할라에 잠입시켰다. 발할라로서는 그중 일부의 정체를 알아낼 수는 있어도, 1만의 첩자를 모두 찾아내지는 못하겠지. 그것이 권력자의 딜레마다. 세력이 커질수록, 적이 많아질수록. 본인의 영토 내에 수많은 첩자가 득실거리는 상황을 권력자는 고려해야만 한다. 아무리 대대적인 색출 작업을 진행할지라도 첩자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그렇다면 첩자의 위치를 알고도 밝혀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의도를 차단하는 방법이다. 첩자의 움직임에 따라 의도를 간파할 수 있으며, 우리의 시야 밖에 첩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상 대비하고 있다면 어떤 변수가 발생한다고 한들 대응할 수 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아레스가 배신할 경우의 대가는 너무 위험합니다.”
인정했다.
아레스.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받으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암묵적이지만 사람들은 그가 드미트리의 이인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사병 모집에서 보여 주었던 실력.
크리스조차도 아레스를 상대로 밀리는 상황에, 드미트리의 서열은 그를 중심으로 새롭게 정립되었다.
그런 그가 배신한다면.
엄청난 문제였다.
로만 드미트리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아레스는 첩자로서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단순한 의심일 뿐이고,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그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루카스. 드미트리가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간 우리가 받아들였던 존재는 모두 첩자의 가능성이 있었다. 동북쪽 연합회, 발렌티노 후작, 파비우스 백작, 페르난도, 그리고 이번에 첩자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였던 프레드와 같은 인물들. 그들은 드미트리의 근간이 되었다. 만약 단순히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이들을 배척하고 척결했다면, 단언컨대 드미트리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전생도 같았다.
권력의 크기가 커질수록, 위험도 동반되었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이길 바라지 않는다. 소국이 아닌 대국을 꿈꾸고 있으며, 샐러맨더 대륙 전체를 내 통치 아래 둘 것이다. 그 넓은 땅덩어리를 채우는 수많은 사람이 나의 통치를 받는 상황에서, 내가 증거도 없는 사람들을 일일이 의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불신은 분란을 낳는다. 확실하지 않은 일은 나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사람들을 믿는 것이다. 맹목적인 신뢰는 네 말처럼 위험 부담을 안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변수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너에게 권력을 부여한 이유다. 사람들을 신뢰하되, 너는 모두를 의심하라. 하물며 나조차도, 발할라 황제처럼 나라를 갉아먹는 광인이 된다면 너는 사람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루카스.
그의 역할은 중요했다.
대해(大海)와 같은 나라는.
의심과 걱정을 모두 끌어안아야 하기에, 아무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그리고 만약 아레스가 정말 첩자라면. 드미트리는 겨우 ‘단 한 명’의 배신으로 무너지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그의 의도를 차단하고, 아레스를 개처럼 끌고 와 사람들에게 증명해야만 한다. 드미트리를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설령 첩자의 임무를 지니고 드미트리에 잠입했을지라도, 감히 임무를 수행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의 결과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 확실하지 않은 불안에 망설이기 시작한다면, 드미트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날.
루카스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그릇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변수는 감수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태도를 보며, 루카스는 고개를 숙였다.
“주군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 루카스가 모든 문제를 의심하고, 모든 변수를 차단하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조나단 기사단장을 찾아갔다.
일말의 가능성, 정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 * *
드미트리 잔류.
제2차 대륙 전쟁.
그리고 아레스의 수상한 행동.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추어졌다.
크로노스가 드미트리를 공격하려는 상황에서, 더는 아레스에 대한 의심을 의심으로 끝낼 수 없었다.
조나단 기사단장이 말했다.
“제 말이 불쾌하게 들린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레스 님. 저는 드미트리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드미트리의 경비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수성(守城)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레스 님에게 부여한 역할이 존재하는데, 왜 그것을 따르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겨우 의심만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겁니까?”
표정이 일그러졌다.
방금.
조나단 기사단장은 선을 넘었다.
아레스가 화난 기색으로 말했다.
“제 행동을 그렇게 오해하셨다면 저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단순한 의심만으로 이런 취급을 받기에 저는 드미트리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포로를 되찾을 때도, 아르카디아로 떠났을 때도, 발할라의 랭커들을 쓰러트리는 작전을 수행할 때도. 저는 드미트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단순히 발할라행을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지정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를 첩자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비약하지 마십시오. 명령을 이행했다면, 제 의심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일은 없었을 겁니다.”
조나단 기사단장도 물러나지 않았다.
의심을 내뱉은 순간.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설령 이로 인해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지라도, 조나단 기사단장은 타협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촉망받던 인재가 드미트리를 택했던 그때처럼.
그는 고집이 있었다.
단호한 얼굴로 강하게 말했다.
“이와 관련한 문제는 로만 도련님이 복귀했을 때, 정당한 절차를 통해 처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분란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은 제 명령을 따라 주십시오. 명령은 간단합니다. 오른쪽 성벽 위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 주십시오. 그곳에 머무르며 제 역할을 다한다면, 이번 전쟁이 모두 마무리되고 일의 처리와는 별개로 고개를 숙이고 직접 사과하겠습니다.”
오른쪽 성벽.
성문과는 거리가 있었다.
만약 목적이 성문에 있다면, 아레스의 의도를 차단할 방법이었다.
“제 명령을 따르지 않고 지정된 위치를 벗어난다면, 그때부터는 저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협은 불가했다.
강한 어조에, 아레스는 묘한 표정을 보였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번 일은 조나단 기사단장의 명백한 실수고, 나중에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사람 참 곤란하게 만드시네.”
아레스가.
이전과는 다른 사나운 얼굴을 보였다.
* * *
아주 오랜 옛날.
알렉산드르는 고민에 빠졌다.
마법을 택했으나, 그는 항상 무공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天魔再臨 萬魔仰伏)!”
“천마재림 만마앙복!”
마교의 절대자.
그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떨쳐 낼 수 없었다.
흑마법을 익히면서도, 대륙 정벌을 착실하게 준비하면서도.
오라의 선구자 알렉산드르의 명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면, 자신의 능력으로는 흑마법을 뛰어넘을 만큼의 성과를 이룰 수 없다면.
차라리 자신을 대신할 다른 존재를 내세우면 되지 않을까.
물론 스스로가 마교의 천마 같은 강렬한 존재가 될 수는 없더라도, 대리만족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것은 염원이었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
항상 적절한 대상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어느 날, 알렉산드르는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발견했다.
‘아레스.’
그날.
알렉산드르는 본인의 뜻을 이을 제자를 받아들였다.
* * *
더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레스가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내가 첩자라는 근거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을 텐데, 같잖은 녀석들이 눈치는 정말 빠르구나.”
차갑게 웃었다.
사병 시험 당시.
알렉산드르는 ‘조각’들을 보냈다.
그때 프레드와 같은 인물들이 걸러지면서 사람들은 첩자가 모두 색출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레스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첩자임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정신 지배를 당하지 않았다.
온전한 정신에 과거마저 깨끗하다 보니, 아레스는 자연스럽게 드미트리의 일원으로 녹아들었다.
애초에.
다른 이들은 미끼에 불과했다.
알렉산드르는 아레스를 첩자로 보내면서, 그에게 바라는 목적이 있었다.
“아레스. 너는 드미트리를 무너트릴 무기가 되는 것과 동시에, 로만 드미트리의 무공을 모조리 배워라.”
사람들은 말했다.
아레스는 기존의 체계를 달리하는 인물이라고.
그것은 그의 창의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르가 자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대륙 제일의 천재. 아레스의 비밀이었다.
슈테른 발할라, 비에토 공작, 천공의 마탑주, 그리고 아레스마저. 알렉산드르의 마수는 아무리 확인해도 끝이 없었다.
차차차착.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아레스가 배반자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고, 아레스 단 한 명으로 인해 수비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될 가능성이 있었다.
아레스가 말했다.
“조나단 기사단장. 차라리 모른 척 그냥 배신을 당하는 게 좋았을 텐데. 로만 드미트리가 없는 이곳에서 나를, 그리고 크로노스 제국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로만 드미트리 덕분에 나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얻었다. 겨우 너희들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의미이지.”
슥.
검을 들었다.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조나단 기사단장이 굳은 얼굴로 아레스를 경계하고 있는 그때, 주변에서 몇몇 사내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래, 어쩌면 널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화륵.
화르르륵.
불길이 일었다.
몸 주변에 불길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다.
그는 바로.
로드웰 드미트리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프레드, 로건, 펠릭스와 녹스 등등, 드미트리의 거물들이 차례로 무기를 들었다.
조나단 기사단장의 명령이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들은 전투를 치를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드미트리가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이.
기폭제였다.
로드웰 드미트리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아레스와 드미트리의 검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릉.
콰르르르릉.
그리고.
성벽 너머로,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이 드미트리의 성벽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