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단 한 명의 존재감 (5)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아니,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몰아치는 파괴적인 기운에, 사람들은 숨소리 한 번 제대로 내뱉질 못했다.
그때였다.
팟.
콰르르르르르릉.
카스트로가 땅을 박찼다.
이미 서로를 마주 보는 순간부터 대전사 전투는 시작되었고,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몰아치는 파괴적인 기운이 거대한 오라로 분출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단 한 번도 목격해 보지 못한 종류의 힘이었다.
십수 미터를 넘어서 하늘을 뚫을 듯 분출되는 오라가, 단번에 로만 드미트리의 몸을 갈랐다.
콰앙!
콰드드드드드득.
엄청난 위력이었다.
땅바닥이 일어나며 오라의 소용돌이에 휩쓸렸고, 로만 드미트리가 공격을 피해 내자 그 너머에 있는 성벽에서 균열이 생겨났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크로노스의 공격을 대비해 마법 방어를 겹겹이 설치했건만, 오라의 파동만으로 마법 방어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콰앙!
콰콰콰콰쾅!
카스트로가 로만 드미트리를 몰아붙였다.
하늘에서 심판의 검이 내리꽂히는 것처럼, 거대한 오라가 연달아 로만 드미트리의 머리에 작렬했다.
바람이 휘몰아쳤다.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기도 힘들 만큼 오라의 폭풍이 일어났고, 이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막아 내고 있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만으로도 감탄을 나올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미지의 세계. 7성의 오라는 차원이 달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하는 새로운 오라의 체계는 효율적인 분출을 추구한다면, 카스트로는 무분별한 분출이 극에 달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파괴력을 보였다.
“명성대로 어쭙잖은 녀석은 아니구나.”
팟.
카스트로가 공간을 파고들었다.
흉흉한 눈빛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위치를 파악하며, 빠르고 간결한 공격으로 급소를 공략했다.
파파팟.
콰르르르르르릉.
강했다.
카스트로는 매번 강력한 힘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오라의 위력을 조절하며 미칠 듯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로만 드미트리의 차가운 눈빛이 카스트로를 따라갔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곧바로 급소를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 로만 드미트리도 매섭게 반격했다.
콰앙-
공격을 막고.
상대를 베었다.
번뜩이는 불빛이 카스트로의 목을 베자, 카스트로 또한 저돌적으로 치고 들어오며 반격을 시도했다.
생소한 광경이었다.
최근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제대로 공방을 주고받은 존재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카스트로는 짧은 격돌만으로도 본인의 존재감을 증명해 냈다.
사람들은 카스트로를 섣부르게 판단했다.
오랜 세월 황실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그의 실력은 퇴보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발전했다.
남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아득히 높은 경지에 올라 크로노스의 절대자를 자처했다.
그런데.
“같잖구나.”
순간.
투구 속 카스트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같잖다니.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는 지금 대체 무슨 의미로 저런 말을 내뱉는단 말인가.
자신의 검법이, 자신의 오라가, 로만 드미트리의 기준에서는 ‘같잖다’라고 표현할 만큼의 수준이라는 의미일까.
무엇이든 간에 카스트로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는 검사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전사 전투의 방식을 강행했다.
고로.
“어디 이 공격을 받아 내고도 그따위 말을 내뱉나 보자.”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오라가 파멸적으로 일었다.
검은빛을 뿜어내는 오라가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더니, 마치 거대한 태양을 형상화하듯 검 끝에 맺혔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제일의 비기였다.
세자르와 같은 녀석들은 비기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고, 후일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괴물이 나타난다면 이것을 사용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누구도 카스트로의 공격을 막아 내질 못했다.
검을 회수하며 반격을 시도하려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카스트로는 그대로 오라를 내리꽂았다.
“죽…… 흡?!”
그 순간.
번뜩.
그는 보았다.
카스트로의 의지에 따라 내리꽂히는 오라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무언가에 의해 갈라지는 모습을.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태양을 형상화한 오라는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건만, 그것이 처참하게 찢어 발겨지며 얼굴 전체에서 갑자기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크악!”
피가 튀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 산산이 조각난 투구 조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그 사실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머리 위로 로만 드미트리의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단 한 번도 내 전력을 받아 내는 상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로만 드미트리를 비추었다.
“너 또한 마찬가지다.”
* * *
문득.
카스트로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게 힘을 부여한 알렉산드르는, 카스트로와 아레스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 둘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크다. 카스트로는 나의 방식을, 아레스는 새로운 방식을. 어떤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를 너희가 몸소 증명해 보거라. 만약 나를 만족시킬 만큼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약속하건대 새로운 세상에서 그를 제일(第一)의 검사로 인정하고 모든 부귀영화를 부여할 것이다. 샐러맨더 대륙을 지배하는 일만큼이나, 그것은 내게 중요한 문제다.”
알렉산드르의 갈망은 진짜였다.
그는.
전생을 떨쳐 내질 못했다.
무공을 재현시키길 바랐고, 서로 시대는 달랐으나 카스트로와 아레스는 각기 다른 방법을 택했다.
초반에는 카스트로의 성장이 압도적이었다.
그야 당연한 것이, 카스트로는 아레스보다도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았기에 이른 시기에 알렉산드르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대륙 제일이라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레스가 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레스는 분명히 경계할 필요도 없는 풋내기에 불과했는데, 새로운 방식을 흡수하면서 카스트로를 위협할 만큼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미트리와의 전쟁을 끝낸 직후, 알렉산드르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카스트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카스트로. 너의 방식, 아니 나의 방식으로는 절대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릴 수 없다. 로만 드미트리가 사용하는 검법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理想)이다. 그러니 더는 애를 쓰지 않아도 좋다. 지금부터 나는 아레스의 방식에 모든 것을 걸 것이며, 그를 첩자로 보내 로만 드미트리의 무공을 빼돌릴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켰던 내 방식은 안타깝게도 정답이 아니었다.”
충격적이었다.
카스트로는 악착같이 노력해 7성의 경지에 올랐다.
아레스 따위는 단칼에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의 경지이건만, 앞으로 가망이 없다고 낙인을 찍듯이 말하는 발언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더욱 악착같이 훈련에 매달렸다.
알렉산드르의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방식을 미친 듯이 갈고닦았다.
그리고.
“끄어억.”
패배했다.
속에서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핏물에, 카스트로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로만 드미트리를 보았다.
“……알렉산드르 님의 말이 옳았어. 내 방식으로는 너를 쓰러트릴 수 없다. 나는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 버린 그 일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건만, 그것은 시작부터 틀린 방법에 불과했다.”
목소리가 들끓었다.
슬픔, 억울함, 분노 등등.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카스트로는 눈을 부릅뜨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인정한다. 너야말로 대륙 제일검이다. 하지만…….”
푸스스스.
꾸르르르르르륵.
마력이 일었다.
어둠의 기운이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카스트로의 눈 전체가 검게 물들었다.
그 순간.
팟.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것이 네가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 * *
대전사 전투는 처음부터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순수한 대결이라면.
두 번째는 실력에서 패배했을 경우, 로만 드미트리를 혼자 고립시켜 어떻게든 처리할 생각이었다.
팟.
쿠르르르릉.
세상이 변했다.
어둠의 마력이 폭발하며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였고, 성벽 위에서 지켜보던 움베르토의 병사들이 관여할 수 없도록 공간을 완전히 분리했다.
동시에 카스트로는 어둠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어둠의 마력이 전신에서 미친 듯이 들끓었고, 선천(先天)의 기운 또한 제한을 풀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어떻게 대응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그림자들이 나타나며 어둠의 손길을 뻗었다.
파파파팟.
“속박하라.”
수백 개의 손길이 사방을 장악했다.
그림자의 마법이 로만 드미트리의 온몸을 움켜쥐려고 하자, 로만 드미트리는 간결하게 피하며 차례로 베어 버렸다.
익숙한 힘이었다.
발할라의 영토에서 한번 경험했던 패턴이었지만, 그림자들의 숫자와 힘이 이전보다 강력했다.
그때였다.
“너는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까맣게 물든 눈빛으로 카스트로가 순식간에 공간을 파고들더니, 어둠으로 일렁이는 오라로 공격했다.
7성의 오라를 넘어서는 파괴력이었다.
이전처럼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모습은 아니었으나, 응축되어 있는 힘은 검은 불길로 활활 타오르면서 로만 드미트리를 연속해서 몰아붙였다.
콰앙!
콰콰콰콰쾅!
카스트로.
그는 영혼을 버렸다.
선천의 기운은 생명을 대가로 했고, 어둠의 마력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절대로 쓰러트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그는 카스트로라는 인간의 삶을 이어 갈 이유가 더는 사라지고 말았다.
알렉산드르가 제안했던 악마의 유혹.
강력한 힘을 받아들인 카스트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세상이 뒤흔들렸다.
카스트로가 수차례 몰아치고 나면, 그림자들도 타이밍을 노려 마력을 분출했다.
확.
파파파팟.
어둠의 마력이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어떤 것은 손길의 형태로 로만 드미트리의 몸을 휘감았으며, 어떤 것은 그대로 내리치며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것은 모두 빠른 반응에 막혔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틈이 보일 때마다 그림자를 일으켜 공격했고, 그림자 중 일부는 사각(死角)을 노려 오라의 폭풍에 몸을 날렸다.
파사삭.
몸이 찢겨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그림자에 시선을 돌린 사이, 카스트로가 코앞에 치고 들어오며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강력한 일격이었다.
단언컨대 현생을 살아가며 제일 위협적인 수준이었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그림자들의 공격은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크로노스의 함정은 위력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서, 그들은 제국의 자부심을 버리고 크로노스 제일검인 카스트로의 영혼도 희생했다.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공격이 막힌 카스트로가 다시 한번 치고 들어오려는 순간, 로만 드미트리의 눈빛이 변했다.
‘천마검법 후반부 일초식.’
번뜩.
느낌이 달랐다.
마력이 휘몰아쳤다.
카스트로의 비기를 단번에 갈라 버렸던 그 공격이, 또다시 카스트로를 절망에 빠트리기 위해 공간을 갈랐다.
그런데.
콰앙!
카카카카카카카캉!
카스트로의 얼굴이 환희에 차올랐다.
조금 전에는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못했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막아 내더니 오라의 여파마저도 모조리 받아 냈다.
카스트로가 영혼을 판 이유였다.
그는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할 만큼의 강력한 힘을 원했다.
현생에서 로만 드미트리의 후반부 초식을 받아 낸 존재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건만, 카스트로는 공격을 막아 낸 것으로 끝내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달려들었다.
쿠르르르르르릉.
그를 중심으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광기에 차오른 얼굴이, 상당한 기쁨을 드러냈다.
“크하하하하하. 보았느냐. 너희 힘은 더는 무적이 아니다.”
현생(現生).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림에서도 후반부 초식을 받아내는 존재는 흔하지 않았건만, 카스트로는 어둠의 힘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담담한 표정으로 카스트로를 직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들 착각했다.
천마의 검.
그것을 막아 내면 마치 승리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이제 겨우 한 번의 공격을 막아 냈을 뿐인데, 그들은 이후에 벌어질 상황은 생각하지를 못했다.
검법이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대결은.
한 번의 공격을 막아 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공격을 막아 내야만 겨우 상대와 대적(對敵)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카스트로가 막아 낸 방금의 일격은, 전력을 다한 필살의 일격이 아니라 앞으로 수도 없이 주고받을 공격 중 하나일 뿐이었다.
고로.
콰앙!
팔이 튕겨 나갔다.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냈지만, 카스트로는 연달아 분출하는 강력한 위력에 눈을 부릅떴다.
그림자들이 몸을 날렸다.
번뜩.
카스트로를 보호하려던 수십의 그림자가 단번에 찢겨 나갔고, 로만 드미트리는 어느새 카스트로의 코앞에 나타난 상태였다.
카스트로는 전력을 끌어올렸다.
이를 악물고 로만 드미트리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연달아 충격이 일어날 때마다 카스트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매 공격.
상식을 벗어났다.
자신은 아등바등 겨우 막아 내는 수준이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검을 휘둘렀다.
로만 드미트리는.
아니, 천마 백중혁은.
천마검법을 받아 내는 상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이거니와, 수백 합을 주고받는 대결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그런 강력한 존재를 원했다.
번뜩.
“크악!”
팔이 날아갔다.
번뜩.
다리가 날아갔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피에, 카스트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털썩.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더는 여력이 없었다.
영혼을 팔고.
선천의 기운을 폭발시켰는데도.
무려 7성의 기반을 가지고도,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은 로만 드미트리와 몇 번 공방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으면서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렸고, 그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면서도 힘겹게 고개를 들어 로만 드미트리를 보았다.
“내가 말했잖아.”
내려다보는 눈길.
싸늘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조금의 위협도,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전력을 끌어올릴 상대를 만나 보지 못했다고.”
* * *
이건 단순한 벽이 아니었다.
하늘.
그 위의 하늘.
아득히 높아서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그런 존재.
로만 드미트리의 본질을 보았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카스트로는 넋을 잃은 얼굴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푸흐흐흐흐흐. 크하하하하, 넌 정말 괴물이구나. 로만 드미트리는 대륙 제일의 검이 맞았어!”
파스스스.
어둠이 밀려났다.
그림자들이 흩어졌다.
성벽 위.
병사들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둠이 일어나며 당황했던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 어둠이 걷히고 갑작스럽게 카스트로가 무릎을 꿇은 참담한 광경이 보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카스트로가 전력을 다했지만,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리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카스트로가 말했다.
“널 그냥 내버려 둔다면, 아마 크로노스의 수도까지 쳐들어가 황제의 목을 베어 버리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한들 뭐가 달라지는 거지? 너와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크로노스의 본체는 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황제를 지켜야 할 내가, 황실을 떠나 이곳에 있다는 것을.”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크로노스의 존재.
그것을 부정했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에, 카스트로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였다.
“너는 알렉산드르 님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분은 너와 마찬가지로 타협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너를 죽이고, 샐러맨더 대륙을 정벌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파스스스.
몸이 흩어져 갔다.
죽음의 끝에서, 카스트로는 조금의 미련이라도 남기려는 듯이 소리쳤다.
“그분이 현세(現世)에 강림할 것이다. 아득바득 발악하는 같잖은 너희를 처단하기 위해서, 알렉산드르 님이 직접 심판할 것이다. 보아라! 너희가 상대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내가 이곳에서 싸우고 있는 사이, 카이로 왕국은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더는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의 몸이 연기로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지금, 이 순간.
로만 드미트리가 카스트로를 상대하는 사이, 카이로 서부 전선에 절망의 그림자가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