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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화 (388/615)

388화 제2차 대륙 전쟁 (11)

케빈.

그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될 인물이었다.

크로노스의 계산대로라면 아직 발할라에 있어야 하는데, 그가 예상보다 빨리 아레스의 눈앞에 나타났다.

스스슥.

케빈이 풀숲을 뚫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케빈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거칠게 헝클어진 머리는 정돈되지 않았고, 눈 부근에 자리 잡은 깊은 음영(陰影)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케빈과 그 일행은 드미트리에 도착하기 위해 상당히 무리했을 것이고, 크로노스 제국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풀숲을 헤치고 다닌 것으로 보였다.

축 늘어트린 팔.

오른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케빈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처음 네가 배신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나는 그 소식을 믿을 수 없었어. 불과 얼마 전에 드미트리를 위해 발할라의 랭커들을 도륙했던 네가, 사실은 크로노스 제국을 따르는 개였다니.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처음에는 전장에서 등을 맡겼던 동료의 배신에 현실을 부정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릿속을 장악하는 불길한 느낌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어.”

그날.

모두가 분노했다.

크리스는 악에 받쳐서 빠르게 이동할 것을 명령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프랑크 국경으로 향했다.

그 덕분에 일정을 앞당겼다.

3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었는데, 그들은 삼 일째 날이 밝을 무렵에 끝없는 산맥의 워프 게이트를 통해 도착했다.

다행히도 드미트리는 무사했다.

드미트리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금세 드미트리를 배신한 아레스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아레스라는 드미트리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강자가 배신했기 때문이었어. 아레스가 배신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일지를 알기에. 나조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너라면, 드미트리를 무너트릴 만큼의 피해를 입힐 확률이 높기에. 너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배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지.”

그건 아레스에게 하는 말이자.

상황을 되새기는 독백이었다.

케빈은 광기로 일렁이는 눈빛을 보이며, 아레스를 향해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

“드미트리로 오는 길에 매 순간 하늘에 빌었어. 제발, 제발 드미트리가 무사하게 해 달라고. 크로노스와도 같은 악의 무리를 상대로 절대 무너지게 내버려 두지 말라고. 그리고 신은 내 뜻을 들어주셨어. 드미트리는 무사했고, 내가 정말 바랐던 마지막 소망마저도 이루어 주셨거든.”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둘의 거리는 가까웠다.

서로가 공격하기를 마음먹는다면, 한순간에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를 만큼의 거리였다.

케빈이 웃었다.

거칠게 헝클어진 머리가, 그의 마지막 소망을 대변했다.

“내 마지막 소망은 제발 내가 먼저 너를 찾는 거였어. 아레스. 지금부터 내가 밤새 빌고 또 빌었던 대로, 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죽어 간 드미트리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 줄 거야.”

더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케빈의 말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

팟.

콰르르르르르르릉.

케빈과 아레스가, 서로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 *

번뜩.

밝은 불빛이 시야를 강타했다.

케빈은 고개를 비틀어 아레스의 공격을 흘려보내더니, 망설임 없이 아레스의 가슴팍을 베었다.

카앙!

공격은 막혔다.

하지만 아레스의 표정은 싸늘했다.

케빈은 방금의 공격으로 명백한 살의(殺意)를 드러냈고, 이제 둘 사이에 동료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 날 처리할 생각이었다면 혼자 오지 말았어야지.”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케빈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아레스의 오라가 강렬하게 휘몰아쳤고, 곧바로 따라붙으며 케빈을 연달아 공격했다.

6성의 오라가 강렬한 파동을 일으킬 때마다 케빈의 몸이 들썩였다.

아무리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낸 케빈이라지만, 크리스도 아닌 그로서는 아직 정면으로 아레스의 오라를 맞받아칠 수 없었다.

파파팟.

공격이 교차했다.

연속해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 내더니, 케빈이 상대의 숨이 느껴질 만큼 거리를 바짝 좁혔다.

카앙!

카카카카카캉!

무기가 정신없이 뒤얽혔다.

케빈이 고개를 젖히면 앞머리가 잘려 나갔고, 곧바로 반격을 시도하면 아레스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힘으로 내리찍었다.

그 공격을 흘려보내면서 급소를 노린다고 한들 아레스의 허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오라에, 아레스는 케빈의 오라를 찢어발겼다.

콰드드드드드득.

압도적인 힘.

아레스가 한 수 위였다.

그 또한 로만 드미트리와의 훈련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힘의 차이를 떠나서 검술에서부터 케빈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찍이 발할라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렸던 재능.

켜켜이 쌓였던 그의 세월이, 로만 드미트리를 만나면서부터 완전히 만개해 버렸다.

그는 진짜였다.

크리스를 압도했던 실력.

아레스의 존재감이 케빈을 짓누르며, 격렬하게 부딪쳐 오는 케빈을 짓밟았다.

번뜩.

피가 튀었다.

다리가 얕게 베이는 정도였지만, 그것이 균열의 시작이었다.

콰르르르릉.

파파팟.

아레스의 공격이 조금씩 먹혀들어 갔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하던 케빈의 패턴이 통하지 않았고, 아레스는 광견(狂犬)을 길들이듯 케빈의 공격을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명백한 실력의 우위였다. 변칙적인 공격을 완벽히 막아 내는 탄탄한 기본기였고,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케빈의 저돌성이 꺾였다. 아레스가 모든 공격을 막아 내자, 케빈으로서는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반격을 감당해야만 했다.

콰앙!

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오라가 폭발했다.

로만 드미트리로부터 터득한 수라 검법이 발현되며, 케빈이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해 갔다.

아레스의 말처럼 케빈은 실수를 저질렀다.

정말 아레스를 처리할 생각이었다면, 홀로 드미트리 주변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본인을 도와줄 동료를 대동해야만 했다.

물론.

케빈은 강했다.

천재라고 불렸던 아레스조차도, 케빈의 나이에 이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전장이다.

미래가 아무리 촉망받는다고 한들, 현재의 부족함에 명을 달리하는 잔인한 세상이었다.

카앙-

팔이 튕겨 나갔다.

케빈을 궁지에 몰아붙인 아레스가, 잔인한 미소를 보였다.

“끝이다.”

번뜩.

검을 들어서 막았다.

하지만.

오라가 그대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케빈의 가슴팍이 찢겨 나가며 사방에 피가 튀었다.

* * *

아레스와의 대결.

아레스도.

케빈도.

대결의 결과를 뻔히 알았다.

케빈은 지금까지 드미트리 이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크리스와 두 번의 대결을 벌였다.

초반에 붙었을 때는 로만 드미트리의 도움을 받고도 압도적으로 패배했었고, 로만 드미트리가 하사하는 검을 차지하기 위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그때도 크리스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크리스는 강했다.

케빈이 성장하는 만큼 그 또한 빠르게 발전했고, 사람들은 케빈보다 크리스가 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레스는 그런 크리스를 쓰러트렸다.

전장에서의 대결이 단순한 계산법이 먹히는 세상이 아니라지만, 크리스를 쓰러트린 아레스가 케빈보다 강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레스는 변수를 경계했다.

혹시라도 케빈이 동료들을 대동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황당하게도 케빈은 정말 혼자였다.

웃겼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케빈의 가슴팍을 가르는 검에, 아레스는 대결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확신했다.

팟.

차르르르륵.

케빈이 뒤로 물러났다.

음영이 더욱 깊어진 눈은 차갑게 가라앉았고, 피부가 너덜너덜해진 가슴팍에서는 피가 뭉텅이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아레스는 한때 케빈을 동료라고 생각했지만, 서로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에 그를 살려 주는 동정심 따위는 베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확실히 강하네.”

케빈이 히죽, 웃었다.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

케빈은 상처 부위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마치 들짐승처럼 자세를 낮추고는 아레스를 바라보았다.

“나 홀로 너를 추격한다고 말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기겁하며 말렸었지. 만약 정말 아레스를 발견한다고 한들, 너 혼자서 그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크리스 님도 쓰러트리지 못한 아레스를.”

상처 부위가 꿀렁였다.

후드득 떨어지는 핏물이 어느 순간부터는 잦아들더니, 상처 부위가 서로 뒤얽히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재생력(再生力)만으로 회복시키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말을 인정해. 나는 크리스 님에게 두 번이나 도전했고, 두 번 모두 처참하게 패배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동안의 대결은 결국 대련일 뿐이야. 목숨을 걸지도, 상대의 목숨을 해할 생각도 없는 순수한 의미의 대결. 나는 내가 전장에서조차 크리스 님에게 패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착.

검을 움켜쥐었다.

묘한 분위기였다.

케빈을 향해 다가가던 아레스도, 위험한 분위기에 걸음을 멈추었다.

케빈이 말했다.

“내가 단언하지. 전장에서 나를 상대하는 것은 얘기가 조금 다를 거라고.”

그 순간.

팟.

콰르르르르릉.

케빈이 다시 한번, 아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빨랐다.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케빈의 모습에, 아레스는 침착한 얼굴로 그의 공격을 직시했다.

‘정면.’

케빈의 패턴.

눈에 익었다.

아레스는 케빈의 공격을 단숨에 막아 내더니, 살짝 드러난 틈을 놓치지 않고 베었다.

팟.

팔에서 피가 튀었다.

그런데도 케빈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통에 신음하지도, 그렇다고 동요하며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곧바로 연계 공격을 펼치는 모습에, 아레스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며 다음 공격을 파악했다.

‘오른쪽.’

훅.

콰르르르르르릉.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케빈의 등을 그대로 베었고,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반격에는 오히려 오라를 정면으로 맞닥트리며 힘으로 찍어 눌렀다.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강렬한 파동이 휘몰아친 직후, 케빈이 하단을 빠르게 공략하는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그의 팔과 다리를 베었다.

푸확.

피가 흩뿌려졌다.

제대로 먹혔다.

이번만큼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리라고 생각했건만, 광기로 물든 케빈의 눈빛은 동요가 없었다.

‘광기(狂氣)에 고통을 잊은 건가.’

확실했다.

케빈은 전장에서 종종 광기에 물든 모습을 보였는데, 그때는 고통도 잊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들짐승과도 같은 움직임.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미친 듯이 몰아붙이는 모습에도, 아레스는 적의 기세에 휘말리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다고 해서 압도적인 간격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성을 잃는다는 것은, 오히려 아레스에게는 기회였다.

콰르르르르르릉.

케빈이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아레스의 눈빛이 변했다.

‘끝이다.’

번뜩.

팔을 베었다.

이번에는 깊었다.

아레스가 한발 빨랐고, 깊숙이 베어지는 감각에 이번만큼은 고통과는 별개로 몸에 문제가 생긴다고 확신했다.

고통을 잊는 것은 자기 암시일 뿐이다.

몸에 생기는 상처가 고통이 없다고 해서 정말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이 정도로 베였다면 케빈에게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확.

콰르르르르르르릉.

“……!”

눈을 부릅떴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케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검을 위로 휘두르는 반격을 시도했고, 아레스는 공격을 피하자마자 상대의 허벅지를 베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케빈의 반격이 급소를 노렸다.

분명히 팔과 허벅지를 깊게 베었는데, 그의 움직임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그때.

아레스는 보았다.

케빈의 팔과 허벅지.

그곳의 상처 부위가 가슴팍이 회복한 것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서로 뒤얽힌 상처는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섰다.

잠식(蠶食)의 단계.

광기에 완전히 물들었다.

케빈의 정신은 광기가 말하는 대로 움직였고, 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번의 공격을 행할 때마다 그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피가 튀었고, 피부가 갈라졌다.

케빈은 피로 흠뻑 물드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레스를 향해 달려드는 속도는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팟.

팔이 베이고.

번뜩.

아레스의 팔을 얕게 베었다.

아레스가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케빈의 옆구리를 베어 버리자, 내장이 쏟아질 것처럼 깊게 베인 상황에서 케빈은 오히려 아레스의 심장을 찔렀다.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동귀어진의 수법과도 같은 과감한 공격에, 아레스는 황급히 몸을 피하느라 마나의 흐름이 뒤얽혔다.

이건.

상식 밖의 대결이었다.

피로 물든 귀신이 따라붙는 모습은, 철옹성과도 같았던 아레스의 평정심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대로 시간이 끌렸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레스의 계획.

케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를 처리하고 드미트리 국왕도 암살해야 했기에, 아레스로서는 더는 이곳에서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오라를 일으켰다.

케빈의 실력은 인정했다.

그는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을 밀어붙이는 강력함을 보여 주었지만, 그렇다고 이 승부의 결과가 달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케빈의 변칙성은 익숙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한때는 그의 동료였던 아레스에게, 케빈의 움직임은 명확한 약점을 드러냈다.

파팟.

케빈이 파고들었다.

과감하고 기습적인 공격.

광기에 물든 그의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아레스의 입술이 비틀렸다.

“너를 인정하마.”

예상했다.

케빈이 과감하게 파고들 것이라는 것을.

그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머리를 베어 버린다면, 아무리 괴물 같은 재생력을 갖추었다고 한들 절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히죽.

케빈이 웃었다.

광기에 물들었던 그의 눈빛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아레스의 모습을 직시했다.

귀혼마공의 3단계.

통제(統制)의 영역이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 케빈이, 그동안과는 다르게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확.

콰르르르르르르릉.

공격이 빗나갔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얽혔다.

아레스가 이를 악물며 곧바로 공격을 시도하려는 순간.

케빈이 자신의 전력을 폭발했다.

‘천마검법 전반부 삼초식.’

오라가 휘몰아쳤다.

힘에서 명백한 우위를 보였던 아레스가, 이번만큼은 케빈의 공격에 휩쓸렸다.

콰앙!

콰콰콰콰콰쾅!

콰릉, 콰르르르르릉.

“크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레스는 그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공격을 방어해 냈지만, 천마의 검법은 아레스의 오라를 찢어발기며 그대로 육체를 난도질해 버렸다.

그는 케빈과는 달랐다.

케빈처럼 비정상적인 회복력을 보유하지 못했기에, 피로 물든 머리카락을 팔락이며 그대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끄윽, 끄으윽.”

피를 토해 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배신을 결심하면서, 설마 로만 드미트리도 아니고 케빈에게 패배하는 상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로.

케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했잖아. 목숨을 걸고 싸우는 승부는 얘기가 다르다고.”

콱.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레스의 머리가 힘없이 딸려갔다. 고개를 들어 케빈을 바라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로 물든 케빈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몰골로 아직도 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아레스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케빈을 공격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쪼르르.

케빈이 아레스의 얼굴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그러고는.

“그렇게 쉽게 죽지 마. 너는 이번 전쟁으로 죽어 간 드미트리 사람들의 혼을 달래 줄, 그리고 반드시 돌아올 주군을 위한 나의 선물이니까.”

강제로 식도를 타고 들어오는 포션.

아레스가 몸을 떨었다.

이건.

그가 생각지도 못한 참담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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