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8화 (398/615)

398화 알렉산드르 (3)

병사들의 등장.

처음부터 계획된 작전이었다.

며칠 전.

다니엘 카이로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로만 드미트리는 마법 통신을 통해 새로운 계획을 전달했다.

[지금처럼 항전을 포기하고 요새들을 내주어라. 크로노스 제국과의 전쟁은 장기전이 아닌, 단 한 번의 확실한 전면전을 통해 승부를 봐야만 한다. 크로노스가 패트릭 가문의 영토에 발을 들였을 때, 우리는 패트릭 요새를 중심으로 적들을 상대할 것이다. 이때 수성(守城)의 이점은 완전히 배제한다. 다니엘 카이로 국왕을 성벽 위에 내세워 적들에게 결사의 항전을 벌이려는 느낌을 부여한 뒤에, 일부 병력과 움베르토의 지원군을 주변에 배치해 적들과의 백병전을 유도할 것이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상대는 9서클 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싸움에서 9서클 마법사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다니엘 카이로였다.

그는 로만 드미트리와의 관계를 재정립했고, 신하의 나라로서 그를 존대하는 상황을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

헥토르와 카이로. 두 왕국은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매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그들은 로만 드미트리라는 동아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너희들의 걱정은 이해한다.]

알렉산드르.

9서클 마법의 파괴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단 한 번의 마법에 오델리아의 수도를 날려 버리고, 카이로의 서부 전선을 무너트렸다는 내용은 그가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증명했다.

로만 드미트리 또한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였기에,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 상황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판단을 내렸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발할라가 치고 들어오는 지금, 크로노스를 압도적으로 짓밟아야만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성의 이점을 살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르의 마법은 성벽의 마법 방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기에, 오히려 그들을 끌어들이고 백병전을 통해 적군과 아군의 경계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다. 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본인들의 병력 또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도록. 그런 의미에서 패트릭 가문의 영토가 승부처다. 안으로 들어서면 빠르게 퇴각할 수 없는 험난한 지형이다 보니, 단 한 번의 승리로 크로노스 제국군을 궤멸시켜 버릴 수 있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뒤얽히는 상황에서, 나는 직접 알렉산드르를 노릴 것이다.]

화면 너머.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을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럴 때면.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이유가 단순히 무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적절하게 판단하는 능력과 과감한 행보는, 일개 변방의 후계자일 때부터 카이로 왕국을 들썩이게 했다.

겨우 몇 년 만에 대륙의 거물로 거듭난 존재. 그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카이로는 계획대로 움직였다.

크로노스를 무너트리고 알렉산드르를 처리하든, 완전히 짓밟혀 이대로 카이로가 몰락해 버리든.

로만 드미트리는 승부수를 띄웠다.

* * *

팟.

콰르르르르르릉.

오라가 휘몰아쳤다.

로만 드미트리가 달려드는 속도는 아군 병사들보다 빨랐다.

숨어 있던 병사들이 전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적군이 득실거렸다.

일반적으로는 다수가 기세등등해야 하는 상황에서,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최근.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일당백도 아닌 일당만(一當萬).

수십만의 병사를 도륙하는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감에, 그들은 수적 우위의 무의미함을 알았다.

예상대로였다.

겁에 질려 달려들지 못하는 병사들과 로만 드미트리가 맞닥트리는 순간, 충격적인 광경이 벌어졌다.

천마군림보 첫 번째 걸음.

쿠르르르르르릉.

힘을 숨기지 않았다.

표출했다.

적들을 맞닥트리며, 로만 드미트리가 천마검법을 펼쳤다.

‘천마검법 전반부 일초식.’

번뜩.

콰르르르르르릉.

처음 마주한 수백의 병사가 단번에 찢겨 나갔다.

서로 무기를 주고받는 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검에서부터 휘몰아치는 오라의 바람이 그들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로서는 단번에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그사이.

‘천마검법 전반부 이초식.’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적들이 몰려든 공간을 파고들자, 파괴적인 기운이 전방을 휩쓸며 막아서는 적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크악!”

“으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천마군림보는 한 번의 걸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의 흐름을 이어 가는 모든 걸음을 의미하며, 첫 번째 걸음에서 두 번째 걸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실제로는 수십 번의 걸음을 나아갔다.

내딛는 걸음마다 땅에서부터 대지의 기운이 타고 올라왔다.

단전을 매개체로 들끓는 오라는, 로만 드미트리의 의지에 따라 강력한 힘으로 표출되었다.

번뜩.

달려들던 오라 검사의 머리를 날렸다.

나름대로 명성을 떨쳤던 오라 검사가 허무하게 죽음과 동시에, 또다시 적들로 득실거리는 공간을 파고들었다.

“죽어!”

“몸을 날려!”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렸다.

막상 시작된 전투에 적들은 이성을 잃었고, 매 순간 빠르게 죽어 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수백이 죽는다고 할지라도. 얕은 상처를 하나라도 남기면 이득이었다.

어떻게든 로만 드미트리를 조금씩 갉아먹어, 마지막에는 그를 쓰러트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타다닥.

딱 열 걸음.

사정거리에 들어섰다.

그들이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을 인식하고 각자의 공격을 시도하는 순간,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파파파파팟.

머리가 날아갔다.

세 번째 걸음을 내디디며, 소용돌이치듯 휘두른 천마검법이 주변을 둘러싸는 모든 적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본인들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먼저 달려들면 반드시 죽었고,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 로만 드미트리가 찾아가 죽였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단 한 명.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감이 부풀었다.

짐승처럼 전장을 휘젓는 그의 존재로 인해서, 크로노스 제국군은 뒤늦게 달려드는 왕국 연합의 병사들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일단 로만 드미트리부터 죽여야 했다.

겨우 몇 분 사이에 수천의 병사를 도륙해 버린 이 악마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이번 전쟁에서 승산은 없었다.

팟.

콰르르르르릉.

로만 드미트리가 나아갔다.

우악스럽게 밀고 나가며 그가 노리는 것은, 이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 단 한 명의 존재였다.

‘알렉산드르.’

느껴졌다.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 폭발적으로 들끓는 마력이 알렉산드르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때였다.

확.

화르르르르르르륵.

열기가 느껴졌다.

화마의 덩어리를 받아들이며 열기에 내성이 생겼던 로만 드미트리가,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위험하다.’

팟.

화르르르르르르르륵.

화염이 주변을 휩쓸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달려들던 제국군은 마법의 여파에서 무사하지 못했고, 엄청난 열기에 그들의 몸이 단번에 녹아내렸다.

그 범위가 무려 수십 미터에 달했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고, 거대하고 까맣게 파인 공간이 눈앞의 현실을 의심하게 했다.

“헬파이어(hellfire)를 피하다니. 화염 속성의 마법은 그냥 정면으로 돌파한다고 들었는데, 이건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건가.”

저 멀리.

음성이 들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고개를 들자, 흥미롭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알렉산드르와 시선이 마주쳤다.

* * *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

알렉산드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지난 전쟁.

알렉산드르는 기억의 조각을 통해 로만 드미트리가 싸우는 모습을 몇 차례 확인했었다.

그때도 엄청난 무력에 전율이 일었지만, 직접 마나의 흐름을 마주하는 것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폭발적이었다.

압도적이었다.

수십만의 병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알렉산드르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피가 끓었다.

대체.

로만 드미트리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알렉산드르가 아무리 무지렁이 출신이라지만, 그도 상대가 상식적이지 않은 존재임을 알았다.

‘사람들이 무림을 동경하면서 떠들어 대던 말에도, 로만 드미트리처럼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주는 존재는 흔하지 않았다. 정파 무림의 맹주와 같은 거물급의 존재나 가능한 일. 문제는 로만 드미트리의 거칠고 파괴적인 모습은 정파 무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파 쪽의 인물인가, 아니면 설마…….’

처음으로.

천마신교가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십만대산에서 살아온, 천마신교의 간부급 인물일 가능성도 있었다.

히죽.

웃음이 나왔다.

‘이건 너무 흥분되잖아.’

생각해 보라.

전생에는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했을 존재가 분명한데, 알렉산드르로 태어나 무공을 압도할 마법의 힘을 얻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릴 것이다.

그를 처참하게 죽인 뒤에, 알렉산드르는 로만 드미트리를 데스나이트(Death knight)로 만들어서 본인의 종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상상만 해도 전율이 일었다.

영혼의 구속을 통해 진실을 묻는다면, 알렉산드르는 강렬히 염원했던 무공의 진실과 로만 드미트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쓰러트려야 했다.

알렉산드르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로만 드미트리를 처리하기 위해, 직접 그가 전장에 나섰다.

“헬파이어.”

확.

화르르르르르륵.

9서클 마법.

지옥의 불길을 일으켰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랑하는 불의 내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그것도 절대적이지는 않은 모양인지 로만 드미트리가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자신의 마법에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이 죽었지만, 알렉산드르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헬파이어를 피하다니. 화염 속성의 마법은 그냥 정면으로 돌파한다고 들었는데, 이건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건가.”

전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에, 알렉산드르가 다시 한번 마력을 일으켰다.

“라이트닝 퍼니시먼트(Lightning Punishment).”

번뜩.

콰르르르르르릉.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이번에도 애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방금 확인한 위치보다도 훨씬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다.

알렉산드르는 상대의 존재를 놓치지 않았다.

마력을 계속해서 조종하며, 로만 드미트리가 나타난 주변 일대에 벼락을 무차별적으로 떨어트렸다.

콰앙!

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세상이 하얗게 빛났다.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크로노스의 병사들이 죽든 말든, 알렉산드르의 목적은 오로지 로만 드미트리 단 한 명이었다.

“역시.”

마력의 폭풍 속.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느꼈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분명히 도망칠 공간도 없이 몰아붙였는데, 마력의 폭풍을 뚫고 자신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정확히 달려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맞닥트리는 제국의 병사들은 어김없이 피를 흩뿌렸다.

오라가 휘몰아칠 때마다, 마치 대단한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소멸되는 광경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손가락을 치켜들어, 로만 드미트리를 가리켰다.

“어스 퍼니시먼트(Earth Punishment).”

콰앙.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폭삭 내려앉으며 주변의 지형이 급격하게 변했고, 수백 개의 가시 바위가 툭툭 튀어나오며 틈에 끼인 존재들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크로노스의 병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제발 살려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로만 드미트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그들은 죽음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꽈드드드득.

육신이 갈려 나갔다.

하늘에서는 아직 벼락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고, 사방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접근을 허락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9서클의 영역이었다.

신(神)의 경지.

알렉산드르는 9서클 마법을 처음 사용한 날, 대륙의 인간들은 절대 자신을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애초에 대륙 정벌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분의 명령에 따라 필요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지, 알렉산드르의 크로노스는 예전부터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마력을 일으켰다.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찾으려 했는데, 마나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팟.

“……?!”

순간.

알렉산드르가 눈을 부릅떴다.

바로 눈앞에.

로만 드미트리가 나타났다.

분명히 상당히 먼 거리였고, 9서클 마법을 연달아 사용했는데도 그는 상식을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알렉산드르와의 거리를 단번에 좁혔다.

머릿속으로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즉각적으로 서클의 마력을 회전시키며,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마법을 발현했다.

아니.

발현했다고 생각했다.

번뜩.

세상이 번쩍였다.

알렉산드르가 공격을 인식했을 때는, 그의 머리가 이미 하늘 위로 떠오른 상태였다.

* * *

툭.

데구루루.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마법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마력의 폭풍을 뚫고 알렉산드르의 본체를 노렸다.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눈을 감고 있어야 할 알렉산드르의 머리가, 정말 재밌다는 듯이 환히 웃고 있었다.

“죽지 않았군.”

“큭큭큭큭. 정말 대단해. 어떻게 9서클 마법을 연달아 사용했는데도, 그걸 뚫고 내가 반응하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머리를 날려 버릴 수가 있지? 내가 일반적인 존재였다면 방금의 공격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 알렉산드르는, 그따위 공격만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쿠르르르릉.

마력이 일어났다.

검은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알렉산드르의 머리가 연기로 흩어졌다가 몸에 다시 생겨났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알렉산드르의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예상은 했다. 불사(不死)의 능력을 사용하는 존재라면, 머리가 날아가도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알았으면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로만 드미트리. 나는 너를 진심으로 인정한다. 내가 아니라면 너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확신에, 나는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말이야. 겨우 오합지졸에 불과한 크로노스의 병사들을 믿고, 내가 너를 이곳으로 유인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히죽히죽 웃었다.

상대가 강할수록.

희열은 더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릴 순간의 전율을 생각할 때마다, 알렉산드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함정에 빠진 것은 오히려 너였다. 리바이브(revive).”

파스스스.

어둠의 마력이 폭발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그들이 눈을 떴다.

머리가 날아가고, 팔다리가 찢겨 나가고, 육신이 온전치 않은 시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몸을 일으켰다.

망자를 되살리는 마법.

9서클 마법의 여파로 크로노스 제국군을 쓸어 버린 데는, 어차피 그들은 죽어야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리고.

“보아라. 우리가 그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이유를!”

확.

휘이이이잉.

바람이 휘몰아쳤다.

알렉산드르의 뒤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부서져 나가며 보랏빛 공간을 드러냈다.

공간이 열렸다.

그것은 바로.

마계의 통로였다.

3