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7화 (387/615)

387화 제2차 대륙 전쟁 (10)

외성 밖.

반격의 시작은 엘프들이었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더니,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푸슈슈슈슉.

하늘을 수놓는 화살들.

크로노스 제국군으로서는 미처 반응할 수 없었다.

이미 드미트리 성을 공략하면서 혼잡해진 상황에, 화살을 막아 낼 만큼의 완벽한 방패 대형을 형성하지 못했다.

파파파팍.

“크악!”

“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엘프들의 화살 공격은 단단한 갑옷을 단번에 뚫어 버렸고, 미간이 관통당한 병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화살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피해가 막심할 것 같다는 판단에 크로노스 제국군 일부가 방향을 틀자, 그제야 동북쪽 연합회와 루나 왕국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전군 진군하라!”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드미트리 연합군과 크로노스 제국군이 부딪치는 순간,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다.

푹.

“크악.”

“죽어!”

양군이 서로 뒤얽혔다.

연합군의 병사가 제국군의 머리를 베어 버리면, 그 대가로 연합군 병사의 머리도 단칼에 날아가 버렸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시체와 피로 흠뻑 물들었고, 양측의 병사들은 서로 물러날 수 없다는 듯이 피로 흥건한 웅덩이를 짓밟으며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

단연 발군은 아르카디아의 이종족이었다.

그들은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보였다.

“캬악!”

웨어울프(werewolf)였다.

하얀 바탕에 회색빛이 맴도는 털을 거칠게 휘날리며, 웨어울프가 막아서는 제국군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거칠게 찢어지는 살갗과 함께 피가 튀었다.

웨어울프는 상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리더니, 제국군으로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파고들어 사방을 미친 듯이 할퀴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설인이 거대한 발로 제국군을 짓밟았다.

멸족의 위기를 맞이했던 그들은 소수가 살아남았고, 자신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크로노스 제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설인은 몸집에 걸맞은 거대한 몽둥이를 사용했다.

그것을 힘껏 휘두르자, 수십의 제국군이 단번에 쓸려 나가며 북이 터지듯 처참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종족은 무적이 아니었다.

오라를 사용하는 제국의 기사들이 이종족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모습에, 루나 왕국의 오라 검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콰르르르르르르릉.

푸확!

“나를 따르라!”

케이든과 자이로.

루나를 대표하는 오라 검사들이었다.

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선봉에서 제국군을 베었다. 동북쪽 연합회의 검사들도 힘을 보탰지만, 케이든과 자이로는 유독 도드라지는 존재감을 보였다.

아르카디아의 위기.

힘겨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 단계 발전했고,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은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번뜩.

파파팟.

자이로의 검이 미친 듯이 주변을 베었다.

제국군을 맞닥트릴 때마다 단번에 베어 버리며, 그가 강렬한 열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다! 아르카디아 대륙이, 루나 왕국이. 은혜를 아는 존재임을 극악무도한 악의 무리를 상대로 증명하라! 우리는 오늘 드미트리를 위해 죽을 것이다!”

악에 받쳤다.

아르카디아와 루나의 위기.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구한 영웅이었다.

생명의 은인을 위해서, 자이로를 따르는 존재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졌다.

그리고 그 시각.

드미트리 내성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 * *

끼익.

내성의 문이 열렸다.

페르난도를 필두로 나타난 내성의 병력이, 도시에서 날뛰는 그림자들을 발견하고는 살의를 보였다.

“도시를 정리하라. 백성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모두 처리하고, 우리는 외성으로 향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페르난도의 친위대(親衛隊)는 정예 병사들로 엄선되었고, 그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그림자를 상대하는 별동대와 하오문을 도왔다.

그림자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루카스와 맥버니의 활약으로 그들의 수장이 죽은 상황에서, 수적으로도 밀리니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퍽.

파사사삭.

그림자들이 연기로 흩어졌다.

페르난도.

그의 존재감이 부풀었다.

한때는 30위의 수문장이라는 놀림을 받았지만, 그는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며 완전히 다른 존재로 성장했다.

스벤과의 싸움.

그날 헨더슨이 죽고 케빈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참담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페르난도는 지난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5성의 영역에 들어선 페르난도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그림자들은 무력하게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크르르륵.”

“크아악!”

마주치는 족족.

그림자들을 도륙했다.

페르난도가 무섭게 나아가는 상황에, 그 뒤를 따르는 존재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로 로메로 드미트리.

드미트리 국왕도 무기를 들었다.

몸집에 걸맞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마나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아티팩트(artifact)의 능력을 빌려 그림자들의 숨통을 끊었다.

콰득.

“죽어라!”

사람들은 흔히 국왕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생각한다.

명령을 내릴 줄만 알지,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는 고귀한 존재는 전장에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드미트리 국왕의 근본은 달랐다.

어릴 때부터 철광산과 대장간을 전전했던 그는 싸움에 익숙했고, 근육질로 꿈틀거리는 그의 몸집은 일반인을 초월하는 괴력을 보였다.

오라를 사용하지 못할 뿐.

그도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경험한 존재였다.

드미트리 국왕과 마찬가지로 대장간의 대장장이들도 전투에 가담했고, 그들은 그림자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당연히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모두가 안전한 싸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대장장이들도 드미트리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왕관이 아닌 투구를 눌러쓰고 도끼를 휘두르는 드미트리 국왕과 그를 지키는 페르난도.

그들이 도시를 휩쓸었다.

그림자 잔당들을 처리하며 외성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별동대를 비롯한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발견했다.

“……이, 이게 무슨.”

“내성의 병사들이 문을 열고 나왔어.”

“드미트리 국왕 폐하가 직접 싸우고 계셔!”

그들은 당황했다.

계획과는 달랐다.

원래라면 내성에서 안전하게 국왕을 보호하고 있어야 할 친위대가, 드미트리 국왕과 같이 전투에 가담한 모습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윽고 뜨거운 감정을 선사했다.

병사들과 생사를 같이하는 드미트리 국왕의 모습에, 한 병사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국왕 폐하가 우리를 위해 무기를 들으셨다! 국왕 폐하를 지켜라! 국왕 폐하를 위해 싸워라!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국왕 폐하를 위하여!”

“드미트리를 위하여!”

강렬한 열망이 주변으로 번졌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광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전쟁의 승자는 드미트리라는 확신을 지니고, 밀려드는 적들을 향해 자신들의 의지를 표출했다.

지원군의 출현.

드미트리 국왕의 결단.

불리하다고 생각되던 전쟁의 분위기가 단번에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 * *

연달아 발생한 변수.

처음에는 미스틱도 전투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마법을 사용해 드미트리의 병사들을 휩쓸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빌어먹을, 드미트리.”

당혹스러웠다.

이번 작전.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발할라로 떠난 상황에, 아레스라는 강력한 무기를 동원한다면 드미트리 따위를 무너트리는 것은 분명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아레스는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정체가 발각되었고, 무려 6성의 검사인 그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도 못할 만큼 드미트리의 검사들은 아레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부에 침투한 그림자들.

외성의 병력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들이 죽었다는 신호를 받았을 때 짜증이 치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이전의 패배로 미스틱은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지원군의 등장과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서는 드미트리 국왕으로 인해 상황은 최악으로 변했다.

이대로라면 수십 만의 제국군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미스틱으로서는 그들을 잃는 것은 그리 아쉽지 않았지만, 문제는 알렉산드르의 분노였다.

‘……이번마저 실패하면 알렉산드르 님이 분노하시겠지.’

참담했다.

연이은 패배.

분명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후일을 도모할 병력이라도 살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드미트리.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단 한 번의 전투일 뿐이다. 지금은 내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나, 다시 돌아올 때는 너희를 반드시 전부 죽여 버릴 것이다.”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한발 물러날 때.

미스틱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퇴각하라! 일단 한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할 것이다!”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적들의 퇴각.

황급히 물러나는 크로노스 제국군의 모습에, 조나단 기사단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죽여라!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죽여라!”

이번 전쟁.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왕국 연합은 남부의 삼국, 헥토르, 카이로가 모두 공격받는 상황이었기에, 기세를 잡았을 때 확실한 성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고, 도망치는 제국군을 쫓아 그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결국은 멀어지는 제국군의 모습에,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승리했다!”

“우리가 크로노스를 무찔렀다!”

결국.

한고비를 넘겼다.

승리의 기쁨이 밀려들었다.

크로노스 제국은 이번 공격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드미트리 또한 대비했기에 로만 드미트리 없이도 승리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을 즐길 여유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드미트리 국왕은 곧바로 수뇌부들을 소집했고, 다들 엉망인 몰골로 회의실에 참석했다.

모두가 모인 자리.

드미트리 국왕이 말했다.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크로노스 제국은 일부 병력을 살려서 도망친 상태고, 분명히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할 확률이 높다. 이 상황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말해라. 성벽을 보수하고 다음 공격을 대비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곧바로 추격해 적들을 격퇴하는 것이 옳은가.”

한 나라의 왕.

드미트리 국왕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전투 도중에 베인 상처가 쓰라렸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드미트리 수뇌부들을 훑어보았다.

그때.

플로라 로렌스가 나섰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크로노스 제국은 공간을 이동하는 미스터리한 힘으로 이번 공격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힘이 무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수십만의 병력을 연달아 이동시킬 힘이 있다면, 방금 도망치는 상황에서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거나, 아니면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병력을 불러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드미트리 내부에 그림자들을 침투시켰을 때도 소수만 이동시킨 것을 보면, 적들의 능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가설이었다.

그러나 플로라 로렌스는 확고했다.

전장에서 섣부른 판단은 화를 부르지만, 때로는 과감해야만 확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믿었다.

경험을 기반으로 한 판단은, 절대 섣부르다 할 수 없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추격대를 보내야 합니다. 지금 왕국 연합에 필요한 것은 한고비를 넘겼다는 희망적인 승전보 정도가 아닙니다. 적들을 완전히 격퇴해, 왕국 연합 일원들에게 이번 전쟁에 승산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야 합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침묵으로 의견에 힘을 실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없는 전쟁이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이제, 로만 드미트리가 없을지라도 그가 행했을 방식을 따랐다.

드미트리 국왕이 말했다.

“나 또한 플로라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이번 전쟁을 통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닌, 크로노스 제국을 무너트리고 대륙의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치료를 명하라. 해가 뜨는 대로, 우리는 크로노스의 잔당을 처단할 것이다.”

드미트리.

그들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 * *

플로라 로렌스의 예상대로였다.

크로노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진지를 형성했다.

일단 위험한 상황에 퇴각을 명했지만, 미스틱은 병력을 보존하고 다시 한번 반격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힘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한번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다면, 버러지 같은 드미트리 녀석들을 쓸어 버릴 힘을 복구할 수 있다. 참아라, 미스틱. 알렉산드르 님을 더는 실망시킬 수 없다.’

이번 전쟁.

끝을 볼 작정이었다.

다음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미스틱은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그 시각.

아레스는 본대와 떨어졌다.

미스틱은 드미트리가 감히 크로노스 제국을 추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동안 드미트리를 경험했던 아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없더라도 드미트리는 충분히 호전적이었다.

특히 이번 전쟁을 경험하고서, 이대로라면 본대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런 이유로.

본대를 이탈했다.

미스틱이 시간을 끄는 사이, 그는 다른 목표를 노릴 생각이었다.

‘드미트리는 지금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겠지. 병력을 편성해 추격대를 보낸다면, 그때를 노려 드미트리에 다시 침투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드미트리 국왕의 목을 베어 크로노스 제국을 대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증명해 주마.’

성벽 위에서의 전투.

아레스는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려 목숨을 부지했다.

짜증이 일었다.

자신이 생각보다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크로노스 제국이 퇴각이라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레스는 이미 알렉산드르를 택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풀숲에 몸을 숨겼다.

체온을 보존하며 체력을 비축했다.

마침내.

날이 밝았다.

드미트리가 추격대를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레스는 그들의 이동 경로를 피해 움직였다.

그런데.

드미트리 성을 코앞에 두고, 그는 풀숲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드디어 만났네.”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

드미트리의 악귀(惡鬼).

그는 바로 케빈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