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1화 (391/615)

391화 단 한 명의 존재감 (1)

때는 며칠 전.

로만 드미트리가, 피로 물든 손으로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주군, 드미트리를 공격한 크로노스 제국군을 궤멸시키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발밑.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며칠 밤낮으로 발할라를 횡단하며,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존재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시체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인간이었음을 증명했다.

지금 연락을 받는다고 시간을 허비했다간 분명히 추격대가 따라붙겠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눈앞의 현실을 개의치 않았다.

“드미트리의 상황은?”

[피해가 적지는 않습니다. 아레스의 배신과 공간 이동 마법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가 있었지만, 조나단 기사단장을 필두로 변수에 잘 대응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 낸 뒤에 추격대를 보내 크로노스 제국군을 완전히 격퇴해 버렸으며, 그 과정에서 케빈이 아레스를 생포했습니다.]

상대는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아레스를 언급한 직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케빈이 아레스를 처리하리라고 예상하셨습니까?]

의외의 질문이었다.

평소답지 않은 물음에, 로만 드미트리는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아니, 누가 되었든 아레스 정도로는 드미트리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아주 잠깐.

정적이 맴돌았다.

통신기 너머로 크리스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그로서는 복잡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밑바닥일 시절의 케빈을 알았던 그는, 드미트리의 악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본인이 우위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난 두 번의 대결이 둘의 차이를 증명했지만, 아레스와의 대결로 크리스가 생각하던 상식의 선이 붕괴하고 말았다.

아레스.

강력한 존재다.

크리스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대이며, 반드시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그런 존재를.

케빈이 무너트렸다.

스스로를 드미트리의 이인자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에게, 피로 물든 아레스를 생포하고 나타난 케빈의 모습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선사했다.

그때부터 묘한 스파크가 튀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아레스를 처리할 검으로 케빈을 선택한 것이라면, 크리스는 자존심이 상할 것만 같았다.

둘의 문제.

로만 드미트리는 명확하게 해결해 주지 않았다.

전생에도 똑같았다.

백중혁을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며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길 바랐고, 그러한 마음이 서로를 끌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은 이유였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애초에 크리스와 케빈만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조나단 기사단장을 필두로 공격을 막아 냈듯, 현재의 드미트리가 강해졌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제국(帝國).

거대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인재들이 특정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라도, 그 자리에 있는 인재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필요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이상향.

현재의 드미트리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크리스와 케빈을 더 신뢰하나, 아레스가 포위망을 피해 드미트리에 침투했을지라도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이전에 발각되어 인해전술에 무릎을 꿇거나.

페르난도를 필두로 한 친위대에 의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렇군요.]

조금은 씁쓸한 음성이었다.

어쩌면.

그는 본인의 손을 들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내 감정을 추스른 크리스가 본론을 물었다.

[현재 남부의 삼국, 카이로, 헥토르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가 지금부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앞으로의 계획.

눈앞의 현실을 직시했다.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일단 전쟁을 일으킨 크로노스 제국을 단죄할 때였다.

* * *

그날 오후.

로만 드미트리의 명령에 따라, 크리스는 움베르토 왕국에 작전을 전달했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움베르토 왕국은 결사의 항전을 준비하십시오. 마치 수도로 밀려나기 이전에 승부를 보려는 것처럼 상황을 만든다면, 반드시 그 전장에 주군이 나타나 도와줄 것입니다.]

디테일은 결여되었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대략적인 가이드만을 제시했고, 그 명령을 전달받은 움베르토의 수뇌부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법 통신이 끝나자마자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미 이전 회의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던 몇몇 수뇌부들이, 이번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너무 무모한 작전입니다. 드미트리의 본대는 카이로와 헥토르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로만 드미트리, 그분만 움베르토를 도와주겠다는 의미인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의 무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간 대륙을 떠들썩하게 했던 압도적인 무력은 분명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단 한 명의 합류를 믿고 반격을 시도했다가는 움베르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발할라를 빠져나오지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재수 없게 타이밍이 어긋났다간,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은 움베르토의 몫입니다.”

그들의 걱정.

타당했다.

크리스는 지원 병력을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 로만 드미트리가 발할라를 벗어난 직후 프랑크의 워프 게이트를 통해 움베르토로 향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카이로와 헥토르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드미트리의 병력은 분명히 그들을 도와야만 했다.

그렇다고.

남부의 삼국을 버릴 수는 없었다.

드미트리가 남부로 떠나는 것은 비효율적인 선택이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본인이 남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지원군은 단 한 명뿐이라는 의미였다.

만일의 변수로 생겨날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이건 상대가 로만 드미트리일지라도 무작정 따를 수 없는 문제였다.

모두의 시선이 한 사내를 향했다.

칼데론 드레이크.

최전선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그는, 냉정한 얼굴로 상황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무모한 작전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설령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된다고 한들 단 한 명의 합류로 전력의 열세를 완벽하게 뒤엎을 수는 없다. 로만 드미트리는 겨우 한 명일 뿐이다. 그가 수만의 병력을 상대한다고 한들, 그동안 나머지를 감당하는 것은 움베르토의 몫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의미지.’

이번 작전.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섰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지만, 이윽고 칼데론 드레이크는 결단을 내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드미트리는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드미트리는 최강의 전력을 보내온 것이고, 로만 드미트리가 제시간에 도착만 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하리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로서는 망설일 것이 없는 문제입니다. 계획을 따라야만 합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이번 작전을 위해 많은 병사가 희생된다고 망설일 이유는 없습니다.”

본질을 보았다.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승패였다.

그가 걱정한 부분은 작전으로 생겨나는 피해일 뿐, 로만 드미트리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애초에 움베르토의 명운이 걸린 문제입니다. 로만 드미트리가 왕국 연합 일원으로서의 믿음을 보여 준 지금, 우리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가 활약할 판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움베르토는 물러나는 것을 멈추고 결사의 항전을 택했다.

솔레르 백작의 걱정은 사실이었다.

그의 걱정처럼.

단 한 명의 존재가 움베르토의 용기를 끌어냈다.

* * *

그리고 현재.

작전대로였다.

전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로만 드미트리가 크로노스의 후방에 나타났다.

“로, 로만 드미트리다!”

“저 괴물이 왜 여기에 있어?!”

순간.

크로노스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들처럼, 그들은 창백한 얼굴로 황급히 로만 드미트리와의 거리를 벌렸다.

크로노스에서 로만 드미트리의 이름값은 공포의 대명사였다.

그동안 어떤 나라를 상대하든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크로노스가,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번번이 패배했다.

특히.

지난 전쟁은 압도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홀로 수십 만의 병사를 도륙하더니, 8서클 마법사인 셰피르마저도 쓰러트렸다.

범접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움베르토를 공격한 제국군은, 설마 드미트리가 아닌 이곳에서 먼저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참 거슬려. 날 전장에서 배제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날 이렇게 맞닥트린다면 너희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움베르토의 상황은 포기하고, 또다시 다른 곳을 노릴 건가.”

웃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혈인(血人)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는지, 몸 어디든 핏자국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진즉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고된 일정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할라를 횡단했는데도, 로만 드미트리는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위험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보였다.

괴물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한 걸음 다가서자, 크로노스 제국군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났다.

“내가 약속하지. 이번 전쟁과 관련된 자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모조리 죽일 것이다.”

그 순간.

“공격해!”

“공격하라!”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콰릉.

콰르르르르릉.

제국군이 달려들었다.

공포에 질린 그들이 결국 벼랑 끝에 몰렸고, 오라 검사들이 일제히 오라를 일으키며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했다.

그들도 알았다. 처음 달려든 존재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조금 더 참담했다.

푸확.

파파파파팟.

머리가 날아갔다.

대단한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힘을 최대한 절제한 채 오라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로만 드미트리와 맞닥트리는 족족 오라 검사들의 머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멈출 수 없는 싸움은 시작되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일주일 내내 피에 질릴 만큼 전투를 치렀는데도, 아직도 갈증이 일어난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콰득.

팔을 베고.

번뜩.

머리를 날렸다.

순식간에 뒤얽히는 상황에, 로만 드미트리 주변으로 피의 꽃이 피었다.

“크악!”

“으아아아아, 로만 드미트리를 막아!”

이번 작전.

간단한 문제였다.

적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것이다.

움베르토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자신으로 인한 균열이 수십 만의 병력을 혼란에 빠트리도록.

학살을 벌였다.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크악!”

솔레르 백작은, 고개를 홱 돌려 전장에 문제가 생겼음을 확인했다.

* * *

숨이 턱 막힌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솔레르 백작은 처음에 놀랐다.

계획대로라면 한 달은 붙잡혀 있어야 할 로만 드미트리가, 벌써 발할라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당황했다.

상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외에 다른 지원군은 보이지 않았지만, 로만 드미트리로 인한 혼란은 한 명의 존재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멀리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수많은 병사가 후방으로 몰려들었지만, 그들은 마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처럼 피를 흩뿌리며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이게 로만 드미트리구나.’

그간의 일들.

크로노스의 지휘관들은 교훈을 얻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더는 약소국의 검사가 아니고,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하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솔레르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몰라.

만일의 상황을 준비했다.

자신의 주변을 지키는 크로노스 기사단을 향해, 벼락같은 명령을 내렸다.

“봉인을 해제해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려라.”

“알겠습니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그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선천(先天)의 기운이 폭발하며 마력이 증폭되었고, 크로노스 기사단뿐만 아니라 대기하고 있던 그림자들도 나섰다.

그들 중에는 5성 이상의 오라 검사들도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 단 한 명의 존재를 대비해 준비한 병력이었고, 그들은 지금껏 움베르토와의 싸움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고로.

확신했다.

일주일의 피로가 쌓여 있는 로만 드미트리라면, 분명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번뜩.

“크악.”

착각일 뿐이었다.

득달같이 달려든 크로노스의 기사들이 단숨에 베어지는 상황에, 솔레르 백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멀리 떨어졌기에 상황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번뜩인다 싶으면, 로만 드미트리를 가로막던 존재들은 반드시 피를 흩뿌렸다.

이건 일반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선천의 기운을 폭발한 기사들도, 미지의 힘을 사용하는 크로노스의 그림자들 또한.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오라의 폭풍에 쓸려 나갔다.

로만 드미트리가 천마 검법을 발현하자, 그 범위에 닿는 공간이 그대로 소멸(消滅)되어 버렸다.

소름이 쫙 돋았다.

단 한 명.

전쟁의 양상이 변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움베르토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건만, 로만 드미트리로 인한 혼란에 더는 움베르토를 향한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오히려 진군하던 병력이 방향을 돌렸다.

일단 로만 드미트리를 처리해 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그들은 의도를 이루지 못했다.

드미트리의 진짜 악귀는.

로만 드미트리였다.

피로 흠뻑 물든 채 벌이는 살육에, 솔레르 백작은 전장의 소문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패장(敗將)들의 조언은 사실이었어.’

이번 전쟁.

움베르토를 공격하는 역할을 맡은 그에게, 지난 패배의 책임을 물어 강등된 패장들이 이렇게 말했다.

“솔레르 백작. 그간의 연을 생각해 한 가지 조언하지. 대국인 크로노스가, 왜 이렇게 조급하게 이번 전쟁을 감행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대체 왜 병력을 쪼개어 동시다발적으로 대륙의 왕국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하나. 이유는 간단하네. 로만 드미트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네. 전장에서 로만 드미트리를 맞닥트렸다간, 병력을 얼마나 동원하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 그러니까 명심하게. 병력을 쪼갠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을 내려는 의미임과 동시에, 로만 드미트리가 나타난 전장을 포기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었다는 것을.”

그때.

솔레르 백작은 현실을 부정했다.

크로노스는 대국이다.

아무리 로만 드미트리가 전설에서나 들어 볼 법한 행보를 보였다고 한들, 그 한 명을 그렇게까지 경계해서 전쟁을 진행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나타난 전장은 포기한다니.

제국의 자부심을 가진 그로서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참담한 진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압도적이었다.

제국군으로 득실거리는 공간을 쓸어 버리고 다니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귓속으로 끊임없이 들리는 고통에 찬 비명에.

발할라를 동원해 왜 그렇게까지 로만 드미트리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발악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전장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전쟁은 정말 어렵게 풀릴 수밖에 없기에, 크로노스 제국은 되도록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로만 드미트리에게 집중할 계획이었다.

‘저 괴물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적어도 움베르토는 크로노스가 선택한 전장이 아니라는 의미겠지.’

그 순간.

“……!”

저 멀리.

로만 드미트리와 눈이 마주쳤다.

왜일까.

온몸을 관통하는 전율에, 패장이 마지막으로 말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만약 나처럼 겁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살아남고 싶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시야에 들어온 그 순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게. 그때부터 이미 사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패장의 조언은 사실이었다.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뒷걸음질을 쳤을 때는.

“네가 지휘관이구나.”

푸확.

피가 흩뿌려졌다.

비처럼 내리는 피를 뚫고.

로만 드미트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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